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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ZY Jun 12. 2023

감정 문해력 수업

감정 문해력 수업, 유승민


하루는 어떤 아파트 단지를 들어가게 되었다.

볼일이 있는 곳은 아파트 내부의 커뮤니티 시설이었는데 방문자 입구 앞에서 차를 대고 경비실 호출을 눌렀다. 호출 벨만 쩌렁쩌렁 울리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취소를 하고 재차 호출을 눌렀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당황해서 허겁지겁 핸드폰을 들고 방문해야 할 커뮤니티 전화번호를 찾고 있었다. 뒤에서 차 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출입카드를 찍는 아저씨의 손이 보였다.


어느새 내 차 뒤로 운전석 문이 열려있는 택배차가 기다리고 있었고 카드 찍는 손의 주인공은 바로 택배아저씨였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으나 인사를 꾸벅하니 택배아저씨는 쿨하게 손짓을 했다. 손바닥을 들어 ‘감사는 사양할게’라는 듯 방어하는 손짓 같기도 했지만 아저씨의 배려가 느껴졌다.


'경비 아저씨가 자리 비워서 문이 열리지 않아 당황스러웠지? 괜찮아, 내가 열어줄게!'

'네 감사해요!!'

'훗, 감사까지야'


뭐, 이런 무언의 대화가 오고 간 것이다.


그리고 각자 주차를 하고 목적지가 있는 현관 로비 앞으로 가서 세대 호출을 눌렀다. 내 왼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까 그 택배아저씨다.

옆에 오시더니 쓱 출입카드를 찍어주셨다.

나는 '잡상인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아, 저 1층 가거든요..”


아저씨는 배려 및 반사 손짓을 한 번 더 보여주시고 택배들을 들고 바삐 들어가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내 경험이다. 그 당시 상황을 글로 적으며 생각해 보니 웃음이 나온다. 아저씨의 30도 정도 들린 턱과 올린 손바닥으로 인한 츤데레 느낌. 아저씨 앞으로 얼쩡거리며 쩔쩔매는 어깨 좁은 방문자였던 나. 이렇게 눈치껏 최소한의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재미.


이 책의 열 번째 글, ‘말보다 빠르고 글보다 강력한 것’의 내용에서 내가 경험한 상황을 연결하여 공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감정 문해력'은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이 타고난 소중한 능력이라고 말한다. 바로 감정 문해력이란 언어를 섬세하게 운용하는 수만 가지 시점 가운데 하나를 의미한다.


고맥락 사회의 모호한 언어들에서 나타나는 감정 문해력에서 침묵, 눈치, 암묵지, 거시기 등의 내용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에피소드로 이해하기 쉽게 유승민 작가의 위트 있는 문체로 하나하나 풀어준다.


실은 읽기 전 '감정 문해력 수업'이라는 제목을 보며 혹시 내용이 딱딱할까 염려되었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책을 들자마자 그 걱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모호한 언어들로 인한 실제 사례들이 자료 영상 보듯 살아나 술술 읽혔기 때문이다.




대화에 어긋난 틈의 사이사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세한 마음, 무언의 메시지,
목소리와 눈빛들로 채워진다.
그것들을 끊임없이 간파하려는 정서를
우리는 눈치라 부를 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하며 산다. 유승민 작가는 '남과 행동을 맞추고, 의사소통을 터득해 나가는 협력의 DNA, 대부분의 사람이 망각하고 지내지만 사실 옹알이를 하던 시절부터 이러한 기술을 습득한다'라고 말하였다. 이 기술이 복잡한 인간관계와 문화의 세계로 이어지는 관문인 셈이라고.


'감정 문해력 수업' 책을 읽고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더욱 세심하게 관찰하게 되었다. 이 책으로부터 제3자의 눈으로 사람 사이 의사소통 • 상호작용에 대해 바라보는 맥락을 파악하는 재미를 하나 더 얻었다.


눈치란, 눈으로 소통하려는 본능과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는' 우리네 정서가
 한 스푼 얹어진 결정체인 셈이다.



* <책이라는 거울> 연재물은 ROZY가 운영하는 ‘매일 열리는 ROZY’s 서재’의 도서리뷰 포스팅에서 북에세이 형식으로 추가 수정하여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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