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생이 전하는 라떼 이야기 -휴대폰 편-
애 키우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 학생들은 아이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구리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표현도 올드할 만큼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유튜브로 키즈 영상을 접하고, 직접 손가락으로 다음 영상을 넘겨가며 디지털을 스스로 학습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아이폰을 사용하고, 카톡과 DM으로 소통하며, 틱톡으로 세상을 접하는 세상이다. 요즘 애들은 전화받는 손동작도 스마트폰으로 받는 시늉을 한단다.
라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뭐~? 아이폰~? DM???
바야흐로 2000년대 중반, 평균적으로 초등학교 4~5학년 정도 되면 휴대폰을 사주셨다. 한창 에너지 넘치며 밖으로 돌아다닐 나이기에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일찍 들어오라 연락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당시엔 지금 보다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기능도 많이 없었는데도, 휴대폰 사면 '애들 공부 안 한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땐 그랬다.
휴대폰을 사도 친구네 집 번호 5개 정도는 거뜬히 외우고 다녔는데, 한 달 동안 주어진 '알'을 다 쓰면 콜렉트콜을 사용해 전화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알'은 문자 한 통을 보내고 전화를 할 때마다 닳게 되는 자원이었는데, 비싼 요금제를 쓰지 않는 한 대부분 열흘 만에 '알' 플렉스를 하고, 나머지 3주는 '콜렉트콜'로 연명해야 했다.
콜렉트콜로 전화를 하게 되면 3초 안에 자신의 신분을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밝혀야 했다.
주로 "엄마 나야!!" 혹은 "저 명수 친구 재석이인데요!"로 시작해 본인의 신분을 밝히고 끊지 말아 달란 애원 섞인 톤을 담아 전한다. 친구가 수화기를 받으면 콜렉트콜 요금이 많이 나오기 전에 용건만 간단명료하게 딱 말해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그때까지 휴대폰은 직접 대면 만남을 위한 보조 수단이었지, 어린아이들에게 소통 수단으로써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았다. 덕분에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경도를 하고, 학교 수돗가에서 워터밤을 열고, 운동장에서 신나게 공을 차며 오감으로 느낀 생생한 추억들을 쌓았다.
당시 사람들이 휴대전화 기기에 바라는 점은 딱히 없었다. 그냥 전화와 문자만 잘되면 됐다. 그래서 성능 스펙의 혁신보다는 디자인에 열을 올려 홍보에 앞섰다. 기종은 애니콜(삼성), 사이온(LG), 스카이(팬텍) 3파전이었는데 가끔 모토로라를 들고 다니며 멋 좀 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매직홀을 사용했다. 핸드폰을 열 때 이음매에서 나는 특유의 '똑딱' 소리가 재밌어서 시도 때도 없이 열었다 닫았다 했었다. 지금 봐도 심플하고 귀여운 디자인이다.
핸드폰을 바꾸게 되면 일주일 정도는 새로운 자판에 익숙해져야 되는 기간이 있었는데, 제조사마다 자판 배열을 다르게 만들어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엔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새로운 자판 배열에 또 금방 익숙해지긴 했다(역시 어릴 때 학습 속도가 빠르다).
독특한 디자인, 비슷한 성능의 피처폰이 줄줄이 나오던 때에 꽤 이목을 끌만한 혁신이 있었는데, 바로 DMB가 내장된 핸드폰이었다.
"아니 집 밖에서 무선으로 영상을 볼 수 있다고...? 우와 쩐다...
이러다 나중에 핸드폰으로 메이플스토리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DMB 핸드폰의 진가는 수학여행 가는 버스 안에서 비로소 발휘된다. 안테나를 쭉 뽑고 버스 안에서 DMB로 지상파 방송을 보고 있으면 친구들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을 수 있으며 버스 옆자리는 인산인해가 된다.
"우와~~ 나도 같이 봐!!"
그런 관심을 받고 있노라면 버스 안에서 멀미가 느껴지더라도 DMB를 쉽사리 집어넣지 못하고, 의기양양하게 보곤 했다.
DMB 핸드폰은 우리 집처럼 삼 남매인 집에서도 상당히 유용했다. 당시 '1박 2일'이 보고 싶었던 나는 동생들에게 가위바위보를 져 '패밀리가 떴다'를 봐야만 했다. 2명 모두를 가위바위보로 보내버려야 했기에 확률적으로 불리한 싸움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DMB 핸드폰이 생기자 권력 앞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DMB는 피 튀기는 채널 선택 경쟁에서 벗어나 나만의 작은 화면 속으로 들어가 유유자적할 수 있는 휴식처가 되어 주곤 했다. 나에게 DMB 핸드폰은 권력 투쟁에 밀려 떠나온 귀향지에서 적적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초등학생 때 피처폰을 시작으로, 중학교 3학년 때 스마트폰(베가)을 처음 사고, 전역하고 난 다음 4년째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를 스쳐간 수많은 핸드폰들이 있었다. 휴대폰의 성능이 좋아지고, 기기 하나로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남에 따라 생활상 편의가 늘었지만, 점점 더 핸드폰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핸드폰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다. 과거 연락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던 핸드폰이 이제는 내 일상의 모든 것이 되어버렸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세대와 다른 어린 시절 추억을 쌓아 올릴 것이다. 놀이터에서 흙 파고 뛰어놀던 추억 대신 메타버스에서 디지털 세상을 탐험하고 있다.
윗세대 분들이 MZ 세대와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이 많다고 하는데, 우리 역시 알파 세대(201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와 소통하는데 애를 먹게 되지 않을까?
관계의 가장 기본인 소통 방식에서부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