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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ul 09. 2021

뜻밖의 브랜딩 : 딕션이 주는 고막브랜딩

곱창 먹다가 느낀 브랜드의 감동포인트를 적어보았습니다.

<밑밥>

지금부터 쓰는 글은 앞옆뒤대각선상하단 그 어느곳에서도 광고를 받지 않았고, 만약 받게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음을 전해드립니다. 그렇다고 브랜드 소개글은 아니라서, 본격적으로 막 여기는 무슨 회사고 어쩌고 이런 식으로 풀진 않을 거에요. 제가 느꼈던 것만 간결하게 적을 거에요. 다만, 제목처럼 의외의 포인트만!




우리 사무실 바로 뒤에 곱창집이 하나 있거든. 이름은 달팽이가 그린 황소곱창. (왜 그렸는지는 모르겠음)


배우자님이랑 배우자님 삼촌과 같이 곱창을 먹으러 갔단 말이에요. 사무실 바로 뒤에 있으니까 퇴근 하자마자 잽싸게 달려가서 자리를 잡았지. 은근 맛집이라 줄서야 하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모듬 곱창을 시켰어. 모듬은 국룰이잖아. 곱창집 밑반찬은 익히 알고있는 콘치즈와 콩나물국이 나왔어. 요즘엔 콘치즈에 마요네즈랑 떨렁 뿌려주는 곳도 있는데 여긴 그래도 3,4꼬집정도 치즈가 들어가긴 하더라고.


모듬 곱창에 뭐가 있었겠어요. 모듬이니까 뭐가 겁나 많았겠죠. 일단 막창있고, 대창있고, 곱창있고, 차돌박이있고, 새우 두 개, 감자 두 개, 송이 두 개 아마 이렇게 있었던 것 같아. 여기도 직접 구워주시는 시스템인데... 원래 사장님이 구워주실 땐 입다물고 경건하게 쳐다보는 게 예의잖아요.



 

얌전


그래서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지. 사장님이 여자분이셨어. 나 몰랐는데 그 분이 그그그그..개그맨 김재우씨의 누나라고 하더라고. 어쩐지 알고 보니 똑같이 생기신거야. 뭐 여튼. 그런 얘긴 벽면 천장 입구 어디에서 없었던 터라 굳이 어필포인트는 아니었나보다 싶었어.




자 이제, 두 손 모으고 앉아있는 우리에게 사장님이 오셨어. 그래서 능숙한 솜씨로 뜨거워진 곱창의 등과 배를 뒤집어놓으셨고, 막창이 머금던 기름을 예술의전당 분수쇼마냥 뿜어내기 시작할 무렵, 그 분의 딕션의 나의 귀에 와 꽂혀버린거야.

쏴아아아아아
"제공해 드린 두 개 소스는 흰색이 저희가 직접 만든 마늘소스, 빨간쪽이 매콤한 소스인데 곱창은 마늘소스에 찍어드시면 매우 맛있어요. 막창은 지금 기름 빠지기 전에 매콤한 소스에 찍어 드시면 깔끔하게 맛있고, 특히 이 김치와 같이 드셨을 때 색다른 맛을 느끼실 수 있어요, 먼저 차돌박이랑 막창부터 드시고, 곱창은 조금만 더 놔두셔도 돼요. 송이나 떡 이런 건 지금 드셔도 돼요.'


라는 말은 사실 애지간한 곱창집에서 들을 법한 멘트긴 하잖아요. 근데, 뭐가 달랐냐. 그 웅성웅성 대는 화이트노이즈를 뚫고 귀에 꽂히는 명확한 딕션이었어.


특히 '어요. 돼요.' 와 같은 어미처리 '소스는, 곱창은, 막창은' 과 같은 주어가 아주 분명하고 깔끔하셨다구. 성량이 크거나, 까랑까랑한 느낌이 아니라... 정말 정확히 들리는 발음과 깔끔한 멘트! 너의 고막에 탄산수 한 사발 느낌.

부..분명해!!



그래서 내가 그 목소리 듣자마자 내 카톡에 이거 적어놓고 지금 쓰고 있는 거거든요. 하나하나 발음이 명쾌하게 들리고 '무슨 말을 하는 지' 확실하게 듣게 되는 설명은 되게 오랜만이었어요.


생각해보면 요즘 또렷한 목소리를 듣기 정말 힘들어요. 물론 CS교육을 엄청 받는 프랜차이즈 파트타이머 분들의 미소와 ABC마트 형님들의 쩌렁쩌렁한 싸이즈 말씀해주쎄여어어어! 같은 우렁참도 있긴 하지. 근데 많은 경우 내가 뭔갈 물어보면 대강 얼버무리거나...그냥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거나... 말을 하긴 하는데 무슨 말인지 웅얼웅얼 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거든. 특히 식당은 더더욱 그렇잖아요. 그 시끄럽고 정신없는 곳에서 눈이라도 마주쳐주면 다행이지, 대부분은 옆 테이블거 썰면서 우리 얘기 듣는 곳이니까. 그래서 목소리는 대강 공중에 쏘아올리고 들을 사람만 듣는 식의 보이스에 익숙해진 우리라고.


근데 이렇게 고막에 갖다 꽂아주니까. 그 순간 만큼은 정말 배려받고 있는 느낌을 받더라구요. 온전히 우리 테이블에 집중하고 있구나. 정말 뭔가 자랑스럽게 설명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거야. 물론 수 백번을 반복하셨을 멘트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먹으면 진짜 훨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거지.

제가 콜센터에서 일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문장을 흘리지 말라는 얘기였어요. 특히 어미처리 때문에 꽤나 훈련받았더랬죠. 말이 빨라지면 대강 중간에 있는 단어나 문장 끄트머리는 흘리게 되거든요. 그래서 숨쉬고 차분히 한 단어 한 단어 리듬감있게 말하는 법을 배웠어요. 안그러면 고객은 상상을 한다는 거지. 내 말 안듣고 딴 짓하는 대강대강의 모습을. 사람은 소리만을 듣지 않는대요. 소리를 내는 대상을 상상하죠.





고막브랜딩이 중요한 이유는 목소리가 지니고 있는 이와 같은 비언어적 정보들 때문이에요. 언어는 스킨십과 비슷해서 정보보다 언어의 형태(파형이나 음고, 성량, 정서적 함의 등)이 더욱 중요하거든요. 목소리엔 다양한 형태로 상대가 나에게 쏟고 있는 에너지와 감정, 관계가 고스란히 담겨요. 그래서 보이스는 가장 적나라하고 직관적인 브랜드의 민낯을 보여주기도 하죠. 가 당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지...고객센터 전화나, 영업사원, 대표의 스피치, 안내음성, 방문 시의 응대하는 목소리, 미팅 때 실무자들의 목소리 등에서 숨김없이 드러난달까요.



반대의 예가 있습니다. 한 때 제가 엄청 애정했던 한 가구브랜드가 있었는데. 팝업스토어 갔다가 진짜 대박 실망하고 돌아온 적이 있어요. 자다 일어나서 대강 졸린 채로 안내해주는 건 그럴 수 있다 쳐. 어제 밤샘까대기를 했을 수도 있지. 아니 근데 진짜 한 단어도 제대로 안들리는 거야. 내가 이거랑 저거 세트로 해서 3개면 얼마고, 언제까지 배송가능하냐고 물어봤거든요.


'삼배고시마....'

'예?'

'사배고이마..'

'예??'

'ㅅㅂㄱㅇ마..'

'초성퀴즈? 삼백오십이요?'

'사요 사.'

'사백오십이요?'

'사백이십이요.'

'그럼 언제까지 배송가능해요?'

'그건 출고고장사정에 따랑 좀 달라지는데 정화하게는 뭐.. 이시비ㅣ...시며치 ㄹ 정도 ㄱㄹ는..'



뭐 과장이 좀 있지만 대강 그 때 내 느낌은 이러했어요. 얼마나 큰 실망을 했냐면. 그 전까지만 해도 난 오피스 가구는 모두 거기서 다 풀셋으로 맞추고 싶다고 배우자님과 티키타카까지 했단 말이야. 근데 진짜 팝업스토어 다녀오고 난 후에... 이젠 두 번 다시 쳐다도 안보게 됐어. 믿고 거르는 느낌이 됐달까. 믈론 브랜드 입장에선 좀 억울할 수 있어요. 하필 그 팝업스토어 한 군데에서 그 사람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난 이제부터 거기 광고만 보면 그 경험만 떠오르더라구요.




고객접점에 있는 분들에게 청량한 보이스까지 기대하는 건 오바야. 응대라는 건 짱 힘든일이고, 목소리는 타고난 건데 어쩌겠어. 하지만 분명하고 자신감있는 딕션과 톤이 필요하단 사실은 분명한 것 같아요. 브랜드 입장에서 여러분은 한 명의 멤버일 뿐이지만... 고객입장에서 여러분의 목소리는 브랜드의 음성 그 자체거든요. 그것도 아주 오래도록 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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