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만 빨고 살 게 아니라면
요즘 퇴사에 대한 이야기가 부쩍 많더라구요. 아마 회사에 대해 회의감이 드는 것은 세 가지 이유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수순이 아닐까라는 생각이예요. 시대가 변해간다는 증거죠. 회사는 내 평생을 책임져줄 수 없고, 개인의 가치가 증대되고, 나의 생존을 스스로 강구해야 하는 시대니까요.
둘째는, 부당한 사내문화와 자존감을 건드리거나 젠더감수성, 맛없는 점심, 인생의 3할을 버스에서 보내야 하는 무상함, 그 놈(누군지는 랜덤이지만 어쨌든 여러분들도 다 떠올릴법한 어떤 사람), 비합리적인 프로세스, 꼰대리즘, 작고 귀여운 월급 등이죠. 회사 내외부적으로 지니고 있는 고질적인 인습과 시스템의 악순환이랄까요.
마지막은,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인생에 대한 허망함과 월급뽕에 취해 살아가는 듯한 자신의 모습을 문득 발견해버렸을 때랄까요. 잊혀진 꿈이 갑자기 생각나고, 이 때가 아니면 도망칠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죠. 내적동기말예요.
이유야 어떻건 회사생활이란 건 개인에게 모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그 의미와 나의 욕망이 어긋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다들 고민이 시작되죠. 그리고 그 고민이 꽤나 길어져요. 사직서가 두번째 서랍에 있긴 한데, 쉽사리 꺼내기 어렵죠.
왜냐면 월급을 받아야하기 때문이예요. 월세와 밥값, 대출이자, 1년전에 샀는데 아직도 끝나지 않은 맥북 할부, 엄빠용돈, 술도 마셔야 하고, 날씨 추워지니까 옷도 사야해요. 버는 돈은 귀여운데 나가는 돈이 너무 대범해요.
물론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항상 돈뿐만은 아녜요. 이직에 대한 두려움, 주변의 시선, 가능성에 대한 기회비용 등등 다양한 요소도 포함되죠. 심각한 고민에 머리를 싸매다 친구나 주변 지인에게 조언을 구하면 어차피 대답은 둘 중 하나예요.
'그만둬 or 현실적으로 생각해.'
어느 쪽의 대답을 들어도 사실 어렵긴 마찬가지예요. 그만두라고 해도 쉽사리 그만두기 어렵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건 이미 그러고 있어요. 고민이 심해지다보면 자괴감이 들어요.
'와씨, 내가 돈 때문에 이렇게 막 비운의 삶을 살아야하나. 자본주의 죽어라..'
왠지 내가 소심해지는 것 같고, 그깟 돈이 뭐라고 용기도 못내고 이러고 있나 소주에 곱창만 먹고싶고 그래요.
하지만 그건 소심한 것도 자책할 일도 아니예요. 돈은 엄청나게 중요해요. 돈을 더 벌고싶어하는 건 죄가 아니예요. 자낳괴도 아니예요. 일단 의식주가 해결이 되어야 쫓기지 않고 옳은 판단을 할 수 있어요. 점심을 굶거나 겨울옷을 사지 못하면 당연히 마음이 조급해져요. 팩트를 왜곡하게 되고 과장된 해석을 해요. 자꾸 의미를 찾게 되고 여행뽐뿌만 올라오죠.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은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과도 같아요. 적어도 이직을 하던 사업을 하던 새로운 시도를 할 때는 이전보다 더 발전적인 무언가를 위함일테니까요. 한달마다 돌아오는 월급주사를 맞는 게 아니라, 내 미래를 위한 칼갈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돈을 벌고, 월급을 받고, 모으도록 해요. 퇴직금 받기까지 3개월 남았다면 3개월 더 버티세요. 기왕이면 실업급여도 받고 퇴직하기 3개월전엔 할부로 지르지 말아요. 딱히 명확한 명분이 없다면 일단 그냥 회사에 묶여있는 것도 방법이예요. 무작정 뛰쳐나온다고 뭔가 뿅 생기지 않아요. 무언가가 명확하게 뿅 생기면 그 때 나오도록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