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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즈 Apr 10. 2023

거절하는 연습 중

협조한다는 '착각'으로 모든 일을 다 떠맡고 있는 이들에게

"아니오. 안됩니다. 어렵습니다. 못합니다."


이런 말을 내뱉기까지 꽤 오랜 기간이 걸렸다. 

나는 무조건적인 예스맨도 아니지만, 웬만하면 협조하기 좋아하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도 언젠가는 인생에 쓸모가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도맡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의 모든 순간이 짜증으로 점철되어 가는 걸 느꼈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조차 돌보지 못하면서 무슨 뒤치닥꺼리인가" 라는 생각과 함께 내 탓을 하기 시작했다. '남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는게 중요하다. "협조적인 사람"이라는 허울 속에서 나를 호구로 만드는 주변인들을 원망하기 보다 "왜 나는 그릇이 이것 밖에 안되는가"라는 자책이 매일 같이 나를 짓눌렀다. 


틀렸다. 


나는 거절하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거절했을 때 부탁했던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게 싫어서 "딱히 거절할 큰 이유가 없으면" 매사 남들의 부탁(말이 좋아 부탁이지 대체로 떠밀기나 명령)을 모두 수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내 삶이 과부하로 곧 터질 지경인 것도 모르고 "내 그릇 크기"나 운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거절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거절에 익숙한 것 같았다. 오히려 그동안 내가 왜 거절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거절의 메시지 전달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명령자'들도 많았다. 


오늘은 어떤 '프로명령러'의 부탁을 네 번이나 거절했다. 

이 '프로명령러'는 말그대로 '명령'한다. 일종의 가스라이팅도 있는 사람이다. "당신이 ~~해야돼"라고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말하는데, 그동안은 그냥 얼굴 붉히기도 싫고 그 치사함에 대항하면서 감정 소모하기 싫어서 항상 그가 던지는 배설물들을 치워왔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달랐다. 

아침부터 명령하기 위해 전화한 '프로명령러'는 그의 명령을 듣자마자 잘라버리는 나의 단호한 거절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나 그는 이 협조적인 동료(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던 것 같다. 한번 더 전화를 걸어 같은 일에 대해 내가 "해야하는 이유"를 읊어댔다. 이번에는 설득과 '부탁'이었다. 하지만 나는 또 거절했다. 오늘만큼은 이 '프로명령러'의 명령이건 부탁이건 무엇이든 거절해야만 했다. 왜냐면 나는 어제 이미 '프로명령러'의 일방적인 일정 통보에 스케줄을 맞추느라 밤을 샜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도 부족해서 내일, 그리고 내일 모레까지 나를 부려먹으려는 이 수작에 부아가 치밀었다. 


오늘 '프로명령러'는 본인의 할 일과 넓은 오지랖으로 남이 해도 될 일까지 나에게 떠안기려는 두 가지 계략에 모두 실패했다. 명령과 부탁이 연속적으로 거절되자 거의 애걸하다시피 반복적으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으나 나는 계속 거절했다. 


아주 잠시 마음은 불편했지만, 나의 소중한 시간과 건강을 지켜냈다. 


그동안 어려운 일을 포기하지 말고 해내겠다는 의지로 "한계에 다다랐을때 그 한계를 뛰어넘으면 나의 지경이 넓어진다."는 문장을 품고 살았다.

이제 이 문장의 방향성을 좀 바꿔보려고 한다. 그 한계를 뛰어넘는게 무조건 당면한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거절하거나 중단할 수도 있는 용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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