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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Oct 30. 2016

<임진왜란 1592>-섬세한 복수

팩추얼 드라마로서의 섬세한 감동,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

최순실에 대한 jtbc의 엄청났다고
하는  관련 뉴스 시청률이
8.5%인데, 이전에 이 드라마가
9%대를 찍었다는 것은 놀랍다.


이전의 나의 글에 나왔던 친구,

박동하가 야심만만하게 일본의

천주교도인 키리시탄이자 상인이자

왜군 장교 "고니시 유키나가"역을 맡은

"임진왜란 1592"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팩츄얼 드라마"를 표방하며

사극의 새로운 장을 연 작품이다.

비용상의 문제 등으로 5부작으로

압축되어 KBS와 중국 CCTV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추석을 전후해서 방영되었고,

연일 기사를 통해서 홍보가 되었다.


왜 조선은 일본에게 유린당했을까?

왜 이순신 장군은 이길 수 있었고,

적은 격퇴 되어 돌아갔는가에 대한

이런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듣고 봤다.

영화 "명량"의 1,400만 명 가까운

관객 동원 기록을 보자면, 이제

더 이상 궁극적이랄 수 있을 만큼의

이순신 장군의 극화가 나올까라는

회의감도 넷 상에서는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영과 동시에

놀라왔던 것은 이러한 성격의 드라마가

9%대에 가까운 시청률을 올린 것이다.

최순실에 대한 jtbc의 엄청났다고 하는

관련 뉴스 시청률이 8.5%인데, 이전에

이 드라마가 9%대를 찍었다는 것은

놀랍다. 물론, "태양의 후예" 같은

드라마와 비교하자면 약하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 투입된 투자금액은

10억 원 대였다.


통상 10부작 이상으로 만들어지는

대하사극은 100억 원대의 투자가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10% 가까운

시청률을 올린다는 것은 전 국가적

실시간 이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큰

성과다. 대략 10분의 1의 비용으로

예상 외의 훌륭한 성과를 이룬 것이다.

최소의 비용에 최대의 효과였다.


"감정적인 애국주의"에 치우친
임진왜란을 다룬 극화들과는
분명히 어느 정도 차원이 달랐다.


출연진들이었던 이순신 장군을

맡은 최수종 씨는 물론 사극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배우이다.

섬세한 성격의 감화력이 높고, 하나하나의 수하들과 백성들을 정말 사랑하고 위하며, 주도면밀하고도 겸손한 캐릭터를 창출했다.

이분의 연기보다 더 주목받았던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일본어로

연기한 김응수 씨였고, 인터뷰에서

제작비가 여의치 않았던 관계로

컵라면을 먹으며 밤샘 촬영을 했다는

열악함을 이야기하면서도 인생의

연기라 부를 정도의 기염을 토했다.

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고 명나라를 칠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명확한 이유와, 왜 졌는지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나온다. 그라는 캐릭터가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씬스틸러급의 연기 내공이 뛰어난

조연급 배우들이 조선군의 역할을

하고 있어, 이순신 장군만이 아닌

다른 인물들 또한 이 전쟁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올리고 승리를

위한 공헌을 했음을 드러낸다.

피해를 당한 아녀자, 복수코자 하는

남편, 거북선의 탐망꾼, 거북선의

부장, 노를 저은 격군들. 이 모두가

이순신 장군이 하나하나의 전과를

적은, 조명받아야 하는 인물들이기에

저마다의 존재감을 알렸다.

이곳에서 우리는 민초들의 존재감을

더 명확하게 느끼게 되며,

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아끼는

지도자가 어떤 기적을 만들어내는지

잘 알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대사가

말하듯 "너희들은 나에게 조선이다!"

이런 진정성을 제대로 보여준다.


조선 육군에게 쓰린 패배를 안기고 나서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게 같은 패배를

당한 "와키자카" 역에는 일본 배우인

"다케다 히로미츠"가 투입되어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였다.

이순신 장군의 꿈에 나타나는 악몽도 연출한, 그가 열연한 와키자카의 존재감이 강력했기 때문에 역으로 이순신 장군 캐릭터의 강렬함이 더욱 커졌다.

또한 실제감을 높이기 위해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일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배우들 또는

일본 배우들이 왜군 쪽의 역할을

소화했다. 따라서 극이 살아 있다.

오다 노부나가나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의 굵직굵직한 인물들도

가급적 그들의 존재감에 맞는

배우들을 기용함으로써

임진왜란을 둘러싼 내외 정세와

맞서 싸운 적이 만만치 않았음을

제대로 드러내 준다.

그동안 왜군들은 희화화되거나 임팩트가 없는 인물로 보통 그려져 왔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개개인의 존재감을 살림으로써 각각의 민초들과 이순신 장군 등의 위대함이 역으로 더 돋보이게끔 만드는 상승작용을 가져왔다.


그중에 박동하가 맡은 "고니시"역은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복합적인

캐릭터를 지니고 있는 "여우"이면서도

키리시탄(천주교도)의 면모를 지닌

나름 이질적인 존재였었다.

이런 역할을 잘 소화해낼 줄 몰랐다.

키리시탄으로서 겁탈당하려던

조선 여성을 보호해 준 장면이 있었지만

우여곡절로 편집되었다고 아쉬워했다.

실제로도 천주교인이다.

복잡한 계산과 감정 상태를 드러내는 복합적인 캐릭터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이순신 장군과의 묘한 대치를 은연중에 보인다. 교활한 여우이지만, 상인이자 천주교도, 정치 및 외교 유닛.

중국 CCTV에서 촬영의 대부분을

끝낸 명나라 군대의 경우에도

이전보다 훨씬 명확하게 이들의

존재감이 드러나도록 하는

열연이 이어졌다. 만력제부터

이희송, 등자룡 등의 인물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올 수 있었다.

등자룡은 수전 중에 왜군의 배에서

왜군들을 도륙하다 죽는 모습이

매우 숭고하게 표현 되었다.

이여송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모습도 중국 CCTV와의

협업이 아니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만력제의 관과

체형에 대한 고증이 잘못되었다는

비난도 있지만, 이정도면 그냥

준수하다고 해주고 싶다.


"명랑"에서 CG를 해낸 팀이

촬영에 합류했고, 원래 극화보다는

역사물들에 더 전문화된 PD진이

주도권을 잡고 제작에 참여했다.

이것이 화면 제작에 완성도를 더하고

보다 사실감 넘치는 드라마가

만들어진 중요한 이유를 더했다.


"감정적인 애국주의"에 치우친

임진왜란을 다룬 극화들과는 분명히

차원이 달랐다. 정확하고도 참신한

고증에 집중하고, 객관화했으며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드러내면서,

한/중/일 삼국 간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은 더 냉철한 시각으로 접근했다.

때문에 이 드라마를 통해서

시청자들은 즐길 뿐만 아니라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우리의 적을 사실에 입각해서
더 철저하게,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때려 부숴야만
하는 그런 시기다.


이렇게 강렬한 극화가 한바탕 지난

10월의 말, 우리는 자기 자신과

이들을 둘러싼 소수의 이익밖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의 이익은

전혀 생각해볼 단 하나의 이유도

갖고 있지 않은 지도자와 그를

조종한 사람들의 정체를 알았다.

국민들은 이제야 분노하고

무수하게 그들의 정체를 다룬

뉴스의 폭포에 광분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에 혼란한 사회상,

구한말의 피폐한 국가와 지금의

대한민국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를 괜히

이곳에 데려온 것 같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순환한다.

우리가 지금의 이 혼란을

어떻게 넘어서게 될지는

아직도 희부옇게 불확실하다.

넘어서서 다른 시대를 맞더라도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제대로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없다면, 이 같은 비극이나 혼란은

언제라도 다시 되풀이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를 둘러싼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대다수 99% 인 우리 민초들은

어떻게 살아남고 어떻게 더 나은

삶을 향해 살아갈 수 있을까?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을 가지고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밑빠진 독에

계속 물만 붓는 국가가 아니라.


그리고 이제 위기와 더불어

그런 기회가 우리 앞에 와 있다.

그저 시대를 뒤로 돌리고

거대한 자본과 권력을 소유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자들에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전처럼 유린만 당할 것이다.


우리의 복수는 이순신 장군처럼

냉철하게 가진 힘과 못 가진 힘을

파악하고, 부족한 힘이라도 제대로

기울이면 보다 엄청나게 큰 힘을

압도하고 이길 수 있음을 깨달을 때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판옥선과 화포는 어떤지,

얼만큼 근접해 와야 적이 확실히

우리가 쏜 포탄에 맞을 것인지,

배를 언제 선회해서 쏘아야

적함을 모두 침몰시킬 것인지

따져보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현명함은 이 드라마를

보는 와중에도 얻어질 수 있다.


우리의 적을 사실에 입각해서

더 철저하게,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때려 부숴야만 하는 그런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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