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구제 불능의 범죄자들처럼 영화도 그렇게 되다.
이전에 다른 글에서 원작이 잘 만들어져 있을 때, 이를 기반으로 한 영화가 성공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내용을 적었던 바가 있었다. 이와 같이 이 영화도 그러한 불리함을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느끼게 해주었지만, 원작이 가지고 있는 재미라는 측면이나 스토리의 일관성, 나름 긍정적이었던 주제 등을 넘어서서 더 좋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냈다기보다는 붕괴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졌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서 욕을 했구나, DC의 최근 시리즈물들이 다소 예상보다 저조한 흥행을 했기 때문에 팬들이 가졌던 반전의 희망이나 기대감을 많이 벗어난 작품이 한번 더 나온 탓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구나 싶었다.
기대가 많이 있었음에도 개봉 후에 저평가된 영화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보면, 더 보고 싶어 지기 때문에 무엇인가 건져갈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어, LA까지의 10시간짜리 비행기에 몸을 실은 뒤에 아무리 봐도 뛰어나다 싶은 작품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아시아나 항공의 영화 목록 중에서 이 영화를 최초에 선택해서 봤다. 그다음에 한 숨도 쉬지 않고 이어서 본 '메카닉 리쿠르트'와 '독수리 에디'를 포함한 세 편 중에 이 영화를 본 시간이 가장 아까워졌다.
그럼에도 생겨나버린 하고픈 이야기를 하자면 아래와 같다. 이 영화를 보지 않을 분들이거나 이미 본 분들이라면 맨 첫 단락 부분만 읽어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한다. 글을 쓴 대상은 볼까 말까 망설이는 분들이다. 어설프게 보지 말라고만 말씀드리면 결국 나와 같이 보는 사람이 생길 수 있으므로, 직설적으로 영화 속의 어법을 빌어온 양 적어본다.
우연히 볼 일이 생긴다면 봐도 좋다. 적어도 일정 수준도 되지 못하는 영화들보다는 나은 면이 있다. 그러나 찾아서 보거나 꼭 봐야 할 영화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실제로 앞으로와 그 이전의 모든 시리즈물들에서 이 영화는 그 어떤 연결고리도 제공할 리 없으며, 추후에는 누구도 언급하지 않을 것 같다.
원작 만화에서 그려진 희대의 사이코 패스 악당 죠커와 거의 완전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또한 짝이 될만한 사이코 패스 커플인 할리퀸의 혐오스러운 각각의 역할이 가진 본질을 마치 "트루 로맨스" 스토리의 극단적이고도 대책 없이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는 밀착된 커플로 만듦으로써 다소 특이하고 이질적인 원작 코믹스 전편에 흐르던 갱스터 무비 또는 안티 히어로 또는 다크 히어로물의 매력마저 마지막에는 완전히 날려버렸다.
왜냐면,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이 두 커플이 매력적이라거나 우아하다거나 대단히 독특하다는 느낌보다는 안쓰러움을 갖고 쳐다보게 되기 때문이다. 둘 간의 유희를 위해 누굴 죽여도 개의치 않는 두 남녀 중에 할리퀸은 세상을 구하는 일에 참여한다. 그래서 얼핏 감동도 낳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게 무슨 소용인가하며 다시 뒤집어 엎는다. 차별성 있게 잘 만든 색다른 영화 한 편이 되었다기보다는 잘못 만든 한편의 망작이 탄생하는데 이 두 커플의 기괴함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이렇게 되면, 실상 새로운 캐릭터가 된 죠커나 마고 로비의 열연으로 살아난 할리퀸을 다른 영화에 활용하거나 결합하는데 지장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사실상 이 외전 형식의 극화에 나온 배역들은 모두 용도 폐기가 되었다. 원작 코믹스에서는 등장했던 배트맨이 이 영화에 거의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도 완벽하게 다른 시리즈물들과 선을 긋는 스핀 오프를 제작하기 위해서 잠시 잠깐 메타 휴먼이라는 존재만 광고 화면처럼 살짝 몇 명 등장하는 수준에서 영화를 밀봉하려고 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미 만드는 과정 또는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단계에서 불이 옮겨 붙지 않도록할 위험관리를 했던 것이다. 이 영화가 혹평을 받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분명히 제작사는 감지했었던게 아닐까?
물론, 남자 관객들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육감적인 몸매와 헐벗은 옷차림으로 멋대로 행동하는 말괄량이 같은 캐릭터를 가진 미모의 여배우 마고 로비를 쫓아 자동적으로 시선이 따라가는 현상을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로 마고 로비라는 배우만 이 영화를 통해서 살아남았다. 원작 코믹스에서는 할리퀸은 죠커로부터 독립된 존재이며, 자신이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서는 그런 자각은 사라져 있다. 거칠게 행동하면서도 폭력적인 존재에게 주늑들어 길들여진 존재가 가진 매력에 호응하는 관객들에게 어필했다고 생각될 정도다.
사춘기의 광란에 빠진 철없는 두 일탈 커플의 기행에 그저 한심스러워 보인다는 느낌만 남게 될 뿐. 이 영화는 중2병을 가진 또는 가지고도 멀쩡한 척 살아가는 관객들을 고객으로 포지셔닝한 채로 만들어진 영화 같았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팀 내 또 다른 일본인 여자 팀원인 카타나를 훑는 카메라의 시선도 사춘기 소년의 앵글이다.
이러한 면에서는 원작 코믹스가 맞추고 있는 시선의 수준도 그러하기는 하다. 그렇다면 어차피 등급도 성인물로 받은 바에야 원작 코믹스만큼의 흐드러진 광란과 음침함, 잔인함이 드러나고, 아캄에서 벌어지는 나름의 반전들과 좁은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밀도 높은 대결씬들을 제대로 채용하는 것이 차라리 나았을 것 같다.
잔인하고 위선적이고 서로 도와줄 생각 하나 없이 각자 살아남기 위해서 싸움을 해나가는 아무런 대의 없이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던 원작 코믹스의 범죄자들이 왜 이 영화에서는 갑자기 인류를 구하자는 대의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는 가슴 뜨거운 감동을 만들어 내려고 애를 썼을까 의아해하다가, 영화 막판에는 약간 생겨났던 감동마저도 뭉개는 결말이 나오는 바람에, 이 초등학생이 되는대로 만들어 붙인 모자이크 같은 영화에 결국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구제불능'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다.
'차갑던지 뜨겁던 지 하라' 이 문구가 절로 떠오른다. 이 영화는 감동과 재미 양쪽 중에 어느쪽으로도 가지 못했다. 심지어는 이 원작코믹스의 마니아들에게 어떻게 보일 것이며, 캐릭터 상품, 즉, 코스튬이나 피규어 등의 파생상품들을 코믹스 팬들에게 얼마나 많이 팔아넘길 것인가에도 휘둘린 흔적이 검색하다보니 여기 저기에 보인다.
마블보다 재미있어야 하고, 후속 시리즈들을 홍보해줘야하며, 배우들을 각각 드러내주고, 피규어들도 팔아야 한다 등등. 이렇게 주안점들이 분산되면 관객들의 시점도 분산된다. 아무것도 건져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집중하는 바가 없는 모자이크가 나온 중요한 이유같다. 원래 헐리우드 영화 산업의 캐릭터 상품 제작 및 유통은 어느 제작사든지 다 열심히 하는거다 라고 하면 할 말은 없는데, 가장 중요한 작품의 완전성에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핀트가 어긋나고 있는 제작사가 마치 성공한 시리즈물을 다루듯이 주변부에 더 신경 쓰고 있다면 영화 자체의 흥행확률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필연적이다. 어설픈 수익 다변화 전략 때문에 궁극적으로 매출과 이익은 더 떨어졌을거란 혐의를 지울 수 없다.
긴박한 위기의 순간, 인류를 위협하는 적들이 사람들을 괴물로 마구마구 만들어가는 순간에 이들은 술집의 바에서 아주 느린 속도로 각자의 과거를 말하고, 솔직하고도 순수하게 좋은 사람으로 인정 받고 싶다는 욕구를 말한다. 아무런 위기감 없이 길어지는 이 씬을 보다가 잠깐 잠이 들 뻔도 했다. 왜 여기서 이렇게 늘어져야만 했던 것일까? 영문을 모르겠다. 그 어디서도 만들어내지 못한 몇몇 캐릭터들의 매력을 갑자기 만들어 내려다보니 억지로 끼워놓은 씬의 비중이 갑자기 커진 느낌이다.
다만 색채를 활용하는 면에 있어서는 이 영화는 나름 재주가 있어 보인다. 거의 유일해 보이는 출구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