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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Mar 25. 2020

돈 버는 소를 건드리면 아주 주옥되는 거야.

가난한 사업자가 브랜딩에 집착하는 이유.

이게.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의 브랜드를 애끼고 사랑하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지만, 막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 회사라는 게 진짜 딱 마우스만 팔아서 먹고살지 않잖아. 마우스도 팔고 종종 키보드도 팔고, 마우스A/S도 해주면서 여러 수익채널을 만든단 말야.


근데..진짜 딱!! 마우스만 파는 곳이 있어. 캐시카우가 한 마리인거야. 이거 잘못 건드리면 아주 되는거야.


이런 상황인 거지. 연락이 왔어. 브랜딩을 해달라고 해서 갔는데...처음엔 막 의욕이 넘치는 거야. 문장 하나하나에 우주를 담아야 하고, 자신의 역사와 지금까지의 업의 가치를 비와이처럼 또렷하게 읊조리는 거야. 그 라임에 올라타 잠시 리듬에 몸을 맡기다보면 나도 모르게 꿈이 생기고, 대기업 사장이 된 느낌이야. 하지만 문제는 다음부터 발생해. 그래서 정작 견적을 말하고, 과업을 정리하다보면.


갑자기 통장앞에 겸손한 자가 되어 들숨들숨들숨인거지. 쓰읍. 쓰읍. 하아. 쓰읍.


이렇게 손대면 하아..이건 위험할 것 같고

저렇게 손대면 하아..이건 굳이 안해도 될 것 같고..

그렇게 손대면 하아..그냥 요만큼만 바꿨으면..


한단 말이야. 이거 왜 그래. 그렇지. 캐시카우가 죽으면 안되는거니까. 한 마리잖아. 이 아이 건들다가 망하면 어떡해. 마음이 불안해. 급기야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생각해보니 브랜딩같은 거 안해도 먹고 살아왔고, 굳이 해야하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 매출은 높이고 싶고..이런 양가감정 때문에 마음이 시끄러운 거지. 결국 이런 결론이 나.


"아..이..상세페이지를 통해서 브랜딩을 하고싶어요."

뭔 소리야. 상세페이지를 통해서 브랜딩을 하다니. 상세페이지는 그냥 상세페이지야. 걔를 통해서 브랜딩을 할 순 없는 거야. 그냥 다른 걸 건드리는 건 돈도 아깝고, 고객 떨어져 나갈 것 같고, 좀 불안하고 잘 모르겠고...그러니까 조만큼만 '예쁘게' 바꾸고 싶은 거잖아.


사실 이제 어느 정도 알 것 같아. 사실 브랜딩이란 게 특별한 뭔갈 하는 게 아니잖아. 브랜딩에 돈이 들어간다고 하지만, 회사에선 뭔갈 하면 무조건 돈이 들어가. 브랜딩에만 돈이 들어가는 건 아니라구. 화장실에 휴지만 사도 돈이 들어가는거야. 당연한거지. "브랜딩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어휴 무서워서 못하겠어." 이런 소리는 아주 핑계지. 보통 이런 논리일 거란 말이야.

"브랜딩은 디자인이니까 디자이너 외주주고..또 뭐 만들고 인쇄하고 제작하고..어휴 난 못해."

자꾸 돈을 써서 브랜딩을 하려고 해. 근데 이걸 미팅가서 또 브랜딩의 본질과 어쩌고를 설교하고 있을 수 없잖아? 그래도 종종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어. 브랜딩은 사실 행위의 문제고 고집과 의지의 문제가 더 크단 말이야. 돈보단 불안과의 싸움이 더욱 크지. 이게 제대로 하는 건지 뭔지...나 스스로도 잘 확신이 서지 않잖아.



잠깐 딴 얘기좀 해볼께.

나 이번에 홈페이지 바꾸고 나서 지금 아주 불안하다구. 아. 말한김에 한 번 들어가줘. 여기야 (애프터모멘트).

여튼, 올 해에 새롭게 좀 바꿨단 말이지. 작년까지만 해도 브랜딩한다고 막 그랬는데. 도무지 브랜딩이 그래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 건지 알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올해는 회사소개서만 만든다고 하나로 줄여놓곤 그걸 엣지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그리고 가격표도 막 공개해버리고. 말투도 내 말투 그대로 바꿔버렸단 말야. 괜히 사원 여럿있는 에이전시처럼 보이려고 안간힘 쓰지 않으려고. 근데 그렇게 해서 매출이 올랐을까? 노 전혀 아니야. 그럼 제일 먼저 무슨 생각부터 들었을까. 그치.


"아오씨...그거 바꿔서 그나마 오던 메일도 다 날아간 거 아냐?...."


이런 생각부터 들어요오. 사실일수도 아닐수도 있지만, 일단 내 탓부터 하게 된다고. 아 저게 다 바꿔서 그런건가...하고. 하지만 견뎌내야지. 내가 맞다고 생각하고 가야지. 근거 찾아야지. 근거 누구에게서 찾아. 나에게서 찾아야지. 남에게 물어보면 '아오..야 그건 좀 에바다' 다 이런 소리만 한다고.



다시 얘기로 돌아와서.. 그래서 이런 얘길 해주면 다들 뭔가 감명깊은 표정을 짓고... 아 이제 알겠다면서 뭔가 할 것 같은 제스쳐를 취한단 말이야. 그래서 몇 주 뒤에 뭐하셨나...보면


아니 젠장 왜 강의장을 찾아다니냐고. 참가비 2만원 정도되는 그런 거 있잖아.(물론 참가비 2만원이지만 좋은 곳들도 있다.)  '브랜딩 뽀개기' 뭐 이런 곳 다녀오셔서 '오늘도 브랜딩이란 벽돌을 하나 더 쌓아간다.' 이런 멘트의 인스타나 올리고 말이야. 해시태그 분명 #성장 #브랜딩 #배움 #고객에게집중하자 막 이렇다고...


브랜딩은 벽돌을 뭐 쌓고 그러는거 아냐. 그냥 끊임없이 솟구치는 외부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를 다 지워내는 과정과도 같아.


솔직히 캐쉬카우 하나인 곳들은 어려워.

변화를 너무 무서워해.

근데 그걸 본인들은 잘 몰라.

보통 이런 얘기한다고.


'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고..' 그럼 언제가 그 때인걸까.


건들면 막 무슨 일 날 것 같이 군단 말이야. 모든 걸 완벽하게 만든 뒤에 오픈하고 싶은데 돈은 없잖아. 그래서 브랜딩한다 해놓고 리플렛 하나 제작하고.


그건 그냥 돈써서 냄비받침 하나 더 만드는 거지, 브랜딩이 아니여. 자꾸 내면의 불안을 브랜딩으로 포장하면 안돼. 이게 단어가 멋져서 포장지로 쓰이기 좋다구. 그런 맘이면 브랜딩을 해도 불안할 것이야. 그리고 애시당초 브랜딩이란 것이 뭐야. 정체성 찾자는 거 아냐. 외부인이 해줄 수 있는 건 '언어, 시각화, 제품, 생각의 흐름' 등을 정리해주는 것일 뿐이야. 애시당초 당신에게 있던 것을 그냥 눈에 보이게 다시 정리해주는 것이 외부사람들의 역할이라구.


근데 남이 만들어준 거 딱 받고 '와. 이게 이제부터 내 정체성이다!' 라고 좋아할 것이 아니잖아. 결국 내가 정하고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내가 지금 가난한 사업자고, 돈이 없고, 캐시카우가 하난 데 이거 건들면 아주 주옥될 것 같다면.


일단 영업을 뛰고 돈을 벌어야지. CS신경써야지. 고객 한 명 한 명 리텐션 만들어야지. 지인조카삼촌당숙어른 할 것 없이 알리고, 날마다 인스타올리고, 글 쓰고 다른 곳들은 태그 뭐달아서 잘 되나... 공부하고 찾아댕겨야지. 지금 강의 듣고 뒷풀이 사진 올리고 그럴 때가... 아유 참.


그리고 매출이 안나오는 것은 브랜딩을 안해서가 아니야. 둘 중에 하나여. 여러분이 돈이 없던가, 아니면 유튜브로 성공스토리를 너무 봐가꼬 환상에 젖어버린 것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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