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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an 22. 2024

빨리 하다가 실수한 건 다 용서해준다는 회사

심지어 우린 수직구조라고 대놓고 선언해버림

<들어가며>

컬처덱에 가장 큰 오해는 '오만 것을 담는 문서'라는 생각입니다. 조직문화라는 말 자체가 코스믹호러급 압도감을 선사해요. 평범한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의 무게감이 아니라고요. 조직도 너무 큰 개념이고, 문화는 더 큰 개념인데... 이 두개를 합쳤다고!!?



그러다보니... 컬처덱은 온갖 형태로 존재하게 되는데요. 물론 조직문화야 기록하는 사람 마음이고 조직마다 자기 색깔을 원없이 드러내는 문서이니 딱히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답은 있죠.


오답 :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모르겠는 상태


그렇습니다. 기껏 적어놨는데 뭔 말인지 당최 알 수 없는 상태. 이것이 오답이죠. 기본적으로 컬처덱은 예쁜 인테리어 필름같은 작업이 아닙니다. '작동하는 회로판' 그 자체가 되어야 맞습니다.

회로는 뭐가 중요해요? 그러쵸오. 작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뭐가 중요해요? 그러쵸오, 단순해야 합니다. 
또 뭐가 중요해요? 그러쵸오, 패턴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가져온 컬처덱! 바로 우리가 만든 컬처덱! 하지만 고객사의 요청으로 내부에서만 쓰이기로 결심한 컬처덱! 그래서 가상의 회사 이름으로 대체한 비밀스러운 컬처덱!


그래서 어디껀데?


일단 보시죠.





시작부터 지리는 포스를 보여주는 이 회사는 '여가'시간에 놀 수 있는 다양한 '놀이/레저/취미' 커뮤니티 플랫폼입니다. 쉬는 날 집구석에만 박혀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에너지 존재들에게 강렬한 도파민을 선사하고 아 이번 주말도 완전 찢었다! 는 성취감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기획, 발굴해서 보여주는 것이죠.


자, 저희가 만든 딱 슬로건. 미쳤다 미쳤어. 퍼펙트 레드. 레드가 뭘까요. 네에 빨간 날. 쉬는 날이죠. 우리는 완벽한 빨간날을 만든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컬처덱도 죄다 빨개요.


그래서 핵심은 뭘까요? 네 그렇죠. 사무실에서 뭉개고 있는거? 못참죠오. 나가라. 허먼밀러 의자 그런거 없습니다. 대신 뉴발란스 신발을 선물하는 거죠(실제로 선물하진 않습니다. 제안해봤는데 그건 까였습니다.)

이곳의 문화는 일단 나가야 합니다.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엉덩이 붙이고 문서작업 할거면? 네 미안하지만 잘못 오셨습니다.....라고 겁나 강렬한 문구로 시작합니다. 물론 저희가 썼지만, 실제로 그런 말들을 하더라고요.


가설을 설명해줍니다. 여긴 놀랍게도 데이터보다 경험을 믿습니다. 현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죠. 데이터 드리븐이 판치는 스타트업계에서 굉장히 이단아적인 느낌을 주는데요. 그럼에도 [그래, 경험으로 판단하자!]는 얘긴 아닙니다. 니 경험과 내 경험을 합쳐서 슈퍼퓨전을 해야 유의미해진다는 전제를 깔고 있죠. 앞에서 '가설'이라고 설명하는 건 저희가 늘 강조하는 것입니다.


조직문화? 그거 가설입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이 있어! 그래서 이렇게 행동하면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될 수 있을거야. 그곳에 도착할 수 있을거야!


이 가설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든 조직문화 활동은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에 불과하죠. 잘되면 선사례로 남아 [아이고 그래서 잘됐구나!] 하며 모든 컨설턴트의 입에 오르내릴거고, 못되면 [아이고 그래서 망했구나!] 하면서 마찬가지로 컨설턴트의 입에 오르내릴 겁니다.


가설은 일정기간, 그리고 일정조건 하에서만 유효합니다. 그래서 회사의 사정이 바뀌면 가설도 바뀌기 마련이죠. 이러한 전제를 모든 구성원들에게 잘 이해시켜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게릿!!! 이걸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정확한 행동양식 3가지가 있습니다. 저것이 바로 '행동원칙'입니다.

메일제목을 어떻게 쓰고, 엘리베이터 탈 때 슬리퍼를 신어야 하냐 마냐, 기계식 키보드를 시끄럽게 써야하냐 마냐를 결정하는게 행동원칙이 아니고! 


바로, 어떻게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몸으로 보여줄 수 있나!' 이걸 정하는 게 행동원칙이죠.



여긴 세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01

사무실 밖에 나가서 현장조사를 지겹게 해야하는 건 맞는데 구경만 하지말고, 참여하라는 겁니다. 파고들고 물어보고 인터뷰하고 쫓아댕기고.... 멀뚱히 보고 섰지 말고.


02

그리고 2인1조로 댕기래요. 파트너는 조직이 정해준대요. 내가 친한 사람하고만 다닐 수 없다는 것이죠. 이유도 깔끔하게 적혀있습니다. 납득이 가죠. 서로 다른 인사이트를 더하는 목적과, 안전과 돌발상황에 대비하기 위함!!


03

마지막은 힘쎄고 강한 피드백입니다. 저희가 썼지만 참 맘에 드는 문구가 있는데요 [속도가 빠르다고 무례해지는 건 무능력입니다.] 크으.... 심지어 그런 사람은 애당초 뽑질 않아버려.




10가지의 보조원칙이 있는데, 2가지만 보여드릴게요. 그 중 가장 특이한 게 이겁니다. 솔직히 회사에서 일할 때 뭐라고 해요?


빨리, 정확하고, 꼼꼼하게, 잘 해야 한다. 책임감도 있어야 하고 협업도 잘하고, 탁월한 목표를 지니고 임팩트도 내면서, 주도성을 지니고,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와 그에 부합하는 능력으로 몰입하고 끈기있게 치열하게 어쩌고...

솔직히 세상 천지에 대표인 저도 이렇게 일을 못하는데, 어떻게 일을 하란 건지 좀 의아하긴 하지만 대부분 바라는 인재상은 이런 겁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거 다 필요없고..


빨리해라.


이거 하납니다. 실수해도 괜찮고, 성격 급해서 막 두근거리고 불안한 극한의 한국인을 추구한달까.. 늦게 주면 불안하고 말 길게하면 속터지는 사람들...을 채용한다고 합니다. 솔직히 좀 이상했어요. 정확히 두 가지의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아마 이걸 보는 여러분도 비슷한 물음표가 생기실 거에요. 그래서 물어봤죠.




첫째

'아니 근데... 빨리 하다가 실수가 난 걸 다 용인해주면... 나중에 실수하고 나서 그냥 빨리하다가 그랬다고 핑계 대는 식으로 바뀌면 어떻게 해요?'

A. 그럴 수 있지만, 그럴 수 없을 거에요. 왜냐면, 동료들이 다 알고 있거든요.


아...?!


둘째

'빨리 하다가 진짜 대형사고 날 수도 있는데.... 너무 위험도가 큰 선언 아닌가요?'

A. 그럴 수 있지만.. 느리게 하다가 기회를 놓치는 것도 똑같이 큰 위험도입니다. 빨리 하다 실수하면 빨리 막으면 되지만, 늦게 하다가 기회를 놓치면 돌이키기가 어렵죠.


호...와.....어....


납득해버렸고..이 납득이 한 마디로 가능하다는데 또 한번 놀랐고요. 물론 막 논리적으로 파고들고 댓글 달라고 하면 온갖 악플이 달릴 수 있는 궤변일수도 있지만... 굉장히 단순하고 명쾌한 구조로 가치를 선정했다는 것이 무척 의미있었달까요?


두 번째 놀라운 건 바로 이것이었어요. 이거 쓰면서 제일 속이 다 시원했습니다. 회사에 수평적 구조라는 건 사실 몹시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상향같은 거에요. 우리가 말하는 대부분의 '수평'이란 '편안하게 대화하는' 것에 불과하거든요. 진짜 수평구조는 권한과 책임의 구조가 성립할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회사는 이걸 섞어서..

'소통은 수평적으로, 결정은 수직적으로...'


이런 멘트를 쓰는데. 실질적으로 그 분들이 원하는 건 [건강한 수직구조]에 가깝습니다.


수직구조가 그냥 군대처럼 까라면 까고, 갑질하고, 입 다물어야 하고, 권위에 굴복하고..그런게 아니란 말이죠. 일원화된 책임과 의사결정구조. 빠른 속도와 효율적인 업무체계... 이게 수직의 장점이잖아요. 수직구조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라, 그걸 이상하게 오해하거나 건강하지 못하게 활용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싶었어요.


이곳은 탑다운을 명시했고. 대신 건강하게 하겠다고 선언했어요. 제안과 실행의 자유는 충분하고, 윗사람은 취합하고 결정해요. 하달은 명쾌하고 또렷하게 말해줍니다. (아주 빠른 시간안에) 심지어 보고와 하달까지 1시간도 안걸리는 경우도 있었어요.


하달이 그럼 딱 마이크로매니징을 하냐? 그럼 그것도 아닙니다. 전 이걸 보면서...리더가 얼마나 [똑똑해야 하고, 센스넘쳐야 하는지] 그 무게감에 대해 더욱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떠셨어요? 말하고자 하는 바가 시원시원하고 또렷하지 않나요?


우리가 어떤 조직인지 가감없고 솔직하게 밝히고 있어요. 이게 스타트업이라서 그런걸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이라서가 아닙니다. 이들이 하는 대화를 들어보면 놀라울 정도에요. 많은 고민을 하고요. 철학적인 대화가 오고갑니다. 아주 자주, 그리고 깊게 말이죠. 이러한 대화의 깊이와 성숙함에서 오는 자신감이 이런 컬처덱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요.


컬처덱을 만드는 건 쉽습니다. 언제나 그걸 '잘' 만드는 것이 어렵죠. 준비가 필요하고, 그 준비과정 부터가 그 조직의 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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