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창선 Nov 20. 2019

17. 글쓰기가 싫어질 땐 어떻게 해야하나

찌와 레의 말라가는 엄청나게 맑아

여행은 사실 20여일차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3일치나 밀렸죠.


날마다 하나씩 써서 올리겠단 의지는 점점 약해져갑니다. 물론 그냥 오늘 뭐했고 뭐 먹었고 어디갔고... 그런 걸 쓰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쓰다보니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이 콘텐츠로 뭐 한 방 터뜨려야 쓰겄다. 이거 쓰면 대박나겠다. 뭐 이런 것들이 생각나서 하나하나 메모해놓기 시작합니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겠으나, 애시당초 왜 이 여행기를 시작했는 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들더군요. 기억해보건대, 최초 여행기의 시작은 그냥 사진만으로 남기긴 아까우니 날마다 어떤 일이 있었는 지 생동감있게 남기자...는 취지였습니다. 순수한 아카이빙이었죠.


그런데 이게 조회수란 것이 있고 공유, 댓글 막 이런게 나오잖습니까. 그러니 사람 맘이 어떻겠어요. 선덕선덕 하겠죠. 아오 이번엔 2,000 겨우 넘었네. 이번 건 1,000도 못넘었네 이러면서 괜히 사람이 조급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어제같은 무리수 콘텐츠를 쓰기도 하고, 쓰고나서 아오...이런 뇌피셜 노잼덩어리를 싸놓다니...여행와서 2주내내 시원하게 화장실도 못가더니 아주 똥을 손으로 싸놨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쓰기는 원래 힘듭니다. 그림도 디자인도 음악도 그렇듯이...생각을 뭔가로 표현한다는 것은 꽤나 많은 고통을 수반하죠. 하지만 힘든 것과 싫은 것은 좀 다른 결입니다. 이번엔 순수하게 싫더라구요.


뭐랄까. 내가 쓴 글을 다시 보면 세상 밉상이고. 사실 그리 재미있는 소재가 나올리가 만무한 여행입니다. 매번 뭔가 스페인 재밌어!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오히려 요즘엔 좀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 시큰둥해지던 차입니다. 그 성당이 다 그 성당같고, 그 거리가 그 거리같고.


이제 대충 이 분들이 어떻게 지내는 지 뭐 먹는지, 언제 문을 열고 닫는 지, 어떻게 걷고 무슨 생활을 하는 지는 보이니까 오히려 궁금한 건 여기 부동산 가격은 얼마일까, 연봉은 얼마 받을까. 오렌지 팔아서 BEP는 넘기고 사시나, 이렇게 가게 문을 안 열어서 세는 제대로 낼 수 있을까, 국민연금은 잘 나오나... 이런 것들입니다.


생활이 이렇다보니 글에도 시큰둥이 뚝뚝 묻어납니다. 한창 브랜딩 글 쓸 때는 다소간의 빡침과 나름의 주관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어휴 여행기란 것은 참으로 일상을 꾸준히 관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더군요. 여행기 쓰시는 모든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보통 이럴 땐 글을 좀 멈추고, 쉬는 타임을 가지기도 하는데... 이번에 마냥 쉬었다간 그냥 한 동안 안 쓸 것 같아서 본래의 궁시렁궁시렁 스타일로 다시 돌아와 보려고 합니다. 오늘도 그런 궁시렁의 한 꼭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일은 말라가를 떠나고, 이제 타리파로 향한답니다. 타리파에서 뭐할거냐.


암것도 안할 겁니다. 비도 오고 글도 밀렸고... 에어비앤비에서 원고 내라고 독촉도 온지라 그거 써야 할 것 같아요. 타리파에서 하룻밤 묵고 나선 갑자기 모로코를 가기로 했습니다. 두둔... 자세한 경위는 모로코 가서 적도록 할게요.


굿모닝 되세요. 전 자렵니다.

작가의 이전글 16. 진짜 아무도 몰랐을 스페인 3대 진미 공개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