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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Dec 12. 2019

[제작기]투자제안서는 말이 되게 만들어야지.

경제콘텐츠/교육기업 '사이다경제' 투자제안서 제작기예요.

사이다경제와 함께한 즐거운 디자인이 끝났답니다. 흥미진진한 IR을 제작했더랬죠. 처음 미팅을 갔을 땐 남자 세 분이 앉아계셨습니다. 대표님과 이사님, 개발팀장님이었죠. 대표님과 이사님을 비롯한 임직원분들의 색깔과 주장이 올곧습니다. 캐릭터가 딱 있달까요. 


우리는 거두절미하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멈출 수 없었어.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링 위에서 두세판 뛴 느낌으로 콧물과 침을 흘리며 잠시 옥상에서 바람을 쐬야 했습니다. 두 볼은 상기되었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로 토레타를 건넸습니다. 우린 거칠었습니다. 


뭔 말을 했냐면 "대체 우리 회산 뭐하는 회사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회사를 운영하다보면 항상 저 질문을 하게 됩니다. 뭐라뭐라 대답은 하는데 사실 조금만 파고들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구석들이 있죠. 원래 회사란 한 가지 일만 하지 않습니다. 여러가지 일을 하죠. 그러다보니 이런 딜레마가 생깁니다.


매출은 A가 이끌어가는데

우리가 하고 싶은 건 B지.

우린 B로 투자를 받고싶지만

정작 돈은 A로 내고있으니 정당성이 떨어지는 느낌?

앞으로도 B가 A를 수익으로 앞지를 수 있는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고. 

그럼 뭐 어떡해야하지..?


이런 질문들의 답을 찾아가며 셋 다 머리를 싸맸답니다. 디자인컨셉이나 페이지 마다 무슨 말을 써야하는 지... 그런 건 사실 나중 문제입니다. 전체를 관통하는 한 문장이 더 중요하죠. 


우리는 뭐하는 곳인데 뭘로 돈 벌거다. 

2시간 정도 회의가 되었을 무렵 우린 깨달았습니다. 6시가 되어가고 있고 곧 퇴근시간이 시작되면 난 계약서를 쓰기도 전에 2호선에서 압사당하겠지. 뒷사람 엉덩이에 눌린 채 앞사람 겨드랑이 냄새를 맡으며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아드레날린이 치솟고 판단력과 집중력이 증가합니다. 빠르게 위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을 정리했습니다. 초인적인 속도였어요. 결국 초심과 기업철학으로 B를 정당화시키고, A로 투자안정성을 보장하는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리스크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메시지로 가자는 것이죠. 


박수를 세 번 짝짝짝 친 다음 20페이지에 대한 각 플로우를 정리합니다.

달리자아아아아아아아!!!!!!!!!!!!

원래 저는 미팅을 굉장히 타이트하게 하는 편인데, 초반에 뭐하는 곳이고 뭘로 돈 버는지 잡는 데 시간이 가장 오래걸리는 것 같습니다. 저것만 잡히면 각 페이지의 워딩이나 디자인컨셉은 비교적 쉬운 편입니다. (아 물론 비교적이죠.)


우린 남자냄새 나도록 3시간 내내 거친 호흡을 맞췄습니다. 거룩한 전우애가 생길 지경이었죠. 아직 다 마시지 못한 매실쥬스를 원샷하고 나오면서 재차 인사를 합니다. '내가 견적을 드릴테니 그대로 주시오' 뭐 그런 의미였죠. 놀랍게도 우린 잘통했고 그대로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돈 제때 많이 주시는 분 존경


아니 클라이언트가 그렇게 나오는데, 제가 가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또 그대로 주신다면 아주 성심껏 만들어드리는 것이 인지상정이죠.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일단 호가든 두 캔과 눈을감자를 뜯고서 종이를 꺼냅니다. 눈을감자는 오도독오도독 씹히는 맛과 짭쪼롬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대뇌를 강하게 자극하죠. 영감을 주는 스낵입니다. 레이아웃은 종이에 손으로 먼저 짜는 것이 매우 찰집니다. 띠로롱! 마침 메일이 왔군요. 기존 자료를 보내주셨습니다.



엌..


한 손으론 머리를 움켜쥡니다. 누가보면 고뇌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머리 만지면 시원해서 그러는 겁니다. 일단 사이다경제의 메인컬러는 예쁜 파란색입니다. 하지만, 좀 뭐랄까. 예전의 플랫컬러느낌이 있어서 탁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표님께 물어봤죠.


'대표님 이거 꼭 이 색으로 써야해요?'

'아니오 그냥 좋은 색으로 골라주십쇼'


하셔서 기존 파란색에 조금 더 노랑끼를 빼기를 했습니다. 약간 블루투스4세대 아이콘같은 파란색으로 형광끼를 더했죠. 그리고 두 색을 살짝 그라데이션으로 합쳤습니다. 그리고 오묘하게 디자인을 안한 것도 한 것도 아닌 듯한 모습에 잠시 고민했습니다. 좌측 넘버링 공간을 둔 것은 아마 추후 제본때문인가... 그렇다면 꽤나 센스있는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까만 배경은 너무 탁해보이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저거 어차피 흑백으로 인쇄할 지도 모르거든요. 참!! 그래서 여러분들은 투자제안서 뽑아갈 때 그들이 프린트에서 저퀄로 뽑게 만들지 말고 여러분이 하드카피로 직접 가져가도록 하세요. 아임프린트나 킨코스에서 퀄좋게 인쇄해서 가져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종이는 랑데뷰나 마쉬멜로우지를 씁시다. 개인취향인데 만졌을 때 빤딱빤딱하면 좀 쌈마이티 나서요.


 우선 저 레이아웃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음 어디서 부터 시작할까....고민을 했습니다. 


오!! 그래 이것부터 시작해야 겠다!


Ctrl+N


이번 IR은 제가 지향하는 초깔끔과 제발 정리된 컨셉을 유지하면서도 다소 이래저래 평범한 레이아웃을 지양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섯 가지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습니다. 일단


1. 절대 순서대로 보지 않을 것이다. 이리 넘겼다 저리 넘겼다 하며 보는 것이 또 사람의 심리이므로 어느 페이지를 보아도 무슨 말인지 이해될 수 있게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때문에 쉬운 용어와 잘 읽히는 리듬감으로 텍스트를 구성해야 했죠. 2.3, 3.2조의 5음절, 3.4조의 7음절 구성이 좋습니다. 




2. 같은 메시지는 같은 컬러와 같은 위치에. 무게중심을 위한 이미지요소를 제외한 내용은 위치와 컬러감으로 정렬을 시켰어요. 검은색은 간지, 파란색은 중요한 부분, 청회색은 기업부분, 파란색은 고객부분 등등 일관성을 주려고 꽤나 애썼답니다.


3. 왼손으로 들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드카피로 만들려면 조금 위치조정이 필요하겠지만, 분명 단면으로 뽑아 스테이플러만 꾹 박는 경우나 L자홀더로 묶는 정도가 많을 겁니다. 그래서 왼쪽하단 부분은 왼손 엄지손가락이 위치할 수도 있습니다. 한 손으로 들고 보는 경우말이죠. 때문에 최대한 여백을 비워놓았습니다. 원래 3사분면은 잘 눈에 들어오지도 않구요.


4. 핸드아웃 자료지만 UI디자인적인 요소를 부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움직이지 않지만 역동성을 부여하려고 인터랙션이 있는 듯한 버튼, 드롭다운, 마우스호버 등등의 요소를 첨가해보았죠. 시선이 따라가는 곳에 잘 배치하는게 어렵더군용. 


5. 그냥 존나 이쁘게 만들어보려고 노력했어용. 그것은 저의 사명이죠. 의지와 확신에 차서 막 열변을 토하던 대표님의 표정과 열정을 담아내는 것도 디자이너의 일이거든요. 디자인에서 자신감과 굵기가 팍팍 느껴져야 해요. 그래서 가운데정렬과 텍스트박스, 일부러 작은 폰트에 볼드를 살려서 위계를 구분했어요. 


이것으로 투자제안서를 짜잔 완성해보았습니다. 투자소개서를 만드는 건 매우 재미있어요. 몇 장 안에 투자자의 이해와 호기심을 동시에 잡아야 하거든요. 한 방에 빡 들어오는 메시지를 만드는 것도 흥미진진하지만 무엇보다 재밌는 건 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뒤집어서 실제로 어떻게 밸류에이션을 증명할 지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전 숫자를 매우 좋아해서, 철학적인 가치보다 제대로 작동하는 수익구조를 발견하는 걸 더 좋아하거든요.


파랑파랑이 상당히 시원하고 예쁜 느낌을 줍니다. 만드는 내내 퍼렁이를 봐서 눈이 상쾌했습니다. 내 눈에 멘솔. 사이다경제 대박나시고 투자받으시면 그 중 일부로 뭘 또 함께 하도록 합시다. (받는 지 안 받는 지 하루종일 플래텀만 지켜볼거다) 히히




참고로...


뭐 자꾸 어떤 컨설팅하시는 분들은 뭐 팩트폭행이네 하면서 클라이언트를 자꾸 가르치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니 왜 사람을 가르쳐요. IR만들어달라고 부른거지 혼나려고 부른 게 아니잖습니까. 같이 미팅해가면서 함께 고민해가면 될 일이지 그걸 뭘 팩폭이다 뭐다... 그건 약간 좆문가부심만 들어찬 느낌입니다. 그래놓고 막상 만든 거 보면 뭐 어디 지역광고 캡쳐뜬 것처럼 만들어 놓더라구.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여러분들 팩폭 안들어도 다 잘하십니다. 괜히 팩폭이라고 해놓고 만나서 답도 안주면서 더 맘만 복잡해지지... 돈 따내는 게 그렇게 고개쳐들고 누구 팩폭하면서 할 정도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솔직히 운도 지독히 필요하고, 제안서 이외의 역량도 많이 필요해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영역이죠.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가장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서로 진땀 흘리는 미팅이 좋은 미팅입니다. 외부인의 시선은 신선하지만, 신선함이 항상 답은 아니거든요. 저희 이번에 미팅하면서 진짜 여러번 '어렵네.. 어려워...' 하면서 서로 입술만 뜯었습니다. 대표님은 생각 정리한다고 오줌싸는 동안 멘트 정리하시고 저는 볼펜을 몇 바퀴를 돌렸는지 몰라요. 볼펜 닳아 없어질 뻔 했어. 원래 남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말이 쉬워집니다. 내 문제라고 생각하면 골치가 아파지죠. 

이거 지금 표정들 봐... 저 상태로 굳어있었다니까. 서로 한숨만 쉬면서


저와 일한 클라이언트님들 모두 대박나세요. 홍보하려고 쓴 글이 아니므로, 제 회사 링크는 걸지 않습니다. :) 

필요하신 분은... 알아서 찾으실 수 있을거에요(부끄&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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