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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Sep 01. 2022

글쓰기 싫을 때 보는 글

아 진짜 리얼 겁나 쓰기 싫다.

<두서없음 주의>


나는 변태다. 글을 너무 쓰기 싫어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젠장. 너무싫어. 진짜 리얼 홍합껍데기 씹어먹는 것보다 더 싫어. 은박지 씹어서 시큼한 느낌 나는 것보다 더 싫어. 철판에 손톱 긁히는 느낌보다 싫어. 토하다가 코로 매운거 나와서 코터질 것 같은 매콤함보다도 싫어. 제가 지금 글을 얼마나 쓰고 있냐면... 클라이언트 소개서 만들고 IR만들고 컬처덱만들고 하루에도 한 20페이지씩 글을 써내려가고 있는데 매일매일 6,000자씩 책도 써야하고, 메일도 써야하고, 카톡도 써야하고 지금 이 글도 써야하고!!!(이 글은 왜쓰는거지!) 


혹시 제목보고 뭐 그런 생각했어요? 아, 동기부여 해줄라나 보다. 힘줄라나보다. 위로해줄려나보다. 노오........ 여러분 그거 다 고정관념이다? 글은 항상 뭔갈 여러분 머리속에 꾸겨넣어줄 것 같잖아. 가치있는 것 같고. 글이 만들어낸 어떤 권위가 있거든. 크으.... 글쓰신 분, 책쓴 분! 하면 막 와아 고개 가로저으면서 와 이 사람은 진짜...베스트 오브 지성인. 막 이런 느낌 있잖아.


그런데 이거봐. 이 글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글이라고. 푸념과 지랄 그 사이 어드메에 있는 그냥 우르르르야. 의태어로 표현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그냥 써낸 문자덩어리 같은거지. 원래 새벽에 제주라거가 합쳐지면 이래요. 아이고오 그 직각어깨 뻣뻣하신 글놈도 새벽술 앞에선 이렇게 무력하다고. 


난 여러분들 이해해요. 솔직히 브런치 작가 승인나서 기분 진짜 겁나 좋았잖아. 근데 막상 쓰려니 고민되지. 뭐 쓰지. 욕안먹을까. 너무 나이브한가. 이건 괜찮은가. 저건 괜찮은가. 하아 그런거 신경쓰면서 글쓰면 이건 거의 80kg중량걸고 스쿼트하는 것과 같다고. 저는 이제 터져야겠다 어째야겠다 이런 의도도 없어요. 솔직히 요즘 글쓸 때 표정 어떠냐면 진짜 딱 이래.




아니 이 글이란 게 그래. 말은 겁나 빠르게 할 수 있어. 근데 글은 머리에서 나온게 손가락으로 간 다음 근육을 움직여야 한다고. 엄밀히 근력운동이야. 하루에 1시간씩 근력운동해봐요. 지치겠어 안지치겠어. 당연히 지치지. 글을 지금 몇 시간째 쓰고있는거야. 오늘 하루 웬종일 10시간 내내 글쓰고 와서 지금 또 글쓰고 있어. 지금 새벽이야. 12시도 넘었어. 근데 아직도 글이나 쓰고있고. 아니 나는 디자이너잖아. 디자인회사하고 있는데 왜 글을 이렇게 더 쓰고있는거야. 하아...


글쓰면서 개짜증나는 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은 백스페이스야. <이쓰는데 =  있는데> 하아..이 오타 진짜 미칠 것 같음. 아니 요즘엔 앞차뒷차 지가 스스로 감지해서 손놓고도 운전한대매 근데 왜 생각하는 대로 텍스트로 나오는 기술은 없는거야. 뭐 이해는 해. 생각나는 대로 쓰려면 생각을 또 정리해야 하고 하나도 틀리면 안되잖아. 근데 머리는 그게 안되지. 


그럼 머리는 왜 그게 안되냐. 아니 그렇게 대단한 두뇌놈이라면서 고작 한 문장 한 문장 오류없이 인출해내는 건 안돼? 아니 왜 수만년의 진화의 결과가 고작 난잡한 생각이 덜 비벼진 짜파게티마냥 대강 뒤섞여있는 상태냐고. 오케이 머리야 워낙 복잡해서 그런다고 십분 이해해도, 건강관점에서도 보자.


이놈의 키보드는 왜 오밀조밀 모여있어서 당연히 C자형 어깨를 만드는 구조인거여. 기본적으로 팔을 모을 수 밖에 없잖아. 그리고 글쓰다보면 왜케 아빠다리가 편한거지? 허리를 박살내는 기본자세 중 하나인데 그게 너무 잘 어울리는거야. 글을 쓰려면 일단 스판30%이상 함유된 할머니 냉장고 바지같은걸 입어야해. 다리를 가만히 두지 못하거든. 이 글이란 건 쓰면 쓸수록 건강에 해로워질 뿐이야. 허리 띄우고 기대쓰는 것도 편하고, 이어폰끼고 음악들으며 쓰는 것도 편해. 허리도 아작내고 고막도 아작내겠지. 손목 건염도 생기고 손가락 관절도 아플거야. 오십견도 올걸? 뭐 하나 바른 생활에 도움이 안되는 놈 같으니....


아 글쓰기 싫어. 진짜 글 짱 쓰기 싫어. 난 채윤도 혐오할거야 이제. 구텐베르크놈도 싫고 갑골문자도 싫어. 거북이등에 새겼다고 했으니 거북이도 싫어. 여러분도 글쓰기 싫죠? 젠장 이놈의 글은 맥주를 마시면 더 잘써질 것 같은데 마시면 마실수록 안써져요. 왜냐, 오줌마렵거든. 한참 쓰다보면 화장실 가고싶고 근데 또 참고 쓰다보면 손가락 급해져서 오타나고. 


내 생각엔 젊은 베르테르가 편지쓰다 자살한 게 사실 그게 우울증이나 젊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해. 편지쓰다가 빡친걸거야. 이 퍽킹롸이팅을 하고 있다보면 누구든 스트레스가 안쌓이겠냐고. 자꾸 '겠'이 '곘'으로 쓰이는 걸 보면서 열이 받겠냐고 안받겠냐고. 베르테르는 편지쓰다 빡쳐서 죽은거야.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술먹다가 자살시도하고 '이젠 써지지 않아!!!!!!!!!'를 외치며 괴로워했다는 게 대강 이해가. 글쓰면 당연히 그럴 수 있어. 대문호의 글은 얼마나 더 빡치겠어. 하나하나 썼다지웠다 썼다지웠다... 그렇다고 막 대강쓰잖아? 그럼 또 욕먹어. 아니 말은 흘러가니까 애지간히 멍청한 언사가 아니고서야 어휴 매생이같은 인간아..하고 마는데 글은 남거든. 글을 읽는 사람들은 또 유독 엄격해요. 어!! 이거 틀렸다. 하면서 콕 찝어내고 막.... 또 14줄짜리 댓글로 막 반박하고. 그래서 글은 싸지르는게 아니라 뭐 정제해서 써야한다는 그런 편견쓰가 있어. 하지만 왓더퍽. 이런 우르르 글은 글이 아닌가. 아 그럴 수 있지. 엄밀히 말해 모놀로그 또는 그저 문자의 나열 어쩌고 뭐 하아............검열 진짜 심해 진짜. 근데 왜 싫다는 걸 이렇게 또 쓰고 있냐. 


그럼에도 써야 하기 때문이야. 글이란 걸 잘 쓰는 방법이 있어요 여러분. 약속을 하면돼. 약속!! 계약!! 데드라인!! 이런게 있으면 그 싸인을 했을 때의 나를 부모죽인 원수마냥 원망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사실 글을 쓰느 원동력이란 건 그 증오와 분노인 것 같아. 


행복해서 글쓰는 사람 있어? 행복하면 친구한테 이모티콘을 보내거나 ㅋㅋㅋㅋㄱㄱㄱㅋㄱㅋ 정도면 모든 표현이 가능하다고. 글쓰는 사람치고 아, 난 이번 생 너무 만족하고 청약도 당첨됐고, 다행히 금리 오르기 전에 중도금도 다 갚아서 너무 행복한 사람은 없어. 혹시 있다면 부럽네요.


대부분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마 아래 짙게 드리워진 슬픔과 우울이 있거나 뭔가 지식을 쏟아내지 않으면 오늘 밤 자다가 토할 것 같을 정도로 넘치는 자의식과잉이거나, 무엇가가 굉장히 빡쳐서 기계식키보드라도 두둘겨야 하거나, 명치에 한과 설움이 가득찬 본투비 한민족들이라고. 


이런 한의 정서에 계약과 약속을 곁들이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의 지평선을 건너버리는 거야. 작문지옥으로 빠지는거지. 그곳엔 회한과 손목통증만이 가득해. 하아 과거로 돌아가서 계약서에 사인한 나새끼를 뜯어말렸어야 했는데!!! 하지만 이제와서 물리자니 사회화 덜 된 아기염소같을 것 같고.... 하아 칙쇼 갓대밋. 이런 분노를 자양분삼아 쓰는거라고. 아직 타임머신이 와칸다에 있는걸 다행으로 알아라 나놈아...


글쓰기 싫어... 글쓰기 싫은 우리 구독자여러분 여기에 글쓰기 싫다고 소리 한 번씩 지르고 가요.



으아아아아아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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