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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Dec 03. 2016

<아바타>-아, 봤다.

2편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니 1편을 잊어버리지 말자는 뜻에서.

아바타 (2009) Avatar

감독 제임스 카메론

출연 샘 워싱턴조이 살디나시고니 위버스티븐 랭

개봉 미국 | 액션, 어드벤처 | 2009.12.17 | 12세 이상 관람가 | 162분


끝판왕과 싸우는 힘든 과정에 몰입한 게이머들의 흥분감과 집중도는 아드레날린의 엄청난 폭포와 함께 스크린을 향해 뿜어진다. 2016년 12월 초의 오늘. 이미 Life Gage가 완전히 제로가 되어 나가떨어져야 할 거의 단, 한 가지도 이해할 수 없는 악행으로 점철된 "절대 악"수준의 끝판왕은 이 나라의 최고 수장에서 순순히 물러날 생각을 단 한조각도 하고 있지 않다. 더 나아가서 악행 같은 것은 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예들이 날뛰는 걸보고 그 주인들이 생각하고 싶어 하는 대사의 전형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영화나 스릴러에서는 그래도 시대에 맞게 악당급의 모습도 절대로 주인공급에 비해서 추레하기 그려지지 않고, 일면으로는 수긍할 부분이라도 있게끔 그려져서, 변명의 여지라도 있고, 오히려 주인공이 가해자 입장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해석상의 모호함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맞춰 악당조차 극화 속에서 세련되게 가공되는 시대에, 3류 막장 소설이나 드라마보다도 더더욱 명확하게 "악"임이 분명한 덩어리를 향해서 96% 이상의 국민들이 물러나라고 소리를 치고 있는데도, 기대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자잘한 비교적 덜한 악의 덩어리들이 그 거대악을 둘러싸고 지들끼리 차악에 불과하면서도 선을 자처하며 이후 권력을 어떻게 쥘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끝판왕을 물리치자고 일치단결하여 일어났던 진영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예상보다 훨씬 더 지저분하고 훨씬 더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국민의 지지율이나 염원, 모두의 시위 같은 것은 그 자잘한 악들과 거대 악의 입장에서는 별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답답하고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나라의 상황에서 그래도 벗어나 숨을 쉴 틈이나마 주는 것은 언제나 영화라든가 드라마, 게임 같은 현실 회피의 수단들이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이런 답답한 상황을 해소해주는 멋진 패턴의 영화는 무엇이었나 떠올려보니 아바타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와서 누가 이 긴 글을 읽어주실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마음에 잠시라도 휴지기를 주고 싶다면, 아바타에 대한 이야기나 아바타라는 영화를 보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끝판왕은 어떤 방식으로든 결국 클리어 된다. 이것은 시간과 들인 노력의 문제다. 하지만 부정한 나라의 수장이 제대로 클리어 되는 것은 게임이나 영화만큼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결국에는 제대로 클리어 될 것이다. 이런 순진함을 믿어보자. 비록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약간씩은 상대적으로 악한 존재들이라고 할지라도.

끝판왕과 더불어 그를 둘러싼 잔당들을 무대 밖으로 속 시원히 끌어낼 주연배우들은 우리들 밖에는 없다.

2010년이 된 지  3주쯤 뒤에 언제나 변명처럼 신혼살림 챙기고, 업무가 바빠서라는 핑계를 달고 살았던 나에게도 감당할 수 없이 자유로운 시간이 2-3일여 생겼었다. 새해 글쓰기를 시작한다는 다짐 따위는 없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남으니 의미 있는 취미 하나 다시 살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바타를 보러 간 것은 1월의 둘째 주 주말이었다. 럭셔리하게도 3D 아이맥스 영화관으로 가서 1.5배 이상의 극장표 값을 내고 아이처럼 설레면서 들어섰다. 80년대에 3D 영화관에서 몇 편의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잠시 떠올랐다. 그때는 셀로판테이프 같은 재질의 안경알, 종이 안경테로 만들어졌던 조잡한 1회용의 입체영화를 볼 수 있는 안경이 주어졌었지만, 이번엔 그래도 안경알, 안경테 모두 플라스틱 재질이라 세월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다시 회수를 해서 재사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마도 친환경 운동의 영향 이리라, 비싼 돈 주고 안경하나 정도는 무료로 받아갈 수는 없었을까 하는 저렴한 생각은 범인류적 이데올로지에 깔려 사라진다. 


그렇다. 아바타는 친환경 운동의 영향을 깊숙이 이념으로 깔아놓은 영화이다.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에서 1회용 기념품이 남발했다면 그 자체로 모순이 되었을 것이다. 영화의 중심 주제는 자연을 낭비하고 파괴하는 생명체에게는 쾌적한 삶의 환경은 주어지지 않아야 제맛이다라는 것인데. 인디펜던스 데이의 주제가 변주를 맞아 환경을 파괴해온 인류를 공격해 오는 꼴이다.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지구를 침략해온 외계인들은 자기 행성의 자원을 낭비하고 다른 생명체의 행성을 침략해서 다시 그 행성의 자원을 낭비하는 약탈을 반복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가진 놈들이다. 아바타는 여기에서 그 반대의 상황을 변주한다. 지구인들이 바로 이 인디펜던스 데이의 외계인 같은 놈들로 그려지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가 그러한 주제로 오바마 정권 하에서 개봉된 것은 또 하나의 정치적인 이유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근래에 경험했던 자원 침탈, 곧 부시 정권하의 이라크 공격과 중동에 대한 석유자원 지배권을 높이고자 하는 전쟁을 장기적으로 확대시켜 벌린 공화당을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간접적이지만서도, 공격하고 있다. 공화당 지지자들에게도 표를 팔아야 했으므로, 아바타의 무대가 되는 외계인의 행성을 침탈하고자 들어간 것은 미군이 아니라 (미국의) 거대 기업이 고용한 용병들이다. 미국 정부 하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자유라는 이념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다는 주인공이 형의 죽음으로 형을 대신해서 외계 행성에 파견된다는 스토리는 미국 내의 공화당 지지자들의 공격을 피하고자 하는 설정으로 보인다. 


미국 영화이므로 이 영화는 또 다른 미국 영화들의 계보를 잘 이어가고 있다. 이를테면 백인들의 무자비한 인디언 토벌과 정복 활동을 비난하는 "늑대와 춤을"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만들어준다. 외계 행성의 "나비족" 외계인들은 다름 아닌 자연과 동화되는 삶을 추구하고 샤먼 의식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몸에 문신을 새기고, 전사가 되기 위한 의식을 행하는 "인디언"의 생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끔 한다. 미국 영화계가 추구해온 지난 미국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 이 영화에서도 또다시 변주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내내 펼쳐지는 가공할만한 위력의 3D 기술, CG,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놀라운 상상력은 이미 앞 서 말했던 주제들의 변주의 도움을 받아 더욱더 설득력 있는 내용으로 변화한다. 처음에는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을 만나는 듯이 가까이 다가온 입체적인 인물들의 화면에 경이감을 느꼈지만, 보면 볼수록 이렇게 착한 이념을 깔고 있는 영화에 나 역시 동화가 되지 않을 수 없는 면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의 성공의 이면에는 착한 이념이 깔려 있으며 동시에 모종의 협박도 하나 깔려있다. 자연을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며 따르라라는 착한 이념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연이 우릴 쫓아낼 것이다라는 협박이다. 


하지만, 영화는 또한 모순을 깊숙이 깔고 있다. 대량 생산과 소비라는 착실한 이념이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가 없었을 이 블록버스터는 그 자체로 자연에 대한 거슬림이다. 힘세고 건장하고 강력한 자연의 파워가 없었다면 지구인들에게 정복되었을 이 행성의 나비족들은 그 자체로 강하고 힘센 민족에게는 약자가 당할 수밖에 없다는 약육강식의 일면을 정확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마치 미국 시민권이라도 따낸 듯이 아바타를 통해서 행성에 남게 된 소수의 지구인들은 강력하고도 쾌적한 자연환경을 향유하는 집단에 잔류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게 된다. 또한 주인공의 출신 배경이 미국 해병대이고 이 해병대에서 교육받은 능력과 결합된 자신의 아바타의 뛰어난 능력으로 사랑과 나비족들의 존경을 받게 되는 구조는 은연중에 미국 또는 신체적 구조 내지 능력이 뛰어난 백인 최고 주의를 깔고 있다. 


결국 착한 이념과 건전한 협박의 이면에는 그다지 착하지 않은 현실 구조와 모순이 착실하게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객인 나도 결국 기분 좋게 소비를 마치고 돌아서면서 나의 치졸한 현실과 다시 만나 치졸한 투쟁사를 반복하게 된다. 현대인들이 현대인들에게 팔고 있는 것은 고대인들의 미덕이다. 그러나 그 미덕은 삶의 실천으로 가게 되면 어느 순간에 증발되고 만다. 2시간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짜릿한 도덕적 쾌감을 산 것만으로 관객들인 우리는 만족하고 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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