2050년, 혹은 2300년에도 살아갈 그대들에게
새해의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2026년 정초, 투썸플레이스(대형 카페 프랜차이즈) 카페에 앉아 맥북(애플 사의 노트북)을 두드리며 그대들을 상상한다. 2050년 혹은 2300년에도 나의 이기적 유전자를 지닌 채 살아갈 미래 자손들을.
카페까지 오는 길은 유난히 추웠다. 오랜만에 서울에 눈이 내릴 거라는 소식을 듣고 따뜻한 신발을 신었지만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손과 발이 시리다(질문, 그대들은 수족냉증이 있는가?)
사실 그대들이 먼 과거로 치부할 지금의 기술력으로도 키워드 몇 개만 뚝딱 넣으면 한 편의 글이 완성되곤 한다. 그 방법이 훨씬 쉽고, 글도 훨씬 수려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에는 AI의 혜택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아직까지의 AI 기술력으로는 평균지향적인 글을 작성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와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이들에게 쓰는 이야기(혹은 사과의 편지)인 만큼 나의 톤으로 글을 이어가고 싶다.
어렸을 적 나는(그러니까 2000년 대 초반의 나는) "20년 뒤 미래"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려야 할 때 언제나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그려 넣었다. 장난기가 넘치는 친구들은 사이보그 인간을 그렸고, 순수한 영혼을 지닌 친구들은 달나라에서 토끼와 함께 절구지에 떡을 짓는 그림을 그렸다. 대부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게 당시 우리들의 상상력의 최대치이자 한계였다.
사실 그리면서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산타가 없다는 사실은 그 나이에도 얼추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 진짜 2020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인류 역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면 그대들에게 2000년대나 2020년대나 그다지 크게 차이가 있겠냐 싶다만(나 역시 학창 시절 1900년과 1920년의 차이에 그다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사실 이 시기에는 어느정도 우리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변화가 이어졌다. 이 시기에 전화와 메시지만 되던 휴대폰이 훨씬 똑똑해졌다. 이제는 배달을 시킬 때 굳이 음식점에 전화해서 집 주소를 귀찮게 읋어줄 필요 없이, 딸깍 클릭만 하면 저장된 주소로 음식이 배달이 가능해졌고, 결제도 굳이 잔돈 거슬러 줄 필요 없이 스마트폰으로 결제가 가능해졌다. 삶이 전반적으로 편리해졌지만, 여전히 하늘을 나는 자동차나 사이보그는 택도 없는 시대였다.
여전히 학교에서 국어, 영어, 수학 위주의 수업이 주를 이뤘고, 대부분이 스펙을 쌓고 적당한 회사에 취업을 꿈꿨다. 어느 정도 성공 방정식이 있었달까? 성공을 위한 길이 존재했고, 우리 세대는 그 길 위에 서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못한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책으로만 보던 1400년 대 '흑사병' 급의 바이러스가 퍼진 것이다. 2020년의 우리들은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꿈꾸던 2020년이 고작 전염병 때문에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현실이라니. 참으로 시시하고 허무하도다.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는데 학교 수업은 전면 온라인으로 전환 됐고, 외출할 땐 항상 마스크를 써야 했다. 이 시기에 통계 수치로 보면 전세계적으로 꽤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길거리에 시체가 쌓여있고 그 시체 사이로 쥐들이 돌아다니는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도 벚꽃은 아름답게 피었고, 기업은 직원(인간) 채용에 적극적이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은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마스크를 쓰고 나름 잘 살아갔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은 흘러 2023년이 됐다. 언뜻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이전 시대와 이후가 그다지 크게 바뀌진 않은 거 같았다. 이때도 여전히 자동차는 지상으로 달렸고, 사이보그 팔을 단 인간도 없었으며, 일반인을 태운 우주선이 발사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2026년 1월 1일 종로의 보신각에서는 여느 해와 같이 재야의 종이 울렸고, 붉은 말의 해 2026년이 시작되었다. 매년 그래왔던 것 처럼 주변인들에게 덕담을 나누고, 부지런한 사람들은 새해 첫 해돋이를 보러 산에 올랐지만 예민한 사람들을 알아챘을 지도 모른다. 올해는 뭔가 다르게 흘러갈 것 같다는 감각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올해는 정말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만 같다. Chat GPT(최초의 범용성 AI)가 출시된 2023년 11월 이후로, 기술의 발전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다. 추상적으로 존재하던 미래가 드디어 사람들의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다. 테슬라 사(일론 머스크가 세운 전기차 기업)에서는 자율 주행 자동차를 선보였고, 많은 유튜버들이 서울과 부산, 강원도의 눈 덮인 고개에서 직접 자율 주행을 테스트 하는 영상을 올려 댔다. 결과는 놀라웠다. 도로도 뻥뻥 뚫려 있고, 집집마다 차고가 있는 미국이 아니라 촘촘하게 길이 나 있는 한국에서도 거의 완벽하게 자율 주행이 작동한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설렘과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제는 정말로 사람이 직접 운전하지 않고도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대들의 입장에서는 이전의 자동차를 보며 코웃음 칠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직접 운전해야 되는 것은 자동(Auto)이 아니라며. 그대들이 태어나기 전 사람들은 사이드 미러를 예의 주시하며 직접 도로 상황을 파악하고 , 적절하게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아 자동차를 조작해 목적지까지 이동해야 했다. 그리고 한 때 이 멋진 수동 기계를 갖기 위해 매달 높은 할부금을 감당했던 카푸어 족이 유행하기도 했다.
자율 주행뿐만 아니라 하늘을 나는 자동차 프로토타입이 나오고 있으며 실제로 예약 구매를 받고 있다. 또 사이보그 팔 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사와 테슬라 사에서는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휴머노이드 초기 모델을 선보였으며,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Space X에서는 발사체를 회수하며 우주까지 가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있다. 미국 아마존 사와 버진 그룹에서는 민간인의 우주여행 상품을 기획하고 있으니, 머지 않아 민간 우주 여행이 가능해질 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적 꿈꾸던 미래는 시기가 조금 늦어졌을 뿐, 이미 실현되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의 나는 숫자 1,000을 넘어 억과 조를 상상할 수 있을 만큼 머리가 컸다. 최소한의 합리성으로 따져봐도 지금의 기술 혁신 속도를 고려해볼 때 2030년이면 완전히 새로운 특이점(Singularity)이 올 것이 자명하다(그대들에게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전혀 특이하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변화될 미래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들려오면 심장이 뛴다. 이런 생리적 작용은 설렘이자 동시에 불안에서 기인한다. 인간에게 내재된 탐험가적 호기심이 끓어오르지만 한편으론 내가 평생에 걸쳐 학습해 온 지식이 더 이상 쓸모 없어질 거라는 불안감.
눈에 띄는 기술 혁신 속도 만큼 망가져 가는 지구를 보면 불안은 가속화된다. 지구는 오염 됐다. 봄에는 인간의 호흡기에 치명적인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는다. 마스크도 소용이 없다. 조금은 막아줄지 모르겠지만,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먼지로 인해 실시간으로 목이 잠긴다. 다른 계절의 상황도 썩 좋지 않다. 사회에는 시기와 질투가 만연하며, 낙관보다는 비관이 지배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혼인율과 출산율이란 결과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지구인들의 인구 감속화가 급속도로 진행 중이며, 한껏 예민해진 국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벌이고 있다.
이런 시대에 과연 나는 이기적 유전자의 부름에 따라 새 생명을 탄생 시켜 이 유전자를 고스란히 미래의 그대들에게 넘겨주어도 괜찮은 걸까?
이야기는 이 고민으로부터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