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잡으러 출근합니다 제2화
이번에 새롭게 기획한 10회 분량의 사내 판타지 소설입니다 :) 처음부터 보셔야 꿀잼이고, 중간에 갑자기 보시면 뭔말인가 싶으실 거에요! 이곳에 나온 모든 에피소드와 이름, 상황은 가상이고 특정한 기업, 성별, 종교, 신앙, 동물, 음식, 신념, 가치관 등을 비하하거나 저격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회사에 다니다보면 늘 '와씨..저건 도대체 왜 저러는걸까?'...라는 생각이 드는 답답함과 불합리한 일들이 많잖아요. 그게 사실은 누군가의 못되먹음 때문이 아닌, 회사 안에 떠돌아다니는 악마때문이라는 설정으로 시작했습니다. 냐봉과 엠제이는 이 악마를 밝혀내고 퇴치해야 다시 살아 돌아갈 수 있습니다 :) ㅎㅎㅎ 그럼 10화까지 정주행 고고!!
순간 눈 앞이 번쩍했다. 시선은 무릎을 지나 바닥에 닿았다가 바로 천장이 보였던 것 같다. 사고가 났다는 걸 인지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쏟아지듯 풍경이 사라지고, 눈 앞이 깜깜해졌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좋지 않다. 눈이 멀었거나, 뇌의 어딘가가 다쳤거나 필경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어떤 충격도 몸에 전달되지 않았다. 냐봉의 의식은 조금 흐려지고 있었다. 가까스로 돌린 옆에는 운전을 하던 엠제이의 모습이 보였다. 냐봉은 손을 뻗었다.
[잡힌다!]
물리력이 통하는 거 보니... 살아있는건가? 냐봉은 엠제이를 불렀다.
[팀장님! 팀장님! 눈 좀 떠봐요.]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느낌이 이상했다. 마치 진공상태에 있는 듯 먹먹하게 그러나 분명 말했다는 느낌은 또렸했다. 그때 엠제이가 미간을 조금 찌푸리며 한쪽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어?... 냐봉님.. 뭐에요 이건? 여긴 어디...? 히이익.........??]
[히이익]과 함께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엠제이의 반응을 보니 냐봉은 확신할 수 있었다. 마지막 장면은 버스가 중앙선을 넘어 미끄러지는 장면이었다. 브레이크를 밟았고 엠제이는 소리를 질렀다. 이런 사고에서 이렇게 서로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멀쩡할 리는 없었다.
[우리 죽은 것 같아요!]
어느 정도로 시간이 흘렀을까. 엠제이 눈에서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이 이젠 자국만 남았다. 냐봉은 엠제이와 함께 한 발 한 발 허공을 내딛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사실 함께라는 느낌보단, 엠제이를 끌고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였다.
[팀장님 빨리 좀 와요. 왠지 모래밭을 걷는 기분이라 더 힘들단 말예요]
그때,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작게나마 반짝이는 물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냐봉은 급히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흔 발자국 정도를 걸어갔을까, 냐봉은 그것이 문의 손잡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문의 틈새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보였다. [이 문을 열던.. 도깨비처럼 김동욱이 있는건가…]
엠제이는 말없이 냐봉을 쳐다보았다. 냐봉도 엠제이를 한 번 쳐다본 후 손잡이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어차피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손잡이가 있다는 건, 이미 누군가의 계획대로 인도당하고 있다는 뜻이겠다. 냐봉은 손목을 조금 비틀어 문을 열었고, 환한 빛이 둘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곤, 굉장히 사무적인. 그것도 너무도 익숙한 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녕하세요. 냐봉님과 엠제이님 맞으시죠? 이쪽 미팅실로 안내해드릴게요. 들어오세요.]
[여긴.... 사무실??] 한차례 눈부심이 걷힌 공간은 너무도 익숙한 아이보리색 파티션과 노트북이 가득한 사무실이었다. 냐봉은 방금 자신을 안내한 사람을 위아래로 살짝 훑어보았고, 조금 기묘한 옷차림이긴 하지만, 명확히 매니저라고 된 출입증에 시선이 멈췄다. 그리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에요? 여기? 이거 꿈이에요?... 여기 회사....]
그러나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무언가에 이끌리듯 몸이 끌려가기 시작했고, 둘은 너무도 익숙한[심지어 터치스크린 모니터가 있는] 미팅룸으로 빨려들어가듯 이동했다. 주위를 둘러볼 시간도 없었다. 안내를 해주던 매니저는 누군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세미정장에 적당히 포마드를 바른 듯 단정하게 머리를 넘긴 사람이었고, 그는 분명 상급자임이 분명하다.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포마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순간 살짝 느껴진 온기는 착각이었나? 포마드씨는 들어와 의자를 꺼내고 명함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시느라 고생많으셨네. 여긴 신의 영역이고, 둘은 죽었고. 저는 직장을 관장하는 신이에요. 반가워요.]
엠제이와 냐봉은 입이 벌어진 상태로 그대로 있었다. 엠제이가 [어..그..] 정도의 소리를 냈던 것 같지만 포마드 아니, 직장의 신이라는 사람은 개의치 않고 본인의 노트북을 펼치고 HDMI를 연결했다.
[신이라고요?]
냐봉의 말에 신은 잠시 의자뒤로 몸을 기대더니, 가볍게 팔짱을 끼고 둘을 쳐다봤다. 이 눈빛은 흡사 그룹장님이 우리 기획안이 못마땅할때 짓는 표정이다. 냐봉은 알 수 없는 이 기시감에 한껏 미간을 좁히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근데 여기가 그럼 저승 그런거에요? 근데 너무 사무실인데??... 우리 뭐 심판 이런거 받는거에요?]
너무도 익숙한 공간이라 그랬을까. 냐봉은 두려움보다 왠지모를 짜증과 피로감이 몰려왔다. [죽어서도 출근한 기분이라니 이게 무슨...] 엠제이도 비슷한 질문을 신에게 던졌다. [우리 이제 못 돌아가요? 완전 죽은거에요?]와 같은 말들이었다. 신은 들숨을 한 번 들이마시더니, 이내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인티제라 말을 길게 하는 걸 별로 안좋아해요. 간단하게 말할게요. 여러분은 천안으로 클라이언트 미팅을 가던 도중 빗길에 미끄러진 버스와 충돌해 그 즉시 둘다 사망했어요. 사망시간은 14시36분. 지금은 지상시간으로 1분 정도가 지났어요. 여긴 시간개념이 좀 다르거든요. 오케이, 상항은 여기까지고, 뭐 얼떨떨하겠지만 그건 다들 그러니까 정신 차리시고, 이제 잘 들으세요.]
지상이나 저승이나 모든 상사들의 말투란 저런 식인가. 게다가 또 왜 하필 인티제...아니 그것도 웃기네. 왜 신이 MBTI를 가지고 있는거지. 냐봉의 머릿속에 온갖 물음들이 스쳐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엠제이는 신을 만져보려 살짝 손을 가져다대고 있었다. 신의 손목을 가볍게 터치한 엠제이는 [만..져진다?!] 라는 작은 단발마를 내뱉고는 신기함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신의 미간은 조금 찌뿌려졌다.
[둘은 다시 살고 싶어요?] 엠제이는 신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네'라고 대답했다. 냐봉은 잠시 계획을 세워보는 중이었다. 내가 지금 다시 살아나면... 사망보험금과 각종 사고처리는 어떻게 되는거지. 복직은 가능할까. 사고로 밀린 업무들은 굳이 내가 손대지 않아도 되겠지?... 하지만 이내 고개를 몇 번 휘젓고는 [네]라고 대답했다.
[오케이, 미션을 하나 수행해줘야 해요. 아무나 시키는 건 아니고, 예정되어 있지 않은 죽음을 겪은 사람에 한해서만 선택적으로 운영하는 제도에요. 미션을 잘 수행해주면 사고나기 5분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고, 둘은 차선을 바꿔 가던 길 가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좋죠?]
신이 제시한 미션이란 건 단순했다. 최근 천상에 있던 몇몇 문제직원들이 탈주해 지상으로 내려가버린 것이다. 인간세계에선 그걸 악마라고 부르기로 했다. 총 7명의 악마가 회사에 스며들었고, 각각의 악마는 회사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직장인들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내려가 그 7명의 악마를 모두 잡아오면 되는 것이었다.
[아니 근데, 천상에서 탈출한 악마를 왜 우리가 잡아요?...]
[우리 직원들을 시켜보기도 했는데...요즘 직원들은 리스크가 큰 일에 잘 도전하지 않으려해서... 그냥 외주업체같이 요청드리는 거에요.]
[네?]
냐봉과 엠제이는 동시에 반문했다. 요즘은 천상계도 조용한 퇴사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부연설명에 엠제이와 냐봉은 잠시 눈을 질끈 감고 관자놀이를 눌러야했다.
[그래서 어떻게 잡는건데요?]
[이름을 부르면 돼요. 여러분들은 영혼상태로 내려갈 거에요. 사람들 눈엔 당연히 안보이고, 벽도 맘대로 통과가능! 녀석들이 숨어있는 장소는 전령이 알려줄 거에요. 거기가서 그놈들의 본명을 부르면 됩니다. 보통 정체를 숨기고 있거나, 빙의해있는 경우도 많거든요. 두명이 동시에 본명을 부르면 그 즉시 녀석은 사라집니다. 쉽죠?]
본명이 뭔지 어떻게 아냐는 질문엔 심플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걸 알아내는게 당신들의 임무죠]
그리고 신은 말을 덧붙였다.
[회사생활을 엉망으로 만드는 놈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해요. 진짜 문제가 뭔지 모르게 만들어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엉뚱한 해결책을 내놓게 하죠. 그래야 숨어들어 살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의 짜증과 푸념을 먹고사는 놈들이니..뭐..아. 근데 중요한게 있어요. 시간제한.]
[시간제한이요?]
[7명의 악마를 잡는데 영업일 기준 총 9일을 드릴거에요. 기한이 지나면 녀석들은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해버리고 더 깊숙히 숨어듭니다. 그리고 영혼상태로 지상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도 지나게 되죠.]
[지나면...?]
[사라져요. 완전히]
단호한 신의 말에 엠제이는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가락을 세워 말했다.
[비자연장하는 것처럼..다시 여기 왔다가면..]
[그런 건 없어요. 그리고 또 하나. 사람들의 짜증과 푸념이 많은 곳에선 꽤 많은 피로감을 느끼게 될 거에요. 부정적인 기운을 막아줄 육체가 없어서, 정신적 데미지를 그대로 받게 되거든요. 가급적 그런 곳들은 피해다니세요. 자칫하면 하루를 통으로 날릴 수도 있으니]
이 말을 끝으며 신은 계약서 두 장을 엠제이와 냐봉 앞에 밀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기 싸인하시고, 이 매니저에게 주시면 바로 시작됩니다. 소통은 슬랙으로 할거고, #악마퇴치외주 채널 만들어서 초대드릴테니까 이메일주소 잘 적어주세요. 근데 답은 느릴거에요.]
엠제이는 아니 왜 천상에서 슬랙을 쓰고 있는건지, 어떻게 메일을 주고받는 건지 결과보고서도 써야하는지 뭔가를 더 물어보려했으나, 이미 신은 황급히 자리를 떠나버리고 난 뒤였다. 매니저는 펜을 두 사람의 손에 쥐어주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적인 입웃음과 피곤한 두 눈이 몹시도 익숙했다.
[악마가 있었다고?...]
냐봉은 잠시 읊조리듯 말했다. 엠제이는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두 팔을 책상에 짚고는 쭉 편채 깊은 들숨을 들이마셨다. 냐봉이 말했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프로젝트 한다 셈쳐봐요.]
엠제이는 잠시 눈을 감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곤 짧게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해보죠.]
엠제이의 ‘해보죠’라는 말엔 꽤나 단단함이 있었다. 냐봉은 엠제이의 저 말투를 맘에 들어했다. 엠제이와 냐봉은 펜을 들었고, 손이 잠시 허공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내 종이 위에 부드럽게 잉크가 번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