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볼 때는 굉장히 이쁘기만 할 것 같았지.... 현실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 빠지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거의 대다수의 여행자들에겐 꿈의 드림과도 같은 곳. 우유니 소금사막이죠. 그래서 오늘은 그곳 얘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앞서 두 번의 여행기에서도 써놨듯, 제 여행기는 뭔가 조금 다릅니다. 어떻게 그곳에 가고 뭐가 이쁘고 갬성이 어떻고..이런 얘기는 없습니다. 심드렁하기가 이루말할 수가 없으니 이 점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그게 우유니든 달착륙이든 상관없이 그냥 그 때 느꼈던 것만 땋땋 얘기할 생각입니다.
우선 우유니는 볼리비아에 있습니다. 제가 칠레에 본진을 두고 여행을 했던 터라 보통은 뱅기를 타고 볼리비아로 가거나 산페드로까지 국내선을 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뱅기로도 몇시간 걸리는 거리입니다. 네 하지만 전 돈이 없었죠. 그러니 버스를 탑니다. 버스를 24시간 동안 탔습니다. 사람은 돈이 있어야 합니다.
버스가 뒤로 촥 젖혀지는게 물론 비행기 비즈니스 석보다 편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시간이지 24시간동안 타고 있으면 33개의 척추뼈가 각자 비명을 지르며 탈바디하고 싶어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화물칸에 실린 캐리어의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18시간 정도 지나면 인간으로써의 존엄성을 내려놓고 차 바닥 아무데서나 그냥 옷 깔고 누워자게 된달까요. 의자와 의자 그 사이 통로 있잖아요. 그냥 거기서 자게 되더라구요. 되게 아크로바틱하게.
그리고 나면 저멀리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도무지 평생동안 비라곤 단 한방울도 내리지 않는 지구에서 제일 메마른 땅. 산페드로에 도착하게 됩니다. 1년 강우량이 44mm에 불과하니 말 다했죠. 1년 동안 내리는 게 고작 이슬비 한 두번 정도란 얘기입니다. 도착하자마자 느낀 건 입술이 찢어지고 목이 탁 막히는 건조함이었습니다.
심지어 전 멍청하게 24시간을 12시간으로 착각해서 숙소도 잘못 예약했다고 합니다.... 멍청하게 멍때리고 있으니 다른 외국인님께서 도와주셨어요.
'오 이런 가엾고 바보같은 칭구같으니. 이리 오렴. 저렴하고 가성비 오지는 숙소를 알고 있어.'
라며 저를 인도해주셨습니다.
산페드로는 물가가 조낸 비쌉니다. 그도 그럴것이 여기선 뭐가 아무것도 나는 게 없어요. 전기도 물도 다 공수해와야 하죠. 전형적인 여행용 경유지입니다. 곳곳에서 에프엑스의 노래가 들립니다. 네 함수말고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에프엑스가 맞습니다. 한류가 오져버리는 곳인지라 걸그룹노래가 심심찮게 들립니다. 크리스탈의 목소리가 이토록 심신을 평안케 해줄 거라곤 생각도 못했네요.
공사장에 함바집같이 생겼지만 볼리비아 국경의 입출국사무소입니다. 여기서 비자에 도장을 찍습니다. 한국에서 황열병 주사 맞고 겔겔대면서 노란 딱지를 받아왔는데 뭐 젠장 검사도 안합니다. 가라도 이런 가라가 없음. 하지만 황열병에 걸리면 주님 곁에 빠르면서도 고통스럽게 갈 수 있으니 꼭 맞도록 합시다.
우린 총6명의 팀이었습니다. 칠레 의대생1명, 스페인부부 한 쌍, 시끄러운 친구2, 그리고 저. 이렇게였죠. 투어를 담당해준 볼리비아 드라이버님이 아주 시크했습니다. 잠재된 리듬세포를 깨우는 볼리비아 음악을 10시간 내내 틀어주셔서 세포핵의 미토콘드리아까지 춤추는 느낌이었습니다.
뻑 하면 펑크가 납니다. 자갈길을 80km로 달리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펑크가 안나면 그게 이상할 일입니다. 먼지가 오져버립니다. 편도선은 포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물을 백날 마셔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거 아세요? 6L짜리 물통을 들고갑니다. 보통. 마시고 10초정도 지나면 다시 갈증이 난달까요. 굉장한 곳입니다. 물론 제가 갔을 때가 건기라서 더 그런 것도 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빨리 사막이 보고싶으실테니 보여드립니다. 우유니 소금사막입니다. 점프하는 사진은 너무 많이 보셨을 테니 휑한 사진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저거 접니다. 대자연에 홀로 버려진 콜라캔같지 않습니까? 저긴 소금입니다. 굳이 먹어봤습니다. 개짭니다. 심지어 바람도 짭니다. 궁금하신 분은 직접 가서 혀를 내밀고 바람을 느껴보세요. 사방이 모두 그냥 저런 하얀 소금입니다. 식상하니 막 단체샷, 공룡인형 놓고 찍는 그런 건 생략하겠습니다. 사실 저 우유니 소금사막 밑에는 전세계인이 오래도록 쓸 수 있는 리튬이 저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핸드폰 배터리로 쓰이는 그 리튬이요. 하지만 볼리비아 기술력이 없어서 채굴을 못하고 있다고 하네요.... 엄청난 보물을 지하에 가지고도....기술이 없어서 빈국으로 시달리고 있는 아이러니랄까요..
찔리면 아픈 선인장입니다. 아주 크죠? 저기선 막 뛰어다니면 안됩니다. 저는 말 안듣고 뛰어다녔습니다. 숨이 차고 두통이 오기 시작합니다. 고도가 3,400미터가 넘거든요. 서서히 고산이 시작되는 고도지요. 남자라면 고산병약따윈 먹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긴 플라멩고들이 잔뜩 사는 호수입니다. 호수가 산화철 성분이 많아서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예쁘긴한데....저 때 이후로 사진이 없습니다. 왜냐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기는 4,500미터 고도입니다. 악마새끼같은 고산병이 강림하신 겁니다. 진심....아.. 이게 이러다 죽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실제로 저기서 응급상황이 생기면 노답입니다. 고산병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내 관자놀이에 누군가 정을 대고 해머로 끊임없이 내리칩니다. 내장의 모든 것이 쏟아져 나올 듯한 구토가 쏠립니다. 근데 정작 구토를 하진 않았다고 합니다. 진짜 개추워서 온몸을 달달달달 떨었는데 열은 펄펄 나고 있습니다. 소주를 4병정도 원샷하고 누우면 눈을 감아도 낭떠러지로 떨어지잖아요. 그 느낌이 영원히 계속됩니다. 시간의 굴레에 갇혀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랄까요.
그 때 절 구원해주신 분은 볼리비아 할머니셨습니다. 숙소에 계시던 신묘한 백마법사 할머니께서 저를 가엾이 여겨 약간 된장, 무와 생강맛이 섞인 이상한 차를 한 잔 주셨어요. 꽃이 올라가 있더라구요. 꼴짝꼴짝 마시고 나니.....
신묘하게도 망치질이 멈췄습니다. 힘은 없었지만 몸이 붕 뜬채로 정신이 반쯤 나가더라구요. 아무 생각도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선인장 꽃으로 만든 천연마약이라고 하더라구요. 원래는 코카를 오물오물 씹는데, 코카보다 더 강력한 진통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다음 날 진심 지옥에서 콘스탄틴이 절 구해진 느낌으로다가 살아났습니다. 마지막 날 투어는 사막사막합니다. 진심 모든 것이 모래입니다. 저건 접니다. 마치 예쁜 사막 사진에 코딱지 묻은 것 같네요.
네 이정도로 건조합니다. 저게 손인지 고대 중국의 갑골문자인지 알수 없는 지경이 되었어요. 심지어 손 뿐만 아니라 얼굴이며, 온 피부가 저 상태였답니다. 아마 저 4일 동안 피부나이는 20살 정도의 노화가 진행된 듯 합니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서 그림을 끄적대며 건조함을 달래며 전세계인의 버킷리스트라는 우유니 투어를 마쳤습니다. 우유니는 아름답고 건조했습니다. 하지만 것도 1,2시간 보다보니 그냥 하얀 사막일 뿐이더군요. 목은 팅팅 붓고 입술에서 계속 피나고 고산병에 머리가 터지기 일보 직전인데.. 뭘 느낄 게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우유니의 밤하늘과 소금호텔에서의 와인 한 잔은 정말 굉장했습니다.
전 똥손인지라 똑딱이 카메라로 30초 노출해놓고 그냥 아무렇게나 찍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가 나오더라구요. 실제론 더욱 아름답습니다. 저보다 잘찍은 사진은 구글에 널렸으니 거길 보세요. 사실 이 장관과 와인 한 잔 만으로도 그곳은 천국이라 부르기에 충분했습니다. 고산병은 지옥이었지만요. 4일간 사후세계를 체험할 수 있던 놀라운 시간이었습니다.
우유니에 다녀와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이 때의 느낌은 그 때는 모르겠더라구요. 다녀와서 한참이 지나야 정리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느지막한 여행기를 쓰는 게 훨씬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1. 고산병약을 챙겨가지 않는 것은 객기입니다.
코카든, 비아그라든 뭐든 내 체질을 모르는 상황이라면 챙겨가는 것이 좋습니다. 고산병은 흡연이나 폐활량과 관계가 없습니다. 체질입니다. 5,000미터가 넘어도 괜찮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3,000미터만 넘어도 지끈거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뭔갈 모를 땐 그냥 다 챙겨가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의 경험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게 내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을 때는 일단 해보는 게 좋습니다.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 눈 앞에 있는 기회들은 일단 챙기고 가는 것이 좋아요.
2. 모든 것이 아름답지 않아요.
처음에 우와앙아아우ㅏㅇ아ㅘ아우ㅏ앙!!!!! 우유니다아아아아!!!!!!!!!! 라고 다들 환호성을 지르는 건 딱 5분입니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그러하듯 사진에서만 보던 것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의 쾌감은 엄청나죠. 하지만 엄청난 건 5분입니다. 5분이 지나면 현실이 보이죠. 우와!!! 아름답다...이제 들어가자. 바람분다. 우유니의 매력은 인생사진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아름다운 흰 사막에 있는 것도 아닙니당.
사실 우유니의 참모습을 느꼈던 건 별사진 찍는다고 오밤중에 홀로 숙소에서 걸어나와 사막으로 저벅저벅 걸어갔을 때였어요. 진심....개무서웠습니다. 방향도 위치도 모르겠고 아무 불빛도 없는 절대암흑이었는데.. 여기가 공중인지 바다인지 사막인지도 모르겠더라구요. 우유니는 전라도 전체의 크기와 같아요. 엄청난 크기죠. 그곳에 홀로 서있을 때 느껴지는 감정들은 빌딩과 사람으로 가득찬 우리나라에선 느끼기 힘든 감정이죠. 우리가 좋아하는 게 거울같은 우유니에서 점프하는 사진인지, 아니면 우유니 그 자체인지...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3. 변수도 여행입니당.
길가다가 펑크가 나는 것도 여행의 일부입니다. 삶도 그렇구요.
4. 뭔가 할머니가 주는 건 다 약입니다.
볼리비아 백마법사 할머님의 포션으로 살아날 수 있었어요. 다 사람사는 곳이었나봅니다. 말 한마디 안통해도 얼마나 가여워 보였으면 그 꼬부랑 할머니께서 손수 차를 내려주셨겠어요. 물론 다음날 엄청나게 무기력해졌다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머리가 깨져버리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할머니가 주는 건 잘 받아먹도록 합시다.
5. 돈을 주고 시간을 사세요.
진심 24시간 버스는 에바였습니다. 이래서는 안되는 겁니다. 인간은 존엄하잖아요. 화물칸 짐짝이 되서는 안되는 거잖아요. 물론 그것도 인생의 경험이라면 경험일 수 있겠지만..사람의 경험이란 것이 해봐야 하는 것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버스짐짝 체험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돈버는 이유는 시간과 공간을 사기 위함입니다. 내 시간과 내 공간을 돈주고 확보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돈을 들여서 시간을 사세요. 돈이야 귀국하면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벌겠죠. 근데 시간을 포기하면 미래의 내가 없더라구요. 있더라도 골병이 들었던가..
6. 술은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친구입니다.
피곤해 죽을 것 같아도, 돈이 좀 빠듯해도, 고산병이 좀 걱정되도... 그 날 밤의 와인과 맥주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아픈 건 하루면 낫지만 그 날 못먹은 맥주는 오백만년동안 아쉬워요.
7. 생각보다 쉽습니다.
우유니. 딱 잘라 말해서 200만원으로 10일이면 다녀올 수 있습니다. 가는데 2일, 오는데2일 빼고 3박4일 투어까지 딱 10일 정도면 충분하네요. 사실 더 줄일 수도 있긴 합니다. 인생의 버킷리스트라는 게 화성탐사같은게 아닌 이상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200만원과 10일도 나에게 투자할 수 없는 삶이라면.. 도대체 난 나를 위해 무얼 하고 있는걸까요. 우유니에 별 관심없다면 뭐 그 돈으로 올뉴그램을 사시는 게 낫겠지만 평생의 꿈이라면 그냥 뱅기표를 끊으셔두 됩니다. 죽지 않더라구요. 그냥 다녀오시면 됩니다.
'다만 버스로 이동하진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