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창선 Nov 14. 2017

업무전화를 알아듣게 해보쟈.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브랜딩 뿐 아니라 모든 업무가 그렇듯 커뮤니케이션은 흔히 4가지로 나뉘어집니다.


1. 얼굴보고 하는 미팅

2. 글로 주고 받는 메일

3. 목소리로 주고받는 유선

4. 법정에서 주고받는 소송


등등이죠. 물론 4번은 되도록 안하면 좋겠지만, 종종 하고싶기도 하고 은근히 주변엔 이 대화를 하시는 분들이 꽤나 있더군요. 5번 몸의 대화도 있지만 다 큰 어른들이니 그건 잠시 미뤄놓도록 하겠습니다. 일을 함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파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해야 할 때 입니다. 기획, 컨셉, 느낌, 이렇게 만들어주세요 등을 알려야 할 때죠. 물론 상대방이 초안을 잡아주면 좋겠지만, 그는 초안을 잡을 시간이 없습니다. 손으로라도 그려주면 참 좋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뭐 어차피 레퍼런스는 내가 만들어서 주는 편이 오히려 속 편할 때가 있으니 웃으며 넘어갈 수 있습니다.

어..어 뭔 말이야?... 기한을 못 맞추겠다고?..

문제는 이렇습니다. 전화와 메일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거죠. 특히 위에서 말한 두루뭉술한 것들을 표현해야 할 때는 너도 나도 내 머릿속의 타블렛을 활용하여 제 멋대로 창작활동을 펼집니다. 깔끔하고 간결하게 정돈하기 쉽지 않은 작업이죠.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돈문제를 만들고, 서로를 피곤하게 합니다. 서로 좋지 않은 경험으로 남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은 제 짧은 경험들을 되살려 업무메일과 전화를 알아듣게 표현하기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커뮤니케이션 중 '전화' 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당.



전화를 해보자


업무전화를 해봅니다. 내선도 있고, 외부전화도 있고, 개인폰으로 받는 전화도 있고, 새벽에 자다가 깨서 받는 전화도 있고 업무전화는 시간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전화업무는 특성상 피곤을 유발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상식적인 시간'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듯해서 24시간 전화대기를 타고 있어야 하는 긴장감이 있죠. 또한 대부분의 전화업무는 그리 좋지 않은 이슈들이 많은터라 전화업무가 많아지면 가만히 앉아서 입만 움직였는데도 온 몸이 두둘겨 맞은 듯 합니다. 어릴 적 교통사고 처리를 담당하는 콜센터에서 근무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빌어먹을 보험사 전화는 가뜩이나 교통사고가 나서 멘탈이 소보로빵이 된 분들에게 ARS라는 (AstRal Strike = 정신공격) 거대장벽을 제공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곧 연결해드리겠습니다.' 라는 말을 400번쯤 듣고나서 분노게이지가 각성모드로 바뀐 분들이 저같은 콜센터 직원에게 다가오는 것이죠. 그들을 마주하는 것은 거대한 슈퍼사이언인을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 물론 저는 일개 지구인이죠. 그렇게 1년 간 다채로운 순우리말 욕을 듣고, 이후 3년간 영업직에서 배운 것 몇 가지를 풀어보겠습니다.


1. 안녕하세요는 없습니다. 어디에 누구라고 합시다.


애프터모멘트 박창선 대표입니다.

(아 대표님이세요? 저 한성일실장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이 순서로 나가는 겁니다. 이 때 '아 네!' 는 반갑게 올려줘야 합니다. 아!!당신이군요!! 라는 느낌으로 보이진 않지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스마트폰을 두손으로 쥐기도 합니다. 가끔 전화로 안녕하세요!를 하며 직접 고개를 숙이는 분도 있더군요. 뭐 어찌되었든 좋습니다. 안녕하세요는 2번째 문장입니다.


2. 다름이 아니라

다름이 아니라를 붙입시다. 한템포 쉬어가면서 나도 말정리 하기가 좋습니다. 상대방도 뭐가 다름이 아닌지 궁금하게 만들어줍시다.


3. 그 왜 예전에

이런 말은 쓰지 않도록 해용. 그..그그 왜 , 예전에 그 말씀하신 거 있잖아요. 그 뭐냐, 그거....

기억이 나면 다시 전화하도록 합시다.


4. 용건부터 말합시다.

사정얘기부터 늘어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 저희가 이번에 MDF로 제작하려고 했던 것이 시공업체 쪽에서 조금 이슈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쪽이 자재 들어오면 일정이 조금 늦어진다고 차라리 다른 것이 어떻겠냐고 추천해준 것이 있는데 제가 보니까 그것들도 나쁘지 않더라구요...'


이런 식으로 말이죠. 10마디만 더 들으면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가슴아픈 사모곡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7번방의 기적을 본 듯한 느낌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면 간결하게 용건부터 말합시다. 


'제작물품의 소재변경건으로 연락드렸습니다.'

라고.


5. 땋땋 얘기하자.

'되면 알려주세요'  라는 말은  "하더 거 마저 다아아아 하시고, 밥도 드시고, 데이트도 하신 후, 페북에 글도 올리시고, 푹 한 줌 주무셨다가 꿈결에 불현듯 생각나면 '월요일날 하지 뭐' 하고 미루셔도 되요." 라는 뜻입니다. 그건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예요. 기획사에서 일할 때 느낀 점이 있습니다. 가장 착한 목소리를 한 분들이 후순위로 밀려난다는 것이죠.


"결재진행도 해야하니 해당 견적과 비교견적 각1부씩 4시반까지 부탁드리겠습니다. 가능하신가요?"


이게 깔끔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 해야한다. 가능하신가요? = 가능해야한다. 라는 의미인데 저기에서 '아니요 불가능한데요' 라고 할 사람은 몇 없습니다. 분명 바쁘다, 지금 외부에 있다 뭐 이런저런 말들이 많겠지만,

그 쪽만 바쁜 건 아니니까요. 커뮤니케이션은 정확하고 땋.땋.땋 떨어지게 합시다.


6. 부재중 메모엔 제발 회신 전화번호를 적어주세요.

= 김대리님 한성물산에서 전화왔는데요? / 응 한성물산 누구? / 김형모 차장님이라는데../ 그게 누구야? / 글쎄요? / 전화번호는? / 아 맞다.. / .... /

아..그 번호 뭐드라...아...으....

7. 전화로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 본인은 말하면서 막 눈 앞에 그려지겠지만, 듣는 사람은 공허의 장막을 들추고 우주를 탐험하는 기분입니다.

설명은 메일로 주시거나 아니면 파일로 넘겨주세요.


8. 어떤 전화들이 올 지 미리 짐작은 해놔야 해요.

= 전화 받았는데 '왜 전화하셨어요?' 라는 말투면 상대방이 벙 찔 수 있습니다. 대충 누구에게 연락이 올 것 같고, 어떤 이슈때문일지는 어느 정도 정리를 해놓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 대화가 빨리 끝날 수 있죠.


9. 전화해서 메일로 넘어가지 마;;;


진짜 이런 경우가 은근 많더라구요. 서로 미리 체크도 안되있고, 자료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그냥 전화 먼저 하고 나중에 얘기거리를 정리하는 경우인데, 문제가 많습니다. 대화를 한 번 볼까요.


"이 대표님 저 OO협회 김정화입니다. 수정요청이 몇 가지가 있어서요."

"어떤...?.."

"저번에 했던 그 작업이요."

"로고요? 아니면.. 포스터요?"

"포스터 쪽인 것 같은데..잠시만요 저도 확인해볼께요."

(부스럭부스럭)

"아 포스터요"

"아, 네

"어떤 요청이시죠?"

"그 몇 가지 바꿔야 하는데, 그 위에 그 부분 있잖아요."

"아 잠깐만요 지금 외부라서 파일을 보기 힘들어요."

"아 그러세요, 그러면...음 이거 정리해서 메일로 드릴께요."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 맞다! 대표님 그 통장사본은 언제쯤 주실 수 있으세요?"

"어? 그거 저번에 보내드렸다고 문자드렸는데. 안왔나요?"

"아 정말요? 그럼 메일 확인해볼께요! 감사합니다!"


=총체적난국...일단 둘 다 문제가 있어요. 이 대표는 어떤 전화가 올 지 미리 체크가 안되어 있는 상태이고, 업무건에 대해 정확히 컨펌여부를 확인하지 않았어요. 추가업무가 진행될 사항이 있는 건은 항상 On going으로 놔두고 긴장하고 있어야 해요. 김정화씨도 문제가 있어요. 일단 미리 확인을 해보지 않고 그냥 무작정 전화만 해버린 케이스예요. 전화해놓고 그제서야 자료를 찾고, 메일을 확인해보겠다고 허둥지둥하고 있는 모습이죠.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주제가 "메일로 연락드릴께요." 로 끝나버렸습니다. 이건 서로 고구마섭취를 함과 동시에 상호간에 무례한 자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신경을 좀 써야해요.


10. 복명복창한당.


콜센터에서 전화교육받을 때나 영업뛰던 시절엔 전화 인바운드 롤플레이훈련을 정말 많이 했어요. 이 때 선배들이 알려준 꿀팁은 복명복창입니당. 상대가 했던 말을 다시 말해서 크로스체크하는 거죠.


"12일날 1차시안 진행하고, 15일을 수정안가지고 다시 미팅하는 걸로 하시죠."

"네 좋습니다 그럼 12일날 1차시안 드리고, 15일날 수정안 가지고 봽겠습니다!"



11. 끊고나서 아차! 하지 않으려면

끊고나면 생각나서 다시 전화하게 되는...


아래의 말을 한번 분석해볼께요.

"그럼 4시까지 서류정리해서 메일로 보내주시구요, 17일날 미팅건은 대표님께 확인해서 추후 알려드리도록 할께요. 맞다, 영상제작건은 어느정도 진행되고 있나요? 급한 건 아닌데 위에 보고할 사항이 있어서요."


4시 서류정리 후 전달

17일 미팅건 상대측 대표확인 요

추후 언제 어떻게 알려줌?

영상1차수정작업 완료/1시간 이내로 발송

보고할 때 어떤 사항들이 필요하신지?


이렇게 5가지 정보로 나뉘어지는데 이때 내가 확인해야 할 게 3가지이고, 재질문 해야 하는 것이 2가지입니다.

그럼 10번에서 말했던 것처럼 3가지는 크로스체크해주고, 2가지는 되물어야 합니다.


"4시까지 통장사본, 사업자등록증, 거래명세서 취합해서 보내드릴께요. 17일 미팅건은 확인해주시고 언제쯤 확인 가능할까요? (아마 오늘 중으로 가능할 것 같아요. 돌아오시면 바로 여쭤볼께요), 네 그러면 확인 후 19시까지 문자로 남겨주시면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영상은 1차수정완료되서 1시간내로 드릴거예요. 혹시 보고하실 때 추가로 필요하신 사항있나요? (아 수정사항 어디 반영된건지 알려드려야 해서요.) 그럼 수정된 부분 보고서에 표시해놓을 테니 별도로 챙기시면 될 듯합니다.(감사합니다)"


이런식으로 전화받으면서 내가 주어야 할 것들과 내가 들어야 할 것들을 명확하게 나눠보는 것이 좋아요. 적으란 얘기죠. 우린 어릴 적부터 한 귀로 흘리는 연습을 자주해서 들은 말 중 90%는 흘려버려요. 그러니 손의 도움을 좀 받도록 합시다.




말을 잘하는 것과 말이 많은 것은 엄연히 다른 얘기입니다. 업무전화의 생명은 간결함과 명확성이예요. "즈음, 추후, 확인하고 알려드릴께, 되면 알려주세요, 보내놓은 상태다, 아마도..." 등등의 뜬구름구렁이 표현은 좋지 않아요. 시간과 업무내용을 명확히 해놓으면 당장 할 일이 생기긴 하겠지만, 어쨋든 순서를 정할 수는 있습니다.

뿌연 커뮤니케이션은 이런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근데 두루뭉술해지면 대부분의 일들을 다 후순위로 밀어버리는 것이 또 사람의 본성이죠. 인간의 게으름은 끝이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후순위로 밀려난 거대하고 사소한 일더미는 결국 내일의 나에게 '누락과 폭망'을 선사합니다. 그러니 서로서로 정확하고 깔끔한 대화로 가열차게 혼나거나 멱살잡고 싸울 일을 최소화 해보도록 합시다.


메일 쓰기편에서 다시 만나용.


작가의 이전글 멋진 단어들이 브랜딩을 망친다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