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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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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Sep 02. 2021

당신은 일을 못하는 일못러니까, 일잘러에게 배우세요.

그렇게 만들어진 일잘러와 일못러.


일 못하는 게 무슨 크나큰 대역죄가 아닌 것처럼 일 잘하는 것도 딱히 벼슬은 아니다. 개중엔 일 못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여러 사고들과 단체생활에서의 민폐를 예로 들며 일 못하면 '악' 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뱉는데, 우린 모두가 처음이었고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재능이 다르며, 제자리에서 제 빛을 보지 못했을 뿐, 사실 당신조차도 누군가에겐 꽤나 답답한 존재일 수 있단 가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스스로 일잘러라고 생각하는 대다수가 사실과 달랐다. 대부분의 일잘러 칭호를 얻게 되는 건 어쩌다 한 두개 잘했던 히스토리에서 비롯된 것일 뿐, 랜덤하게 쏟아지는 다양한 이슈앞에선 너도나도 아마츄어일 뿐이다.


일잘러의 기준조차 되게 애매한데 노션을 좀 어떻게 잘 만진다고 일잘러가 되지 않을 뿐더러 혼자 손 빠르고 말 잘해서 다른 동료들을 답답해하는 모습은 일잘러스럽지 않다.


본질적으론 일잘과 일못을 나누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싸우기라도 하잔건가, 아님 계급을 부여하는건가, 비난이라도 하고 싶은건가. 결국 어떻게든 자괴감을 팔아 클래스 하나 더 팔아보고 싶은 마케팅의 산물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SNS는 잘 포장된 불안과 자괴의 진열장과도 같아보인다. '도움'과 '노하우'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된 열등감들. 또는 '일잘러'와 '일못러'라는 꼬리표들. 누군가는 우월함을 누군가는 심란했던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우월함을 느낀 자는 자신의 우월함을 치하할 다른 계급의 칭호를 원했고, 심란한 하루를 보낸 사람은 한 잔 술과 한숨에 내가 무엇이 부족한 것인지 명쾌한 답을 찾아 헤맸을 것이다. 


SNS에 떠도는 수많은 광고들은 이렇게 정의한다. 당신은 일못러라서 그렇다. 일잘러에게 엑셀을 배워라, 노션을 배워라, 기획을 배워라, 브랜딩을 배워라. 몇 시간이면 끝나는 노하우가 있고, 10가지만 알면 일이 쉬워진다고 속삭이기도 하지. 기나긴 한숨의 끝엔 고민의 들숨이 시작된다. 이거면 충분할지도 모르겠단 희망과 함께.


분명 일을 잘하는 건 유용하다. 다만 유용한 것이 옳은 것은 아니고, 예의와 도덕의 문제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고 능력으로 자신을 드러내야 하고, 성장을 위해 배려를 희생해야 하는 문화에선 능력이 곧 예의가 되기도 한다.


자칫 폭력적인 예의. 

우린 매일 밤 침대에서 광고 내지는 어떤 일련의 문화가 만들어낸 '명쾌한 단어' 를 장바구니에 담아 맘 속 어느 물음표에 답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뭘 잘못한걸까? 난 민폐인걸까..? 걔는 도대체 왜 그럴까? 남 생각은 안하는걸까?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성장을 택한 우리는 결국 어디로 달려가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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