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완벽하게 준비해야 시작할 수 있는 풀셋팅요정의 발목잡이에 대해
자취를 갓 시작했을 땐 한창 요리에 재미를 들렸어요. 생각보다 제 손이 금손이라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음식을 만들어내더라구요.
처음엔 김치볶음밥과 콩나물무침같은 간단한 음식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난이도 높은 궁극의 음식들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분명 레시피에 검지손가락 한스푼이 들어가 있진 않았는데, 자꾸 검지손가락 살점을 잘라먹기도 하고, 양상추가 분명 내 머리만 했는데 왜 그릇에는 주먹만한 것이 있는 지 궁금하기도 했지만요.
"매운갈비찜을 만들어보자."
그 중 마음먹고 한 번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은 요리가 있었는데 바로 매운 갈비찜이었어요. 이 갈비찜이란 것이 대충만들려면 또 대충 만들 수 있지만 그랬다간 잡내도 못잡고, 질기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혀만 때리는 매운 쓰레기가 될 수 있어요. 양념과 고기재우기에 이런저런 재료들이 필요했죠.
그럼 잠시 요리책으로 빙의해서 재료를 좀 살펴볼까요?
일단 갈비 1,2kg. 감자, 파, 고구마, 청양고추, 다진마늘, 통깨, 양파, 대파, 통마늘, 청주, 고춧가루, 간장, 매실엑기스, 올리고당, 참기름, 맛술, 배같이 생기거나 배 맛이 나는 어떤 것, 소금, 후추, 파인애플(?), 키위(?), 굴소스, 계핏가루. 설탕, 물....
등등이 필요하죠. 물론 이 모든 걸 한방에 해결하려면 마트에서 '돼지갈비앙념' 을 사면 돼요. 하지만 또 그러면 요리의 맛이 살지 않는다고 판단한 저는, 제가 직접 재우고, 만들고, 비비고, 자르겠다고 도전을 했죠.
하지만 집에 있는건 소금, 간장이 끝이었어요. 마침 마늘도 떨어지고, 고춧가루도 물먹어서 눅눅해진 뒤였거든요. 마트에 가서 견적을 내보니, 저런! 그 돈으로 그냥 식당가서 사먹으면 5번은 먹겠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어리석은 식욕을 잠재우고 재료를 차근차근 모아서 다 갖춰지면 만들어봐야 겠다 생각했어요.
1주일 뒤 : 아직 배가 없어
2주일 뒤 : 아직 키위즙이 없어
3주일 뒤 : 갈비가 싱싱하지 않아
1달 뒤 : 굴소스가 없어
6개월 뒤 : 고춧가루가 다 떨어졌네
1년 뒤 : 계핏가루도 없고 청주도 없어
......
그렇게 2년이 지났고, 갈비찜은 저 멀리 머나먼 망각의 세계로 빙봉과 함께 사라져버렸다는 후문.
뭔가를 다 갖추고 시작하려고 하면 돈이 엄청나게 들어요.
하지만 대부분 우린 모든 걸 갖출만한 돈이 없죠. 뭔가 흔히 생각하는 안정적인 사업을 하려면 사무실부터 있어야 하는데 그것부터가 문제가 되요. 복사기도 사야하고, A4용지도 사야하고, 책상도, 컴퓨터도, 인터넷도, 전화도 설치해야하고 구색을 갖추려면 화분도 한 두개 놔둬야 하고 인형도 놔두고 선반도 짜야해요.
그냥 혼자 살 집을 꾸미려고 해도 모든 걸 제대로 갖추려면 끝도 없어요.
사랑도 그래요. 완벽한 사람이 되어 고백하려고 하면 그녀는 없어요.
효도도 그래요. 모든게 안정된 후 모시려고 하면 부모님은 이미 이곳에 없어요.
직장도 그래요. 모든 스펙을 쌓아서 지원하려고 하면 기회는 사라져요.
운동도 그래요. 런닝화와 트레이닝복을 다 사서 하려고 하면 살은 더욱 쪄있어요.
갈비찜을 만드는 데 매실과 파인애플과 키위는 굳이 필요없어요. 우선 만드는 게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