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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ul 01. 2018

찬바람을 맞으며 깨닫는 여행의 참트루(feat. 얼음)

빙하중에 빙하라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찾아가보았다.

Notice_


저번 몇 번의 여행기처럼 이번 여행기도 딱히 찾아가는 과정이나 감동적인 사진같은 건 없답니다. 사실 이 글은 여행기라기 보단 그냥 지나고보니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회고록에 가깝더군요. 더불어 남미 여행가면서 카메라 가져가면 왠지 기부천사가 될 것 같아서 그냥 핸드폰만 덜렁 가져갔어요. 그래서 사진도 온통 갤럭시7으로 찍은 쌩사진만 있습니다. 참고!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굉장히 큽니다. 크고 춥고 하얗..아니 푸른색에 가까워요. 아르헨티나 끄트머리에 있습니다. 이곳에 도착하기 위해선 비행기와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고 갑니다. 버스를 탄 뒤에는 또 버스를 타고 2시간 정도를 구불구불 들어갑니다. 


사실 이 때 전 엄청나게 지친 상태였어요. 앞서 3박4일 내내 토레스델파이네 트래킹을 끝내고 난 직후라 몸이 너덜너덜해져 있었거든요. 머리가 천근이만근이인데다가 의욕도 사실 별로 없어서 무언가에 홀린 듯 구글맵만 보고 따라온 거에요.

엘 칼라파테라는 한적한 구례마을 같은 도시에 머물렀습니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거거든요. 아르헨티나의 느낌은 확실히 좀 더 컬러컬러풀 하긴 했습니다. 


예수님도 만났습니다. 같은 호스텔을 쓰는 아르헨티나 아저씨..형님?..작은삼촌...? 같은 느낌이었느데 기타도 왠지 1500년은 족히 된 듯 고대의 비밀병기같은 소울이 느껴졌어요. 예술성은 머리카락에 있다는 우스개소리가 농담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페리토 모레노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있습니다. 이곳은 개들이 개많아요. 기다리는 사람수보다 앉아있는(물론 가만히 앉아있진 않더군요) 댕댕이수가 더 많았습니다. 게다가 죄다 대형견인데다가 야생견느낌이 나는 거친 송곳니를 으르렁 거리는 통에 솔직히 좀 무섭기도 했습니다. 현지인들은 항상 돌멩이를 쥐고 다니더군요. 


저게 빙하야?... 아닙니다. 저건 빙하가 아니죠. 저건 그냥 떠내려온 얼음조각입니다. 빙하는 말그대로 얼음강이예요. 그게 바다로 내려와서 끄트머리가 쪼개지면 빙산이 됩니다. 그러니 빙하는 존나 거대한 것이죠.


오씌...이게 빙합니다. 찬바람이 아주 쌩쌩불었습니다. 냉동실에 얼굴 넣어놓은 기분이더군요. 빙하는 푸른색을 띠고있습니다. 실제로 가서 손으로 집어보면 흰색에 가까운데 뭉쳐있으면 파래보여요. 얼음속에 잡다한 성분들이 빛을 산란시키기 때문이라고 해요. 파란색은 산란에 영향을 덜받는 짧은 파장을 지니고 있어서 파란색으로 보이는 거죠.



가까이 가보았습니다. 저게 작아보이지만...음.. 일단 높이는 아파트20층높이입니다. 그리고 가로폭은 6km에 달하죠. 어마무시하죵. 근데 전체 빙하중 저 부분이 약지손가락 끄트머리 정도에 불과하단게 더 대단합니다.



빙하가 녹고있어요. 빙하의 약한 부분이 우르르 무너지면 천둥의신 토르의 필살기소리같은게 나는데 진심 무서울 정도랍니다.우릉우릉 거리는 소리가 온 천지에 울리거든요.


경례하는 거 아닙니다. 온통 흰색이라 눈이 터질 것 같았거든요. 목토시를 했는데 덥고...벗으면 목시리고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더라구요. 사실 저 빙하위를 걸으며 트래킹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하지 않았습니다. 돈도 없었고 앉아서 가만히 보는 게 더 좋더라구요.



라고, 다녀온 추억을 그림으로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그 때 만났던 저 친구는 프랑스에서 온 친구였어요. 다들 카메라로 철컥철컥 장관을 찍느라 바빴는데 정말 1시간 내내 쌩눈으로 저 하얀 빙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더라구요. 너무 궁금해서 한 번 물어본거예요. 왜 안찍고 가마니처럼 가마니 앉아있니? 라고... 그랬더니 저런 대답을 (영어로) 해주더라구요. 




페리토 모레노는 어릴 적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숱하게 봤었어요. 늘 저길 가보고싶다!!! 라고 동경하던 곳이었지요.... 평생 보고싶던 걸 눈앞에 보고나니 참으로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더라구요. 


1. 거대한 건 조용합니다. 대자연은 생각보다 꽤나 조용해요. 가끔 얼음 무너지는 천둥소리를 제외하곤 새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요. 바람만 휘휘불고... 사람들의 카메라소리가 아니면 적막 그 자체랄까요. 그럼에도 저 빙하는 1년에 몇 센치씩 계속 움직이고 있어요. 정지해있는 것은 아니죠. 당장 내가 성장하고 발전하는게 눈으로 보이지 않고 역동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닐거예요. 어쩌면 그만큼 내가 많이 커져있어서 더 조용히 움직히고 있는 것일수도 있거든요. 


2. 남기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랄까요. 그 프랑스친구는 빙하의 하나하나를 눈에 담고싶다고 했어요. 사람은 눈으로 본 것을 쉽게 잊기 때문에 사진이든 뭐든 남기려고 열심히 노력하잖아요. 하지만..문득 그 친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행을 가서 사진만 남기고 후딱 그 자리를 뜨는 게...거길 다녀왔다! 라고 얘기할 수 있는걸까요. 물론 다녀온 건 팩트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그 장소가 주는 느낌과 감정에 온전히 젖어보는 경험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여행은 '보러 가는 게' 아니라 '느끼러 가는 것' 이 아닌가...합니다.


3. 추워요. 사진과 영상에선 보이지 않았던 요소들이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예요. 상당히 춥고, 상당히 뭐가 없어요. 물가도 짱비싸서 카페테리아에서 함부로 막 사먹을 순 없었어요. 항상 뭐든 멋지고 웅장한 것 뒤에는 이면이 존재하기 마련이죠. 되게 멋있어 보이는 누군가의 삶 이면의 찬바람을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요.


4.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불안정해요. 사진으로 보이는 빙하는 엄청나게 거대해 보이지만, 전체 빙하의 3%도 채 되지 않는 크기예요. 전체빙하는 서울시의 2/3 크기에 해당한답니다. 눈으로 보이는 저 빙하는 걸어다녀도 될 만큼 안전한 길이 구성되어 있지만(물론 그래도 개힘들대요....울퉁불퉁,미끌미끌해서..) 그 뒷편은 수십미터의 크레바스가 끊임없이 존재하는 대위험지역이예요. 게다가 아직도 산속에선 400~600m의 얼음이 매년 만들어지고 있는 터라 굉장히 역동적인 빙하 중 하나거든요. 언제 금이 가거나 무너질지 알 수 없어요. 


5. 돈이 많이 들어요. 멋진 것을 보기 위해선 계속 돈을 내야해요. 우라질.


6. 여기서 살래? 라고 하면 아니오 라고 대답할 거예요. 추워요. 어떻게 살아요. 평생 가보고싶던 곳이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살 순 없어요. 어차피 다시 도시로 돌아가야해요. 돌아갈 곳이 있으니 이곳이 아름다운 거예요. 집이 없이 저 빙하위에서 생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이 곳은 지옥이 되었겠죠.


7. 추운 것도 더운 것만큼 힘들더라구요. 더우면 더워서 지치고 추우면 덜덜 떠느라 지치고... 여행은 따뜻한 곳이 좋습니다. 따뜻한 곳으로 갑시다.


8. 카메라는 챙기는 게 좋습니다. 물론 여행을 사진찍으러 가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적어도 똑딱이 하이엔드 정도는 챙겨가는 것이 어떨까...싶습니다. 핸드폰이 아무리 좋다지만...저 넓은 녀석을 한 번에 담아낼 수 없음이 겁내 아쉽더라구요. 똑딱이를 챙겨서 손에 칭칭 노끈으로 감기다니는 게 차라리 나았을 것 같습니다. 


9. 무작정 다 체험하는 게 좋은 건 아녜요. 빙하 미니트래킹, 겁나 하루종일 걷는 트래킹, 배타고 보는 트래킹 등등..엄청 많은 트래킹코스가 있는데 무조건 다 보고 다 즐겨야해!!! 라는 강박을 지닐 필욘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우리나라 여행자들은 거의 무조건 올데이 트래킹을 하려고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다 영혼과 육신이 탈탈 털리고 아무것도 못하고 앓아눕는 경우가 많대요.(생각보다 힘들어요.) 이 때 아니면 언제해보겠어!!! 라는 심리랄까요. 음... 하지만 여행엔 여유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이 때 아니면 다음에 하면 되죠. 죽기살기로 물들어올 때 노저을 필욘 없어요. 적어도 여행에서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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