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바야흐로 청소 뽐뿌가 올라오는 최적의 온도가 되었다. 17도 정도면 들고 나르고 쓸고 닦기 적당하다. 최근 사무실 바닥의 거뭇한 것들이 못마땅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비타500을 쏟은 김에 봄맞이 대청소를 하기로 했다. 처음엔 늘 부르던 업체를 통해 진행하려 했지만 23만원이나 내고 바닥만 닦기엔 최근 토스뱅크 로그인 할 때마다 영 마음이 좋지 않은 상태라 마음을 접어본다. 반도체 관련주와 포스코퓨처엠은 아주 아작이 나버려서 서글픈 마음을 애써 억누르는 중이다. 구조대가 올때까진 감자와 고구마로 연명해야 할 판이다.
아내는 같이 청소를 하자고 했다. 나는 영 내키지 않았다. 청소란 신성한 행위이다. 한 공간을 재정립하고 나의 땀방울과 근육으로 세계를 건설하는 존나 심시티같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다. 청소를 하는 방식과 프로세스, 그리고 나의 리듬대로 쓸고 닦고 농땡이를 피우는 조화로움이 핵심이다.
같이 청소를 한다는 건 이 모든 것이 부정당하고, 오로이 명령과 지시에 의해서 움직이는 수동적 인간으로 퇴보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상 '같이'라는 단어도 부적절하다. 같이라 함은, 동등하고 균등한 일거리와 땀방울을 분배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아내가 말하는 같이란 한 공간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책상을 옮기거나 쓰레기를 치우는 순서,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는 방식까지 모든 것의 질서를 그녀가 지배할 것이다. 그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녀는 '같이 하면 빨리 끝나지 않겠냐'라고 한다. 댓츠노노. 그렇지 않다. 빨리 끝나지 않아도 좋다. 나는 청소에 효율을 두지 않는 편이다. 청소란 모름지기 주다스 프리스트의 painkiller를 겁나 크게 틀어놓고, 거칠게 피어오르는 '더러움에 대한 경멸과 그것을 모조리 지우고 구축하겠다는 투지'를 불태우는 것이다.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얼룩과의 거친 사투끝에 결국 깨끗해진 승리를 거머쥐는 그런 순간들의 연속인 것이다. 그러니 빨리라는 단어나, 같이라는 단어 모두 나에겐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결국 집에서 편히 쉬라며, 애정어린 배려와 웃음을 보낸 뒤, 나는 사무실 문을 걸어잠그고 비밀스럽게 하드우드 세정제를 뿌리는 것이다. 강렬한 락스향기와 내 맘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아무데나 두고 청소할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옷에 물이 튀어도 괜찮고, 사방을 지저분하게 만들며 찌든 때와 싸워도 뭐라할 사람이 없다. 어차피 끝나면 다 정리할 것이다. 과정은 혼돈스러워도 좋다. 노래를 크게 틀자. 헤드폰을 써도 좋다. 어차피 부를 사람도 없을테니. 모름지기 청소는 혼자하는 것이다. 같이하는 청소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또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