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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reedom plus

<청중에 대한 두려움을 잃다>

두려움을 잃게 만드는 경험이 있었다.

by Roman

지금껏 남들이 만든 영화들과 남들이 쓴 글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남겨왔다면 오늘쯤에는 나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이야기를 남겨야 하는 타이밍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영화나 소설만이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쓸 동기나 소재가 될 필요는 없구나라는 생각은 또한 다른 블로그의 작가분의 글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생각의 감염은 비단 리처드 도킨스라는 진화심리학자가 쓴 "이기적 유전자"에서 나온 생각 또는 사고, 문화, 지식의 유전자로 불리는 "밈(Meme)"이라는 개념을 빌리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는 작용이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쓰기의 파워는 이미 지식화 되고, 정보화되고, 체계화되고, 공인받은 글쓰기보다 '속도'와 '실생활 적용', 이 두 가지 차원에서 보다 강력한 "행동"을 가져온다.



그렇다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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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전면 개정판)(교보문고 30주년... | 저자 리처드 도킨스 / 을유문화사


나는 이른바 연예인의 성격으로 불리는 ESFP로서, 칼 융의 정신분석 이론으로부터 파생된 MBTI 성격/적성 테스트 결과 외향적이고, 감각적이며, 감정적이고, 인지적인 쪽으로 다소 내지는 많이 치우친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몸소 진화심리학을 연구하신 동갑내기 지인의 설명에 의하자면, 그런 분류에 속해 있다고 믿고서, 여기에 갇혀 지내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또한 없다.


혈액형이나, 성격 테스트나, 띠별 운세나, 별자리 운세나 그 모든 인간형 구분 작업들이 사실상 이 다종 다양한 개인들의 섬세한 개성과 처해있는 환경의 차이에서 빗어 나오는 모든 난수를 철저히 계산해서 정확한 그 "개인"을 규명하거나 판단하기에는 아직 '과학적인 규명' 작업이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가 그의 논지를 내가 이해한 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액형 분류에 거의 절대적이랄만큼의 가치를 부여하는 한국 사회의 통념과 싸우기도 귀찮고, MBTI 검사를 일종의 지적인 인간형 분류작업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아진 세상과 마주 싸울 시간과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일단은 편의상 이런 식으로 그런 분류법을 사용하게 된다. 설명이 간단해지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나는 외향적이라는 딱지를 떡하니 이마에 붙이고 나온 사람이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넉살 좋게 뽀뽀를 먼저 해대는 아이였고, 학교에 들어가서 똑똑한 척 아이들과 선생님을 상대로 잘난 체를 하고 다녔던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성격이 그냥 내가 태어나면서 숙명적으로 물려받은 천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략적으로 20% 정도가 유전적인 요소가 이런 성격을 만드는데 작용되었다면, 80%는 환경적인 요소가 나를 "외향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첫 번째 경험은 4-5살경에 있었던 피아노 콩쿠르 대회에서 있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도쿄 호텔'에서 피아노 소곡집에 있는 '인어의 노래'를 연습해서 무대에 올라간 나는 이상하게도 연습 때는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던 연주가 틀리는 경험을 했다. 그것은 정말로 내게는 이상한 것이었다. 왜냐면,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 연주를 듣는다고 해서 내가 긴장한다거나 내 실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청중들이 자신의 연주에 귀를 기울인다고 해서 자신이 당황을 하거나 실수 할리는 없다는 조그만 꼬마의 신념(?)은 그렇게 '잔혹한 현실'에 배신당했다.


이 꼬마는 수많은 청중들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이 꼬마 연주자의 심장을 벌렁거리게 만든다는 사실도 몰랐고, 이 꼬마가 썩 연주를 잘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몰랐으며, 오직 자신의 피아노 선생과 엄마만이 자신의 연주를 꽤 좋은 연주인 것처럼 이야기했을 뿐 실제로 수많은 청중들을 대상으로는 한 번도 검증 안된 연주를 오늘 이 큰 무대에서 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는 전혀 설명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꼬마는 어찌 되었든 연주를 끝마쳐야만 한다는 애초의 의지는 잊지 않았었다. 틀린 지점을 무시하고, 다시 처음부터 연주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한참을 가던 중에 또 한 번 틀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세 번째의 연주를 시작했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다리는 떨렸으며, 머리는 혼미하고, 눈은 침침해져 왔다. 연주가 끝나고 옆의 사회자가 이 꼬마를 향해 연주의 소감을 묻는 마이크를 건네었을 때, 그 녀석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져서 무대 뒤로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 도망쳤었다. 그리고 사실 그 부끄러운 느낌은 아직도 생생히 그 꼬마의 볼에 남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기가 죽지 않고 연습했던 것보다 더 나은 퍼포먼스를 펼치는 강연자들(물론, 여기에는 연주자나, 배우, 가수 등등도 포함될 수 있으리라)은 한 번쯤은 분명히 자기의 신념과 용기에 배신당했던 적이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그 사람들은 이후에 자신의 신념과 용기를 증명하기 위해서 자신의 의지를 통해서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펼쳐질 수 있는 어려움들을 극복하는 방법을 만들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전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 분명히 어딘가에선가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생애 첫 강연이나 연주, 퍼포먼스를 해야 하는 사람, 또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오직 피나는 연습만이 아마도 무대에서 당신을 당황하게 만들지 않고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거라고 '우리 모두'는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곳, 그 무대에는 당신이 이전에 정말로 서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여러 가지 다양한 요소들이 당신의 행동과 말, 그리고 여러 가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큰 무대에 처음으로 설 일이 갑자기 생겼다면, 조금이라도 그보다 작은 무대에 한 번이라도 서봐야 한다고 나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물론, 그보다 좋은 것은 큰 무대에 서서 겪을 실수나 실패를 한 번이라도 미리 해보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시간을 보다 일찍 얻는 것이다.


나는 그 콩쿠르 이후로 어느 곳 어느 장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건 크게 당황해본 적이 없다. 물론, 아주 눈에 띄게 훌륭한 강연이나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을 매번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내 이야기를 전달하고 마무리 짓는 것만큼은 어려움 없이 해내고 있다. 왜냐면 사람들 앞에서 내 생애에 최대한 부끄러웠던 때를 이미 40여 년 전에 제대로 겪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겪었던 부끄러움은 끝내 나를 피아노로부터는 멀어지게 만들었지만, 얻은 것은 수많은 청중에 대해 느꼈던 두려움을 극복한 것이다. 그 이후부터 나의 성격은 상당히 외향적인 쪽으로 변해갔다 (중간에 말도 사람들과 나누지 못할 정도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던 적도 있었지만, 요요처럼 그 어린 시절의 성격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부끄러움과 싸우는 것, 정의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 도덕적인 삶을 생각하는 것, 도전적인 삶을 살아가는 법 등등의 좋은 것들을 미리 경험하게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나는 내 경험을 통해서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권력에 기대어 편히 사는 법, 하기 싫은 좋은 일 하지 않고도 여럿에게 존중받고 사는 법, 남들보다 더 배우거나 더 벌어서 남 깔보는 법, 해야 하는 의무를 행하지 않고 권리만 죽도록 잘 찾아 사는 법을 자주자주 목격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점점 더 불투명해질 따름이다. 그것이 결국에는 우리 국민의 성격, 이른바 국민성이라는 것이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모든 국민들이 다 외향적이 되고, 다 강연에 능숙한 사람들이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조금이라도 외향적이 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거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일찍 그 어려움과 맞서 보아야만 한다고 생각해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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