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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un 16. 2018

두꺼운 침낭에는 다 그러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지구반대편, 가장 남쪽을 걷기로 했다.

들어가기전에.


안녕하세요. 신성한 구독자님들. 이것은 여행기같지만, 여행기가 아닙니다. 모름지기 여행기란 막 감성 뿜뿜하고 차근차근 정보를 알려드리거나 눈이 호강하는 부러움포토를 투척하거나...이런 특징이 있는데 이 글은 그러한 특징이 전혀 없습니다.


남미는 심지어 무려 제작년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써야지..써야지 해놓고 2년동안 미루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기억에서 가물가물 해질 때 쯤 사진정리를 하다가 다시 그 때의 갬성이 터져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간만에 그 때의 기억도 되살릴 겸 다녀와서 먼가 느낀 것들을 제 스타일대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그러니 자세한 여행정보나 뭐 감성넘치는 여행기를 기대하시는 분은 다른 예쁜 여행기를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그러니까 이 때는 9월이었고 지구 반대편 칠레였고 심지어 최남단이었단 것이죠. 여기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남극이 나오니까요. 온 이유는 비행기표가 쌌고 마침 시간이 비었고 뭔가 빙의된 듯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준비기간이 10일도 되지 않았지만 냉큼 떨이 뱅기표를 사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온 것입니다.


아 추가적으로. 거의 무전으로 여행했어용. 60일 여행하는 내내 뱅기값제외 100만원정도?....밖에 안썼거든요. 나머지는 현지에서 벌어서 다녔다능.. 또는 현지 친구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구요.

저기 빨간 색 저기


남미는 나라가 아니라 대륙이예요. 엄청나게 커요. 그 중 '걸어서 세계속으로'에 자주 나왔던 바로 그 곳 파타고니아(아웃도어 브랜드 말고)의 남단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에 가고싶었던 거죠. 3개의 탑이란 뜻이래요. 봉우리가 3개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모르시는 분을 위해 잠시 설명을 해드리자면 저는 여행을 좀 변태적으로 하는 걸 좋아합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자고 일어나면 막 온 다리가 끊어질 것 같고 뭔가 열이 끓는 것 같고..발이 막 엉망진창이 되어있고 이런거 있잖아요. 그런 걸 느끼면 굉장히 마덜얼쓰의 일부가 된 것 같아 쾌감을 느끼는 타입이랄까요. 그러니 저와 비슷한 족부파괴 성애자가 아니라면 굳이 추천하진 않습니다. 아름답고 놀라운 건 사실 여기뿐 아니라 어디든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곳을 경험하고 삶을 풍부하게 채울 수 있습니다. 지구는 크니까요.


짧게 설명해드리자면, 3박4일 내내 15킬로 배낭 메고 걷는 여행이예요. 전 산장 예약을 하나도 안해놓은 데다가 돈도 없어서 그냥 계속 텐트에서 잤어요.


1일차는 지겹디 지겨운 평원을 오지게 보면서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인가? 달렸던 것 같아요. 처음에 볼 때는 팬티를 갈아입어야 할 것 같은 풍광이지만 여행내내 이런것만 보고있으면 버스 타자마자 커튼 닫고 자게 되요.

그리고 한참을 달리다가 보면 어느새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기 시작하는데 내릴 때가 되었단 얘기예요. 버스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성수기가 아닌지라 추운데다가 엊그제 비가 와서 날씨가 아주 지랄 맞았거든요. 저기만 맑았다능.


여긴 사유지인데다가 국립공원이기도 해서 돈을 내야해요. 대자연도 돈내고 봐야하는 자본주의의 젠장맞음을 느꼈어요. 심지어 비싸요. 5,6만원 정도 했던 것 같아요. 기온은 2,3도 정도였어요. 패딩 벗으면 춥고 입으면 덥죠.


초반 1시간 정도는 평지로 사람을 방심케 해놓고 갑자기 급경사가 시작되면서 산행이 시작되었어요. 트래킹이라매. 트래킹이라매!!!.... 이 때부터 다 벗고 반팔로 환복했어요. 패딩을 버려버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버렸다간 오늘 밤 전 윈터솔져가 되겠죠. 시작점부터 3시간정도를 걸으면 발목과 무릎이 후덜덜 거리면서 야영장이 등장해요. 분명 지나가던 프랑스친구가 30분남았다고 한 것 같은데 인간은 믿을 게 못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서울에선 가져보지 못한 아늑한 저만의 러브하우스예요. 물론 대여해서 가지고 온 거라 다국적의 냄새가 섞여있긴 했어요. 하지만 졸라 피곤하므로 그런건 신경쓸 겨를이 없어요. 저긴 그냥 텐트치는 야영장이고 레알 목적지는 텐트쳐놓고 2시간은 더 올라가야해요.


잡다한 사진은 사실 별 필요가 없어요. 죄다 돌길에 그냥 계속 산길이거든요. 그리고 발목을 제물로 바치고 등장한 토레스 델 파이네의 '라스 토레스' 예요. 웅장함이 오져버려요. 저 봉우리가 쪼꼬매 보이지만 사실 아파트 300층 높이예요. 저 수직 돌벽만 1,000미터에 가깝죠. 앞에서 보이는 거 말고 뒤쪽에는 절벽이 더 있어요. 미쳤. 개높아. 물이 아주 초록해요. 빙하가 녹은 물이기 때문이예요. 마시는 순간 장에 있는 모든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두번째 날은 이런걸 보면서 평지를 걸어요. 평지라서 쉬울 것 같지만, 10시간 내내 평평한 산길을 걸으면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두 무릎의 비명을 들으며 깨달을 수 있어요.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다른 행성의 느낌이예요. 사람들이 분명 많이 있을 텐데 앞뒤 1km 에 아무도 보이지 않아요. 외국형님들은 다리가 길어서 빨리빨리 가기 때문이예요.


본이 아니게 실물을 공개해버렸어요. 저땐 살이 쪽 빠져있네요. 빠질만하죠. 지금은 돼지가 되었어요.(배만) 그냥 계속 저런 곳을 걸어요. 처음엔 사진도 찍고 멋있었지만 갈수록 아무 생각도 없어져요.


바다가 아니예요. 호수예요. 엄청나죠? 네 진심 엄청났어요. 분명 호수인데 너무 커서 파도가 치고있어요. 촤륵촤륵 소리도 나요. 청바지 빨고 나서 물빠진 물 탈수된 느낌이예요. 물론 그것보단 더 아름다웠어요.


이제부턴 눈이 등장해요. 고도가 높아졌기 때문이예요. 가끔 우릉우릉 눈이 무너져서 떨어지는 것이 보여요. 대자연의 우릉거림을 느낄 수 있어요. 천둥이 치는가 했는데 눈 무너지는 소리였어요. 잘 때도 계속나요. 무서워서 잠을 못잘 것 같죠? 아니예요. 바로 자버려요. 사람은 원래 감각을 한 번에 하나밖에 못느낀대요. 이해가 돼요. 다리가 아프니 귀가 들리지 않아요.


전역한지 8년이나 지났는데. 다시 전투식량을 먹을 줄은 몰랐어요. 저 라면은 신라면이예요. 미쳤어요. 제일 맛있어요. 야채참치는 세상에서 제일 고급스러운 반찬이예요. 전투식량의 고소함과 기름짐이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 주었어요. 사랑해요.


3,4일차는 굉장히 쓸쓸한 풍경이 계속되요. 뭔가 까맣죠? 저게 3년전인가? 어떤 미친놈이 담배펴가지고 서울만한 면적이 불에 타버렸대요. 서울만한 면적이!!!!..... 도랏맨.


그래서 굉장히 까맣고 적적하고...슬픈 풍경이 계속되요. 다행히도 배낭에 초코바가 남아있어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어요. 3일차가 넘어가니 이젠 다리가 감각이 없어요. 영혼도 없어요. 사진도 찍기 싫어졌어요. 그래서 이 다음부턴 사진이 없어요.


트래킹이 끝났어요. 걸어오는 친구들끼린 말할 힘도 남아있지 않을 거예요. 저 멀리서 오는 보트를 타고 시작점으로 되돌아가요. 그리고 버스타고 슝슝 도시로 돌아가죠.


그리고 도시로 돌아가니 한국인 동생아이와 남미소울 가득한 볼리비아, 칠레, 캐나다 칭구놈이 있었어요. 여행을 끝낸 후엔 역시 술을 마셔야 해요. 지금 쟤네들은 여자친구의 '시간을 달려서' 를 들으며 춤추고 있는 거예요. 전세계 누구나 눈은 비슷하구나 라는 걸 생각했어요. 한류가 새삼 자랑스럽더라구요.  덧붙이자면 은 아름다운 거예요. 와인은 포도알맹이로 만들지만 와인만들고 남은 포도 껍데기를 발효한 뒤 증류하면 피스코라는 술이 만들어져요. 약 35도의 앱솔루트정도의 세기죠. 살그머니 포도향도 나고 아주 맛있어요. 우리나라에선 쉽게 구하기 힘든 술이라 원없이 마셨어요. 전세계의 어떤 사람이든 술을 마시면 친구가 될 수 있어요. 물론 좀 이상한 친구가 될 순 있겠죠.


4일내내 약 40km를 걷고 왔어요. 느낀 것들을 적어보도록 할께요.



1. 어깨에 졸라 무거운게 있어도 다 짊어지고 가야할 때가 있어요.


가스, 버너, 텐트, 침낭 등등... 온갖 무거운 것 투성이라서 야채참치고 나발이고 다 내던져버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일단 국립공원인지라 쓰레기를 버리지도 못하고 그걸 버렸다간 굶어죽기 십상이예요. 할 수 없이 다 짊어지고 가야해요. 하지만 잘 짊어지고 가면 저녁에 도착해서 오져버리는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어요. 현재의 행복을 추구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편한 것과 행복은 다른 개념이예요. 짐을 버려버린다고 행복해지지 않아요.


2. 사람의 상대성은 생각보다 심각해요.


30분 남았대매!!!! 30분!!!.... 지는 내려오는 길이니까 30분이겠지..ㅠㅠ... 올라가는 데 2시간은 걸리더만!!.... 사람이 이렇게 서로느끼는게 다릅니다. 물론 그 친구는 키도 크고 다리도 기니까 그랬겠죠.. 우리는 과거의 정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어요. 그 프랑스친구도 올라갔으니까 내려오고 있을 거 아니에요. 진심 허경영이나 장군님 축지법을 쓰신 게 아니라면 30분에 절대 올라갈 수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현재'의 자신에 맞춰 얘기를 하게 되요. 실제로 내가 올라갈 때 얼마나 걸렸지?...를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모두 비슷해요. 조언은 항상 현재의 본인 처지에 필터링되기 마련이예요.


3. 평지라고 쉽지 않아요.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경사가 있는 곳은 사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슝슝 지나가게 되요. 너무 힘들기 때문이예요. 몸은 힘들지만 정신적으론 긴장하고 있어서 오히려 속도면에선 훨씬 빠르더라구요. 하지만 평지는 진짜 개지겨워요... 눈감고 걷게 된다니까요. 그런데 또 돌부리걸릴가봐 조심은 해야해요. 평지의 지겨움이 더욱 사람을 지치게 만들어요. 파란만장 인생을 산 사람이 평범한 일상을 견뎌낸 사람보다 더 잘났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예요. 평범한 일상을 견뎌내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해요.


4. 엄청난 대자연이라고 해도...


대자연에 온몸을 내맡기고 곰그릴스 형처럼 되고싶었지만 그런 건 없어요. 정해진 루트로만 가야해요. 막말로 루트를 벗어날 수는 있어요. 간섭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랬다간 진심 죽음을 감수해야해요. 거긴 퓨마가 살고있거든요. 거대고양이의 냥편치 한방이면 갈비뼈가 다 으스러지고 말거예요. 정해진 루트가 나쁜 건 아니예요. 모두가 같은 길로 갈 필욘 없지만 무모함과 '다른 길'은 구별할 수 있어야 해요. 혹시라도 길이 아닌 곳으로 갈 거라면..정말 만반의 준비를 해야해요. 총도 있어야 하고 배낭도 15kg으론 어림도 없죠.


5. 남미엔 또 다른 내가 없어요.


지구반대편에 가서 나를 찾는다는 건 말도 안되는 얘기예요. 나는 한국에 있어요. 지구 반대편에선 여행자의 내가 있을 뿐이죠. 심지어 북한산 10시간 종주를 할 때의 나와 토레스 델 파이네 종주를 하는 저는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여행은 관점의 문제지 장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남미까지 날아와서 지구 끄트머리에 서도 서울생활과 다를 바 없을 수도 있는 거예요.


6. 극한에 다다르면 침착해져요.


오히려 몸이 극한대로 힘들어지고 토할 것 같아지면 마음이 침착해지기 시작해요. 원래 짜증도 에너지가 있을 때 나는 것 같아요. 왜냐면... 제가 3일차때 40분정도 걸었을 때 캠프사이트에 텐트를 두고왔단 걸 깨달았거든요.... 힘들어 뒤지겠는데 다시 40분을 돌아가야한다..라고 생각하니 진지하게 그냥 보증금 내고 버릴까...라는 침착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짜증이 나지 않더라구요. 만약 텐트없이 하룻밤 자는 것은 어떨지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퓨마밥이 되고싶진 않았으니 다시 돌아가기로 했어요. 시발은 4번 정도밖에 안 외쳤어요.




다음 편은 페리토 모레노 빙하체험기로 돌아올께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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