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과 균형의 미학
터널을 시속 50킬로미터로 달리는데도 아찔했다.
차체가 심하게 흔들리며 꿀렁대는 것이 마치 바다 위의 배처럼 불안정했다.
서스펜션이 망가진 것 같았다.
바퀴 아래에서 올라오는 충격이 고스란히 좌석과 등받이를 뚫고 전해졌다.
그때 문득 요가 매트 위에서의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몸뚱아리가 온전하더라도 내가 내 몸을 모르면 다치게 되겠지.’
차의 서스펜션이 차체와 노면 사이의 충격을 흡수하듯,
우리 몸에도 보이지 않는 ‘서스펜션’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가를 하면서 자주 마주치는 건,
바로 자기 몸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어깨가 올라가 있는 줄도 모르고,
한쪽으로 기울어져 서있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호흡이 얕아져 있는 것도 모르는 채 살아간다.
우리 몸도 정기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오늘 내 몸은 어떤 상태인가?”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는 순간,
요가 철학에서 말하는 ‘스와디야야 Svadhyaya (자기 관찰)’가 시작된다.
아사나를 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근력과 유연성의 균형이다.
너무 유연해도 안 되고, 너무 힘만 써도 안 된다.
전사자세에서 다리는 강하게 뿌리내리면서도 상체는 자유롭게 뻗어나가고,
백밴딩에서 가슴은 열리지만 허리는 과하게 꺾이지 않아야 한다.
이런 미묘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아사나 수련의 핵심이다.
공자는 “과유불급 過猶不及”,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했다.
노자는 “지인자지 자지자명 知人者智 自知者明”,
남을 아는 것은 지혜요, 자신을 아는 것은 밝음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강경하게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 모든 지혜가 매트 위에서 만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것아 바로 진정한 ‘움직이는 요가 수련자’가 되는 시작점이다.
차 서스펜션도 마찬가지다.
너무 단단하면 승차감이 나쁘고,
너무 부드러우면 차체가 불안정해진다.
삶도 그렇다.
너무 긴장해서 살면 스트레스로 쓰러지고,
너무 늘어져 살면 게을러진다.
요가 매트 위에서 이런 균형점을 찾아가는 연습은
삶의 균형점을 찾는 연습이기도 하다.
아사나는 단순히 자세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통합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경직되지 않고 유연하게, 하지만 중심을 잃지 않는 채로.
지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그 절묘한 균형점에서 찾아지는 진정한 자유로움,
이것이 바로 중용의 지혜가 아닐까.
<흐르는 것들, 머무르는 마음>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아침,
흐르는 일상 속에서 머무는 마음을 찾아가는 요가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