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달라지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아니 최근에 월스트리트저널에 구글과 MS, 노션이 연봉을 엄청나게 주고 스토리텔러를 뽑니 어쩌니 해서 '왐마 세상에 러브크래프트좌의 시대가 드디어 찾아온건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사실상 '미디어팀'의 명칭이 좀 더 멋지게 바뀌었고, 진정성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좀 더 그럴싸한 단어로 재포장한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사실상 월스트리스저널의 기사도 '기업의 스토리텔러 찾기'를 은근히 비꼬는 뉘앙스가 있었죠.
이런 멋진 이름 붙이기는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반복되었습니다. 스토리텔러든 최고파괴책임자든 딱히 놀라거나 엄청난 기대를 주진 않죠. 그럼에도 저는 인자부터 사나운 스토리텔러라고 저를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발음이 엄청 멋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이야기꾼]이잖아요? 음.... 쓰읍 하아 이게 뭔가 좀 허풍선이 같거든. 그런데 스토리텔러? 그러면 갑자기 존나 호메로스나 세헤라자드같은 역사뽕에 취하는 느낌.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도가 된 느낌. 핍박과 박해를 이겨내며 끝까지 그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한 명의 순례자! 깊숙히 내재된 언어적 사대주의에 그만 황홀해져버렷.
두번째는 내가 뭘 하는지 짜치게 소개하지 않아도 됩니다. 백수를 홈프로텍터라고 하거나 산타클로스를 연휴 물류 및 글로벌 위기 대응 책임자라고 소개하는 느낌이죠.
짜치게 소개하자면 저는 컬처덱을 만듭니다. 조직문화 컨설팅은 컬처덱을 만들려다 보니 필연적으로 하는겁니다. 아니 내용을 만들려면 뭘 물어보고 찾아내고 해야 할 거 아닙니까.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죠. 근데 그게 그냥 과정이예요 그러면 다들 [아니 거 문장 하나 만드는데 왜케 복잡해요]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컨설팅해요우~ 라고 말하면 다들 크게 납득해버림.
우린 회사소개서도 만듭니다. 원래 5년 전까지 소개서 만든다고 대대적으로 소개하다가 컬처덱이 잘되서 쏘옥 들어갔긴 했거든요. 생각해봐요. 소개서를 만들려면 당연히 그 안에 들어가야 하는 내용이 있어야해. 근데 달라고 하는데 없어. 없으니까 나를 불렀겠지. 있으면 본인들이 했을 거잖아요. 물어보고 찾아내서 만드는거잖아. 글도 쓰고, 디자인도 하고, 내가 기획도 하고 컨셉도 잡아. 댓츠 마이 좝.
그래서 사실은 제가 하는 일의 본질은 [남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잘 써주는 것]입니다. 그게 돈벌고 싶은 메시지면 소개서나 제품소개, 브랜드스토리 어쩌고가 될 겁니다. 구성원을 위한 메시지면 컬처덱이 되겠죠.
이런 일을 10년 내내 해왔는데, 갑자기 뭐 또 쉽고 구체적이고 우리만의 색깔을 전하는 시대가 왔다는거야! 그리고 그 직업의 이름이 뭐다? 스토리텔러다아!
참 재밌는게, 컬처덱 만들어요! 소개서 만들어요! 라고 하면 이게 감흥이 없습니다. [에이...그걸 만드는데 돈을 주긴 좀 아깝지...하는거죠. 그러다 [스토리텔링 해드려요]했어. 그러면? 갑자기 스토리텔링? 쏘 뷰리풀... 하면서 너도나도 [스토리텔링 하겠다, 뽑겠다,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의 코어다.] 이렇게 되는거야. 사람이 묘하게 발음에 치이는 거라고. 같은 일인데도 만약 '기업의 이야기꾼'이라고 했어봐요. 어쩌겠어. 웬 잡놈이냐! 썩 물렀거라 입구컷이라고. 확실히 브랜드 스토리텔러, 딱 그러면 있어보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딱히 달라지진 않았지만, 인자부터 저는 스토리텔러가 되기로 했습니다. 긍까 여러분도 확실하게 기억해주세요. 이제 컬처덱과 소개서를 만드는 애프터모멘트 대표 박창선은 없는거여. 우리는 샤흐리야르 앞에서 나불대는 세헤라자드처럼 기맥힌 스토리 수십 페이지를 고객 눈 앞에 흔들어버릴거야. 유려하고 빛나는 단어들을 쌈싸서 한 입에 먹어버린 고객님과 구성원들을 이븐하고 메시지 본연의 맛의 밸런스가 기막히게 탁탁탁 치고 들어오는 그 맛에 홀려서 합격버튼을 누르는 안성재마냥 정신차려보면 계약서에 도장찍게 만드는 그런 스토리텔러만이 있을 뿐.
다 뒤져써 이제 스토리로 세상 엎어브러. 나는 스토리텔러입니다. 홈페이지도 바꿈. 멋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