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와 요가: 수련처를 찾아가는 여정
맹모삼천지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맹자의 어머니는 묘지 근처에서 시장 근처로, 다시 학교 근처로 세 번이나 이사를 한다.
아이에게 더 나은 배움의 환경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 고사는 지금 우리에게도 말해준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요가 수련에서도 이 원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사람들과 함께 수련하느냐는
수련자의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에만 집중하는 곳과,
요가의 철학과 정신까지 함께 나누는 곳은
수련자에게 전혀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나에게도 그런 곳이 있었다.
집과 가까웠고, 익숙했기에 수련이 꾸준히 가능했던 요가원.
그곳에서 나는 애정을 담아 꾸준히 수련했고,
몸의 변화를 느끼며 성취감을 맛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곳에만 안주하려고 했던 나를 발견했다.
마치 요가의 정답을 찾은 것처럼 방심했달까.
익숙함은 때로 함정이다.
편안함 속에서 우리는 성장을 멈추고,
더 깊은 탐구를 게을리하기 쉽다.
나는 그 요가원에서 아사나의 형태는 익혔지만,
과연 요가의 본질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새로운 요가원은 내가 익숙했던 곳과는 사뭇 달랐다.
스피커를 채우는 음악 대신 고요함이 흘렀고,
선생님의 세세한 리드 대신
마이솔 수련 형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어딘가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인도의 깊은 자연 속 수련원이 이런 곳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나는 도시 한복판의 매트 위에 서 있는데
창문 밖 바로 옆 상가의 공사소리마저
자연의 배경음처럼 들렸다.
우리가 실제 살아가고 있는 소리들처럼.
음악 없는 고요함 속에서 모든 소리가
수련의 일부로 다가왔다.
그 정적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호흡소리를 제대로 들었고,
내 몸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진정 ‘나를 위한 수련’ 같았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완벽한 수련처를 찾는 것은 평생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을 찾는 것 자체가 올바른 방향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본래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다르고,
지금 내게 맞는 수련과 몇 년 후 내게 맞는 수련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한 곳에 정착하여 안주하려는 마음 자체가
요가의 핵심인 '집착하지 않음'(non-attachment)과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도교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디서든 주인이 되고, 서는 곳마다 참된 곳이 된다'는 말이 이를 잘 표현한다.
맹모삼천지교의 지혜를 받아들이되,
그것에 매이지 않는 것.
좋은 환경을 선택하려 노력하지만,
그것이 없다고 해서 수련을 포기하지는 않는 것.
결국 가장 중요한 수련처는 자신의 마음이다.
그 마음이 안정되어 있으면
작은 원룸에서도, 너저분한 거실에서도
어디서든 요가를 할 수 있다.
환경은 도구일 뿐, 수련의 본질은 내 안에 있다.
이것이 바로 '움직이는 수련자'의 자세다.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끊임없이 경험하고
어떤 환경에도 의존하지 않는 자유로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성장을 위해 움직이되,
어디서든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유연함.
요가 수련을 통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조용히 성장하며, 성숙해지는 과정.
이것이 동서양을 관통하는 수련의 참된 의미일 것이다.
<흐르는 것들, 머무르는 마음>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아침,
흐르는 일상 속에서
머무는 마음을 찾아가는
요가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