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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선 Jun 24. 2024

수평적 문화는 사실 오타였을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


고대의 언젠가 누군가가 이 단어를 꺼냈었겠죠. 그리고 퍼졌을 거에요.


그가 수평이라는 '어휘'를 썼던 이유는 뭘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어휘를 썼을 때는 그 의도라는 것이 있거든요. 예상컨대 수평이라는 단어를 골랐던 것은 기존 [수직구조의 단점이 개선된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여름의 반대는? 겨울! 이렇게 단순화시켜서 말이죠.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여름과 겨울은 별도의 계절일 뿐, 둘은 반대개념이 아닙니다. 그냥 덥다춥다라는 우리의 이미지가 만들어낸 [대비]일 뿐이죠. 



수평적 문화라는 말을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사실 수평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수직적 문화가 지니고 있는 권위주의와 불통, 워터폴 방식의 불합리성, 무거운 조직체계 등을 개선하고 싶었을 뿐이겠죠. 

왜 수평이란 단어를 쓰셨죠?



그가 개선하고자 했던 수직적 구조의 문제는 수직구조 자체가 아니라 사실 '권위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권위주의의 시작은 정보의 독점과, 또 A를 던졌는데 자꾸 B로 이해하는 왜곡의 장막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그러니, 권위주의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한다면, [탈권위]가 아닌 [정보가 흐르는 상태, 즉 정보의 제공과 제안, 공론장]이 확보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끔 우린 이걸 너무 [어휘적으로만] 생각하죠. 이를테면, 


권위주의 반댓말은?! 탈권위다!! 
지금부터 팀장이고 대표고 나발이고 때려치고 
제임스와 엘레나가 되자! 모두 하늘 아래 평등하다!


이런 식으로 이마끈을 동여매고 인내천 사상을 외쳐버리면 원래 고쳤어야 할 근본적인 영역이 평등 어그로에 끌려 묘하게 오염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수직이 싫었다면 건강한 수직을 말했어야 하지, 수평으로 가자!! 라는 건 어딘가 좀 이상한 해결책이죠. 



그러나



평등, 자율, 책임...이런 천하에 당당한 단어들이 등장하면 그때부터 누구도 여기에 토를 달지 못하는 근엄무거운 사상이 됩니다. 수평적 문화는 심지어 [평등]과 [자유]라는 단어와 이미지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하나 수평적 문화를 거부하거나 돌려깠다가는 바로 꼰대 낙인에 노동자 정신을 짓밟는 악랄한 사측 딱지를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수평이란 단어를 왜 썼을까. 이유는 다양할 것입니다.


수직의 문제를 잘못 파악했거나

그냥 이해하기 쉬우라고 자극적인 단어를 썼을 수도 있습니다.

원래 이미지를 좋아하던 컨설턴트였을 수도 있고

심지어 수직의 반대급부로 쓴 단어가 아닌데, 우리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의외로 번역의 문제일수도 있죠.




어떤 방식이든 [수평은 옳은 것] 자체로 굳어진 상태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수직의 문제는 독점, 즉 권위성에서 발생하고, 수평의 문제는 국지성에서 발생합니다. 어느 쪽이든 단점은 존재하고,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일 뿐이죠.



우리가 수평적 문화에서 기대하는 자율과 책임과 권한은 사실 수직적 문화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수직, 수평을 떠나서 자율, 책임, 평등의 가치가 없다면 그건 그냥 전체주의나 파시즘에 가까운 문화죠. 반면 수평적 문화에서도 자율과 책임이 아사리판이 되는 걸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체득했잖아요.



그러니, 수직입장에선 좀 억울할 겁니다. 좀 올드하긴 하지만, 그렇게 나쁜 친구는 아닌데다 디젤엔진처럼 나름의 장점도 있는 친구거든요. 그런데 이건 뭐 극악무도한 개놈자식처럼 여겨지고 있으니 원...

오며가며 수직이를 좀 위로해 주도록 합시다.



수직 : "힝, 나도 평등과 자율 있는뒈..."

수직아 오해받아 힘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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