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이거 얼마에여?"

96년생이 전하는 라떼 이야기 -문방구 편-

by 집착서점

요즘은 주변에 '문방구'가 잘 안 보이는 거 같다.

알파문구나 드림디포 같은 대형 문구점 말고 정겨운 문방구 말이다.


문방구가 없어진 데에는 학생수 감소와 각종 규제 등 다양한 배경이 있겠지만,

학교 앞에 삼삼오오 모여 형들이 하는 동물철권을 구경하고

무더운 여름날 슬러시를 내려먹던 풍경이 괜스레 그립다.


요즘은 무인 문방구 창업이 인기라고 한다.

왕년에 불량식품 좀 먹어본 사람으로서 이런 변화가 달갑지 않다.


라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이런 생각도 든다.

문방구에서의 추억이 없으면 어렸을 적 친구들과 정겨운 추억이 반감되는 거 아닐까?




라떼의 문방구는 문구점 그 이상의 공간이었다. 문방구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 준비물(Education), 오락(Entertainment), 식품(Food)


1. 교육 준비물(Education)


먼저 본연의 역할인 교육 부문을 살펴보자.

당시 문방구 아줌마는 각 학년마다 첩보원을 하나씩 두었는데,

보고받은 내용들을 바탕으로 필요한 준비물을 구비해 두었다.


사실 문방구 사장님들은 이미 많은 데이터가 머릿속에 있으시기 때문에 언제 어떤 준비물이 필요한지 감으로 대충 다 알고 계시지만, 혹여나 변동사항이 있는지 체크하시는 정도이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까먹은 준비물을 대신 챙겨주시곤 했다.

"명수야 콤파스 필요하지 않니?"


기본 준비물은 물론 학교 체육대회에 필요한 체육복과 손목밴드, 부채춤출 때 필요한 부채까지 모두 구할 수 있었다.


요즘은 학교에서 시험을 안 본다지만, 라떼는 1년에 4번씩 시험을 봤다. 학년에 맞춰 문제집도 다수 구비되어 있었고 심지어 시험범위도 알고 계셨다..


문방구는 초등학생들을 위한 만물상 같은 곳이었다.


2. 오락(Entertainment)


라떼의 문방구 하면 오락을 빼놓을 수 없다. 문방구마다 오락기 2~3대 정도는 구비되어 있었고, 동네의 내로라하는 강자는 모두 모였다. 학원 가기 전에 형아들이 철권 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다 학원에 늦은 적도 많다(가끔 친구들과 게임하다 삘받으면 학원을 째기도 했다).


게임 종류는 동물철권, 메탈슬러그, 스노보드 게임, WWE 등 게임 종류도 다양했는데, 문방구마다 보유하고 있는 게임이 달라 특정 게임을 위해 먼 문방구를 굳이 찾아가기도 했다.


단순 게임뿐만이 아니었다.

문방구에서는 사행성 도박도 팽배했다. 말 그대로 돈 넣고 돈 먹기. 문방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코인을 적게는 2배 많게는 20배까지 불릴 수 있는 게임기가 있었다.

e20d8419c42c3e61d7c1532983563cf0.jpg 짱깸뽀

뽑기는 2종류가 있었다. 종이판에 붙어있는 뽑기를 뽑아 적힌 상품을 문방구 아줌마에게 보여주면 받아가는 방식과 돈을 넣고 돌리면 플라스틱 알 안에 디지몬 피규어가 들어있는 뽑기 기계가 있었다. 뽑기 기계에는 레어 피규어가 1~2개 밖에 안 들어 있었는데, 알이 막 채워졌을 때 뽑으면 확률이 높았다.


유행에 따라 문방구 앞에는 팽이판이 설치되기도 하고, 걸상 앞에 앉아 유희왕 듀얼을 하기도 했는데 동네 모든 초딩들이 모여 자웅을 겨뤘다. 그때 생각을 하니 탑블레이드의 손맛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DIfH7_gVoAEPmdX.jpg 셋! 둘! 하나! 고~ 슛!!


요즘 생각으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라떼는 어렸을 때 총을 갖고 놀았다. 진짜 총 모양을 본뜬 BB탄 총 말이다. 분단국가답게 군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K-2를 만지며 어렸을 때부터 조기교육에 들어갔다. BB탄은 맞으면 굉장히 따갑고, 영 좋지 않은 곳에 맞으면 어린애들이 감당하지 못한 수준의 피해로 번지게 될 수도 있었는데, 그런 건 크게 신경 안 쓰고 열심히 총질했다.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땐 그랬다...



3. 음식(Food)


대개 문방구의 전경은 비슷했다.

문방구 밖에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100원, 200원짜리 아이스크림이 가득했고,

그 옆엔 쥐포와 소시지를 구울 수 있는 기계(일명 찌부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떻게든 소시지를 잘 눌러서 안쪽까지 바삭하게 익히려고 별 지랄 노력을 다했다.


개인적으로 여름에는 슬러시, 겨울에는 찐만두를 좋아했는데, 추운 날 낱개로 사 먹는 김치만두가 정말 일품이었다. 왠지 요즘은 김치 만두를 먹어도 그 정도 맛이 잘 안 난다. 배가 불렀나 보다.


문방구 내부에는 각종 불량식품이 줄지어 있었다. 아폴로, 차카니, 빗자루 사탕, 쫀드기 등등등...

지금 생각해 봐도 요즘 나오는 과자보다 훨씬 창의적인 거 같다. 문방구에서 사 먹는 불량식품은 맛은 그저 그랬을지언정 새롭게 시도하는 재미가 있었다. 테이프 사탕, 알약 같이 생긴 사탕, 신호등 사탕, 혀에서 소리 나는 사탕 등등... 얼마나 창의적인가? 과자 회사들 분발 좀 하자.



그 시절 문방구는 단순히 학용품을 파는 곳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다. 문방구는 초딩들에게 백화점이자 카지노였고, 스타벅스였다. 심지어 무서운 엉아들을 피해 도망갈 수 있는 경찰서이기도 했다. (호야문구 아저씨 아줌마, 정말 감사했습니다.)


물론 요즘 애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추억을 쌓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라떼의 입장에서 온라인 만남이 아닌 사람의 정이 오가는 아날로그 적인 교류가 많이 줄었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나는 어렸을 적 문방구에서 게임기 앞에서 경쟁을 배웠고, 손톱이 부러지면서 조립을 배웠고, 도박은 절대 하지 말자는 뼈아픈 가르침을 배웠다. 문방구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었다.


그로부터 서울에 온 지 13년이 넘었다.

가끔 이런 사람들 간의 정이 그리울 때가 있다.


Shout out to 호야문구, 빨강풍선, 둘리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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