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더리 워리어가 더 좋은 제목이었을 듯하다.
아쉬운 영화들과 그 영화들에 출연한 아쉬운 배우들이 매년 쌓여간다. 이른바 흥행 불발이나 악평에 노출되는 비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해당 영화의 감독들과 제작자들, 배우들, 영화사들은 그 이름들이 갖고 있는 무게감을 점점 더 잃어가기 마련이다.
무게감을 잃어가던 이 플레이어들은 오랜 침체기를 건너뛰고서 한방에 모든 것을 다시 뒤집을 수 있기를 바라게 되고는 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라든가 미키 루크처럼 영화판에서 쫓겨나다시피 사라졌던 배우들이 다시 돌아와 호평받기도 하고, 평작만 줄줄이 만들어도 인정받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같은 감독처럼 시대에는 맞지 않더라도 왕년의 영광 때문에 그 무게감을 잃지 않는 사람도 있다.
긍지와 자존심이 강한 탓인지는 모르나 "이준익 감독"처럼 연달아 흥행 감독으로서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자 상업 영화감독으로서의 지위를 포기한다고 선언한 경우도 있었고. "장선우 감독"처럼 한 때 많은 제작비를 받아 만든 영화가 실패했음에도 중언부언하며 버티다가 오랫동안 영화판에서 신뢰받지 못하는 감독으로 추락하고 재기했다는 소식을 찾기가 힘들어진 분도 있다.
무엇보다 요긴한 탈출구가 없는 상태로 점점 추락하다 결국에는 다시 날아오른 할리우드 영화판의 플레이어들 중에 어렸을 적부터 계속 기억나는 배우는 "버트 레이놀즈"다. 비교적 최근작인 "부기 나이트"라는 영화를 통해서 결국 영화판에서 인정받는 조연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인정받을 수 있는 연기력을 가졌다는 것과는 별개로 너무 많은 작품에 출연했던 관계로 그에게는 인상적이라 할만한 연기가 오랫동안 관객들의 뇌리에 남아있지 않았었다. 그런 그의 인생과 여러 의미에서 비슷한 주파수를 맞추었던 것인지 '포르노 영화의 관록 있는 감독'이라는 역할이 그에게는 마치 맞춤옷처럼 잘 어울렸었다.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마크 월버그, 줄리안 무어, 버트 레이놀즈, 돈 치들, 존 C. 레일리
정보 드라마 | 미국 | 154 분 | 1999-03-20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68517 이 링크를 보면 그에 대한 보다 간략하고 축약된 내용을 읽을 수 있다. 그가 남긴 말은
"무언가를 아주 오랫동안 고수하고 있으면 다시 멋지게 여겨지는 때가 돌아온다. 나처럼 말이다."이며, 나의 글의 주제는 결국 이것이다.
지리적이고, 공간적, 역사적, 문화적, 시간적이라는 전체 영화사를 관통하는 흐름 속에서 각각의 플레이어가 갖고 있는 평판이나 경험, 인생사, 사람들로부터의 평가가 때로는 이 영화판에서 나름 다채로운 영화들을 경험한 관객들에게는 그 플레이어들이 모이거나 참여해서 만든 영화에 호응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름하는 다양한 요소 중에 꽤 크고도 중요한 부분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에서 관객들의 숨겨진 다양한 시점을 무시한 영화가 어떻게 실패작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 것이 다름 아닌 "워리어스 웨이"였다. 이 영화는 무협도, SF도, 멜로도, 액션도 아닌 판타지 장르에 속할 수 있는 영화였는데, 누구도 이 영화에서 그 혼합된 장르 구성 중 단 한 장르를 통해서라도 충분히 만족하기는 어려웠다. 워리어스 웨이는 그 제작자와, 감독인 이승무 씨, 배우인 장동건 씨에게 허리우드 재입성을 위해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필요로 하는 과제를 안겨주었다고 생각하며 이들이 미래에 그곳에서 각광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 걸어가야 할 길은 험해 보인다.
감독 이승무 출연 장동건, 케이트 보스워스, 제프리 러쉬, 대니 휴스톤, 아날린 러드
정보 액션 | 미국, 한국, 뉴질랜드 | 100 분 | 2010-12-01
이승무 감독 약력(링크)
장동건 배우 약력(링크)
이 영화는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었다. 어떤 영화를 욕할 때, 구제불능이기 때문에 미워서 욕하는 경우가 있지만 때로는 애정이 넘쳐서 좀 더 잘해달라고 떼쓰다 보니 욕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 쓰는 글은 분명히 떼쓰는 후자 쪽이다. 이렇게 떼쓰는 관객들조차 없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출구가 아닐까 싶다. 정말 비참한 경우는 아무도 욕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 없이 사라지는 작품들이며, 기억조차 해낼 수가 없는 영화 제목들이고, 그 영화들에 참여했던 아무 느낌 없는 배우들의 기억나지 않는 얼굴들이며, 검색해서 뭐하는 사람인지 파악할 시간조차 아쉬운 그 영화들의 감독들이다.
인셉션이나 매트릭스처럼 여러 장르를 혼합시켜 만든 영화가 각각의 장르 요소 간의 상승효과를 일으켜서 각각의 장르를 즐기는 사람들을 골고루 만족시키는 효과를 일으키는 영화가 있는 반면, 이 영화처럼 나름 야심만만한 장르 혼합의 시도를 했음에도 그 어느 장르의 팬들에게도 높은 호응도를 낳을 수 없는 작품도 결국에는 만들어진다.
왜 하필이면, 대한민국이 자랑하고파 하는 잘생긴 배우 장동건이 있고, 제프리 러시 같은 연기파 배우와 케이트 보스워스 같은 중량감 있는 배우가 참여했음에도 "워리어스 웨이"는 그 어느 장르의 팬들에게도 높은 호응도를 낳을 수 없는 작품이 되었을까? 그리고 "디워"보다도 낮은 흥행 성적을 내며 초라하게 추락했고, 잔인한 영화라는 틈새시장을 노려서 그래도 손익 분기점은 넘어 수익을 낸 영화로 분류되는 "닌자 어세씬"의 그림자만큼도 따라잡지 못했던 것일까?
그 이유들이 다음과 같았다고 생각한다.
1. 몇 개의 감독과의 인터뷰가 담긴 링크를 보다 보니, 이 영화를 통해서 동화와 액션을 접목하고자 하는 것이 감독의 의도였다고 한다. 아무리 새로운 것에 반응하는 것이 관객들이라고 하더라도 동화적인 내용에 대한 재해석을 곁들인 잔혹 동화인가 아니면 동화의 환타지적인 해석인가 같은 어떤 논리적인 해석의 단서라도 잡아야만 영화에 몰입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창출되는 것에 대한 매력을 찾는 일에 동참할 수가 있다.
두 가지 요소가 그냥 단순히 나열되기만 한다면, 해석, 몰입, 매력의 발견 같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평범한 동화를 보다가 평범한 액션 영화를 한편 보는 일에 무슨 새로운 즐거움이 거한다는 이야기인가?
2. 이 승무 감독님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에 주저리주저리 남겨 놓은 변명들을 보면, 이분이 참으로 바르게 인정받으면서 자라온 분이고 고결한 감성과 이성적인 능력을 가진 분이라는 사실을 많은 부분에서 읽어내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 중에 예산이 생각 외로 늘어난 상황이 되지 않았다면 "런더리 워리어(Laundry warrior=세탁(소) 전사)"라는 제목에 다소 코믹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예산이 늘어남과 동시에 제프리 러쉬와 케이트 보스워스가 합류한 이 영화는 좀 더 장대한 스케일에 점잖은 제목을 붙인 "Warrior's Way 전사의 길"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좀 더 진지한 상업 영화로 탈바꿈했어야 옳았다고 본다. 그렇지만 감독이 의도했던 키취적인 감성이나 좀 더 심각하게 영화를 보지 않고 장난기 어린 시선으로 부담 없이 봐주길 바랬는데 관객들이 그렇게 보지 않았다고 관객들의 오해를 탓하고 있는 인터뷰를 보다 보니, 무엇이 꼬인 건지를 감잡을 수 있었다.
상업 영화를 보려는 관객들이 쉽게 이해하거나 빠져들 수 없다면 그 영화가 잘못 만들어진 것이지 그 관객들이 문제라는 탓을 감독이 할 이유는 없다. 싸구려 키취적 감성을 보여주려 만든 영화였다면 관객들이 알아차리기 쉽게 제목은 "세탁(소) 전사"였어야 했고, 인물들은 좀 더 비현실적이 되어야 했고, 어처구니없이 희화화 될 필요도 있었다. 미국에만 가면 흔히 한국인 교포들이 동네 세탁소를 대부분 점유하고 있는 현실을 오히려 흔쾌히 유머의 소재로 활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고, 교포 사회로부터 티켓을 건질 확률도 늘어날 수 있었다.
3. 영화가 개봉된 이후의 언론 플레이들을 몇 개의 링크를 통해서 본바,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영화 자체의 문제는 일소하고 많은 기사들이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한국 감독이 만들고 한국 배우가 나온 영화에 대해서 한국 관객들이 호응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나쁘지 않게 만들어졌음에도 욕을 먹고 있다는 매우 "국수적인"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었다.
잘 만들어진 영화라면 그 어떤 나라에서 나와도 인정받아야 하겠지만, 관객들이 호응하지 못하고 교감을 받지 못하는 영화라면 그게 모국 감독과 배우들이 나온 영화라고 해도 욕을 먹고 외면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문제점들을 명확하게 파악하기는커녕 일단 감싸는 자세를 보이는 길이 애국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영화에 대한 미디어 언론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이라면 한참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배급사에서 그런 식으로 언론을 호도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라면 이는 더더욱 커다란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반성이 없는 배급/제작 구조의 미래는 뻔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좀 더 좋은 영화를 만들라고 제대로 비판하는 언론이 필요하지 애국심이라는 환상의 꺼플을 씌워 본질을 호도하는 언론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4. 영화가 깔끔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마저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천편일률적인 스토리도 실상 의도한 것이었다고 하니 그대로 믿어 보겠고, 매트릭스 시리즈처럼 워쇼스키 형제가 잘하는 장기인, 액션의 모든 부분에 CG 그래픽을 과도하게 사용한 것도 실상 잘못되었다기보다는 권장할만한 부분일 수도 있다. 하늘에 별이 가득한 영상. 서커스 놀이를 하며 서로들 교감을 느끼는 씬들. 마을의 모습들을 만화적으로 잘 살려낸 CG들, 실상은 한국 영화 들 속에서 시도되었던 것들보다는 괜찮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 과도하게 의존하고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런 그래픽의 요소를 좀 더 줄였더라도 인물들의 내면과 삶을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디테일과 스토리 자체에 조금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 장동건과 케이트 보스워스의 비참한 과거, 서로를 잠시나마 동일시해볼 수 있었던 부분들도 이 영화에서는 제대로 교차되지 않는 느낌이다. 마치 잭 스나이더의 실패작인 "Sucker Punch"의 실패를 미리 보여 주었구나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 영화도 관객들에게 의미 있고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전달하지 못한 것이 화려한 비주얼 뒤에 나타난 패착이었기 때문이다.
5. 이제는 누구나 웹상에서 쉽게 알아버린 공식들이 있다.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한국 배우들이 왜 보통은 다들 액션 영화에 출연하게 되는 것인지. 영어 실력이 모자라기 때문임을 다들 알고 있다. 분위기 잡는 수다스럽지 않은 영웅의 모습을 만들 필요가 있었겠지만, 장동건이라는 배우가 제대로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은 입 다물고 잘생기고 분위기 있는 척이라기보다는 그 자신의 연기력을 어떤 방법으로든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이어야 했다. 입 다문 모습에서 관객들은 이제는 쉽게 감잡는다. 도대체 뭐가 두려워서 입 다물고 있는지를. 그 의도가 아니었어도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영어를 썩 괜찮게 하는 주윤발도 "커럽터"나 "리플레이스먼트 킬러"라는 영화 양쪽에서 심지어 떠벌이처럼 열심히 대사를 남발했었지만 아주 좋은 흥행 성적은 내지 못했다. 그가 좀 더 입을 다물었던 "리플레이스먼트 킬러"는 좀 더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다. 대사를 최소화하고 신비감을 높이는 전략을 세웠지만, 그것이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에 찍은 "방탄승"같은 누아르 풍을 벗어던진 영화에 와서야 목소리도 아주 좋은 그가 기품이 있게 내뱉는 영어 대사가 할리우드를 타깃으로 하는 작품의 격을 올리고 흥행을 낳는 데 있어 도움이 되었다.
6. 아시아 배우들의 국적을 애매모호하게 바꾸어 놓은 이유도 관객들은 잘 알고 있다. 이승무 감독은 영화 속에 한국색을 불어넣기 위해, 사물놀이 장단을 집어넣고, 배우 이름을 드러냈음에도, 대사에서 드러내는 것의 어려움 때문에 한국어나 기타 아시아어를 사용하거나 아시아인들의 국적을 영화 속에서 드러내는 것을 지양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아이러니는 미국 서부의 모습과 미국인들은 그대로 드러나더라도 그 이외의 아시아인들의 모습은 저 알 수 없는 환상의 세계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설정에서 드러나 버린다. 영화가 갖고 있어야 할 일관성, 논리적 일체성, 관객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신선함 등의 일체를 거두어 내고 두려움에 빠진 채로 만들어진 영화가 이 영화다라고 여러 곳에서 이 영화는 말해주고 있다.
주윤발이 인정받기 시작한 할리우드 영화의 지점은 정확한 아시아인의 정서를 전달하는 지점부터였다고 생각한다. "애나 앤 더 킹"의 성공은 그가 중국인이었음에도 영어를 사용하는 태국의 왕을 율 브린너가 한 것보다 더 현실적으로 잘 소화했기 때문에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7. 물론,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신감으로, 허영심에 빠져 만들어진 디워가 우리 영화계에 끼친 해악에 비해서 워리어스 웨이의 실패는 그럼에도 상기의 문제점들을 수정하고 다시 도전한다면 나아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데 많은 희망을 갖고 있다.
다만 장동건이라는 배우의 앞 날은 할리우드 안에서 당분간은 더 많은 도전과 이미지의 쇄신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 같다. "버트 레이놀즈"처럼 아마도 꾸준히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할리우드에서도 인정받은 "주윤발"과 같은 이미지로 나타나게 될 날도 오지 않을까?
이제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이나 아시아라는 지역의 지역색이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도 약점이 되기보다는 좀 더 팔릴만한 강점으로 작용하는 시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동양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으로 불리는 "환상"은 서양인들이 동양 무술과 철학을 배우고, 매년 한 번쯤 관광을 오고, 웹사이트에서 아시아인들과 서로 신나게 욕설을 주고받으며 싸우는 동안 깨져왔다(그래서였는지 이런 현실은 일부 반영되어 영화 속의 비현실적인 무공의 무사 암살자들은 마주친 서부 건맨들의 총탄에 죽어 나갔지만).
장동건이라는 비주얼이 훌륭한 배우에게 액션보다 더한 매력적인 입담을 붙여주지 못한 것, 케이트 보스워스의 육감적인 매력을 다소 촌스럽게도 "악당 두목"의 성폭력을 당하는 방식으로만 영화 속에서 드러내었던 것, 그럼으로써 악당 두목이 죽었을 때, 유일하게 노출을 진행해주던 중요한 인물이 아쉽게도 죽었다고 남성 관객들이 느끼게 만들었던 것, 제프리 러쉬의 깊이 있는 매력적인 연기가 제대로 발현되지 못했던 것 등등의 모든 실책들을 이 영화의 감독과 연출, 시나리오를 진행했던 분들은 철저하게 반성해야만 한다.
그리고 후속작에서는 이런 것들로부터 탈피한 어느 지점을 찾아내야만 한다. 사물놀이 장단이 영화에 포함되었다는 애국심 마케팅에나 들어맞는 양념을 하나 발랐다고 관객들이 그게 한국색을 표현했다라거나 사랑해주어야 할 영화라고 느끼는 시대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현실로 인식하는 것부터가 선행 과제다.
아시아 속에 있는 정말로 서양인들이 꺼내 보지 못한 고유한 어떤 부분을 드러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으며,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영화 안/밖에서의 이미지와 삶이 투영되는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호사가들로 범벅이 되어 있는 할리우드를 둘러싼 언론들을 통해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버트 레이놀즈"처럼 자기만의 색상을 가진 배우가 감독이 잘 재단해서 만들어진 정말로 꼭 맞는 옷을 찾아 들어가 연기한 것 같은, 주요 배우들과 진심으로 궁합이 맞는 영화를 디자인해야 한다. 그것이 이번의 실패를 기반으로 다시 할리우드 진출의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을 누군가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이 실패 이후 우리나라 자본을 사용한 우리나라 영화인들의 또 다른 블록버스터 제작을 통한 할리우드 진출 도전을 "설국열차"가 업그레이드 해서 상대적으로 더 낫게 이루어 내었다. 당시에 아직 1%가 부족했었다. 이번에 또다시 봉준호 감독이 만드는 "옥자"가 이 1%마저 채우고, 당당히 박스오피스의 상위를 차지하기를 기대해본다.
내막은 더 있겠지만, "워리어스 웨이"는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중요한 예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