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나는 여행을 왜 가는걸까.
오늘은 안물안궁한 그냥 개인취향에 대해서 주절거려보려고 해요. 많은 분들이 '진짜 이상하다...' 라고 해줘서 글감으로써 가치가 있겠다 싶었어요. 신기한 동물 관찰하는 기분도 들 수 있고 말이죠.
전 여행을 좋아해요.
여기서 '좋아한다' 라는 것의 의미가 매우 중요한데 저에게 있어서 '좋아한다' 는 건... 이를테면
'우와!!! 너무 좋아!! 세상에 얼른 가고싶어 하앍하앍!!!!+_+'
이런 개념이 아니예요. 오히려 별 감정의 동요가 없이...이유를 생각하지 않고도 꾸준히 하고 있는 것들을 의미하죠. 물론 이건 개인적인 가치관이에요.
좋아하는 것 = 계속 하고 있는 것
물론 계속하는 이유가 먹고사니즘이나 뭔가 명확한 목적성을 띠고 있으면 탈락이예요. 띠이.
저는 그냥 별 생각없이 계속 하고 있는 것들을 '좋아한다' 라고 말해요. 보통 그렇게 계속하는 것들은 딱히 재미가 있거나 하진 않아요. 예를 들어 전 음악을 좋아하는데 그냥 음악은 듣는거지... 들을 때마다 뭔가 재미가 있진 않거든요. 습관에 가깝기두 하구요.
여행도 그런 느낌이예요. 여행이 딱히 재미있다...라고 느껴본 적은 없어요. 그냥 하는거죠.
뭔가 몸 간지럽고 때되었으니 이제 바깥공기나 좀 쐬어볼까 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무심하게 배낭을 챙기고 뱅기표를 끊고 그냥 가요. 물론 설렘은 있죠. 딱 예약부터 뱅기이륙까지. 그 사이의 잠깐의 설렘이 있긴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여행도착 이후 여행지부터 귀국때까지는 전반적으로 무표정하게 있다가 오는 편이죠. 도대체 그럼 나는 여행을 왜 가는거야....재미도 없는 걸 돈 들여가면서...
저에게 있어서 여행은 3가지 의미를 띠고 있어요. 서울에선 이 3가지를 누리기 힘들기에 가는 것 같아요.
1. 일단 몸을 괴롭혀야 해.(극딴적으로)
도시와 사람북적이를 싫어하는 저는 마덜어쓰의 품에 안겨 어깨와 골반에 통증을 느끼는 걸 좋아해요. 물집과 고산병을 사랑하는 편이죠. 약간 변태적 기질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저에게 여행이란 걷고 오르고 땀흘리고 다치고 어딘가 아픈걸 의미해요. 매월 내고있는 실비보험비의 뽕을 뽑을 기회이기도 하구요.
600km국내종주하고 나선 무릎이 나갔어요.
히말라야 다녀오고 나서 어깨 다치고
남미여행 다녀와서 골반 끊어짐...
일본북알프스 올라갔다 와서 어깨 또 다치고
설악종주하다가 아주 뒈질뻔했...(우리나라가 더 위험해)
2. 선택하고 싶지 않아.
선택 싫어요. 20대부터 뭔가 항상 선택해야 하는 것들의 연속이었어요. 사업을 하고 나선 더더욱 심하구요... 매번 두세개의 선택항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끊임없이 기회비용에 갈등하고 드러눕는 일상... 사실 모두가 이런 비슷한 삶을 살고있는 것 같아요.
트래킹코스는 선택할 필요가 없어요. 길이 하나에요. 두 개여도 어차피 힘든 건 매한가지예요. 트래킹은 참고 견디면 그냥 목적지에 닿아요. 내가 한 걸음을 걸으면 한 걸음만큼 앞으로 나가요. 운이나 아다리, 상대적박탈감 따위가 없달까요. 보통 트래킹코스 시작엔 모두 함께 출발하지만 몇 시간 지나면 서로 보이지도 않거든요. 그러니 승부욕을 낼 필요도 없어요. 운이라 해봐야 비가 오냐 안오냐 정도인데..그런건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런게 좋아요. 여행지에선 아무것도 선택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패키지는 싫어. 버스에서 내리고 타는 걸 지시받고 싶지 않아...(까다롭)
3. 난 우주왕먼지.
가끔 트래킹을 하다보면...참 내가 작단 생각을 해요. 히말라야 트래킹을 갔을 땐 마챠푸차레(피쉬테일) 산에 대해서 들었어요. 8,000미터 고봉급은 아니지만 사람이 갈 수 없대요. 거기 도전한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던가?... 거긴 신이 허락하지 않는 영역이라고 해요. 놀라웠어요.
우유니 사막에 갔을 땐.... 아름답고 하얀 사막을 보았죠. 낮엔.
하지만 혹시 밤에 우유니를 나가보셨나요?.... 밤에 소금호텔에서 술먹고 한참 별 찍는다고 계속 걸어나가면...어느새 여긴어디지?! 싶거든요. 우유니의 크기는 전라북도만 해요. 불빛하나 없는 까아아아아아만 공간안에 혼자 서있으면 극한의 공포를 체험할 수 있어요. 진심. 어둠 속에 있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지 말이죠. 20분정도 헤매다가 울었어요. 개 무섭.
자연앞에서 객기를 부리면 안되요. 정해진 길로 가야해요. 야생동물의 밥이 되거나, 소리도 못지르고 127시간 아저씨처럼 팔이나 다리를 하나 잘라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어요. 전 한없이 작아요.
제 고민이나 생각도 별 것 아닌 것처럼 '잠시' 느낄 수 있어요. 물론 귀국하면 인천공항 화장실에서부터 현타가 오긴 하죠.
역설적으로 그렇게 작은 먼지인데 여길 다 걸었어!!! 라는 성취감이 있는 것도 같아요. 하지만 '정복했다!' 라는 표현따위는 쓰지 않아요. 자연은 정복하는게 아니예요.
여행이란 건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부분과 맞닿아있는 것 같아요. 인간이 정착생활을 시작한지 거의 1만년이 넘어가지만 사실 그 훨씬 이전에 30만년동안은 계속 떠돌아다니던 존재였잖아요. 아주 야생적인 그런 유전자의 어느 부분을 건드리는 느낌이죠. 신경이 예민해지고 새로운 것들에 동공이 커지는 그런 경험.
그래서 그런지 여행스타일이란 건 참으로 각양각색이에요. 불안과 새로움에 대처하는 방법은 모두가 제각각이거든요. 아마도 그건 학습, 유전, 경험 등등에 의해 차곡차곡 만들어진 방법들이었겠죠.
요즘 좀 궁금하긴 해요. 나는 언제부터 왜 이런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을까....하고 말이죠.
물론 내셔널지오그래픽 덕후였던 아빠의 영향이 컸을 거예요. 아부지가 여행을 좋아하셔서 어린 아들래미를 데리고 여기저기 엄청 돌아다니셨거든요. 산도 많이 갔었고. 하지만 그게 변태자학성향의 여행의 근간이 되진 않았을 텐데.... 요즘들어 좀 궁금해요. 여러분들의 여행스타일은 언제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알고계시나요?
올 해 말에는 아이슬란드를 갈 것 같아요. 전 춥고 얼음많은걸 좋아해서 자꾸 추운곳으로 다녀요. 아이슬란드는 짱비싸더라구요. 오로라철이니 오로라도 볼 거예요. 근데 저는 개인적으론.... 오로라보단 그냥 그 황량하고 삭막한 인터스텔라 촬영지 빙하가 더 보고싶어요. 전 손에 잡히고 발에 닿는 자연이 좋드라구요. 이번엔 얼음과 화산을 바라보며 난 왜 이 얼음덩이 위에서 하염없이 몸을 괴롭히는가에 대해 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