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잡으러 출근합니다 제1화
주식회사 소울제로
이번에 새롭게 기획한 10회 분량의 사내 판타지 소설입니다 :) 처음부터 보셔야 꿀잼이고, 중간에 갑자기 보시면 뭔말인가 싶으실 거에요! 이곳에 나온 모든 에피소드와 이름, 상황은 가상이고 특정한 기업, 성별, 종교, 신앙, 동물, 음식, 신념, 가치관 등을 비하하거나 저격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회사에 다니다보면 늘 '와씨..저건 도대체 왜 저러는걸까?'...라는 생각이 드는 답답함과 불합리한 일들이 많잖아요. 그게 사실은 누군가의 못되먹음 때문이 아닌, 회사 안에 떠돌아다니는 악마때문이라는 설정으로 시작했습니다. 냐봉과 엠제이는 이 악마를 밝혀내고 퇴치해야 다시 살아 돌아갈 수 있습니다 :) ㅎㅎㅎ 그럼 10화까지 정주행 고고!!
[악마를 잡으러 출근합니다.] 1화 주식회사 소울제로
엠제이와 냐봉이 다니고 있는 회사. 이곳은 말하자면 농산물을 직구해 고객들에게 전하는 쇼핑몰 같은 것이었다. 특히 최근 최고등급의 달걀이 크게 바이럴되면서 대박을 쳤다. 대표는 드디어 못다이룬 궁극의 꿈을 이루고 싶었다. 바로 우리만의 브랜드상품을 만들어 파는 것! 그렇다, 2개월 전부터 브랜딩 작업과 새로운 카테고리 개발, 프로모션 기획 등 모든 팀이 PB상품 기획에 온 힘을 쏟아붓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일들이 너무도 빠르고 준비없이 이루어지고 있단 점이었다. 그리고, 대표의 열정에 비해 본부장들의 열정은 하루지난 새우탕 국물 정도의 온기랄까. 그리고 짜게 식은 열정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결국 사고가 터졌다. 오후3시14분. 모두가 눈에 힘을 빼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때. 슬랙에 긴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이번에 농장주들과 계약한 계약서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손해를 우리가 떠안아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비용 일부를 농장주가 부담하도록 조항을 바꿔야 해요. 그리고 공장 쪽도 이슈가 있습니다. 한 달 후에나 가동이 가능하대요. 이 부분도 농장주에게 전달하고 납품일정에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난리가 난 것이다. 본부장들은 팀장들과 미팅을 시작했고, 전화와 메일이 분주하게 오고가기 시작했다. 그 무렵 브랜드마케팅팀장 엠제이는 영업부서 본부장실에서 사색이 되어있었다.
[예?? 그걸 저희 팀이 맡아야 한다고요?? 아니..그 계약건 관련해선 원래 대외영업팀에서 진행했던 거잖아요. 그걸 왜 저희가..]
[에에에에, 아니아니 그런건 아니고]
본부장은 손사래를 치고 두 손을 폈다 오므렸다하며 열정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그게, 그들에게 뭐 다 재계약을 해오라는 게 아니예요. 아니, 브랜드마케팅팀에서 원래 내외부 고객관련 메시지를 만들잖아. 그러니까 그쪽 부서보단 좀 더 부드럽고 좋은 메시지를 만들 수 있단 판단이지. 그러니까 우선 메시지 정도를 구축해서 일단 전달할 수 있는 준비를 해놓자는 거야.]
[아니, 그걸… 사실 지금 저희도 케파가 안나와서…그리고 이 내용에 대해 정확히 맥락을 파악하지도 못했어요.]
[어어어어!!~걱정말아요! 그건! 오후에 영업팀장이 인계하면서 얘기해줄거야. 아니이~ 그리고 엠제이님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이 난리가 났는데 팀장씩이나 되서 맥락을 파악하지 못했다는게…에잉…그그.. 쩌. 그게 그럼 안되지..]
[아니 그게…]
엠제이는 두 달 뒤 결혼준비로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일이란 게 어디 그런 사정을 봐주며 오던가. 엠제이의 비통한 표정을 본 냐봉이 슬랙메시지를 남겼다.
[팀장님 왜요? 본부장님이 뭐라고 했어요?]
[우리 뭐 하나 해야할 것 같아요…]
엠제이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와 함께 결국 십자가를 지고 가스라이팅 채찍을 맞으며 골고다 언덕을 올랐음을 털어놨고 냐봉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럼 우선 그쪽 농장주들 리스트와 특이사항부터 한 번 정리해봐야겠네요. 제가 영업팀에서 리스트랑 담당자 받아올께요.]
[냐봉님 괜찮겠어요? 사실 이게 우리 일이 아니긴 한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딱 보니까 영업팀에서 쇼부친 것 같은데. 본부장 성격에 또 영업팀이 내새끼니까. 뭐 그런 맥락은 얼추 알겠네요. 여튼 우린 버려진 자식이 된 것 같고 사건을 떠맡았으니 일단은 빨리 해치워야죠. 그래야 팀장님 결혼하고? 저도 다음주 연차 쓰고. 저 진짜 다음주 연차 또 박살나면 진짜 안되거든요.]
회사의 맥락은 이러했다. 본부장급은 창업 때부터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영업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인데다 현재 영업팀도 후배이거나 본인이 데려온 사람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형님동생하던 소위 담배친우회같은 모양새가 형성된 것이다.
한때는 이 회사도 꽤나 유통업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중소기업이었다. 종종 만드는 자체제작 브랜드도 히트작으로 성공시킨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히트작에 도취된 리더들은 더 이상의 노력보단 어떤 컨트리클럽을 놀러가야 공이 짝짝 붙을지를 고민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던 것 같다. 그렇게 아무 브랜드도 없이, 그저 있는 유통망을 유지하며 5년이 흐른 것이다. 그들의 골프실력들은 월등해지셨을 것이다.
그러다 작년, 지금의 대표가 새롭게 영입됐고. 회사엔 급진적인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브랜드앱을 개발하고, 농장주에게 전달할 기프트세트도 제작했고, 팀을 개편하고 닉네임을 쓰고, 아침엔 샌드위치가 제공됐다. 본부장들은 샌드위치에 햄이 왜 한장이니 치즈가 싸구려니 어쩌니 하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간혹 대표의 편을 드는 본부장은 담배타임에서 제외되었고, 본부장 아래의 팀원들은 괜한 갈굼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엠제이의 팀도 그 중 하나였다.
가뜩이나 사람도 잘 안뽑히는 요즘, 중간리더들은 소위 젊은 것들을 괴롭히는 신기술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MZ세대니까 유튜브를 만들어라, 아이디어를 내라, 새로운 동아리를 구상해라, MZ토크콘서트를 기획해라 어쩌라는 오더가 거의 매달 터져나오고 있었다. 젊은 사원들을 위한 문화를 만든다며 휴롬에 넣고 갈아버리는 것이다.
[이번 MZ토크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한 일등공신, 냐봉님께 상장과 상품을 수여하겠습니다 모두 박수!!!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아…정말 우리 냐봉님이 그 MZ세대의 대표로써. 우리 회사의 미래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토크콘서트를 통해 화합과 뭐 그런 메시지를 잘 볼 수 있었습니다.]
4달 전에 냐봉이 기획했던 토크콘서트는 뉴데일리에 ‘조직문화 선사례’로 기사가 하나 실렸다. 그것도 냐봉이 일전에 알던 기자 한 명을 겨우겨우 불러서 보도자료를 거의 그대로 전달해준 것이었다. 아마 그것이 이 상장의 근거일 것이다.
상장엔 ‘베스트기획상’ 이라고 적혀있었고 상품은 스타벅스 ‘아이스 카페아메리카노T 2잔 + 부드러운 생크림 카스테라’ 기프티콘 이었다. 13,500원 짜리네. 냐봉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평의 눈꼬리를 유지한채 입꼬리만으로 하나도 안기쁜데 기쁘게 사진을 찍는 기적을 선보였다.
[팀장님 제발 이제 이런것 좀 하지 말아요 우리. 다음부턴 절대 안할거에요.]
냐봉은 커피타임에 진짜로 정색하고 엠제이에게 말했었다. 엠제이는 거절이 쉽지 않았다. 거절을 안해본 건 아니지만, 늘 본부장의 얘기가 맘에 걸리긴 했다.
[아니 엠제이님, 아니 최팀장. 솔직히 내가 조언을 좀 하나 할께. 이제 결혼하고 신혼여행까진 그렇다쳐도, 아니 어? 애 안가질거야? 우리 회사 육아휴직 잘 되어있어서 복직도 잘되고 어? 지원도 좋고. 이만한 곳 없는 거 알잖아. 근데 여기서 오래오래 어? 버티려면? 어? 승진도 하고. 그래야 거 뭐야. 가사도우미같은 것도 종종 부르고, 호텔뷔페도 좀 목에 적셔주고 하는거지. 언제까지 팀장할거야. 이제 파트장해야지. 그럴려면 올해내년이 가장 중요한 거 알잖아. 내가 지금 어? 못할 그런거 하는거야? 이게 다 최팀장에게 내가 기회를 주는거라고. 그걸 알아야지 어?]
거절 끝에 달려오는 본부장의 지저분한 조언은 엠제이의 퇴근길을 꽤나 묵직하게 만들었다. 냐봉도 그런 본부장의 얘기를 멀리서 엿들었던 적이 있다.
[에휴 시발]
냐봉의 성격같아선 지금까지 그랬듯 간악한 적의 무리를 끓어오르는 승질머리로 책상 세번째 서랍속에 쳐넣어버리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최근 전세집으로 옮겨오며 통 크게 끌어땡긴 대출이 이성의 끈을 잘 유지시켜 주고 있었다. 게다가 독립을 시작한 이후, 효도한답시고 엄마에게 사준 코나 할부금은 생각보다 굉장했다. 매달 80~90만원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아하니, 이젠 월급으론 좀 빠듯하고 어디가서 엉덩이 맞고 10만원씩 더 받을 수 있다면 곤장이라도 씨게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냐봉님, 우리 출장 한 번 가야할 것 같아. 천안이야. 거기에 양계장이랑 공장주분 만나서 다시 얘길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서…]
[흠, 거기가 영 완고하시죠?]
[그러게요. 저번에 전화드리고 이래저래 달랜다고 달랬는데, 이번엔 사모님께서 또 분노가…]
[사실 예전에 첫 계약할때도 그랬어요. 대충 짐작을 했는데, 여기 말고도 몇 군데 터질만한 곳이 있긴 하겠네요. 공장주분은 어케 된거에요?]
[공장은 최대한 라인좀 땡겨달라고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가서 사정도 한 번 보긴 봐야할 것 같고]
[일정이…보니까 이번주 목요일이네요?]
[네네, 오전에 출발해서 아마 저녁 안에 돌아올 것 같아요.]
사실 냐봉은 엠제이와 성향이 너무도 달랐다. 엠제이가 팀장이긴 했지만 감과 직관에 의존하고, 늘 울 것 같은 표정의 연약한 리더십에 냐봉은 내심 불안함을 느꼈던 것이다. 둘은 종종 출장을 다녔지만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넷플릭스는 뭘 보는지, 요즘 결혼 준비는 어떻게 돼가는지, 보통 4~5마디 내외의 핑퐁으로 멈추는 대화들이 대부분이었다. 업무얘기가 차라리 편했달까. 그래서 둘 사이엔 음악이나 백색소음 같은 것이 늘 끼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번 출장길도 그러할 것이다. 준비성 철저한 냐봉은 적막을 경쾌함으로 바꿔줄 뉴진스의 신곡을 멜론 보관함에 하나하나 찾아 넣었다.
그리고 목요일 오전이 밝았다. 냐봉의 집앞으로 엠제이가 찾아왔다.
[잘 잤어요? 우리 가다가 커피 한잔 해요]
[좋아요. 아 저희 엄마가 갑자기 어제 제 집에 찾아왔어요.]
[왜요? 음… 이유는 뭐 딱히 말은 안했는데… 여튼 휴게소에 자주 들리래요.]
[휴게소에요?]
[네, 음… 뭐. 그냥 긴장하지 말고 잘 하란 뜻이겠죠 하하]
[그냥 냐봉님 어떻게 사나~ 한 번 보고싶어서 핑계대고 오신 거 아닌가?]
[에이, 우리 엄마 성격 딱 저같아요. 용건만 간단히 하고 바로 나갈 성격인데… 어젠 좀 특이하긴 했네요. 여튼, 저 스벅 기프티콘있어서 그거 써요!]
[저번에 상으로 받은 그거요?]
[네네]
이번 출장은 사실 그리 경쾌하지 못했다. 어쨌든 누군가의 푸념과 원망, 부탁과 사정을 들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커피를 사들고 가벼운 몇 마디를 나눈 둘은 이내 서로의 역할에 집중하기로 했다. 운전하는 엠제이의 표정은 생각으로 물들었고, 냐봉은 오늘 전달할 내용을 나지막히 읊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