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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Aug 29. 2021

이 3가지는 디자인 기획이 아닙니다.

기획이 잘못되면 자칫 여러분이 손해보거나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고오..

듣기만 해도 되게 멋있어 보이지만 실상 매우 지난하고 괴로운. 근데 꽤나 중요한 '디자인기획' 에 대해 알아볼게요. 이미 서두부터 노잼포스니까 빨리 얘기해볼게요.


보통 디자인 기획의 방향성은 에이전시냐 인하우스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물론 궁극적인 목표는 같습니다. 목표가 뭐냐. 바로 이거지. 


'방향성과 목적성' 



목적성

여러분이 포스터 디자인을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많이 보고 이해하고, 신청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가시성, 이해도, 행위유발을 고려해야겠죠. 포스터 본연의 기능을 달성하는 것, 이것이 목적성이에요.


방향성

하지만 그렇다고 보노보노같은 걸 만들어버리거나, 이 세상 디자인이 아닌 극한의 컨셉을 담을 순 없어요. 우리의 브랜드, 또는 클라이언트의 브랜드 정체성이 잘 담겨있어야 하죠. 이걸 방향성이라고 해요.


기획안

이 두 가지의 교집합을 만들어내기 위한 설계도같은 게 디자인 기획안이에요. 목적성만 강조되면 디자인방향성이 중구난방이 되고, 방향성만 강조되면 본연의 기능을 못하게 되거든요. 근데... 우리가 기획안을 쓸 때 종종 실수하는 게 있어요.


오늘은 그 중 3가지만 말해보려고 해요. 



(참, 저는 주로 회사소개서, IR, 브랜드키비쥬얼 등을 만드는 터라 그것에 기준을 두고 작성했어요. 웹앱 또는 다른 영역의 디자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 부분은 저도 잘 몰라서 ㅎㅎㅎ..ㅠㅠ)



01

레퍼런스는

기획이

아니다.


단어하나 들고 레퍼런스의 바다 헤매기..... 예를 들어 클라이언트가 '감자' 를 모티프로 해달래. 자기네 회사가 감자유통한다고. 그러면 보통 어떻게 하냐면 핀터레스트, 비핸스, 드리블에 들어가서 Potato를 쳐.


그리고..뒤져. 스크롤...스크롤..드르륵..드르륵.. 쓰으으읍..방울뱀소리 한 번 내주고. 눌러보고..하아..뒤로가기.. 눌러보고..스크롤 스크롤...



이런식으로 '무작정 레퍼찾기' 에 익숙한 우리들입니다. 사실 이게 잘못된 건 아녜요. 의외로 속도가 빠르고 클라이언트나 의사결정하시는 분에게 '재빠르고 질좋은 레퍼런스'를 냅다 보여줄 수 있거든요. 근데 이게 3가지 위험성이 있어요.



01.

이런 컨셉으로 갈게요! 라고 엄청 멋진 외국 레퍼를 보여줬어. '오 좋아요!' 라고 대답했겠죠? 근데 막상 결과물은 그렇게 안나와요. 똑같이 나오면 카피본이잖아. 결국 내 주관과 손이 들어가기 마련이죠. 이게 자칫하면 역효과가 납니다. 레퍼보고 기대감이 엄청 높아질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받는 소스는 그리 아름다운 이미지나 텍스트가 아니에요. 외국 레퍼들은 뭐 도형도 그래프도, 깨진 이미지도 없는 너무도 단정한 텍스트와 이상적인 이미지들이 가득하잖아요. 현실은 좀... 달라질 수 있죠. 

02

게다가 이게 말이 레퍼런스지.. 사실상 여기거 살짝 변형해서 해볼게요. 라는 소리거든요. 브랜드의 방향성보단 취향이 중심이 되다보니 논리가 빈약해져요. 이러면 자꾸 의미를 끼워맞추게 되죠. 이럼 뭐가 문제냐... 바로 디테일과 일관성이 많이 무너집니다. 레퍼는 전체 디자인을 보여주지 않는데다, 어떤 메시지와 의도이게 제작되었는 지 알려주지 않거든요. 레퍼런스 디자인을 100% 이해하지 않는 이상 우린 레퍼런스 디자인을 따라 구현하는 것에 그칠 수도 있어요.



03

일단 내 실력이 안늘어요... 여기서 실력이란 건 디자인스킬이 아니에요. '핀터레스트에 단어쳐서 레퍼찾기' 로도 툴실력과 디자인스킬은 충분히 늘 수 있어요. 오히려 일일이 기획하는 것보다 훨씬 손은 더 능숙해질 수도 있겠다. 문제는 뭐냐.... 여러분이 늘상 디자인만 하고 있진 않을거잖아요. 언젠간 시니어도 되고, 수석, 매니저, 팀장, 또는 개인사업을 할 수도 있겠죠?... 이 때 뭔갈 '제안하는 힘'이 약해질 수 있어요. 특히 같은 멤버들과 협업을 해야 하는 경우, '어..핀터레스트 찾아봤는데 이게 이쁘더라고...' 라고 할 순 없잖아요. 물론 어떻게 늘상 막 기획을 해서 하나하나 설계해 나가겠어요. 현실적으로 그러기 힘들어요. 하지만 기획프로세스를 알고 있는 것과 몰라서 서치만 하는 것은 천지차이랍니다.



+

더불어 레퍼런스 위주의 기획안은 자칫 서로에게 슬프고 잔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요. 일단 레퍼런스는 기획안에 들어가는 하나의 요소일 뿐입니다. 앞 단의 논리와 맥락이 있고, 그 끝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자료죠. 이미지 자료는 '이걸 베끼겠습니다.' 가 아니라 우리가 말했던 '행성에 근접한 모습'은 이런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이해도를 높이는 수준이어야 해요.

이런 식으로 일부분을 확대시켜 구현하겠습니다. 라고 보여주는 게 이미지.



근데 레퍼런스 자체가 기획안이 되면 시각적 자극만 남아요. 물론 레퍼런스는 자극이 굉장히 빠르고 큽니다. 그래서 의사결정 속도는 빠른데..이게 순간순간의 취향과 자극으로 결정하는 거다보니...


디자이너는 배경이 좋아서 제안했는데 클라이언트는 이 폰트가 맘에 들어서 선택했다던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게 너무 끼워맞춘 느낌에 막바지에 갈아엎게 된다던지...

다 만들어놨는데 우리 색깔과 달라져서 결국 안쓰게 된다던지...


이런 식의 최종써클 광역기술 분노의 호흡 제 12형 '통째로 갈아엎기' 를 경험할 수 있답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죽고말아.. [전체적인 수준의 수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런 식의 메일을 받게 된다구...




02

컨셉은 

기획이

아니다.


많은 디자이너분들이 '컨셉'의 족쇄에 묶여있어요. 엄밀히 말하면 컨셉은 기획의 한 줄일 뿐입니다. 우리가 거미줄 컨셉으로 가겠다. 튀기는 탱탱볼 컨셉으로 가련다. 날아가는 제비를 표현하고 싶다.. 뭐 다 좋은데 이건 디자인의 중심 메타포이자. 이미지코드일 뿐이에요. 


가끔 '거미줄, 탱탱볼, 제비' 이 단어만드는 과정을 '기획'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노노. 그것은 기획의 6하원칙 중 how.. 그 중에서도 하위에 속하는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기획은 일단 3파트로 나뉘어져야 해요. 
과업계획, 제작계획, 완결 및 유지관리 계획이죠. 


아시다시피 계획이 모여 기획을 이루잖아요. 더 쪼개면 세분화시킬 수 있지만 일단 우리나라 사람들은 3개를 좋아하니까 3개로 쪼개봤어요. (암, 3개는 못참지)


과업계획엔 '제작목적, 대상, 제작방식, 일정, 업무분장, 예산, 결과물형태, 각종 계약/협의사항 등'이 명시되어야 해요. 미팅 때 나누었던 미팅기록이라던가, 요구사항, 반영조건 등도 모두 이곳에 작성됩니다.


제작계획은 '제작일정, 제작컨셉, 기대효과, 근거 등' 으로 나누어 작성해줍니다. 타임라인은 각 초기시안, 1차수정, 2차수정, 3차수정, 최종피드백 및 결과물 인도 일정을 작성합니다. 제작컨셉에 바로 우리가 좋아하는 저 '거미줄, 탱탱볼, 제비' 같은 디자인메타포가 들어갑니다.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 지, 어떻게 바리에이션 할 지, 이 때 장단점은 뭐가 있는 지, 왜 이걸 사용해야 하는 지 등등을 적어줍니다. 레퍼런스도 여기에 들어가요. 


완결 및 유지관리 계획엔 '결과물인도방식, 저작권관리, 유지관리 계획, 보완계획, 결과평가 계획 등' 이 들어가요. 인하우스라면 해당 디자인물의 유효성을 장기적으로 트래킹하여 디벨롭시켜야 할 거고, 에이전시라면 저작권, 비용처리방식, 추가수정 및 유지관리(특히 웹/앱의 경우)에 대한 일정과 제한사항을 정리합니다.




정리해보자면
디자인기획안은
이런게 들어가야 해요.

(1)과업계획


1) 이거 왜 제작하는 지

2) 누가 사용할 거고, 그들의 특징은 어떤 지

3) 얼마나 제작하고 결과물형태는 어떻게 나와야 하는 지

4) 언제부터 언제까지 제작해야 하는 지

5) 이를 통한 목표는 무엇인지?

6)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7) 그것을 구현하려면 어떤 방식을 사용해야 하는 지

8) 누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지(인원 및 팀)

9) 총 예산은 얼마고 어떻게 사용되는 지

10) 기타 계약 및 협의사항엔 어떤 것들이 있는 지


(2)제작계획


1) 각 업무별 타임라인은 어떻게 되는 지

2) 디자인의 중심 메타포는 무엇인지? : 우리가 맨날 찾는 거

3) 해당 메타포를 선정한 이유는?

4) 해당 메타포를 어떤 식으로 확장시켜 나갈 것인지

5)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 이미지 : 아까 1번에 있던거

6) 해당 디자인 컨셉의 특장점

7) 해당 디자인 컨셉의 기대효과

8) 그에 따른 근거


(3)완결 및 유지관리 계획


1) 완료된 결과물을 어떤 포맷으로 어떻게 전달할 지

2) 관련한 저작권은 어떻게 정리할 지

3) 유지관리를 한다면 언제까지 어떤 범위로 누가 담당하는 지?

4) 해당 결과물의 유효성여부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

5) 결과물 관리 규정 



아주 대략 적은 것이지만... 보시다시피 컨셉(메타포)와 레퍼런스는..기획안에 들어가는 요소 중 아주아주아주아주 일부에 불과하죠? 해당 기획안은 기획자가 따로 있다면 그 분과 함께 기획할 수도 있고 디자이너가 혼자 기획할 수도 있어요. 디자이너님께서 이걸 쭈루루룩 써내려 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죠.  (사실 사업하려면 반드시 그래야만 하고...) 만약 써내려 갈 수 없다면 그냥 이렇구나....하고 알고라도 있어봅시다. 언젠가 삘 꽂혀서 쓰고싶을 때 도움이 될 지 모르잖아요? 물론 가급적 쓸 일이 많지 않길 바라요. 사실 빡세고 짜증나거든..



03

포장은

기획이

아니다.


음... 이건 약간 일을 좀 해보신 분들. 또는 눈치가 빠르거나... 그래도 이런저런 글발말발이 좀 있으신 분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예문을 하나 들어볼게요. 

이번 컨셉은 원형을 기본으로 하여 상생의 이미지를 구현하였고, 이를 통해 고객과 브랜드가 점진적인 변화를 함께하여 결국 큰 세계를 이룬다는 것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라데이션을 통해 변화의 양상을 시각적으로 표현, 부드러우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표현방식으로 추상성을 더해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가능하도록 양 끝에 빛의 효과를 더해 찬란하게 빛나는 결과와 세련된 심미성을 더했습니다.

어떠세요? 스르륵 읽었을 땐 되게 뭔가 탄탄하고 멋진 기획문구 같은데.........혹시 대충 보셨으면 다시 한 번 자세히 보실래요? 


원형으로 상생을 어떻게..구현했고..

고객과 브랜드가 무슨 변화를..뭔 세계를 이루는 건지.

무슨 변화를 그라데이션으로 표현하겠단 건지..

부드러운거랑 자극적이지 않은 거는 같은 표현이고

찬란한 결과는 뭐며...


자꾸 쓰으으읍..허어.... 하는 방울뱀소리가 나온단 말이지. 멋진 단어들은 가득한데 그래서 뭘 하겠단 건지가 모호해서 그래요. 단어파티를 해선 안돼요. 기획안의 문장은 빙빙도는 게 아니라 앞으로 쭉쭉 나가야 합니다. 디자인 기획안에 


'이렇게 해야 가독성이 좋아지고'

'레이아웃은 어떻게 쪼갤거고'

'오브젝트에 무슨 효과를 줄거고'

'어떤 스타일을 사용할거고'


이런 것들을 구구절절 적는 경우가 있어요. 그리고 대부분 그 기대효과는 '심미성이 좋아지고, 잘 보이고, 브랜드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친근감을 유발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며, 심플하면서도 강렬한 어쩌고...' 이런 표현을 많이 쓰더라구요. 물론 이것도 정성적인 효과이니까 잘못되었다고 할 순 없지만... 조금 더 정확한 인과관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이번에 우리가 고객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투명성' 입니다.
투명성이란 기본적으로 3가지 사물의 존재를 전제로 합니다.

1) 관찰하는 존재
2) 보이는 존재
3) 둘 사이에 놓인 투명한 막

이 때 3번은 2번을 숨김없이 드러내야 하고,
2번 또한 1번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1번과 2번은 쌍방에서 서로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해당 장표를 관찰하는 사람이 유리 뒤에 놓인 정보를
선명하게 관찰하는 것처럼 느끼게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지면 자체에 유리(glass)재질을 부여하고
포인트가 될 정보를 볼록렌즈 효과로 어쩌고 저쩌고....


좀 오바스럽게 예를 들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우리가 구현하려는 컨셉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어떤 사고과정에서 이러한 디자인이 구현되었는 지 설명해주어야 한답니다.


이건 내가 얼마나 잘난 지 네놈에게 보여주겠단 게 아니고.

'너가 말한 투명성을 내가 이렇게 구현해볼거야. 그러니 잘 듣고 이게 맞는 지 컨펌해줘. 그리고 나중에 딴 소리 하지마요.' 

라는 커뮤니케이션과 같습니다. 기획안은 작성하는 사람의 손가락 근육발달을 위한 운동이 아니에요. 서로가 보면서 협의하고 확정하는 일종의 합의문서와도 같죠. 앞으로의 과업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요.


그러니 하나하나 내가 정확히 말해줘야 나중에 막 갈아엎거나 전체적인 방향성이 틀렸다는 둥 이런 소리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할 수 있어요. 단어가 모호해질수록 내가 만들어야 하는 디자인과 그들이 제시할 수 있는 딴지가 많아지는 거거든요.






엄청 글이 길어졌으니, 짧게 말하고 끝낼게요. 디자인기획안은 단순히 컨셉과 레퍼런스를 뽑는 게 아니였어요. 전체 프로젝트의 목적과 목표를 잊지마세요.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우린 디자인이란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명확한 근거와 논리과정을 토대로 우리 디자인이 어떤 식으로 결과에 기여할 수 있는 지를 설명해야 해요. (물론 그것은 졸라 짜증나는 일이며, 비핸스를 보는 게 훨씬 재밌습니다.)


힘내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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