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롤리키보드로 격하게 쓰고 있습니다. 줌간중간에 오타와 띄어쓰기가 안된 곳이 많지만 너른 마음으로 양해부탁드립니다. 저는 레를 담당하고 있는 예민한 남자사람입니다. 제 여자친구는 찌를 담당하고 있는 망각요정이죠. 우린 개인사업자입니다. 저는 5년차, 찌씨는 8년차죠. 이것은 올해도 11개월간 아주 열심히 (죽도록)일하고 한 달 간 걷기로 한 저희 커플의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입니다.
현지에서 쓰고 있어요! 오늘도 비가 오고 있고.. 바람이 불고... 춥고...감기 컴온
셋째날이 되니... 몸이 힘들어지는 걸 넘어서 슬슬 불만이 생깁니다.
이게 고속도로가 빙빙도니 산길로 숏컷하는 건 이해하겠습니다만, 가만보니 뺑뺑이 돌리는 기분이 드는 거에요. 아니 뻔히 옆에 국도가 있는데 왜 오르락내리락 산길을 타라고 하는거야???? 하면서 슬슬 불만이 생기는거죠.
추움
두 번째 불만은 아니 사람이 쉬려고 여행을 왔는데 여기오니까 이게 일하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음입니다. 우리가 일할 때 즐거운 날이 이틀 있거든요. 계약할 때 당일, 세금계산서 끊을 때 당일. 이것도 마찬가지에요. 출발 전 커피마실 때 기분좋고, 도착해서 맥주마실 때 기분 좋아요. 그 외엔 다아아아아아아 시발시발 스러운거야. 물론 중간에 경치나 사람들 덕에 재밌는 경우도 생기지만..그건 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널널하게 쉬면서 이 길을 즐겨보기로 했습니다. 원래 죄를 사하기 위해 걷는 순례길인데 걷는 동안 죄가 더 생길 것 같습니다.
세 번째 깨달음은 이 모든 불만을 이겨내는 것은 찌씨와 저의 동행의 기쁨 플러스 농심 김치라면이라는 겁니다.
라면 국물이란 건 참으로 모든 화와 힘겨움을 이길 수 있게 만들어주고 어떤 감기약보다 효과적인 듯 합니다. 한국에선 보지도 못한 김치컵라면을 국물까지 비워내자, 아 이것이 한국인 커스터마이징 특효약이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햇반하나 돌려서 말아먹었으면 못해도 30km는 더 갈 수 있었겠다 싶습니다.
내일은 용서의 언덕이라는 이름의 언덕을 넘습니다. 이름 딱 들으니 어때요. 용서가 안될 것 같은 이름이죠? 다녀와서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덧. 동네 그냥 서서 마시는 술집의 로제와인과 양식홍합, 그리고 샹그리아. 뭐 엄청 고급져보이지만 안보이는 감자튀김까지 모두 1만원이 안되고, 맛은 친구가 되게 대충 만들고는 아 그냥 먹어!! 라고 던져줄 것 같은 그런 맛입니다. 묘하게 맛있는데 뭔가 불량하고 나보고 만들으라그러면 못만들 것 같은 신묘한 맛.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훌륭한 만 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