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원팀을 추구하는데...대체 왜?!
사실 브런치에 이런 글을 쓰는게 그리 조회수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남의 회사 일한 뒷이야기가 뭐 재미있겠어요. 이게 재미있으려면 좀 더 급진적이고 충격적인 일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부장님이 이런시발! 이라고 외치자 보인 직원들의 놀라운 반응] 이 정도의 제목이 나와야 이목을 끌 수 있겠군요.
하지만, 이번 휴비스의 컬처덱 후기에선 어그로보다 좀 더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컬처덱과 온보딩 프로그램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가! 이 고민이 좀 있었거든요. 실제로 함께 고민해보기도 했고요. 그 이야기를 좀 메인으로 해드리겠습니다. 급하신 분들은 빨리 스크롤 내려서 06번으로 가주세요.
먼저 휴비스는 대전에 소재한 [레이저 솔루션 기업] 입니다. 일반 납땜용접보다 레이저용접은 훨씬 정밀해서 이차전지나 반도체, 배터리등에 많이 활용되죠. 아주 작은 부품도 정확하게 용접할 수 있어서 초소형 장비나 무기, 우주항공산업 등에서 중요해지겠죠. 지금은 전기차 시장의 배터리 용접에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휴비스는 지난 1년간 몸집이 두 배로 커졌고, 내년 IPO를 계획하고 있어요. 대전연구단지 내에 위치하면서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고, 작년 600억 매출에 이어 올해 1,000억원 매출을 노리고 있습니다. 급격하게 성장하면서도 조직문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대표님이 엄청 진심이셨죠. 실제로 여타 제조업의 분위기와는 많이 달랐어요. 특유의 그 뚝딱거림이 있긴한데, 데면데면하진 않았고. 투박하지만 몹시 부드러웠죠. 조직 전체에 공격성이나 갈등보단 오히려 병목현상이나 정보가 흐르지 않는 [흐름의 문제]들이 보였습니다.
갑작스럽게 유입된 수많은 외부 경력직, 리더들로 휴비스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섬세한 케어]의 문화가 혼탁해지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리고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외부업무가 무진장 많은터라 누가 누군지도 제대로 알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지금 150명을 향해 가고 있는데, 이쯤에서 한 번 다잡고 가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셨나봐요.
휴비스의 옥천HUB같은 분...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자 오피셜과 언오피셜한 모든 정보의 지배자, 엄유정 경영지원팀장님의 연락으로 컬처덱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했던 건 팀장급 이상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조직문화 스터디였어요. 일단 이게 뭔줄 알아야 시작을 하죠. 그래서 팀장급의 리더와 인사팀, 대표님 등 유관부서 사람들까지 모두 모아놓고 3시간 가까이 스터디를 진행했었어요. 개념설명부터 각종 사례, 컬처덱의 프로젝트 프로세스를 상세히 소개하는 것이었죠.
대표님은 [보살핌]의 정점에 선 천애보살님 같은 분이셨지만, 사실 그건 좀 표면적인 거였고 실제로는 앞서 말했던 흐름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트러블들을 손수 해결하려고 애쓰시는 중이었던 거였어요. 이 사람의 마음도 풀어주고, 저 사람의 고충도 들어주면서 일대일 소통이 엄청 많았다고 해요. 물론 일대일로 얘기하는 것만큼 직접적인 방법도 없지만... 정작 대표님은 엄청나게 피곤하셨겠죠?... 조직규모에 비해 인사팀이 꽤 큰 편이었는데 이러한 구조도 대표님의 고충이 반영된 것처럼 보였어요.
워크샵은 8시간씩 3번을 진행했습니다. 엄청났죠? 이번 워크샵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었어요. 보통 클라이언트 비즈니스를 하는 곳에서 [고객 분석]을 해보자고 하면 부들부들 떨며 경기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워크샵 초반엔 서러운 억울함과 터지는 고충이 봇물이었어요. 신문고가 있었다면 16비트로 떨리며 끝내 찢어지고야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몇 시간동안 같은 질문에 시달리고 나면서, 점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함께 가야 할 존재]라는 인식으로 전환되며 억울함뒤에 숨겨진 본질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이게 진짜! 신기했습니다.
저희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점점 의견들이 성숙해지고, 생산적으로 바뀌면서. 불만토로에서 [그럼, 방법을 찾아보자]라는 관점으로 자연스럽게 바뀌기 시작하더라고요. 한의 민족답게 필연적으로 어떤 한풀이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04 의견을 정돈하고!
가치관을 하나로 모으는데 여러 이견들이 있었습니다. 왜냐면 제조업의 특성상 서로의 프로세스가 명확하고 서로 건들수 없는 전문성들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때문에 어떤 팀에선 성실이 중요하지만, 어떤 팀에선 혁신이 중요할 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팀을 막론하고 휴비스 전체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바로 [공유]의 문제였어요. 서로 다른 팀과 다른 전문성으로 일할 때의 문제는 같은 행동이 아니라 같은 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잖아요.
여기서 정보란 업무에 필요한 맥락과 더불어 [조직의 목표], [조직의 지향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원칙들도 모두 포함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연결을 넘어 동기화(Link to Sync)라는 최상위 키워드를 도출했죠.
특이한 점은 협업쪽의 키워드였어요. 휴비스는 [도와준다]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했어요. 에에??? 왜요..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할텐데..서로 안도와주다뇨...!
[도와준다]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했어요.
그게 아니었어요. 여러분 배우자가 [내가 집안일 도와줄게] 라고 하면 기분이 어때요? 이거 남의 집이에요? 도와준다라는 건 '내 일은 아닌데, 호의로 너의 고생을 덜어줄게' 라는 미묘한 함의가 있어요. 나와 대상과의 거리감이 있는 것이죠. 육아든 집안일이든 도와주는 게 어딨어요. 그냥 하는거죠.
바로 이런 맥락에서 [도와준다]라는 말은 없다고 한 거에요. 그냥 제가 할게요! 라는 말이 나와야지...이게 뭐 남의 일인가요? 어차피 회사에서 해야할 일이면 니일내일은 없다는게 핵심인 것이죠 :)
더불어 휴비스는 실패에 민감하지 않아요. 다른 회사들은 막 예전에 실패했던 걸 다시 한다고 하면, 오메 그게 내가 해봤는데 무조건 망한다!! 이러면서 팬티벗고 말리고 막 그러는 곳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휴비스는 [그땐 그때고, 지금은 다르겠지] 하면서 그냥 다시 해보겠다고 하면 군말없이 서로를 지원해준다는 거에요. 뭔가 실패에 환호하는 것도, 질책하는 것도 아니고.
되게 무덤덤하게, 응 다시 해보자.
이게 진짜 찐일상적인 조직문화의 바이브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간 대표님이 어떻게 실패와 이슈를 대하셨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최상위코어를 중심으로 [공유]의 3가치 방향성을 세웠습니다. 가치의 공유, 목표의 공유, 경험의 공유로 구분했죠. 각각의 방향성을 3개의 키워드로 다시 나누어 총 9개의 문장을 도출합니다. 그리고 각 문장을 어떤 상황에서 기억해야 하는지 적어주었죠.
온보딩 과정에서 어떻게 컬처덱의 DNA를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휴비스는 업계 특성상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면 거의 3,4일만에 외부출장이나 본업무에 돌입해야 합니다. 온보딩시간이 무척이나 짧죠. 이 짧은 시간을 가장 임팩트있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법이 필요했어요.
일단 최상위 가치가 LINK TO SYNC 였잖아요.
온보딩을 3일 동안 한다고 가정하고 3개의 세션으로 나누었어요.
1일차는 링크데이
2일차는 싱크데이
3일차는 테이크오프 데이
링크데이는
회사의 구조적인 소개를 진행합니다. 고객, 시장, 팀구성, 매출, 목표 등 외부를 이루는 모든 움직임에 대해 알려주죠. 특히 각 팀을 가장 잘 소개할 수 있는 사람(꼭 팀장이 아니어도 됩니다.)을 한 명씩 만나, 모든 팀에 대해 숙지하고 이 내용을 인사팀에서 퀴즈 등으로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게임요소를 집어넣어 모든 팀의 상황, 목표, 업무,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죠.
싱크데이는
회사의 문화적인 소개를 진행합니다. 가치, 태도, 지향점 등 업무방식과 마인드셋에 대한 내용을 알려줍니다. 아까 앞서서 컬처덱에 9개 키워드와 9개의 문장이 나왔어요. 각 문장을 실제로 실습, 체험, 구체화시킬 수 있도록 9개의 미니세션들로 구성했습니다.
예를 들어 웰컴[환대]의 가치에서는
[지금 당장 팀원들에게 인삿말을 적어 문자로 보내보기], [사내플랫폼에 자기 소개 작성해 올리기] 등 20분 내로 완료할 수 있는 작은 미션들을 바로 수행해보는 것입니다.
이 중 몇몇 가치는 [이번 달 내에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소한 일 3가지를 찾아 바꿔보기] 와 같이 프로베이션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월별미션으로 주어지기도 합니다. 이는 추후 리더와의 원온원이나 피플팀 미팅 때 함께 점검하고 얘기나눌 수 있는 정성적 지표가 되기도 하죠.
테이크오프 데이는
온보딩을 마친 구성원이 실제 업무에 착수하기 전날! 또는 외부출장을 처음으로 나가기 전날!! 진행됩니다.
별도의 행사가 있는게 아니에요. 이 날은 모든 종을 땅땅땅 울리고 [창선님의 테이크오프 데이입니다!] 라고 외칩니다. 오글이토글이지만, 이런 리츄얼이 있어야 패턴화가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동료들의 응원과 격려, 조언들이 하루 종일 쏟아지죠. 모든 사람들의 환대와 응원을 받는 하루입니다. 점심도 같이 먹고 간식도 사줍니다. 웰컴킷도 이때 전달하게 되죠. 아무리 경력직이라고 해도 이 회사에서의 업무는 처음일 겁니다. 혼자 나가는 출장, 혼자 시작하는 업무가... 때론 너무도 루틴하고 외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항상 뭔가 [시작하고 끝나는] 느낌이 몹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테이크오프데이는 그 작은 환영인사같은 것이죠.
제조, 기술업게의 컬처덱을 만들다보면 몇몇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쁘고 시적인 단어보다 무척이나 직관적이고 쉬운 단어들을 추구한다는 것. (엄청난 T성향) 그리고 다들 어색해하지만 막상 시작하면 엄청나게 몰입하신다는 점이었어요. 다들 서로가 이렇게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었고, 이렇게나 말을 잘하는 사람인지 몰랐다는 말을 할 정도로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마지막까지 멋진 결과물이 나왔고, 이제 팀 자체적으로 [우리의 실제 업무와 컬처덱에서 적용해볼 문장]을 찾아내고 온보딩과 컬처덱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등 구체화와 연결작업이 진행되고 있어요.
200명, 300명을 견뎌낼 단단한 안시성마냥 혼란스러운 세상과 인간들의 침입에도 굳건한 문화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