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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an 15. 2024

큰 기업의 컬처덱은 식상하다고? 아닐걸? 중앙을 봐.

중앙그룹의 컬처북 원전, Q북과 A북을 보자. 조직문화 3대장 들어갑니다

<들어가며>


애프터모멘트의 주요 고객은 [100명 내외의 단일서비스 또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이에요. 파.워.브.랜.드 라고 해야할까.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대기업 프로젝트는 가급적 지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처음에 과장님(이번에 승진하셔서 차장님 되심) 만나뵀을 때도, 사실 좀 튕기긴 했거든요. 그럼에도 과장님의 얘길 듣다보니 상당히 선택지가 열려있었고, 진짜 작동하는 것을 만들어보자! 라고 의지를 불태워주셔서...결국 해봅시다!! 해서 시작을 하게 된 거에요. [눈빛에 동화됨]


그 말을 하는 과장님 느낌 [한 번 해봅시다]



당시 상황은 이러했습니다. 기존의 [일하는 방식]에 대한 문장들은 이미 나와있는 상태였어요. 사실 없어서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있는데 더 잘만들려고 의뢰주시는 경우가 많죠. 어떻게 만들어야 좀 더 잘 작동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제안서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요는 이렇습니다.


3개를 만들자.

기준이 되는 컬처덱

리더들을 위한 원온원 가이드북

팔로워들을 위한 마법의 책 


이렇게 세트가 되도록 말이죠. 


컬처덱은 말 그대로 중앙그룹의 특징적인 문화 그리고 업무원칙과 회사의 방향성을 선언한 책자고, 원온원 가이드북은 컬처덱에서 규정한 원칙들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각 항목들을 점검하고 발전시키는 원온원 세션을 위한 것이었죠. 아무래도 원온원이란 개념이 생소하기도 하고, 또 컬처덱과의 연계성을 스스로 만들기가 좀 어려울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예시 질문들과 원온원을 하면서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쉽게 풀어쓴 가이드북이 필요했어요. 이 가이드북은 구성원과 원온원을 진행해야 하는 리더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마지막 마법의 책은 구성원들을 위한 것이었어요. 컬처덱도 전사 배포되긴 하겠지만...사실 이게 실무할 때 직접 펼쳐보면서 늘 손에 끼고 사용하기 쉽지 않거든요. 실무하면서 생기는 빡침과 답답함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다가.... [펼치면 답을 알려주는] 마법의 책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약 165개의 문장들을 만들었고, 모든 문장은 핵심가치와 연결되어 있죠.


이렇게 모두를 사로잡을 메시지텔링을 해보자!! 라는 과감한 꿈을 안고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발라내기


사실 큰 기업의 메시지를 정돈하는 것은 진짜 힘든 일이에요. 보통 이렇게 큰 기업은 수많은 이해관계와 의사결정권자들이 존재하거든요. 누군 좋은데 나는 싫다...이런 충돌이 숨쉬듯이 발생하는 곳...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는 조금 달랐던 것이... 과장님들과 팀장님으로 이루어진 TF와 홀딩스 대표님, 그룹 부회장님이 직속으로 연결된 의사결정 체계였어요. 오너의 온전한 지지와 결정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였어요. 속이 시원해!!!!!!!!!!!!!!!!!! 의사결정 팡팡팡!! 평일 오후3시 중부고속도로 마냥 펑!


그만큼 메시지 정리단계부터가 몹시 재미있었어요.

부회장님께서 했던 말들을...총정리


오너가 말했던 신년사, 리더대상 강의 스크립트, 구성원에게 전하는 말, 추구하는 철학 등을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의지와 아주 일치하는 중국의 한 철학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철학서적을 정독하며 그 사상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존잼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유비와 항우, 은나라 황제의 고사를 듣는데... 몹시 색다른 경험이었죠. 

여튼 녹음된 건 속기에 맡겨서 텍스트로 풀어냈고, 나머지는 실제 발표자료들을 기반으로 정돈했죠.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언어영역 지문 해석하는 기분인데, 수많은 밑줄과 빈칸을 만든 뒤 문제를 풀기 시작하는 거에요.



다음 중 화자의 의도로 적절한 것은?(3점)

ⓐ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은?(2점)

빈 칸에 들어갈 말로 올바른 것은?(2점)

위 글의 주제로 적절한 것은?(3점)


이런 질문들과 함께 지문을 쪼개고, 주제문을 찾습니다. 부연과 주절을 잘라내고 핵심 키워드와 서술어를 찾죠. 의미를 비교하고 유의미한 키워드들을 뽑아냅니다. 충돌하는 키워드는 버리고, 포함관계상 상위에 있는 것들을 남기죠. 살도 바르고 갈치마냥 뼈도 챠쟈쟈쟉 걸러내고, 머리 뜯고 꼬리자르는 난리난리 작업이 끝나면 [진짜 하고싶은 말]이 어렴풋이 드러나게 돼요.


드러났다.



오만번 미팅하기


애프터모멘트는 망원역 부근에 있고, 중앙JTBC사옥은 상암에 있어요. 마을버스 한 방이면 15분 컷이거든요. 솔직히 이 정도거리면 3,000번 미팅해도 괜찮겠어. 그리고 JTBC사옥 아래 스템커피라고 있는데...거기 커피가 아주 맛집입니다. 갈 때마다 과장님이 법카로 커피 사주셔서 귀사에 감사드립니다. 과장님은 두 분이셨어요. 장 과장님의 요구사항은 아주 명쾌하고 또 젠틀하셨습니다. 김 과장님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늘 감사의 말을 전해주셨어요. 팀장님은 저랑 같은 INTJ였는데, 진짜 일하기엔 최고적인 분이셨습니다. 번복이 많지 않고, 맡길 부분과 요청할 부분을 명확히 구분해 주셨어요.


미팅 횟수는 많았지만, 매 미팅이 생산적이었고 재미있었달까요. 이러기 쉽지 않거든요. 보통 미팅에서 뭔가를 딱딱 부러뜨리고 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시잖아요들. 자칫하면 고민만 빙빙 돌다가..[나중에 다시 얘기하시죠]로 끝나는 경우도 많거든요. 하지만, 늘 상암 다녀오면 진행된 것과 진행할 것이 또렷해졌어요.


컬처덱을 만드는 과정이 곧 그 회사의 문화라고 늘 말씀드리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었다고 생각해요. 작은 단어 하나하나의 뉘앙스 차이도 함께 고민해주시더라고요. 더 좋은 결과물을 원해주셨어요. 이런 [탁월함에 대한 갈증]은 만드는 저희 입장에서도 좋은 의미의 부담입니다. 클라이언트가 자기 문화를 기록하는 컬처덱을 만들면서... [대강 해주세요] 이러면 우리도 힘빠지거든요.





깔끔한 체계화


원전의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선 오너와 대표님을 모두 만나봬야 했어요. 참으로 감사드리는게 원래 보통 이 정도 규모의 회사에선 오너 미팅이 쉽지 않거든요. 어떤 곳은 그냥 기사로 써진 것을 기반으로 써달라는 곳도 있었어요. [노오오오오오....]

실제로 1시간 반 동안 부회장님 인터뷰를 하고 직접 녹음해서 메시지를 가져왔습니다. 홀딩스 대표님과도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질문지 설계부터 진행까지 TF와 함께 하나하나 짚어보았죠. 반복되는 단어와 강조하시는 지점 등을 찾아냈어요. 본격 컬처덱을 만들기에 앞서 어떤 메시지를 넣어야 하는지를 정돈하는 시간이었죠.


이렇게 질문지를 구성했어요. 파생질문들은 현장에서 직접


이제, 핵심 키워드나와 담아야 할 내용의 리소스가 확보되었습니다. 뭘 해야 할까요? 그렇죠. 내용을 어떤 순서로 연결할 지를 구상해봐야겠죠? 이걸 [메시지텔링]이라고 해요. 스토리와는 다르게, 메시지의 중요도와 우선순위, 부연설명 등을 설계하는 거에요. 하고싶은 말이 또렷하게 드러나도록 말이죠.


초기 컬처덱의 컨셉은 이러했어요. CODE와 DEED로 나누어 원칙과 행위를 따로 설명하려고 했었죠. 그리고 컬러도 없는 완전 흑백 그 자체의 쿨한 컬처덱이었어요. 


그러다 형태가 바뀌게 됩니다. 앞 단에 중앙그룹의 문화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기재하고, 일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10단계로 쪼개어 각 단계에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지를 기재했죠. 마지막엔 무관용원칙을 적어놨어요.


문장부분에 들어갈 일러스트도 스케치해서 전달드리고, 이제 세부적인 단어와 뉘앙스, 내용을 조금씩 다듬는 수준으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원온원 가이드북도 이 때 만들어지기 시작해요.


위 컬처덱에서 설명한 10가지의 키워드를 담아낼 질문과 원온원 할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을 자세하게 담기 시작했죠. 앞 부분에는 원온원에 대한 큼직한 개요와 개념설명부터 담아내기로 했어요.



마법의 책도 제작을 시작해야겠죠? 마법의 책은 이런 거였어요. 마음 속으로 지금 몹시 답답하고 해결하고 싶은 고민을 떠올린다음... 책에 딱 손을 대고..3..2...1. 하고 딱 아무 곳이나 펴는 거에요. 그럼 대답이 딱!!!

우와아아앗!!


이렇게 딱 등장하는 거에요. 이런 다채로운 문장들을 아무렇게나 뽑아낼 순 없잖아요. 그래서 핵심문장을 중심으로 각 문장당 15~20개씩 파생문장들을 뽑아냈어요. 이게.... 되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실제로 각 상황에 제대로 매치될 지도 걱정이 되었어요.


165문장 뽑아내는 과정


이런 식으로 핵심가치와 키워드, 문장과 관련있는 문장들을 도출한 거죠. 총 165문장이 등장했고, 이를 무작위로 섞어 A북(Answer book)이란 이름으로 만든 거에요!! 흐음..이게 제대로 작동할런지.... 과장님을 실험대상으로 삼아보았습니다.


성공

네 성공입니다. ㅋㅋㅋ 두 과장님과 팀장님 모두 대박이라고 해주셔서, A북의 진행도 무리없이 챡챡 가는 걸로 확정되었습니다. 대표님과 부회장님께서도 [허허 재밌겠구만] 이라고 해주셨대요. (그 정도면 엄청난 긍정인 것으로...)





자, 이제. 여러 우여곡절 끝에 계획했던 3개가 만들어졌습니다. 수정과 자잘한 [앗!! 앗!! 앗!!] 들이 있긴 했지만...ㅎㅎ 무사히 완성되어 실물까지 딱 등장했어요. 


<맺으며>


이번 프로젝트는 실제 제작을 진행했던 사례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3개의 제작물이 만들어지는 터라 아무래도 실물의 임팩트가 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결과물의 진짜 진가는 인쇄된 [실물]이 아니라 그 내용에 있죠. 오너의 명확한 키워드가 있었고, 대표님의 지지가 있었습니다. 실무자들의 서로 다른 의견들이 시너지를 만들었고, 같이 일하는 애프터모멘트를 믿어주셨어요. 한 글자, 한 단어, 문장 하나를 고를 때도 섬세했습니다. 

심지어 프로젝트 끝나고 저녁 메뉴 고르는 것도 섬세하셨어요!! (핵존맛..... )

섬세함...츄릅


모두에게 중요한 프로젝트였고, 봄에 시작해서 겨울에 끝마칠 때까지 지치거나 대충하지 않았어요. 이런 끈기와 집중력이 있었기에 지난 8개월이 참으로 의미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물도 과정도 관계도 모두 탄탄했어요. 컬처덱도 원온원 가이드북도 A북 또한 탄탄합니다. 이제 실질적인 실행과 전파작업이 남았어요. 단단한 메시지인 만큼, 오해없이 그리고 멀리까지 퍼져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근 1년간 고생하셨던 세 분과 이 프로젝트를 오롯히 리드해주셨던 우리 리드님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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