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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May 21. 2019

위기에 빠진 20명의 디자이너를 구해보자.

프로그램이 응답하지 않는 건 사실 별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이 뭔가 협박을 하거나 멱살을 잡을 때에도, 다른 선택항 하나 정도는 주기 마련인데 뭐 이놈은 얄짤없습니다. 그냥 닫기밖에 없는거야. 퇴로따위 없는거지. 스트레이트 인생... 사실 디자인을 하면서 저 메시지는 간간히 카톡으로 날아드는 청첩장과 비슷한 빈도로 마주했습니다. 이제 적당히 친해질 정도죠. 다행이도 우리에겐 저장버튼이 있고 주기적으로 잘 눌러만 주면 저 메시지도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기왕 꺼진 거 화장실이나 다녀오면 되겠다 싶달까요. 


컨트롤K를 눌러 복구시간을 5분정도로 맞춰주면 날아가더라도 적당히 짜증날 정도의 복구파일이 생기니 사실 그닥 걱정할 것은 또 아닙니다.


사실 진짜 위기에 빠지는 이런 것보다.. 좀 더 정성적인 영역에 있달까요. 디자인은 묘하게도 '영감'이라는 요소가 작용하는 터라 여타 촥촥촥 프로세스가 있는 업무에 비해 각 과정의 소요시간이 좀 비대칭적입니다.


이를테면 어떤 날은 기막힌 레이아웃이 확 떠오를 때가 있어서 5분이면 배치할 수 있는데, 어떤 날은 레이아웃이 뭐였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죠. 물론 이 기복도 시간이 좀 지나면서 어느정도 평타....라는 수준에서 왔다갔다 하겠지만, 여기서 만족하는 디자이너는 거의 없을 겁니다. 대부분은 나의 이전 시안을 뛰어넘고 싶어하죠.


늘 과거의 나를 이겨버려야 하는 디자이너


'다음날보니 어제 내가 만든 시안 왜케 쓰레기?' 라는 감각을 항상 유지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늘 새로운 것을 고민하고 만들어내기 위해 애쓰는 당신들을 응원합니다.


여튼, 아무리 영감으로 먹고사는 디자이너라고 해도 결국은 '일'을 해야하니 정해진 시간과 자원안에서 주어진 오더를 완수해야합니다. 때문에 이를 무너뜨리는 사건들이 주요 위기로 다가오죠. 포토샵 꺼지는 건 너무 식상하니 오늘은 다른 위기상황에 대해 알아봅시다. 




1. 뭔가 눌렸는데 잘될때

뭐..뭐야 이거!

사실 이건 좀 미칠 것 같은 상황입니다. 작업내역에도 큼직한 것만 있지 정확히 뭘 어떻게 했는지는 안나오거든요. 차라리 일러스트의 '윤곽선보이기'(켜져있으면 도형 크기조절이 안돼요.) 마냥 뭔가 안되는 경우라면 구글에 쳐보면 되지만.....


엉겹결에 손가락이 미끄러져서 뭔가 눌렀는데 아주 잘돼어버린거야. 근데 그걸 두 번 다신 못하겠는거지. 이럼..이건 검색도 안되고, 그냥 한 때의 로또로 끝내야 하는 건가 싶은 것입니다. 


저는 보통 이럴 때 침착하게..기존 제작물을 저장하고... 끈 다음. 새 창을 열어서 아까 내 손가락이 있던 그 위치 비슷한 곳의...모든 것을 눌러보곤 합니다... 원시적이지만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지 않겠습니까. 대강 작업내역을 보면 어떤 메뉴에서 뭘했는지는 알 수 있으니까요. 그 부근에서 하나하나 눌러보는 거에요. 


키보드 청소하다가 만들어진 경우라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 작업 도중엔 그런걸 하지 마세요. 



2. 구글에다가 찾아야하는데 뭐라 찾아야할지 모를때, 또는 자꾸 다른 검색어랑 섞일때

'도형...크기 조절 안됨' 

'원근감도구 끄는 법'

'환경설정 파일이 잘못되었으므로...'

'폰트 굵기조절 안될 때'


등등 이런 직관적인 것들은 재빨리 찾아보면 대강 나오긴 합니다. 근데 오묘하게도 질문을 뭐라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라데이션.... 그... 지점? 별로 클릭하면 나오는 그거 각각 색깔 다르게 하는 법...'

근데 더욱 놀라운 건 '일러 그라데이션 포인트' 그냥 이렇게 치면 대강 나오더라구요. 구글의 관심법에 한 번 놀라고 디자이너들이 고민하는 게 거의 비슷하단 사실에 두 번 놀라게 됩니다. 당황하지 마시고 차근히 "프로그램명과 작업도구, 궁금한 것" 순으로 적어서 검색하시면 됩니당 얼추 1,2페이지 안에 나올 거에요.


만약 이도저도 모르겠으면 어도비 커뮤니티 포럼에 스샷 찍어서 올려주면 수많은 포리너 능력자님들이 알아서 답변을 주시더라구요. 이타심과 글로벌 인류애가 빛나는 순간입니다. 


개인적으론 친구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릅니다. 

야, 그 뭐냐..그거 있지? 그거 뭐냐?




3. 그 자리에선 이해됬는데, 집에오니 점점 모르겠을 때

아씨... 뭐라한 거지?..

말이란 게 하면 할수록 말이 됩니다. 처음엔 고래를 생선이라고 하면 뭐라는거야 싶지만 계속 듣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죠. 현장에선 이해가 '된 느낌' 을 받지만 집에 와 작업하려고 보면 느낌은 온데간데 없고 혼돈의 워드들만 가득한 경험을 종종 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애시당초 미팅하기 전에 내가 알아야 할 사항들을 미리 적어가곤 하는데, 이게 효과가 꽤 좋습니다. 본인이 작업하면서 필요한 사항들은 본인이 제일 잘 알기 때문에, 내가 필요한 것들은 스스로 질문해서 가져가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대부분의 미팅은 80% 이상의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얘기들과 20%의 감사합니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신 못차리면 어버버 대다가 끝납니다. (그리고 녹음 필수)



4. 삘꽂혀서 한 부분이 날아갈 때

허허허..허허허 존나..

이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는 삘이 꽂히면 컨트롤에스를 잊어버리기 때문이에요. 뇌는 잊어도 손가락은 잊지 않도록 피나는 훈련을 합시다. 




5. 아까 찾은 그 사진을 다시 못찾겠을 때

하아...

언스플래쉬같은 저작권프리 사진사이트에서 사진 찾다보면 이쁜게 한 두개가 아니라서 스크롤내리다보면 점점 맘에 드는 게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건 주로 훼이크일 경우가 많아요. 앞에 비해서 예쁜 거지, 시안에 적절한 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보면 볼수록 사진에 집착하지 시안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때문에  450페이지 정도까지 가서야 맘에 드는 사진을 찾았다!! 싶지만...많은 경우 다시 2페이지에 있던 사진을 쓰기 마련이더라구요. 


때문에 처음 볼 때 어? 한 사진이 있으면 그걸 무조건 저장해놓으세요. 그것은 당신을 살려줄 것입니다.




6. 겁나 좋은 사이트 알아놨는데 나중에 보니 404


누끼따는 사이트나 변환사이트 등등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습니다. 자료모음 사이트나 막 예쁜 폰트 20개 소개해드려요..이런 링크도 언제든 사라질 수 있어요. 그런 거 있음 당장 다운받아 설치해놓으세요. 저도 좀 알려주시고.

https://ludens.kr/inspirations/photo/gorgeous-stock-photo-sites/

이를테면 막 이런거죠. 다행히 루덴스는 아직까지 절 배신하고 있지 않지만... 혹시 몰라 각 링크들은 따로 엑셀에 저장해놓고 쓴답니다. 


http://koreawebdesign.com/link/

참고로 여기도 좋음.



7. 첨부안하고 첨부메일 보낼때 민망함

첨부파일.또..또.......

보내놓고 나서 알면 다행인데 그 쪽에서 '첨부파일이 안왔네요' 라는 답장을 받으면 민망해요. 이건 좀 초짜같아 보이거든요. 괜히 꿀리는 기분도 들고, 상대방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혼자 손가락질 받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cc거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아직 손에 익지 않은 상태라면 첨부와 cc는 포스트잇으로 크게 적어 모니터옆에 붙여놓든가 합시다.


그리고 다시 파일만 보낼 때는 '냉무' '제곧내' 이런건 좀.... 전 이런걸 짤에서만 보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고나서 굉장히 흥겹고 재치있단 생각을 했습니다.



8. 예전에 예뻐서 저장해놨는데 지금보니 안예쁨

별론데?

핀터레스트나 비핸스 에페프파운드, 매니스퍼트의 이쁜 레퍼들을 저장해놓고 우왕 이쁘다...하고 감탄하는 건 사실 길어야 1주일입니다. 1주일만 지나면 더 이쁜 것들이 눈에 보이고 이전 것들은 지난 날의 갬성으로 사라지곤 하죠. 절망하지 말고 다시 찾으세요. 그것은 당신이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등에 짊어지고 가야할 숙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9. 자료찾으려고 하는데 자꾸 2010년 도표만 나올때


디자이너는 종종 자료도 검색해야 해요. 구글에다 검색하는 경우도 좋긴 하지만, 사실 출처가 이상야리꾸리한 재단이나 협회...이런 경우가 종종 있어서... 가급적이면 연도별 논문을 검색하는 걸 추천합니당. 또는 한국방송진흥원이나 Kocca 등등에선 해년마다 백서가 나오니 그런 애뉴얼리포트를 찾아보시는 것도 좋아요.


https://data.oecd.org/

국가별 데이터는 여기서 찾아보시면 흥미진진합니다. 영어가 그렇게 어렵진 않으니 좀 현기증나도 차분하게 번역기 돌리면서 보면 거의 다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10. 소스 다운받았는데 JPG

...... 사람이 도장을 찍든 싸인을 하든 다운로드 버튼을 누르든... 돈 나갈 일이 있을 땐 잘 살펴보고 하는 거라고 아빠가 그러셨습니다.




11. 어제 결제했는데 더 저렴한 사이트 발견


대부분 외국 소스사이트는 환불을 잘 해줍니다. 울지말고 차분히 메일을 보내거나 'OOO코리아' 블로그에 들어가서 문의를 남기시면 됩니다. 



12. 팀장님이 자꾸 내 시안을 보며 흠..거릴 때

말해보라. 이게 시안인가? 이게 시안이냐마리야!

누군가 내 시안을 보고 '흠...' 거릴 시간을 주지 마세요. 시안을 여는 동시에 냅다 시안에 대해 소개하세요. 


팀장님 파일보시면 1번파일이 메인시안이고 2번시안이 B안인데 1번시안 보시면 전체 레이아웃에 조금 여백을 많이 주었어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멀리서 포스터를 보게 될 건데 이 때 집중도를 한 곳에 모으려면 가운데 쪽에 포인트를 주는 편이 좋다고..어쩌고 저쩌고

상대방의 주관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핵어려워집니다. 대부분 그게 정답일리도 없구요. 


모든 상사들은 자신의 의견이 적용되길 원하기 때문에 어지간히 급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한 번에 오케이는 없어요. 내가 인생최대의 역작을 가져가도 수정사항은 생기죠. 이러한 수정사항까지도 컨트롤 하는게 또 센스입니다. 


어차피 수정요청이 생길거라면, 팀장의 피드백을 먼저 요청하세요. 

'이 부분은 어떻게 하면 좋을 지 팀장님의 의견을 듣고싶습니다.'

 라고 말이죠. 




13. 메일을보냈는데 답장이 안올 때


전화를 하세요. 원래 자료가 첨부된 메일은 보내고 나서 전화나 문자로 '메일 보내드렸습니다!' 라고 체크메시지를 주는 것이 좋더라구요. 어떤 클라이언트님은 하루에도 메일이 30통씩 오는 통에...제가 보낸 메일이 이미 2페이지로 넘어가있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14. 디자이너님!!!! 이라고 느낌표 붙일 때

느낌표가 3개 이상이란 것은..심상치 않은 상황을 의미합니다. 긴장하고 메일을 열든가 톡을 보든가 하세요. 기왕이면 밥먹고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여는 순간 밥먹을 시간이 없을지도 모르거든요.



15. 다운로드 버튼 누르니까 쇼핑몰 설치될 때

손가락이 미끄러지면 이상한 거 설치

외국사이트에서 소스 다운로드 받을 땐 진짜 신경써야 해요. 뭐 잘못누르면 바로 뭐 깔린다. 소스 다운로드 받을 땐, 클릭을 다다다다다 하시면 안돼요. 팝업창이 랜덤으로 뜨는 통에 엉뚱한 게 눌려서 제3세계로 진입하거나 그럴 수도 있어요. 차분히..... 컴퓨터 처음 배우는 느낌으로 영어도 잘 읽어보시고 이 7개의 다운로드 버튼 중 어떤게..진짜 다운로드인지 파악해보셔야 해요. 제일 큰 다운로드 버튼은 믿고 거르시는 겁니다.



16. 한창 집중하고 있는데 쉬마려울 때

참자. 화장실은 도망가지 않지만 영감은 쉬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17. 컴퓨터에 고양이가 올라올 때

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18. 머릿속으로 이쁠 줄 알았는데 만들고보니 해삼


두뇌는 공백을 상상으로 채우는 능력이 있어요. 손은 상상력이 없어서 공백을 그냥 공백으로 표현하죠. 대부분클라이언트가 요구한대로 만들었는데 '이게 아뉜뒈...' 라고 가로젓는 이유입니다. 클라이언트의 말을 믿지 마세요. 디자이너도 자기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100% 구현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말로 표현할 땐 오죽하겠습니까. 생각은 그리면서 하는 거에요. 미팅할 때도 직접 그리고 보여주면서 '이거 이렇게 하면 이상할텐데요?' 라고 말하시는 게 훨씬 빠르고 정확한 듯 합니다.



19. 한참 이쁜 거 막 만들고 있는데 미팅시간 다가올 때...

원래 딴 짓하거나, 다른 일 앞두고 집중이 잘돼요. 미팅시간을 30분 정도 미루면 되지 않느냐? 라고 손쉬운 해결책을 내실 수도 있겠지만..놀랍게도 30분을 미루면 집중력이 사라집니다. 집중력은 쫄림에서 비롯되거든요. 여유가 생기면 의미가 없어지죠. 그 순간을 즐기도록 합시다. 그 찰나의 집중력은 그냥 선물같은 겁니다. 



20. 허리디스크

아무것도 못함.

아..아마 적당한 연차의 디자이너분들이라면 디스크 뿐 아니라 터널증후군, 뱃살, 소화장애, 굽은어깨, 거북목, 눈쳐짐, 안구건조증 등..다양한 신체적 변화를 겪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 허리디스크는 단연 최고급 고통을 선사하는데, 이것의 문제는 앉아도 서도 누워도 고통스럽다는 점입니다. 아이트래커를 착용한 채 눈동자로 시안을 그리는 기술이 나오기 전까진 몸을 최대한 아끼시길 바랍니다. 아픈 순간부터 매분매초가 위기상황일 거에요. 참고로 아프면 참지말고 재빨리 병원가서 주사맞고 부황뜨고 하세요. 그거 참는다고 낫지 않아요. 시간날 때 스트레칭 좀 하고.




끝. 즐거운 생존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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