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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착서점 Jun 01. 2023

코타 키나발루에서 한 약속

혼란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을 창조한다

코타키나발루에 다녀온 지 이틀 째, 아직 여행에서 쌓인 피로가 다 풀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고 갈 때 새벽 비행을 했으며, 여행 가서도 뙤약볕 아래에서 정말 미친 듯이 놀아 어깨가 벌겋게 올라 지금은 살이 다 벗겨졌다. 어제는 피로도 좀 풀 겸 늦잠 좀 자볼까 했지만, 아침 06시 30분에 북쪽 로켓 발사 재난 문자가 나를 단잠에서 깨웠다.


코타 키나발루 여행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는 내재적인 의무가 있다. 순전히 나만을 위한 하나의 의식이랄까?

하루하루 지날수록 여행에 대한 기억이 있던 자리에 서울에서의 일상이 자리 잡게 되며, 그때의 감정과 심상들이 멀어져 가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서 앉았다. 더 늦기 전에. 피곤해도 써야지.




코타 키나발루는 언젠가부터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 상위권에 있었다. 옛날에 대외활동 같이 했던 누나가 코타 키나발루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했던 이후로 나도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무의식에 자리 잡은 거 같다. 여동생도 다녀왔다. 나도 언젠가 갈 거다. 언젠가...


세상은 정말 신기하게 연결되어 있는 거 같다. 코타 키나발루를 가겠다 마음먹고 여행 계획을 짠 건 아니었다. 마케팅 대행사에 다니며 팀장님이 요청하신 '5월 이슈'를 정리하던 차 석가탄신일 대체 공휴일이 거의 통과 직전에 있다는 소식을 남들보다 일찍 알게 됐고, 입사하자마자 매일같이 새벽까지 야근하며 지친 심신을 위해 여행을 결정했다. 처음에는 가까운 일본을 갈까 했지만 딱히 흥미가 끌리진 않았고 휴양지를 알아보던 중 코타키나발루가 딱 눈에 띄었다. 마침 비행기편도 가장 괜찮았던 거 같다. 결정했다. 코타 키나발루로. 그렇게 코타 키나발루 여행은 과도한 업무량 덕분에 갈 수 있었다. 




코타 키나발루는 나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주었다.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구나 하는 황홀감과 기쁨을 준 한 편, 뭔지 모를 찝찝함과 잡념들도 동시에 안겨주었다. 양극단은 맞닿아 있다. 밝은 빛 뒤엔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한다. 이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사람인지라 빛만 바라보다 그림자가 드리우는 상황이 못내 불만스럽다. 그림자를 마주한 나는 이내 찝찝함을 감출 수 없었다.


여행은 환상적이었다. 도착한 첫날 눈뜨자마자 맞이한 천둥번개 치는 바깥 풍경에 잠깐 이마를 부여잡긴 했지만, 이내 비는 그치고 환상적인 나날들이 이어졌다. 


첫날엔 반딧불이 투어를 하며 동심과 환상에 빠질 수 있었고, 둘째 날엔 '모아나' 세계에 온 듯한 깨끗한 바다와 평화로운 풍경을 배경 삼아 여유로운 날을 보냈다. 셋째 날에는 그토록 고대하던 탄중아루 리조트에 가서 세련되면서 평화로운 곳에서 수영하고 노을을 보며 하루를 마쳤다. 넷째 날 아침에는 혼자 일찍 일어나 탄중아루 주위를 산책하며 평화를 즐겼고, 요가 프로그램에 참석해 땀을 흠뻑 뺐다. 


완벽했다. 날씨도 완벽했고, 모든 상황이 좋았다. 여행에서 스쳐 지나간 인연들과 서로의 행복 에너지를 나누었고, 이런 상황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림자가 드리웠다. 눈물이 보였고, 마음은 조급해졌으며, 핸드폰도 잃어버릴 뻔했다. 내 손으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 소용돌이의 여파는 아직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래서 혼란스럽고 복잡하다. 새벽 비행으로 인한 피로와, 잡념이 머릿속을 채우며 일상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딱 한 자리 남은 수영 강습 신청에 성공해 수영을 시작했고,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스피치 클래스를 수강하고 있다. 여행 내내 했던 다짐이 나를 행동하게 만들었다. 나를 업그레이드시키고 싶다. 가장 발전된 '버전'의 나를 보고 싶다. 




작년 이맘때 처음으로 브런치를 시작했다. 취직을 하면서 브런치에 소홀하게 되었지만, 작년에 내가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일을 하면서도 글이 너무 쓰고 싶었다. 퇴사를 결심한 이유 중 하나도, 내가 글을 쓸 시간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다 보니 제대로 써지지 않는다. 역시 꾸준하게 쓰는 것 말고는 대체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는 코타 키타발루의 대자연 앞에 약속을 하고 왔다. 나의 인생을 살겠노라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겠다고. 그리고 세상에 도움이 되겠다고. 


나와의 약속을 지킨 다음 다시 그 광활하고 아름다운 대자연 앞으로 가 말하고 싶다.

"어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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