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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착서점 Oct 22. 2023

팔자 사나운 마케터의 이직 이야기 1

팔자 사나운 사람의 취업 이야기

내 책상 서랍 속에는 3개의 다른 명함이 쌓여있다.

모두 올 한 해 동안 찍어낸 잉크도 안 마른 새것이다.


명함 컬렉팅(?) 과정이 MZ의 무책임함일 수도 있고,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스스로를 테스트해 보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 당사자인 나는 후자일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긴 하다.


첫 번째 회사는 꽤 명망 있는 광고대행사였다.

대표님의 비전도 좋았고,

회사 포트폴리오도 훌룡했다.

대부분 들으면 알만한 굵직한 회사들을

클라이언트로 모시고 있었다.

세 개의 팀이 있었는데

각각 카페, 금융사, OTT를 하나씩 맡고 있었다.


나는 그중 OTT 팀에 속했다.

내 마음은 카페와 금융사 쪽이 더 끌렸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으니 그저 운명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였다(원래 내 팔자가 좀 사나운 편이다).


OTT팀에 출근한 첫날, 여느 회사와 같이 신입이 온 날은 팀원 다 같이 점심 팀회식을 갔다. 첫날부터 무난하진 않았다. 뭐가 잘 안 됐는지 다 같이 30분 정도 늦게 출발했다. '오늘 뭐가 잘 안 풀리나?'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팀원들은 첫날부터 이런 모습을 보여 쪽팔리다며 민망해했다. 이게 뭐 쪽팔일 일인가 싶었다. 다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출근 3일 차,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우리 팀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나만 빼고 오늘 외근을 떠났나 싶었다. 아니면 신입 서프라이즈인가? 둘 다 아니었다. 1시간쯤 지나자 팀원 3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거기서 나는 약간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팀원들의 옷 차림새가 어제와 똑같았다. 상황인 즉 어제 새벽 4시까지 일을 하다가, 집이 가까운 팀원네 집에 가서 잠깐 눈 붙이고 다시 출근했다고 한다. 팀장은 그 후로 30분쯤 지나 도착했다. 이때쯤 눈치챘어야 했는데, 이때까지도 잘 몰랐다. 그냥 1년에 한두 번 있는 날이 하필 내가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고 일어난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입사 첫 주가 지났다. 나의 정시 퇴근은 아마 이때가 마지막이었던 거 같다.


2주 차가 되자 나는 팀원들을 뒤에 놓고 혼자 정시 퇴근을 할 수 없었다(미안한 마음도 있었고, 당연히 눈치가 보였다). 2주 차에는 평균 8~9시쯤 집에 갔던 거 같다. 듣던 대로 대행사가 쉽지 않구나를 생각했지만, 이 정도는 각오했던 부분이었다. 할만했다.


3주 차부터가 하이라이트다. 만성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던 2년 차 사수가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3주 동안 병가를 냈다. 거기에 점입가경으로 5년 차 시니어 매니저도 주말에 갑자기 쓰러져 3주 동안 회사에 나오지 못한다고 통보했다. 둘 다 꾀병이 아니다. 진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고, 밤에 픽 쓰러져 버렸다. 일에 대한 책임감은 확실한 사람들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업무 피로가 누적되어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것일 것이다. 순식간에 우리 팀에 남은 사람은 팀장, 6개월 차 매니저, 나(3주 차), 또 다른 신입(1주 차) 이렇게 네 명이 남게 되었다. 군대로 치면 상병장급이 모두 부상으로 이탈해 소대장과 일병 1명, 이등병 2명만 남은 상황인 것이다.


이때쯤 한 번 짚고 넘어가 볼 것이 있다. 왜 우리 팀은 다들 집에 못 가고 새벽까지 일 만하다 이 사달이 나버린 걸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업무량이다. OTT 자체가 콘텐츠 사업이다 보니 2차 콘텐츠로 풀어내야 할 양이 워낙 많다. F&B 산업이라면 기껏해야 신메뉴가 나왔을 때라던가, 유명 콜라보가 진행될 때 바짝 바쁘고 말겠지만, OTT는 한 달에도 몇 편씩 신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다. 내가 맡았던 브랜드는 한 달에 2차 콘텐츠 60개를 발행했다. 인스타그램 기준으로만 60개이고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에 올라갈 땐 SNS 특성에 맞게 약간씩 변형되어야 했다. 거기에 매달 캠페인 광고도 진행되고, 채널 별로 보고서를 따로 작성해야 했다(회사에 돈은 꽤 준 듯하다 ).


또 2차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선 먼저 콘텐츠를 시청하고 이해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갖고 있는 콘텐츠들을 기반으로 특정 콘셉트, 예를 들어 어버이날 기념으로 부모와 자녀가 포옹하는 장면을 모아서 콘텐츠를 만들기로 기획했다면 OTT에 있는 거의 모든 콘텐츠를 다 찾아봐야 한다. 열심히 2배속으로 돌리고 방향키'>'를 연타해 가며 부모와 자녀가 포옹하는 장면 8개 정도를 간신히 찾았더라도 제작사, 배급사 등등 판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2차 콘텐츠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 또다시 재미도 모를 콘텐츠들을 뒤져가며, 원본을 찾아 타임코드를 찾아 디자인 팀에 전달해야 했다.


뭐 좋다 이거다. 까짓 거 4명이서 하면 정시 퇴근은 못하더라도 하루종일 부지런히 하다 보면 9시쯤 사이좋게 집에 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바로 해도 해도 너무한 광고주의 존재였다.


새벽 3시까지 위의 과정을 거쳐가며 만든 60개의 콘텐츠 기획안을 들고 가면, 그중 40개는 반려를 놓는 것이다. 갑자기 새로운 이슈를 들이밀며 기존 기획한 콘텐츠를 빼고, 새로운 기획안을 추가해 달라 요청한다. 기한도 이틀 정도 준다. 그러면 또다시 이틀 동안 밤을 새 가며 기획안을 새로 짠다.


이 과정을 소대장(팀장)과 일병 1명, 이등병 2명 조합으로 3주간 밤을 지새우며 쳐냈다. 상병장이 부상에서 복귀하기만 고대하며.


이 3주간 정말 별에 별일이 다 있었다. 팀장도 일에 치이며 스트레스가 받았겠지만, 음... 우선 일병(6개월 차)을 갈구다 울렸다. 그리고 디자인 팀도 한 명 울렸다. 나한테도 딱히 살갑진 않았다. 본인은 그런 스타일을 바꿀 생각이 없다며 당당히 밝히기도 했다. 그래 뭐... 이 정도 마인드는 되어야 광고판에서 버티는 거 같기도 하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녀는 가시를 돋우며 살아남았다. 나는 그 방식에 대해 굳이 손가락질까진 하고 싶지 않다. 어떠한 결과든 결국은 본인이 감내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기간 동안 나는 다른 팀 신입 동기들의 인턴 기간(3달) 동안 정시 퇴근 하는 모습을 쓸쓸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하나의 희망이 있었다면, 상병장들의 복귀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버텨냈다.


5월 첫째 주, 그녀들이 돌아왔다. 별안간에 쓰러진 병장은 수술을 마치고 약간의 휴식 기간을 보냈고, 허리 디스크를 앓던 상병은 여전히 허리를 부여잡은 채 돌아왔다. 자 이제 8시 퇴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헛 된 희망이었다.


광고주는 이때다 싶었던 건지 일을 더 많이, 더 깐깐하게 보기 시작했고 우리 팀은 여전히 새벽 3시에 집에 갔다. 그때쯤부터 나는 하루 종일 앉아 있다보니 소화가 안되어 항상 속이 더부룩했고, 손목이 아파 버티컬 마우스를 사용하고 있었다.


잠을 잘 자지 못해 몸무게는 4키로 정도 빠져 있었고, 머릿속은 멍하고, 주위에선 얼굴이 맛이 갔다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거기에 인턴 PT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업무 강도에 발표까지 준비하려면 잠을 포기해야만 했다. 속으로 이게 맞나 수십 번 되뇌었다. 월요일이 오는 게 끔찍이도 싫었다. 이렇게 가단 내 몸과 정신이 다 망가져버릴 것만 같았다. 이 루틴으로 몇 달만 더 하면 병장처럼 샤워하다 돌연 픽 쓰러지던가, 상병처럼 허리가 아작이나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었다.


게다가 일에 대한 보람도 별로 없었다. 이렇게 밤새가며 열심히 만든 콘텐츠를 내놓아도 좋아요 30개는 찍혔을까? 그중 10개는 우리 팀원들과 회사에서 누른 거다. 가끔 20개 찍히는 날, 50개 찍히는 날에는 왜 덜(더) 찍혔는지 광고주에게 설명해야 했다.


주말이라서... 콘텐츠 계절감이 잘 나타나서... 어떤 밈을 활용해서...


사실, 20개든 30개든 50개든 뭐 어쩌라고...(잠을 못 자서 예민해져 있던 상태였다. 근데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여전히 어쩌라고다.) 20개 찍히면 벌벌 떨며 왜 안 찍혔는지 이유를 짜내고, 50개 찍히면 어깨가 으쓱해져서 '우리 팀이 기획 잘해서 잘 나왔다'하는 게 웃겨웠다. 이미 부정적인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나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5월 둘째 주 월요일, 나는 그만두겠다 선언했다. 입사한 지 두 달째 되는 날이었다. 팀원들은 잠시 놀란 듯했지만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2주 정도 더 다니며 일을 정리했다. 퇴사 날짜를 잡은 이후로 나는 정시 퇴근을 했다. 여전히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사실 당연한 거 아닌가. 어색한 당연함을 뒤로하고 나오면 아직 푸른 끼를 머금은 하늘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래, 이게 사람 사는 거지.


그 이후로도 간간히 팀원이었던 사람의 소식을 들어보면 여전히 야근은 많이 하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나오길 잘했다며 위안을 삼는 동시에, 만약 내가 여전히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부분 끔찍하게 끝나긴 한다.


어찌 보면 퇴사도 용기일지도 모르겠다.

책임감 없는 MZ의 넋두리인지도 모르겠다만.

그 채널의 좋아요는 여전히 20~50개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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