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의 빛나는 팀워크

오늘도 우리의 하루는 조부모의 팀워크와 함께 빛나고 있다.

by ROZY


언제 아이의 지혜가 밝아져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알게 될까

할아비의 뜻을 헤아려야 할 것이니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참으로 지극한 정이다

응당 후일에 알게 될 터

느끼게 되는 날 있을 것이다

이것을 깨달아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으면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여 움직이게 되리라

아! 나 또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스스로 포기해야지 다른 방법이 없구나

- 양아록, 이문건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 김찬웅



조선시대에도 할아버지의 손자 양육 일기가 존재했다. 아이가 얼마나 귀했고, 육아의 태도에 있어 얼마나 신중했는가, 아이를 잘 키워 내려는 어른들의 모습이 지금의 모습과도 별 다를 바 없다고 느껴졌다.


여느 할아버지처럼 우리 아빠의 프로필 사진에는 손주들의 모습이 올려져 있다.

3장의 손주들 사진이 콜라주된 사진, 2~3세 때의 아가 사진들이다.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탓인지 그 사진으로 멈춰있다. 그런데 아무 말 안 한다. 우리도 그 무렵 아이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으니까. 아이들이 클수록 아가아가한 때의 모습이 더 애틋한 건 왜인지 모르겠다.


주말 나들이를 가자며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나들이 갈 때 매번 고민한다. 두 분의 주말 휴식 시간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내 딴에는 상황을 살피는 거다. 어느 날에는 주저 없이 바로 출발하시는 날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함께 나들이를 가지 않는 날에는 두 분이 함께 온천이나 목욕을 다녀오시거나 최근 업그레이드한 스피커로 홈씨어터를 즐기신다.

“우리, 언제 한번 바다 가자.”


엄마가 말하길, 아빠에게 바다란 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을 이야기한다고 하였다. 부모님이 어렸을 적엔 가족이 해외여행을 활발히 가지 못했던 시절이라 국내 관광지 여행을 다니는 시간도 소중했다. 특히 바다로 떠나는 여행은 일상을 벗어난 무릉도원이 아니었을까?

“바다에 들어갈 수 있어?”


해맑은 손녀의 물음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할아버지다.


“파도도 있고, 바닷물은 짜.”

“파도풀 같은 파도?”

“응, 수영장 파도풀 가봤지? 할아버지가 잡아줬잖아. 근데 바다에 가면 진짜 파도야. 옛날에 너희 엄마 바다에서 뱃살 다 보이면서 신나게 놀았는데. 너희 이모는 목청이 다 보일 때까지 울었어. 어디 사진이 있을 텐데….”


돌이켜보면 아빠도 우리가 어렸을 때의 시간을 얼마나 함께하고 싶었을지 헤아려 본다. 그때는 가장의 무게에 억눌려 가족이 먹고살아야 하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마음밖에 없으셨을 테다. 그러다 보니 이제야 아이들의 작은 행동이 더욱더 많이 보이시겠지. 서투른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워가는 과정에서 울고 웃는 모든 감정도 사랑스럽게 느껴지실 것이다. 동시에 막상 우리 삼 남매가 어렸을 때 육아를 온전히 엄마에게 맡긴 것이 미안하고, 고마우신 거겠지.

“너희 어렸을 때도 아빠가 이렇게 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 못한 거 요즘 실컷 경험한다. 너희 아빠.”


엄마의 말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있다.

엄마도 아빠도 이렇게 오랜 시간 붙어 있는 시절이 있으셨을까 싶다.

두 분도 서로 적응하며, 맞춰가는 중이다.

엄마, 아빠도 할머니 할아버지 역할이 처음이기에 서툴고 고단한 때가 많을 것이다.

우리는 월요일 재회한다. 할아버지는 출근하시거나 출근을 안 하시는 날에는 손녀들 등교하는 모습 본다고 학교 주변을 산책하신다. 하교하면 할머니표 프렌치 토스트나 가래떡 구이가 우리를 반긴다. 책상 위엔 오늘의 할 일과 아이들의 학원 스케줄표가 놓여있다. 아이들과 함께 자연스레 나도 생활의 지혜를 배우고, 부모님의 정성에 온 가족이 무럭무럭 커나가고 있다.


육아에 대하여 우리는 모두 표현 방법이 다를 뿐, 조선시대 아니 훨씬 그 이전의 과거부터 나를 내어주고 또 내어준다. 한결같은 부모의 내리사랑으로 연대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이 인간의 삶,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오늘도 우리의 하루는 조부모의 팀워크와 함께 빛나고 있다.

이전 11화할머니의 민요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