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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ul 10. 2021

합정연남망원상수, 힘쓰(HYMS)라이프에 대해서

킥보드, 린넨바지, 오버핏, 타투, 맛집, 디자인, 출판사, 카페, 배달

멋 모르던 초애기때는 이모집에 종종 놀러가곤 했습니다. 저희집은 광주였고 이모집은 동교동이었죠. 망원굴다리를 지나 한강에서 부메랑 던지고 놀던 아재같은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돌아오던 길에 먹던 구슬 아이스크림이 그렇게 소중했던 나이를 지나 어른이 되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꽤나 서글픈 일이죠. 20대는 전집중 호흡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역경의 시기였습니다. 그 무렵 저의 로망은 마포구 어드메였습니다.

홍대입구 뒤쪽의 골목골목 가득한 연남서교동은 꿈도 꾸기 힘들었고, 망원상수로 눈을 돌려봤었죠. 10년 전이었는데도 월세가 2천에 70,80하던 곳이었습니다. 음...그런 돈은 없었죠. 그 때 당시 제가 지니고 있었던 현금은 "떼쓰지 않고 구슬 아이스크림 정도나 사먹으면 끝날 정도"였으니까요.


몸 누일 방 한칸이 이렇게도 비싸다는 사실에 상당한 소름을 겪고 저는 서울도 아닌 성남 어디 끄트머리 어딘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먼 길을 지하철을 타고 와서 이곳에서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곤 했었죠. 덕분에 왕십리역에서 분당-2호선 환승구간은 문워크로도 갈 수 있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30살이 되고선 드디어 신대방까지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2호선 라인이고, 15분이면 합정에 도착할 수 있었죠.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신대방에 살 무렵엔 그래도 무인양품 풀셋을 맞추는 객기정도는 부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니 티끌티끌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거든요. 구슬 아이스크림도 두 개씩 사먹을 수 있었죠.


30대 중반이 되었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혼집을 서교동에 잡을 수 있었죠. 사람이 간절히 바라면 온 빌라가 나를 돕는다고 다행히 좋은 집주인과 적당한 가격의 오래된 집을 전세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저의 힘쓰라이프가 시작되었습니다. 힘쓰가 뭐냐.


HYMS. 네 맞습니다.
합정연남망원상수죠.


이 곳은 참으로 신기한 곳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묘한 매력이 있죠. 물론 강남도, 공덕도, 봉천도, 구로도, 이태원도 다 각자의 매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거긴 제가 안살아봐서 잘 모르겠네요. 다만 힘쓰에 뭔가 묘한 느낌의 차크라가 있단 사실은 분명합니다.


오늘은 힘쓰라이프에 대해 조금 썰이나 풀어보고자 합니다.


합정연남망원상수



이 곳은 마포구에 위치한 4대장 동네입니다. 마포구에서 가장 큰 건 상암동이지만 거긴 건국 이래 끊임없이 공사만 하고 있고, 조금 더 가면 DMC와 하늘공원이 있는 터라 주거지역으로 적합한 진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돈이 많으면 어디든 적합하죠. 상암동 다음으로 큰 건 성산동입니다. 사람들은 성산동을 잘 몰라요. 그도 그럴 것이 성산동은 착한 사람들의 메카입니다. 여긴 힙보단 상생과 협동, 두레, 나눔, 지역, 마을, 가치 이런 단어가 온 동네가 가득한 곳입니다. 함께 모여 아이를 돌보고, 학교 대신 홈스쿨링을 하고, 주방도 같이 쓰고, 지역 사업도 같이 하는 매우 신기방기한 곳이죠.


크기와 상관없이 마포구를 상징하는 건 역시 홍대입구일 겁니다. 근데 저는 이 홍대입구에 정을 붙이기가 참 어려워요. 한창 어렸을 때야 롤링홀이나 홍대 놀이터에서 노상맥주나 까던 기억 정도가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국물닭발이외엔 그닥 애정할 만한 게 없달까요. 게다가 요즘의 홍대입구는 프랜차이즈의 성지가 된 터라 좀 서글픕니다.

국물닭발은 맛있음.

오늘의 주인공은 합정동과 망원1,2동, 연남동, 서교동입니다. 연트럴파크와 서교동 맛집 등이 유명해서 익숙하시겠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또 다른 모습들이 보이곤 합니다.


음.. 몇 가지로 추려보았습니다.




1. 일단 개가 겁나 많습니다.

개모임

서울시의 반려동물 절반은 여기있는 것 같아. 여러분은 연트럴파크하면 홍입11번 출구에서 랜디스도넛(랜디스 도넛은 진짜 존맛입니다.)까지 이어진 그곳만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경의선 숲길은 공덕 너머까지 쭈우우욱 이어져 있습니다.


여기가 사람을 위해 만들어 진 곳 같으세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곳은 개를 위한 산책로입니다. 경의선 숲길을 거닐다보면 사람들의 대화가 대체로 이렇습니다.


'안돼, 어허, 쓰읍, 이리와, 가자.'

최근엔 몽실하게 털을 자른 포메라니안과 다리가 짧은 개들이 자주 보이는 데 대흥, 공덕으로 갈 수록 크고 비싼 개들이 보입니다. 집값과 비례하는 걸까요. 여긴 놀랍게도 수많은 동물병원의 개원입지 1순위로 손 꼽히고 있어요. 엄청나게 많은 수요가 있지만, 아직 병원은 많지 않기 때문이죠. 저희 시골 강아지인 복남이도 가끔 서울 왔을 때 여기 산책을 시킬 때가 있는데, 그 때의 힘은 평소의 6배가 넘습니다. 모든 개에게 아는 척을 하고 싶어하는 전형적인 시골촌개의 모습을 보여주죠. 부끄러워 죽겠어.

우리개 복남이, 발이 이미 신났다.



2. 여긴 책과 문화의 동네에요.

아실런지 모르겠지만, 원래 힘쓰는 겉집속사의 특징이 있습니다. 겉은 집인데, 속은 사무실이죠. 힘쓰에 보이는 대부분의 단독주택들은 거주가 아닌 사무실로 쓰이고 있어요. 대부분 출판사나 창작공간 등으로 쓰이죠. 여긴 엄청난 문화의 거리입니다. 2020년 기준 힘쓰엔 335개의 문화시설이 있다고 해요. 서교동에만 50개의 출판사와 21개의 지역서점이 있죠. 동 하나에 서점 21개가 말이 돼요? 그래서 뭔가 비즈니스적인 웃음으로 두 사람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무조건 편집자와 작가님인 거야. 브런치 작가님들도 상당히 이 곳에서 많이 봬었답니다.

창작소.

창작공간도 엄청나게 많은데 대부분 지하에 있습니다. 왜? 월세때문에. 대부분 무슨 공방, 아뜰리에, 창작소 이런 게 많은데 대부분 간판이 없거나 현미경으로 봐야 할 정도의 작은 글씨로 어딘가에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찾기가 어렵진 않아요. 대략 천쪼가리로 통유리가 덮여있고 뭐하는 지 모르겠다? 그러면 창작소입니다.



놀라운 건 연남동과 서교동을 합치면 창작공간만 50~60개가 넘게 있다는 점입니다. 여긴 마을예술창작소나 각종 생활시설이 엄청 다양한데 특히 성미산쪽에 진짜 이런 지역주민들 모여서 만드는 거 짱많아요. 성미산 마을극장, 이너프라운지, 무슨 협동조합, 마을예술창작소 등 딱 이름만 들어도 사회적가치가 혈관을 타고 흐를 듯한 곳들이죠. 지역상생이나 사회적기업에 관심있는 분들에겐 핫플레이스죠.



3. 디자이너의 동네야.

소규모 디자인 에이전시나 스튜디오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진짜 뭐지..? 이런곳에? 싶은 구석구석에 숨어 있어요. 문도 작아서 옆으로 들어가야 해. 안에 가보면 3~5인 정도의 부띠크 형태의 에이전시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죠.

원래 이 힘쓰존은 2012~2015년간 서울시와 마포구가 4억5천 들여서 '마포디자인지구' 란 걸 만들었다고 해요. 구심축은 서교동395 였죠. 그 곳에 가보면 잘잘한 5층 정도의 사무실들이 그득그득한데 다들 디자인회사 아니면 관련 브랜드들이에요. 출판사, 출판사가 만든 카페 이런것들이 가득하죠.

다 디자인회사들.


4. 응 여기 카페야.

힘쓰의 카페는 디자이너들의 성지인데, 흔히 일어나다 정강이 찧일 만큼 불편한 테이블이 있는 카페는 외지인들이 자주가는 곳입니다. 정작 주민들은 8시간 내내 앉아서 일해도 허리가 아프지 않은 넓고 쾌적한 업무용 카페를 선호하죠. 대부분 북카페라는 이름으로 오픈되어 있어요. 이런 곳들은 마을버스 타고 들어가야 하는 안쪽에 있습니다.


여기 뭐하는 곳이야? 이라는 생각이 들면 대부분 창작소 아니면 카페입니다. 좀 어둑하다? 싶으면 타투샵이거나 인센스파는 곳이고.


마포구엔 카페가 1,220개나 있어요. 강남, 서초 다음으로 강북탑이죠. 근데 강남의 스벅할리빈썸디야와 다르게 이 곳엔 3종류의 카페가 있어. 인스타 카페, 북카페, 일카페.

스타일별로 매력이 다른 데 제가 좋아하는 올드한 느낌의 노란조명, 나무테이블이 있는 일카페는 이면도로 옆에 주로 있습니다. 보통 몇 년씩 하고 있는 선배카페들인 경우가 많아요. 나무나무한 인테리어에 왠지 쌍화차도 있을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노란 조명과 규칙을 알 수 없는 소품들이 있다? 그럼 완벽한 워크스페이스인거야.  

이런 느낌 (나무의 시간)



반면 앉다 쟁반만한 테이블에 콘크리트/화이트/풀때기 컨셉의 카페는 좁은 골목 안쪽에 있습니다. 이 곳엔 높은 확률로 아인슈페너를 팔고 있어요. 현지인들은 잘 안가는 것 같고, 주로 예쁘게 차려입은 데이트족들이 많이 놀러옵니다.

이런 곳.

그리고 뜬금없이 건물 지하나 건물전체가 카페인 경우도 있는데 얼마전 로컬스티치가 인수한 카페요호나 당인리 책발전소같은 북카페,또는 주로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카페인 경우가 많아요. 이 외에도 연예인이나 유명한 사람들이 직접 운영하는 소규모 북카페들이 많죠.


컨셉츄얼한 곳도 많은데 땡스북스처럼 디자인특화가 되어있거나, 페미니즘 전문 서점, 잡지전문 서점 등 각각 특징들이 또렷해요.

쓰읍...여긴 뭘까..가정식..레코드..음악감사....ㅇ?




5. 치킨집 핵많아.

여기는 대표적인 금계류 대량 학살존입니다. 힘쓰존에만 300개가 넘는 치킨집이 있어요. 특히 옛날통닭집도 꽤나 많은데 망원역 2번출구에서 망원굴다리까지 이어지는 1.5km는 치킨 순례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강으로 가기 전 반드시 손에 한 마리 정도는 들려있어야 안도할 수 있을 듯한 분위기죠.

가는 길 내내 치킨냄새



6. 힘쓰패션 따라잡기.

음 일단...이 곳은 예쁜 옷이 안 통해. 남자분들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무조건 루즈핏이어야해. 린넨에 타투필수, 약간 장발에 한 손엔 전자담배 아니면 스케이트 보드. 좀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분들이 많은데 대략 예술적인 느낌이 가득해요. 여기선 막 브랜드 있는 옷보단 어디 구제샵에서도 찾기 힘든 맘대로 입은 듯한 느낌이 더 강렬한 것 같아요.



6. 망리단길 안가.

지역주인들은 망리단길 안가요. 망리단길 초입이나 끄트머리는 그냥 지나치다가 뭐 살 거 있으면 가는 정도고, 진짜 존맛집은 누가봐도 아닌 것 같은 그런 식당들이에요.

진짜 존맛집은 이런 곳임.

그리고 먹을 게 필요하면 망원시장을 가지. 망원시장에 치즈돈까스집이랑 속초닭강정, 찹쌀도너츠는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해야 해.



7. 킥보드의 거리.

한달 반 전 저도 킥보드타고 쌩 달리다가 차랑 박아서 아주 어깨가 아작이 났습니다. 조심히 타셔야 해요. 보통 킥고잉, 알파카, 팀, 부스티, 다트, 씽씽, 라임, 고고씽, 지빌리티 어쩌고.. 하는 38개 이상의 전동킥보드 브랜드가 있는데 당연히 강남송파가 1위고 강북은 마포가 탑입니다.


강남, 송파, 서초를 이어 마포구가 가장 서비스가 활발한 지역(6% :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의 데이터 분석결과) 이라고 해요. 특히 전동 킥보드의 브랜드 싸움이 겁나 치열한데 제가 보고 느낀 점을 좀 적어보자면...


1) 킥고잉 : 홍대 정문이랑 합정역 6번출구 앞에 다 몰려있음.

2) : 여기저기 널려있긴 한데 쇼바가 없는 아이는 손목아파서 너무 타기 힘듦.

3) 라임 : 넘어져 있음

4) 씽씽 : 요즘 많이 생기더라구요. 화려한 보드의 모습이 눈길을 끕니다.

5) 일레클 : 외면받고 있는 중

6) 따릉이 : 마포구 필수품


뭐 이 정도입니다. 골목이 워낙에 많고 이면도로도 상당한 곳인지라 킥보드나 자전거와 같은 교통수단에 최적화 되어 있어요. 차 잘못 끌고들어오면 일방통행 지옥에 빠져 영원히 헤매게 될 거고, 마을버스만으론 닿지 않는 세상의 저 편들이 있어요. 또 홍대입구, 합정, 망원, 상수역 어디에서 내려도 다 애매하게 멀어서(도보15~20분) 이게 걷기도 뭐하고..아니기도 뭐하고...그렇습니다. 이 곳에 살려면 킥보드앱 2,3개는 필수죠.



8. 고즈넉함.


조.용

이게 좀 신기한데 특히 제가 살고있는 망원역 안쪽은 구옥들이 많어요. 오래된 빨간 벽돌 빌라 아시죠? 힘쓰엔 아파트가 많지 않아요. 재개발 얘기도 딱히 나오고 있지 않고. 대부분 빌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취보단 가족들이 많아요. 전세가 제일 많겠지만, 은근 오래 전부터 살고 계신 자가 토박이분들이 많죠. 그래서 빌라 앞 작은 공원앞엔 건강하신 어르신들이 나와서 수다와 벽치기 운동을 많이 하고 계세요. 그래서 시끄럽지가 않아. 전체적으로 동네가 좀 조용합니다.


소음이 있다면 두 가지인데, 배달이 엄청나게 많아서 배달오토바이 소리가 새벽까지 좀 들리고. 합정역 벚꽃길이나 상수-합정 방향에 가끔 20미터 달리려고 엑셀밟는 엔진 부왕!!!! 미친자들이 있는 정도?



9. 누군가 배달을 말하거든 눈을 들어 마포를 보게하라.

여긴 주거지역인 만큼 배달이 많은 건 당연해요. 근데 좀 많이 많아. 사실 연남동 저 안쪽에 화교출신의 맛집 중국집들이나 현지인 음식이 장난아니게 맛있거든요. 과거에 청와대 출신 주방장들이 이 쪽에 식당을 차렸다는 썰도 있고. 그러다보니 집에서 만들어먹는 것보다 배달음식이 더 맛있는 경우들이 많단 말이지.


뿐만 아니라 여기에 라이더 분들의 본부들이 꽤나 많아요. 배달 인프라도 아주 제대로 갖춰져 있지. 배달전문 음식점 수도 서울시 2위에요. (영등포구 158곳 / 마포구 146개) 진짜 배민커넥터나 우버, 쿠팡이츠 라이더들도 엄청나게 많아요. 누군가를 전기자전거를 타고 있다? 90% 확률로 배민커넥터야.




대충 이렇습니다. 이번에 맘씨좋은 우리 집주인님께서 증액없이 전세를 연장해주시는 바람에... 고민이 많이 되었어요. 빌라를 살까?.... 흐음... 이렇게 말이죠. 하지만 빌라는 안 오른다는데...그렇다고 3기신도시나 경기권으로 빠져서 청약해야하나?...근데 여길 떠나긴 싫단 말이지. 그래서 요즘 고민이가 많습니다. 사실 저는 20대부터 이미 이 곳이 로망이었기 때문에 전세든 뭐든 일단 꿈을 이뤄서 더 이상 거주지역에 대한 로망은 없어요.

쓸데없이 재개발 한다고 아파트가 미친 듯이 들어서고 프랜차이즈로 도배되는 일만 아니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맘이 복잡하고 세상사 심란할 땐 힘쓰로 오세요. 고 인스타 카페 말고 목포식당에서 6,500원 짜리 갓 튀긴 돈까스 정식먹고 옆에 북카페 가서 오미자에이드 한 잔 조지면 그것이 행복입니다.



끗.


보너스. 고양이도 쿨한 곳. (왜, 뭐. 빨리 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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