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비극에 대한 극단적인 자기합리화를 다루다.
'셔터 아일랜드'와 '뷰티플 마인드', '아이덴티티'의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들을 안 보신 분들은 다른 링크로 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셔터 아일랜드 (2010)
Shutter Island
감독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마크 러팔로, 벤 킹슬리, 미셸 윌리엄스
개봉
미국 | 미스터리, 스릴러 | 2010.03.18 | 15세 이상 관람가 |138분
와이프와 내가 얼마나
이영화를 보고 싶어 했었는지를
생각하면 다소 그 기대감에는
모자란 영화였지만,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고
한창 더 물오르고 진화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잘 보았기에
사실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의 짝꿍이 될만한
유명한 영화를 굳이 찾아보자면
뷰티풀 마인드 | 감독 론 하워드 (2001 / 미국)
아이덴티티 | 감독 제임스 맨골드 (2003 / 미국)
이 두영화가 떠오를 수가 있다.
결국에는 주인공의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모든 문제의
배경이었고, 외면적으로 보이는
극화의 스토리는 사실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는
반전이 나오는 영화들로써
한 묶음이 된다.
이를테면 살짝 진부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나이 어린
느낌에 젖은 채로 가끔
자기 망상이나 나르시시즘에
깊숙이 빠져 있는 것을
자각하고는 한다.
우리의 머리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과
말 그대로의 현실에는
간극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굉장히 객관적으로
우리의 어리숙함을 지적했을 때,
공주병에 빠진 여자들은
그 누군가가 자신의 미모를
질투해서 모함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믿어 버리고,
마찬가지의 왕자병 환자들은
그들의 뛰어남을 시기하는
모양이다라고 믿어 버린다.
셔터 아일랜드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바로 이러한 종류의
자기 망상이 극단에 이르러
보다 적극적으로 현실의
사람들에게 폭력까지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을 다시 현실로
불러들이기 위한
장대한 연극이
이 섬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극적인 반전에 이르러서,
주인공의 망상이 현실처럼
펼쳐지는 동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리가라고 생각했던
관객들은 '아, 지금껏
잘 속고 있었구나'라는
각성을 하게 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과연 내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사람들이
이해하는 현실은 잘 들어맞는
것일까라는 작은 각성.
주인공은 각성된 상태로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끝까지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자신을 믿을 수 있는 망상에
거하기를 원하고, 결과적으로
그의 폭력성을 거세하기 위한
뇌수술이 그를 기다리게 된다.
뷰티플 마인드의 결론이
현실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망상과 더불어 사는 것으로
끝이 나고,
아이덴티티가
결국 다중 인격자인 주인공이
살인을 행하는 인격이
사라진 것으로 판단되어
면죄부를 받고 풀려 났지만,
갑작스럽게 자신의 본질이 되는
인격인 줄 알았던 올바른 인격이
의식 속에서 살인을 행하는
또 다른 인격에게 살해당하고,
실제의 현실 속에서도
살인자가 되어버리는
결론을 내었다면,
이 영화는 내부의 망상을
진실로 생각하기로
굳게 결심한 채,
현실을 각성한 기억마저
망각하며 억압해 버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내주었다.
삼종 세트의 각각 다른
결론들을 보다 보면
향후 만들어질 비슷한
영화의 결론은 또한
무엇이 될지 궁금해진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는
불교의 유명한 문구를
다시 불러들이지 않아도
우리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자신의 삶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를 알고 있다.
현실을 어떤 방향에서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의
질문이 결과적으로 우리라는
존재가 어떠한 현실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낳게 된다.
나는 조금의 망상이나
환상도 없이 사람이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망상이나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명확한 사실만을 근거로 하는
현실만 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항상 최선의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조금은 더 나은 기분과
감정을 갖고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들은 각자만의 망상과
환상을 조금씩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건전하고도 긍정적인
망상과 환상은 현실을 바꾸고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러한 건전하고도
긍정적인 망상과 환상을
우리는 꿈이라고도 하고
비전이라고 일컫기도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러한 망상 중에
피해망상이라든가
지나친 레드 콤플렉스라든가,
종교적인 광신, 타 집단에 대한
적개심과 압도적인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전체주의적 망상 등의
자기 자신에게도 피해가 되고
남에게도 피해가 되는 망상이라면
우리는 지혜롭게
거부할 수 있어야만 한다.
셔터 아일랜드의 주인공의
망상은 결국 타인에게도
피해가 되고 자기 자신도
마모시키는 말 그대로의
부정적인 망상이다.
(다만, 그가 그런 망상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끔찍한 가정사는 이해가 된다).
당신이 갖고 있는 망상은
무엇일까를 되짚어 볼 기회를 주는
영화라고 이야기를 맺고 싶다.
나의 망상 중에 하나는
아직도 내가 쓰는 글들을 좋다고
읽어줄 만한 사람들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중언부언하면서 본 영화와도
살짝 비켜나 있는 글을
열심히 읽어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그럼에도 쓰고 난 글을
다시 한 번씩 보면서 다듬고
다시 쓰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괴물로 살아갈 것인가?
정의로운 사람으로 죽을 것인가?"가
바로 주인공의 마지막의 대사다.
이 경우에 나를 대입시킨다면
나의 대답은 정의로운
(또는 선량하고 비폭력적인)
괴물로 살아가는 게 낫 다이다.
남아 있는 대답이 여러 개가
될지라도......
주인공이 뇌수술을 받는
결론을 선택한 것이
다름 아닌 그 답이기도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