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인재상에 '전투력'이 포함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할 정도로
일을 하다보면 빡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애기들이 아니니 가급적 멱살이나 아스바리, 뒤돌려차기 등을 자제한 채 점잖게 대응하죠. 물론 그렇다고 속이 편한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그 분노는 과도한 치킨섭취 등으로 이어져 만성맥주증후군으로 발전합니다. 때문에 우리의 건강을 위해 종종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험한 말을 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저도 일하다보면 종종 아오씌... 등 호흡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죽고싶니? 와 같은 말은 문제해결에 별로 도움이 안되더라구요. 싸움이라는 것은 여튼 내 말 좀 들어달라는 거고, 서로 자기 입장에 대한 강한 주장일 뿐이니 종국엔 잘 타협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죽고싶니?는 타협안이 생기기 힘든 말이죠. '네'라고 말해도 이상하고, '아니오' 라고 말해도 문제의 본질과는 무관하니까요.
오늘은 싸움을 앞둔 분들을 위해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점잖게 조져놓을 수 있을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부분의 말들은 저도 한 번씩 해보면서 임상실험을 거쳤으나, 상대방의 성향에 따라 주먹다짐의 위험이 있으니 잘 선별하여 사용하시면 좋겠습니다.
아니, 왜..
아니, 근데
아니, 그 말은 알겠는데
아니, 사람이
등등... 한국사람들은 아니를 좋아합니다. 일단 아니가 붙은 문장은 공격력이 다소 상승하면서 불만이 있다..라는 느낌을 효과적으로 줄 수 있습니다.
대부분 '아니왜, 아니사람이.' 등 아니를 포함해 문장을 말할 때는 빠르고 잘 안들리게 말하게 되는데, 그러면 위협의 정도가 떨어집니다. 약간 전라도 사투리처럼 천천히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아니이..사람이이..'
나지막한 톤이 있다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상대성향에 무관하게 대부분의 경우에 사용이 가능합니다.
긴 들숨이 효과적입니다. '쓰으으읍....'
상대가 말이 많다고 나도 같이 쏘아붙이면 좋지 않은 상황이(나에게) 됩니다. 나는 호흡으로 대화하도록 합시다. 호흡을 조금 소리내서 해주면 충분히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포유류들이 활용하는 방식이기도 하죠.
톡으로 싸울 때 침묵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읽씹인 경우엔 그 효과가 배가되죠. 침묵을 해야하는 이유는 상대를 쫄리게 만듦도 있지만, 역으로 나의 약점도 잡히지 않기 위함입니다. 가끔 실수로 귀여운 오리너구리 이모티콘이 나간다거나, 써놓고 보니 헛소리라면...자칫 나약해 보일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톡은 감정을 표현하기가 힘들어서 더욱 거센 싸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가급적 톡으론 싸움을 자제하세요. 애인과도.
그러니까...를 쓰실 때는 -까. 부분을 늘려 말하셔야 합니다. 앞에 '아니' 를 붙여주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이건 주로, 내가 백날 말해도 잘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 유용합니다.
침착함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어를 1인칭으로 돌려 당신에게 크게 위협을 주지 않으면서 나의 의견을 피력하겠다는 의지죠. 흔히 내 쪽이 데이터나 정보의 우위에 있을 때 쓰는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데이터가 정확한 지 꼭 확인해보고 쓰셔야 합니다. 제가 아는 게 잘못되었다면 민망해지거든요.
상대가 하고 있는 꼬락서니가 흔히 생각하는 통념에서 벗어난 경우입니다. 이를 테면,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해야한다거나, 약속에 늦으면 연락을 해야한다거나...등등의 관습적 도덕에 속하죠.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쓰면 좋습니다만, 잘 받아들여줄 지는 모르겠네요. 말 앞에 '아니, 사람이' 를 붙여주면 효과가 뛰어납니다.
*시발을 붙여선 안됩니다.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말하시면 됩니다. 이 때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라운드2가 펼쳐질 지 타협점을 찾을 지가 결정됩니다.
상대가 '뭐가 아닌데요? 뭐가 아닌데요??' 라고 더블콤보를 쓴다면 필연적으로 라운드2가 펼쳐질 것입니다. 보통 여기서 싸움을 끝내려면 '기분을 상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라는 말 후에 차분히 역공을 해야 합니다.
직급을 붙여 되묻는 건 '알겠으니 진정하게' 라는 의미입니다. 상대가 흥분, 격앙되어 있을 때 카만히 듣고 있다가 나지막히 물어보면 됩니다. 사실 '저기요?' 와 비슷하지만 예를 갖추기 위해 직급을 부르는 것입니다.
굉장히 공손한 말입니다. 흔히 일을 하다보면 그놈의 '이슈'라는 단어를 시도때도 없이 쓰게 되는데.. 보통 이슈는 부정적인 어휘입니다. 뭔가 예기치 않은 변수 내지는 장애물, 문제사항 등을 의미하죠. 나지막한 협박 비슷한 건데, 상대방은 도대체 그 '이슈' 가 뭔지 궁금해서 밤잠을 설치게 됩니다.
주임님의 업그레이드 버전입니다. 비상식적으로 지랄하는 상대에게 쓰는 특효약입니다.
상대의 말을 인정해주면서, 다시금 자기관찰의 기회를 주는 아주 매너있는 말입니다. 물론 본질은 니 말은 틀렸다. 라는 거지만... 꽤나 타협점에 가까워졌을 때 씁니다.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곰곰히 생각할 필요까지도 없는 일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대리 정도 되는 양반이 견적서에 VAT를 안붙여서 보냈다면,
'물론..실수 할 수 있죠. 실수할 수도 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지금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잖아요?'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딱히 의미가 있는 단어들은 아닙니다. 아오씨,워메아주그냥콱.. 이런 느낌의 직장인 버전이랄까요. 하지만 '난 지금 아주 답답하고 넌 인절미다' 라는 뉘앙스의 말입니다. 겁내 답답한 상대에게 써줍시다.
격투기에 어느 정도 자신 있거나, 자신이 좀 무섭게 생겼거나, 물증이 명백하거나, 아주 눈빛이 살아있거나, 글보다 말발이 더 오질 때 사용하면 됩니다. 가급적 먼저 때리지 말고 일단 맞고 복부나 허벅지 바깥쪽, 정강이등을 가격합시다. 다른 곳은 견적이 많이 나옵니다.
이것은 더 이상 싸움을 하지 않고 마무리 짓고 싶을 때 씁니다. 까칠하게 말하면 좀 역효과가 납니다. 부드럽게 말합시다. 약간 문명5에서 외교하는 느낌이긴 합니다. 상대방도 논리적인 사람이라면 적절한 타협안을 제시하겠지만, 말도 안되는 소릴 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13번을 사용해야 합니다.
빨리 끊고 밥먹으러 가야할 때 쓰시면 됩니다. 또는 라운드1 끝내고 좀 쉬는 시간 정도를 확보해야 할 때 씁니다. 싸움도 흐름이란 게 있어서, 축구와 같이 종종 파울을 해서 경기흐름을 끊어놔야 할 때가 있습니다. 보통 우리의 싸움이란 건 상사들이나 다른 사람들과 연관이 있는 경우가 많으니 일단 아군과 좀 얘기를 해보고 다음 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사안이 클수록 조심스럽게 해결해야 하므로, 대규모 전투가 예상될 때 쓰시면 좋습니다.
메일에 명백한 증거가 있을 때 쓰면 됩니다. 긴 말할 거 없습니다. 캡쳐떠서 보여주면 끝날 문제... 그래서 메일은 항상 다 분류해놓고 쓰레드걸고 참조걸고 잊지않고 단어 하나하나에 조심해야 합니다.
A : '확정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B : '확인 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두 말은 다르거든요. A는 미확정시 연락을 안할 수 있다는 건데, B는 무조건 연락이 와야 맞습니다. 싸울 때는 이런 토시 하나하나도 중요해지므로 메일 보낼 때는 신중하게 보냅시다. (대부분 싸움은 '돈'과 맞물려 있으니까요.)
빠락빠락 대들거나 얘가 왜 이러나 싶을 때 쓰시면 됩니다. 특히 두 번째 음절 '허'를 좀 늘려서 '허허어...' 로 쓰시면 더욱 대범해보일 수 있습니다.
진짜 모르는 말투로 말하면 바보처럼 보이니까, 좀 비꼬듯이 말합니다. '저는 지금 이 상황이 전혀~...' 라는 말과 함께 써주면 좋습니다. 대부분 이해가 가는 상황이면 싸울 일이 없겠죠. 이해가 가지 않으니까 싸우는 겁니다. 그러니 당신이 날 좀 이해시켜봐라.. 라고 하는 말이죠.
상대가 일을 심하게 못하거나, 프로세스가 아무리 봐도 비상식적일 때 쓰면 됩니다. 사람 자체의 문제라기 보단, 주로 프로세스상의 비합리성을 꼬집을 때 씁니다. 만약 상대가 '네 맞는데요?' 라고 하면 18번을 써줍시다.
계약서는 꼼꼼하게 읽어보는 게 신상에 좋습니다.
아주 요목조목 따져서 널 조져버리겠다..라는 함의가 있습니다. 일단 각 항목을 보기도 전에 좀 지쳐버릴 듯한 멘트죠. 내가 너한테 따질게 13가지 정도되는데 모두 인정해라. 라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좀 이것저것 많이 쌓여있을 때 씁니다. 각 항목이 2가지 정도면..좀 허접해보이니까 적어도 3,4개 이상 모아서 쓰도록 합시다.
상대가 예의를 어겨버렸을 때 최후통첩같은 말로 쓰시면 됩니다. 흔히 여기서의 예의란 건 인간적인 예의도 있지만, 대부분 업무적 예의에 해당합니다. 최소한의 체크, 변경시의 공지, 성실의 의무 등이 이에 속하죠.
적절한 조치란 건 흔히 내용증명이나 소장, 청구, 계약파기 등등의 여러가지 극단적인 경우를 얘기합니다. 이건 매우 비즈니스적으로 살떨리는 협박이죠. 덜덜덜.. 그 놈의 적절한 조치가 뭔지 모르겠어서 상대는 더 쫄립니다. 물론 대부분은 조치없이 끝나곤 합니다.
상대가 상황파악이 잘 안되는 경우에 씁니다. 상대가 눈치가 없거나 세상 순수하거나, 그냥 낙천적이고 포괄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경우 나지막하고 진지,근엄하게 말하면 됩니다. 만약 '모르겠는데요?' 라고 하면..
'잘 들으세요 OOO씨. 지금 이 상황은 말입니다...' 로 시작해서 자세한 부연설명을 이케아 조립설명서처럼 해주셔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미친놈에게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