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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Sep 17. 2016

<공자>-윤리의 재정립

중국이 국가의 윤리를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 세우려는 것 같았다.

예수와도 같은 이미지를 제시하려고 한 느낌이 많이 든 영화였다.

공자 - 춘추전국시대 (2010)

Confucius

감독

호 메이

출연

주윤발, 주신, 진건빈, 육의

개봉

중국 | 액션, 드라마 | 2010.02.11 | 12세이상관람가 | 108분


"내가 쓴 이 글들을 통해서
후세들은 또한 숱한 오해들을
갖게 되겠지......".


영화는 종종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어온 수단이다.

소련 시대 공산당의

이념 홍보용으로,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연합군의 자유 이념 홍보용으로,

히틀러에겐 나치 이념 및

본인 홍보용으로

이 매체는 매우 효과적으로

대중을 움직이고 있다.


냉전 체제가 매우 오랫동안

견고했었고, 2차 대전이 일어난

배경에 남아 있는 영화의 효과를

다시금 되새김질할 새도 없이.

자본주의 체제를 견고하게 세우고,

동성애자를 사회의 전면에

다시 세우고, 친환경 운동을

선도하며, 각종의 캠페인,

정치적인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

영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각종의 영화관에서

정치적인 의사 전달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공자는 다름 아닌

고유의 철학적인 기반인

유불선 사상과 이념적 기반인

공산주의를 상실하고 있는

중국 대륙에, 이른바

사회 지도 체계가

자본주의로의 사상/이념의

잠식을 겪고 있는 중국인들에게

던지는 지도 이념을

새롭게 세우려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우리 역시 공자의

사상인 유교의 영향을

지독하게도 체득해왔다.

성리학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나라에 더 영향력이 크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주는

메시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공자가 주고 있던 메시지와는

매우 다르게 느껴진다.

 

병법과 외교적인 판단에 능한 공자,

사랑과 우애 정으로 가득한 공자,

주군과 모국에 충성하는 공자,

가족을 내버리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모국을 떠나야 했던 공자,

설움 받으며 18년을 방랑했던

공자는 문자와 사상으로만 접해왔던

공자와는 솔직히 다른 사람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와서

공자는 중얼거린다.

"내가 쓴 이 글들을 통해서

후세들은 또한 숱한 오해들을

갖게 되겠지......".


공자의 진면목은 모국에 대한

사랑과 주군에 대한 충성,

틀에 얽매이지 않았으나

그 근본은 잃지 않는

명철한 정신력에서 드러난다.

주윤발의 수많은 표정과

감정이 담겨 있는 눈빛 연기는

일품이고 위나라의 아름다운

왕비에게 흔들리는 남심에서

그의 인간성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전의 스케일이 컸던 중국 영화

"영웅"에서 천하 통일에 대한

"진나라"왕의 이념을 미화해서

포장했던 방식과는 꽤 다르다.

중화 패권주의와는 어느 정도

동떨어져 보이는 내용임에도

이 영화가 정치적인 프로파간다를

깔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내용은

공자가 학문을 세우고

책을 만들며 수많은 제자와

방랑하는 가운데에서도

군신의 예와 나라에 대한

충성이라는 두 가지 덕목을

전혀 잃어버리지 않는 굳센 모습을

보여주는 데 있다.


모든 것을 다 버려도

이 두 가지만큼은 잊지 않는

국민들을 원하는

일련의 그룹은 누구일까?  

이것을 메마른 언어로 표현해서

국민들을 설득하려 해도

국민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을 자극하고 정서를 자극해야

움직이는 사람이란 존재를

관통한다면 우리는 누군가를

설득할 때 건조한 말보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를

당연히 바라게 되리라.


마치 고난 받는 예수처럼

치장되어있는 방랑의 모습.

역사적인 근거는 희박하지만

도교의 거두인 노자의

제자였던 것으로 설정된

공자의 모습은 종교적인 다양성을

유교적인 사상 아래

통합하려는 구도처럼 보였다.

공자가 설파한 문장들 외에도

노자도덕경의

수많은 문구들이 나온다.


"무언가를 뺐고자 한다면 먼저 주어라"

라는 문장을 사용하여 공자를

도태시키고 추방하는 노나라의

실세들인 삼환의 거두의 말은

의미심장하게도 노자의 사상이

한 수 위라는 느낌을 심어준다.

그는 공자보다 한 수 위의

정치적인 계략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공자 조차도

노자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노자의 사상이 너무 거대하여

이해할 수 없다는

읊조림을 하는 판국이다

그럼에도 공자는

실용 철학으로서의 유교를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영화를 통해서

중국인들이 공자를

위대한 인물로 재조명하고

그의 철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성과가 있을 수 있을까?

지금의 천민 자본주의로

처절하게 변해가고 있는

중국 대륙에 한줄기 빛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사회적인 기강은

더욱 잘 갖춰질 것이고,

이는 다시 자본주의적인 질서와

경제적인 경쟁력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과연 행복은

어디 있냐는 말씀이다.

영화에 혹해서

내 생각을 잃어갈 수 있는

대중의 하나인 중국인 1인의 행복은

공자에 감복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영화가 성공적으로

줄 수 있는 보편적인 메시지는

벽창호처럼 자기 고집과

근본을 잊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개인에게 있는 영광이다.


과거의 학문이나 문장에 대한

연구와 이를 통한 정치적인

입싸움으로 서양이 과학혁명을

통해 이룩한 문화와 문명의 발달을

뒤늦게서야 따라잡기 시작한

중국의 병목현상의 배면에 있는

공자의 학문이 다시금 조명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사회 질서를 재정립하는데

효과적인 아시아의 이념체계가

또한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우리가 공자에게서

얻고 배워야 할 것은 입신양명에

치중하고 몰입하는 것보다는

세상의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고

보다 나은 정리된 사고체계를

꼭 유학이 아니더라도 다시금

생각해내고 창출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실마리가 아닐까?


이제는 거의 모두 자본주의로

통합되어 있지만 이 이념이

인류를 더 "행복하게만"

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비록 기업체에 소속되어

열심히 경제적인 가치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일에

온 힘을 쏟고 있지만

그 일이 올바르고 더 좋은 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일이라고

믿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하루하루가 좀 더 행복하고

힘이 날 것 같다.


물질적인 성공의 추구가

또한 마음의 행복과도

크게 어긋남이 없는

삶의 에너지를 일구기 위해

점점 둔해져 가는 머리지만

조금이나마 싱싱하게

남겨두려, 오늘은 글을 쓰고

내일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생각하며, 나의 아이에게

부끄럼 없는 아버지가 되려

노력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그것이 공자의

삶을 통해 오늘 배워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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