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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Oct 25. 2021

설거지론 완벽정리

다들 설거지론으로 왈가왈부가 많더라구요.

<서두>


이게 보니까 뭐 문란한 성생활과 불행한 결혼생활 어쩌고하면서 결국 또 여자가 잘못이네, 남자가 잘못이네 하는 혐오 프레임의 단어였습니다. 세상에 마계가 있다면 그곳에서 태어나 인간계로 넘어오는 조무래기 마족들이 이런 단어가 아닐까 싶어. 설거지는 그런 숭악스러운(할머니 발음 : 이런 숭악헌 놈들) 뜻으로 쓰이기엔 너무도 고귀하고 재미있는 행위라고.


설거지의 어원상 뜻은 '먹고 난 뒤의 그릇을 씻어 정리하는 일'  말합니다. 15세기 문헌에선 '먹은 그릇을 정리해오는' 행위 서술어를 '설엊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홍윤표(洪允杓) / 국립국어연구원)

설거지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리' 그 자체에 있는 것이죠. 씻는 것은 정리를 위한 필요조건일 뿐입니다. 때문에 우린 설거지의 본질을 '정리' 에서 부터 접근해봐야 겠습니다. (남혐여혐 이딴 게 아니라) 


일단 배우자님과 저의 먹는 습관은 매우 다릅니다. 배우자님은 모든 식사가 끝나고 배를 두드리며 좀 쉬었다가 치우는 걸 좋아하고, 저는 다 먹은 즉시 그릇을 물에 담궈놓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것은 배우자님 입장에선 좀 진상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먹고 있는데 치우는 건 사실 기분 나쁜 일이긴 하거든요. 하지만 저는 '식사'의 범주를 '정리'까지 포함하고 있는 터라, 저 치즈가 굳었을 때 설거지하기가 얼마나 빡셀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래서 다 먹은 그릇을 놔두고 있는 걸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죠(병이다 병..)


여튼 설거지는 일단 어떻게 그릇을 포개는 지 부터 시작합니다.




<챕터1. 포개기>

일단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장모님이 주신 꽃그릇


일단 포개기에는 3가지 노하우가 있습니다.


1) 컵과 깨끗한 그릇은 따로
2) 같은 그릇끼리 포개지 않기
(호불호 있음)

3) 바닥에 닿는 면적 줄이기


그릇을 정리할 땐 머리를 좀 써야합니다. 우리가 밥그릇 바닥으로 음식을 먹진 않으니 바닥은 깨끗합니다. 굳이 여기에 기름기를 잔뜩 묻혀서 그릇등(저는 '그릇등' 이라고 표현합니다.)까지 지저분해지는 것은 좋지 않겠죠.

물론 어쩔 수 없이 뭔가가 묻기 때문에 수세미가 한 두번은 지나갈 수 있겠으나, 마라샹궈나 제육볶음을 먹은 그릇에 밥그릇을 올린다?...아 이건 못참죠. 그릇등에 새빨갛게 기름띠 져있는 건 이건 정말 킹받습니다.

안돼..후라이팬하고 같이 담그지마....


같은 그릇끼리 포개지 않는 건 그릇끼리 서로 꽉 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장모님이나 친정엄마가 선물해주신 코렐꽃그릇이 잘 그러더라구요. 사이에 물이 들어가는 순간 뗄래야 뗄 수 없는 세기의 연인으로 변신합니다. 물론 뜨거운 물을 살살살 잘 부어주고 퐁퐁물을 그릇 사이에 잘 넣어주면 쏘옥 빠지지만. 어느 세월에 또 뜨거운 물을 끓이고 있겠어요.


그리고 컵과 밥그릇은 당연히 따로 분류해줘야 합니다. 생선조림 먹은 통에 컵 집어 넣어버리면 되겠어요오오오오 안되겠어요? 그건 진짜 등짝입니다.




<챕터2. 씻기>


본격적인 씻기. 여기서도 중요한 점들이 있습니다. 


1) 일단 고무장갑을 끼는 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저는 맨손으로 하는 걸 좋아합니다. 초2때 아버지께 설거지를 인수인계 받은 이래 27년간 설거지를 맨손으로 해왔는데 습진 한 번 없었어요. 이런 건 체질인가봐요. 뽀드득 거리는 느낌을 손 끝으로 느껴야 '아 이게 제대로 씻겼구나!' 하고 쾌감이 있다는. 만약 습진이 걱정된다면 고무장갑 또한 조심하셔야 해요. 제 배우자님은 면장갑을 먼저 끼고 고무장갑을 끼기도 해요. 

2) 약간 따뜻해야 좋아요. 너무 뜨거우면 손이 뿔어요.

찬 물로 설거지하면 손도 시렵고, 기름기가 잘 안져요. 


3) 세제는 사실 물에 풀어 쓰는 거

원래 세제는 수세미에 직접 묻혀 쓰기보단 물에 풀어서 사용하는 게 좋거든요. 실제 사용규정도 보면 '물에 세제를 약 0.1%~0.3% 희석시켜 사용' 이라고 되어있어요. 그러나 우린 빠르고!! 강력한 세정력을 원하니까!!! 수세미에 직접 눌러 쓰는 것이지. (근데 꽤나 세제가 남는 다고 함) 전 개인적으로 곡물 뭐시기나 무향무취의 1종세제를 즐겨씁니다. 1종세제는 과일이나 채소를 세척할 수도 있는 친구를 의미해요. 보통 식기류는 2종세제를 많이 쓰는데... 혹시 잔류세제 등이 걱정되신다면 이것도 한 번 확인해보세요.


4) 컵과 밥그릇부터 씻어요.

깨끗한 유리부터 씻습니다. 유리, 사기, 플라스틱, 스뎅, 쇠수저 순으로 가는 거에요. 왜냐? 유리는 깨질 수 있잖아. 유리잔 같은 건 얼른 씻어서 재빨리 옮겨놓는 것이 좋습니다. 


5) 그릇 안쪽부터 닦고 바깥쪽을 닦아요.

바깥쪽부터 세제를 묻히면 그릇이 손에서 자꾸 미끄러져요. 그럼 우당탕 소리를 내며 날아가고, 이가 나가겠지.

아..또... 깨졌어..


6) 기름지고 비린 것들은 저기로. 깨끗한 아이들이 앞으로. 

물이 흐르면서 생선 비린내를 사방팔방 퍼뜨리면 안되겠죠. 일단 기름과 생선은 키친타올로 한 번 닦고 적당히 애벌설거지를 하고 집어 넣는 거에요. 

애벌 설거지 퀄리티. 제가 이렇습니다.


예전에 제가 식당에서 알바할 때 식기세척기에 넣을 때도 기본적으로 양념이나 심하게 더러운 건 한 번 닦고 넣거든요.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싸아아악. 씻어주는 거.

편.안


7) 국자 씻을 땐 리얼 조심

쏴아아 쏟아지는 물에 국자 한 번 대봐요. 아름다운 해바라기처럼 물살이 퍼져 여러분의 배꼽을 흠뻑 적셔버리고 말거에요. 비슷한 원리로 수저와 냄비뚜껑이 있습니다.


8) 후라이팬은 세제쓰는 거 아님

후라이팬은 밀가루가 진짜 최고에요. 세제쓰면 괜히 불안하기도 할 거고. 밀가루나 베이킹소다면 기름때 걱정도 없고 깨끗하게 씻겨요. 후라이팬은 뭘로 씻냐보다 말리는 게 중요하니까. (불로 달궈서 말리지마.... 키친타올로 닦아줘.)




<챕티3. 정리하기>


여기에서 엄청난 갑론을박이 있어요.


A : 같은 그릇끼리 엎어놔야 차곡차곡 정리할 수 있다.

B : 같은 그릇끼리 엎으면 물이 어떻게 마르냐. 다른 그릇끼리 겹쳐놔야 한다.



A와 B모두 맞는 말이긴한데.. 이 둘을 해결하려면 큰 집으로 이사를 가야지. 편한 대로 하세요. 같은 세트 접시를 사모으는 걸 좋아하는 저는 가급적 바닥이 너무 좁지 않은 밥그릇을 사요. 그래야 같은 모양 밥그릇 끼리도 서로 약간씩 걸쳐서 포개놓을 수 있거든요.

걸쳐서 포개놓기

그리고 이것도 약간 순서가 있는데. 일단 밥그룻과 접시, 반찬통을 가장 먼저 놔요. 그리고 그 위에 냄비나 유리로 된 것들을 살짝 걸쳐놓는달까요. 얘네들은 사실 오래 놔둘 게 아니고 적당히 물 빠지면 냉큼 제자리에 놔둘 것들이니까. 


냄비가 제일 아래에 깔려있으면 나중에 뺄 때 우당탕탕 거리고 불편하더라구요. 글라스락이나 강화유리가 아닌 이상, 얇은 유리컵 같은 것도 하중 받지 않게 위에 살포시 얹어놓거나 씻는 즉시 적당히 닦아서 걸어놓는 것이 좋아요.

머그컵 얘기를 좀 해야겠어. 이게 괜찮아보이지만, 상당히 빨리 말리는 게 좋아요. 이게 은근 오목하고 그래서 잘 안마르더라구요. 그리고 사은품으로 받은 머그컵같은 건...도기/자기가 촘촘하지 못해 미세한 기포들이 많은데 이런 곳에 물때나 세제, 음식들이 쌓이며 물비린내?...꾸링내 같은 게 나기도 해요. 머그컵은 종종 베이킹소다 두 스푼 넣고 물 부어서 전자렌지에 5분씩 돌려주도록 해요. 물비린내 사라짐. 그리고 빠짝 말려줘야 함. 이래도 냄새나면... 다른 용도로 쓰세요. 


김치통.. 하아. 이제 김장철이라서 다들 김치통 쓸 건데. 김치통은 좀 무거워도 글라스락이 최고입니다. 만약 경제적여유가 허락한다면 스뎅김치통을 쓰세요. 저흰 둘 다 쓰는데 둘 다 냄새 하나도 없고 진짜 너무 좋음. 


근데 문젠 뭔줄 알아요? 고무패킹에 냄새밴다? 고무는 어쩔 수가 없어. 이 떄 좋은 게 뭐냐. 식초야. 식초물에 퐁당 담구거나, 베이킹소다 한두스푼 넣은 물에 살짝 끓여주면. 꽤나 냄새가 날아가요. 옅은 김치냄새는 거의 100% 사라짐.





그리고 엄마가 제일 강조했던 것.

설거지를 했으면, 싱크대를 깨끗이 정리해라.

구석까지 깨끗이 닦아라.

싱크대를 싸악. 물 튄 거. 세제 튄 거. 깔끔하게 싸악 정리해서 물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게 가끔 밥알이나 뭐...음식물들이 남아있기도 하고... 싱크대 곳곳에 세제들이 묻어있기도 하고 그러면.... 설거지 하고 나서도 욕먹거든요.

눈부시게 만들어줘. 나의 스뎅싱크대.



무엇보다, 닦은 싱크대의 물기를 행주 등으로 한 번 싸악..닦아주면. 개운한 설거지 끝. 이게 다 끝나고 말끔해진 싱크대를 보면 아주 기분이 좋아집니다. 물론 저는 설거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종종 설거지 좋아하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이게 은근 명상 비슷한 것도 되고... 유튭 보면서 할 수도 있고... 뽀독거리는 걸 느끼다보면 뭔가 개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식기세척기가 짱이죠.





결론 : 설거지론이 뭔가 해서 봤더니 더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이건 따뜻한 물에 퐁퐁으로도 어찌 안되는 수준이었는데 보통 이런 수준의 단어들은 그냥 음쓰봉에 버리도록 합시다. 아..아니다. 봉투야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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