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할머니는 장구를 작은 방에서 들고나오신다.
저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웅장하고 감동을 주는 홀로 아리랑의 가사.
나는 매번 들을 때마다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의 부분이 나오면 울컥하곤 한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었던 노래라 그런지 신기하게도 육아하면서 힘든 순간에 이 가사가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동영상 화면 속에는 어린 둘째 딸이 유니콘 원피스를 입고 서 있다. 머리에는 작은엄마가 명절에 만들어 준 한복과 어울리는 리본 머리띠를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니 이 때의 둘째딸 얼굴엔 우윳살이 가득했다.
“나 못 할 것 같은데...
저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입술이 야무지게도 움직이며 또박또박 말을 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홀로 아리랑 가사를 불러낸다. 끊어내기나 꺾어 부르기를 하는데 어찌나 귀여운지 모른다. 손가락을 조물조물 만지며 손톱을 뜯는 습관도 영상에서 보이는데 노래를 부르며 장구를 주물럭거리기도 한다.
“인 사~” (노래 그만하라는 신호)
“백두산 두만강에서 배 타고 떠나라, 한라산 제주에서 배 타고 간다~”
마무리의 신호를 무시하고 입에서 ‘백두산 두만강’이라는 가사를 뱉어낼 땐 또 웃음의 포인트다. 이 영상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라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았다. 역시 엄마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딸 모습만 봐도 눈에서 꿀과 눈물이 뚝뚝 떨어지니 말이다.
다시 이 영상을 보게 된 건 여동생을 통해서다. 불쑥 가족 채팅방에 영상을 공유했다. 이모가 수업자료 정리를 하다가 아이들 지난 영상들이 너무 귀여워서 공유하고 싶었다고. 영상 속 이 날은 옛날 이모 지하 연습실에서 수업하던 날이었다. 방과 후 1주일에 한 번씩 이모가 가야금병창 레슨을 해준다. 할머니가 동행하곤 하는데, 어느 날엔 가야금 병창 수업이 민요수업이 된다.
“취미가 무엇인지 발표하는 시간을 갖겠어요.”
“저는 취미가 장구와 판소리예요. 판소리 한 대목을 할게요.”
“판소리?”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정 바라보니~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떴다 봐라 저 종달새~
석양은 늘어져 갈매기 울고
능수 버들가지 휘늘어진데
꾀꼬리난 짝을 지어~
이 산으로 가면 꾀꼬리 수리루 ~ 응응 어허야~
둥가 둥가 내 사랑이로구나!”
판소리가 취미라고? 선생님의 놀란 눈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도시 내 초등학교 교실 안에서 취미로 판소리를 부르는 비전공 학생은 과연 몇이나 될까?
내가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새 학기 자기소개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취미를 한가지씩 준비하라는 기억이 난다. 취미를 장구와 판소리라고 당당히 발표하고 판소리까지 했던 나라니! 지금 생각해 보면 판소리를 흉내 내는 정도의 실력이었을 테다. 그저 귀여운 학생이었다 생각해 주시길 바란다.
그때 당시 국악을 하던 동생의 영향으로 나의 취미도 장구나 판소리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스쳐 간 취미다. 엄마도 어렸을 적부터 전통무용과 국악에 대해 애정이 있었는데, 그 피를 여동생이 물려받았고, 엄마는 시간이 흘러 취미 삼아 여러 국악 교실에 몸담고 계신다. 덩달아 나도 엄마를 따라 신명나는 장구 교실도 다니면서 설장구의 흥을 경험하기도 했다. 엄마가 다니는 수업장소는 커뮤니티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기에 아이들은 드물었다. 그 어른들 틈에서 세상을 어울려 살아가는 데 있어 남녀노소의 경계를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웠다.
엄마가 생각하는 취미 국악 철학은 ‘흥’과 ‘한’이다. 특히 판소리를 할 때면 가슴 가운데 뭉쳐있는 ‘말로 못할 어떤 감정들’을 내뱉는 기분이라고 하신다. 나름의 시댁살이 시절과 고단한 지난 시절들에서 쌓인 슬프고 억울함, 뭐 이러한 일련의 감정을 흥으로 승화하는 셈이다.
우리 아이들이 국악을 하지 못할 정말 어렸을 시절에는 엄마가 아이들과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소리를 지르는 놀이를 한다. 말이 트이지 않은 아이들이 할머니를 따라 깜깜한 터널을 지나며 신나게 소리를 뱉어낸다.
“애들도 말이 못해서 그렇지, 얼마나 쌓인 게 많겠어!
이렇게라도 스트레스 풀어야지!”
그렇게 소리를 질러냄으로써 부정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이다.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터널을 만나면 지금도 한 번씩 온 가족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심지어 남편까지도 말이다. 엄마는 이런 마음속 응어리 풀어내기 요법을 우리에게 자연스레 전파하신다.
오늘도 할머니는 장구를 작은 방에서 들고나오신다.
“자, 우리 ‘옹헤야’ 한번 불러볼까?”
옆에 쉬고 있던 이모도 자연스레 몸을 일으켜 아이들 가운데 앉는다. 나는 그 흥과 가사 때문에 코미디 프로 보듯이 옆에서 웃고 있노라면 엄마한테 웃지 말라고 핀잔을 듣는다. 열심히 배우는데 흐름 깨지 말라는 뜻이다. 그렇다, 민요 시간에는 나만 빼고 다들 사뭇 진지하다.
“옹헤야 어절씨고 잘도 한다 옹헤야
~ 단 둘이만 옹헤야 하더라도 옹헤야~
:
삼월지나~ 옹헤야 사월들 제 옹헤야
사월남풍 옹헤야 대맥황을 옹헤야~
:
팔월신선 옹헤야 함이로다 옹헤야
옹헤 옹헤 옹헤 어절씨고 옹헤야~”
“잘한다! 얼쑤! 좋~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추임새를 넣으며 격려를 하고, ‘옹헤야’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린다.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