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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ul 12. 2022

초보자들이 절대 클라이밍을 시작해선 안되는 이유

무턱대로 클라이밍을 시작하려는 당신에게...

최근 사방팔방 클라이밍 관련된 광고와 클래스들이 많아지고 있더라고요. 곳곳에 볼더링 암장이 많이 생기면서 특히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있는 스포츠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재밌지. 클라이밍. 일단 이름이 멋지잖아. 그리고 이게 전완근과 등근육이 막 빠짝 서는 게 보이는 데다가, 손이 꽤나 상하는 터라 아무나 시작하지 못해. 독보적인 느낌도 있어. 액티비티한 느낌, 힙한 느낌, 그리고 막 퉁퉁한 사람은 쉽사리 엄두를 못내는 스포츠라 은근슬쩍 몸매과시 등의 목적으로도 많이 쓰이는 것 같더라고. 게다가 예쁜 동작을 잘하는 사람들은 마치 벽에서 춤추는 듯한 댄싱자세들이 나오는게 이게 인스타로 찍으면 아주 기똥차게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후우...


근데 아직 사람들이 진짜 클라이밍의 위험성을 모르는 것 같아요. 다들 그냥 건강, 인스타, 취미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는데...사실 더 위험한 요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초보자들이 왜 클라이밍을 섣불리 시작해선 안되는지 요목조목 따져보려고 합니다. 혹시라도 클라이밍 시작해볼까?..했던 분들은 오늘 글을 잘 읽고 결제하도록 하세요.




1. 맘놓고 막걸리를 마실 수 없어.


클라이밍의 사망율은 무려!!! 0.002%예요. 5만명 중에 1명이 죽는다고. (참고로 교통사고 사망율이 1만명 중에 1명입니다.) 물론 실내암장에선 죽을 일이 없지. 근데 하다보면 이게 자연바위로 나가고 싶다고요. 그래서 자연바위로 나가요. 처음엔 무서울 거 아녜요. 장비도 잘 못다루고. 그 땐 괜찮아. 그러다가 좀 짬이 쌓이면 막걸리 잔뜩 마시고 돌 타고 그러겠죠? 취해서는 확보줄도 대충 묶고 백업도 안하겠죠. 난 괜찮다고 하네스도 대충 헐렁하게 묶고 그러겠지. 수다떨고 막 대강대강 하강하겠지. 그럼 아주 큰 사고나는거야. 그래서 취하면 안돼. 술 안돼. 죽어. 담배 안돼. 불나.


그래 알아요...산에 갔는데 막걸리를 맘껏 못마신다고. 땀흘리고 다 같이 모여서 점심 딱 먹으면서...산속에서 어? 힘쓰고 난 다음... 막걸리 한잔...이걸 못마시게 한다? ..............알지. 알아. 그 고통. 이게 얼마나 위험한 운동인줄 알겠죠?

앗..아아...한..한 잔만 더...........



2. 과도한 챙김으로 과하게 안전할 수 있음


내향형들은 자칫 관심에 죽을 수도 있어요. 일단 실내암장은 암장마다 문화가 달라서 조용한 곳도 있고, 시끄러운 곳도 있고 그러거든요. 근데 자연에 나가면 주변 선배들이 엄청 챙겨준단 말이에요. 내가 팔자매듭 이상하게 매도, 어떻게 알고 바로 챙겨주심. 홀드 못찾고 울고있으면 괜찮다고 해주고. 어디 까지면 슬쩍 보더니, 그정도는 괜찮다고 무심한 소리나 해버린단 말야. 진짜 막 못올라가고 있으면 내 자유를 뺏고 끌어올려주기도 해요. 내향형들은 이런 무지막지한 관심을 받아버리면 살 수가 없어. 아주 위험함.

거..거기 밟아요. 그 무릎쪽에 거기.



3. 내 몸무게를 너무 처절하게 느껴버림


클라이밍은 중력과의 싸움입니다. 지구와 싸우는 거라고. 이게 얼마나 무서운 얘기냐면 여러분들은 끊임없이 지구로 떨어지고 있는거라고요. 그걸 손가락과 전완근, 하체와 코어로 버티고 있어야 해요. 그래서 클라이밍을 하다보면 내 몸무게를 정말 너무너무 선명하게 느낄 수 있어요. 체중계? 그 친구는 양반이야. 손가락. 이 손가락 친구가 아주 제대로 악마교관이지. 500g만 늘어도 손가락에 느껴지는 무게는 엄청나요. 얼마나 혹독하고 잔인한 운동이야 이게...

이상하다 신발이 미끄러워진 것 같은데? (가 아니고 살이 찐거)



4. 돈을 두 배로 쓰게됨


그래서 어떻게 돼냐. 클라이밍을 다니면서 다른 운동을 하나 더 하게 된다고. 하아... 이게 돈이 두 배로 나가버려요. PT를 받거나 수영을 하는 등 한 쪽에선 감량을 하면서 클라이밍에선 근지구력을 길러버리는거야. 일주일 내내 몸이 쉴 날이 없고 너무 건강해져 버린다고. 아니 난 좀 자고 싶은데. 침대에 들러붙어있고 싶은데... 그게 안돼. 돈을 내놨으니 나가야 하고, 나가보니 볼더링 문제가 풀려버리거든. 안풀려야 내가 좌절하고 안나갈텐데. 몇 번 하면 풀려. 그 쾌감에 살을 더 빼게되고. 살을 빼면 볼더링이 더 잘되고, 자칫 건강해지고 말아. 이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가기 싫은데 가면 또 함

5. 과도한 자신감이 생김


평소에 턱걸이 한 개도 못하던 사람이 막 20개씩 할 수 있게 되면 자신감이 과잉이 되면서 삶의 활력이 생겨버립니다. 이거 진짜 위험한데... 단순히 육체적인 활력을 넘어서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요. 클라이밍은 결국 엄청난 집중력과 성취감의 절정이거든요. 벽에 붙어있는 동안엔 그것만 봐야해요. 특히 자연바위에선 제로의 영역에 들어간 것 마냥 초집중 상태가 되는데... 이렇게 완등하고 나면 그 성취감이 너무 좋아서 계속 반복하게 되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정신력이 너무 강해져서 결국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성공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되는거에요. 하아.... 너무 위험한 일이야.

겁없이 오르는 배우자님..과도한 자아로 자신감이 넘침(오른쪽)



6. 손이 더러워짐


그러다 이게 흠뻑 취하게 되면 길가에 있는 모든 홈에 손가락을 껴보게 되는데, 이럼 손가락이 더러워지고 그걸 바지에 닦으면서 바지가 또 더러워지지.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발 끝으로 계단오르다 우당탕 거리기도 합니다.



7. 친구랑 말이 안통함


친구는 '그런걸 대체 왜...해?' 라고 하는데 이걸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답답하고 명치가 아프기도 합니다. 이럴 땐 결국 다단계마냥 친구를 데리고 암장에 체험가기도 하는데 높은 확률로 다음날 손가락이 없어졌네, 온 몸이 쑤시네 하는 등의 핀잔을 들을 수 있습니다. 거기서 그만두게 하는게 적당한 우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같이 클라이밍하게 되면, 서로 빌레이봐주고 어프로치하면서 결국 요세미티나 스위스 이런 곳도 같이 가버리게 되고 너무 깊은 우정으로 발전하게 된다고요.

결국 오리고기와 쭈꾸미를 먹으며 캠핑을 하면 친해져버리고 맘..하아..

8. 사람들의 응원을 받게됨


살면서 받을 수 있는 대부분의 '나이스'를 암장에선 일주일만에 들을 수 있는데 내가 발만 올려도 나이스, 홀드 하나 잡으면 나이스, 완등하면 나이스... 주변에서 과도한 나이스를 선사하면서 마치 내가 굉장히 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암장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뒷풀이도 가게되고, 오늘 코스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치며 치맥을 먹게 되죠. 기억하세요. 놈들은 여러분을 살찌우게 한 뒤 더 강력한 윗몸일으키기를 시키기 위해 치킨을 맥이는 겁니다. 이런 악랄한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 바로 클라이밍장이에요.




9. 인스타 광고에 등산복만 뜸


이제 자연바위로 몇 번 나가고 그러면 눈에 등산복밖에 안보인다고. 더 편한 볼더링 바지, 더 좋은 퀵드로우, 통기성좋은 반팔 이런 것만 인스타 광고에 떠요. 그리고 추천릴스에는 온통 바위에 붙어있는 사진들 뿐이고 그렇게 패션의 기준이 슬슬 바뀌어 간달까. 추천태그에 #클라이밍 #볼더링 #선등 #리딩 #추락 이런것만 가득해지며 인스타가 자연 그 자체가 됩니다.



10. 탕진잼에 빠짐


실내암장에선 클라이밍화랑 옷 말곤 딱히 살게 없을 것 같죠? 그렇지 않습니다. 이게 점점 어깨운동용 밴드도 사고, 집에 걸 풀업바도 사고, 팔 식힐 수 있는 아이싱 주머니도 사고 액체초크 더 좋은거 바닐라향, 그런걸 사게 된다고요. 그러다 자연으로 나가면...하아 이건 진짜 말 다했다. 제가 풀셋 맞추는데 거의 60만원 정도 들었는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설악산, 지리산 막 이런데가면 또 어떻게 하루만 있다와요?


이틀은 있어야 하잖아요? 팀원들이랑 같이 가니까. 그럼 텐트사고 매트사고 의자사고 캠핑용그릴사고 오리고기사고 그거 넣으려면 차사야 하고 주차하려면 주차장있는 집있어야 하고...집있으면 한 쪽방이 장비방이 되거든. 그럼 더 큰집으로 이사가야하고...이쯤되면 장비사려고 돈버는 느낌이 된달까요. 결국 성공한 인생밖에 안되는거야.





그러니까 클라이밍을 시작하실 때는 매우 조심하세요. 손가락 까지고, 얼굴 타고 뭐 이런건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추위를 막아줄 지방들이 사라지고, 못생긴 근육들이 나오면서 등이 딱 벌어지면 지금까지 산 옷들이 어떻게 되겠어요? 이제 S사이즈가 안맞으니 버리고 M사야겠죠? 돈낭비도 이런 돈낭비가 없음. 또 이게 클라이밍은 기본적으로 문제를 풀고 창의적인 동작을 고민하는 거거든요. 당구에 빠지면 천장에도 공이 굴러다닌다고 이것도 똑같아요. 저걸 저렇게 하면 잡을 수 있었겠지..아닌가? 왼손이 이렇게 가면 안잡히나? 이런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고.


자연으로 나갈 때도 문제입니다. 이건 혼자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항상 팀을 이루어야 하고 동료를 믿어야 해요. 과도한 믿음으로 팀웍이 강해지면 인간관계가 풍성해지고 건강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어요. 그럼 어디가서 '나 힘들어...'라고 말해도 믿어주지 않는다고요. 과하게 건강하게 생긴 구릿빛 피부에 딱 잡힌 등근육, 20%미만의 체지방율을 지닌 누가봐도 비타민D 과잉인 듯 보이는 친구가 힘들다고 하면 누가 믿겠어요.


하아... 써놓고보니 정말 너무 잔인해서 말도 못하겠다. 결제하기 전에 꼭 별 생각말고 함부로 결제하시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분석은 내가 굉장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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