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론>-마모루 감독의 실사 영화

16년 전에 실사화 되었던 "공각기동대" 마모루 감독의 영화

by Roman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 기동대"는 이른바 고전의 반열에 들어가는 애니메이션이다. 이미 만들어진지 20여 년이 지나서도 이 영화의 세계관이 파생시킨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져 왔고, 할리우드에서 "고스트 인 더 쉘"이라는 이름으로 드디어 만들어 개봉한다.


주인공인 쿠사나기 소령 배역이 스칼렛 요한슨에게 주어졌는데, 서구권 국가들에서는 이것이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화이트 워싱"이라며 비판을 하는데 반해 정작 일본에서는 유사한 반향이 없었다. 왜냐면, 쿠사나기의 외모가 일본인과는 거리가 있는 서양화된 모습이라서 이 모습에 맞는 서양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머리카락을 블랙으로 염색만 한다면 무리가 없는 배역 설정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배우의 밥 그릇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애니메이션의 쿠사나기의 외모에 더 가까운 쪽은 스칼렛 요한슨인 것 같다.

이런 논란을 가끔씩 뉴스를 통해서 접하다 보니, 아. 그런데,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실사화된 영화"가 이미 있었지라는 기억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떠오른 그 영화의 이름은 "아바론"이다. 실제 영화의 제목은 Avalon 즉, 아발론이라고 국어 표기하는 게 맞을 텐데, 어찌 된 일인지, 개봉 시의 제목은 아바론이었다.


이 영화부터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뿐만 아니라 출연자 전부가 폴란드 인들로 채워진 채로 만들어졌다. 그것도 2001년도에. 마모루 감독이 폴란드 인들이 자신의 실사 영화에 나오기를 원했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일이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물론, 할리우드에서 제작할만한 수준의 블록버스터가 아니었고, 개봉 이후에 그다지 큰 반향을 거두지 못했다.

이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자신의 애니매이션의 여주인공이 서양 사람이기를 바랬었고, 실사 영화 배역으로 낙점하기도 했다.

고스트 인 더 쉘이 개봉하기 전에 마치 케이블 영화 채널에서 유사 영화를 틀어주는 마냥, 유사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2001년도에 쓰인 창고로부터 가져와서 조금 다듬어 여기에 다시 올려본다. 영화를 보실 분들이나 화이트 워싱 문제로 조금 안 좋은 기분을 가진 분들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도움이 되길 바란다.


어두운 세기말의 분위기가 그리고 고도 첨단 정보화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이 영화 속에서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아바론을 만나는 순간 이 세기말의 어두운 풍경이 형식적이고도 정형적으로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 수 있다.

어둡고도 단조로운 톤에 몽환적인 영상이 계속 펼쳐진다.

아바론은 세기말을 비관적으로 다루는 많은 영화들의 뒤에서 자기방식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온 감독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된 자기 문법을 보여주는 듯하다.

매트릭스가 공각 기동대의 애니메이션에서 참고한 영상적 기술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어느 분인가의 칼럼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매트릭스-n세대를 위한 맞춤 하이브리드... 이 제목 맞았던가?) 그리고 아바론의 감독은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이 공각기동대의 제작을 지휘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공각 기동대의 영상 스타일이 영화 속에서 반영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까, 이것이 바로 이 영화를 보도록 나의 발걸음과 눈동자를 스크린 속으로 갖다 놓는 중요한 이유였던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폴란드 영화를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이 만들다...

배우 이름도 제대로 보지 않고, 오로지 "공각 기동대"와 애니메이션 감독의 이름만 보고 들어서니, 잠시 후 영화 속에서 들려오는 말이 일본어나 영어가 아니라는 사실에 혼란에 빠질 지경이 되었다. 독일어 같기도 하고, 이탈리아어인가? 뭐더라.... 폴란드 어였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뒤늦은 시간이었다...

공각 기동대와 같은 점과 다른 점

공각 기동대의 주역 설정과 닮아 있는듯한,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이미지의 여자 주인공 캐릭터와 후면에서 그녀를 서포트하는, 덩치 좋고 대머리 까진 남자의 모습은 공각 기동대의 팬들을 위한 유사 형식을 갖추기 위한 장치구나라는 생각을 스스럼없이 하도록 해주었다.

공각 기동대의 쿠사나기 옆의 화력을 제공하는 파트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공각기동대라는 만화가 가진 배경이 타일랜드(태국)의 시가지였다면, 이영화는 동구 유럽권의 음습한 풍경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니 그 분위기는 이루 말할 바 없을 정도로 다르다. 그 분위기의 차이점을 말하는 나 자신은 조금 기분이 특별해진다. 태국과 카자흐스탄을 오가면서 겪은 두 가지의 풍경이 믹스되며 떠오르기 때문이다.

태국이 외양적인 혼종을 선사하고 있는 동네라면, 러시아 문명권의 카자흐스탄은 내면 속의 복잡한 혼종을 드러내는 동네라고 간략하게 설명할 수 있겠다. 동유럽 대륙이 갖고 있는 혼종은 외면에 있는 것보다 내면에 있는 것이 더더욱 진하고 무겁게 느껴져 온다. 그 결핍은 아시아 지역이 갖고 있는 약간은 희미하게나마 열려 있는 출구마저 없는 것처럼 막막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지의 변경은 다름 아닌 감독의 세계의 분위기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냉전 시대를 통해서 음습하게 변해온 동유럽권 국가들의 모습은 바로 암울한 미래의 풍경을 서구권의 상대적으로 약간이나마 열려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드러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2017년 현재, 그런 느낌은 많이 사라져 간다. 성장이 멈추고 사상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좀 더 폐쇄된 방향으로 후퇴하고 있는 일본과 영미권의 모습 아래서 동유럽은 오히려 더 희망을 가진 동네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사이버에 종사하는 자만이 즐겁게 살 수 있다...?

미래에 실물 산업은 처절히 붕괴되어버리고, 오로지 사이버 환경에서 벌어지는 게임이나, 고도 첨단 산업이라 불리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즐겁고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될 수 있다는 영화 속에서 현현된 생각은 극단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상당히 일리 있게 다가오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2017년 현재 그렇게 가고 있는 면도 적잖이 있다.

영화 속에서 작용되는 현실 원리는 그렇다. 사이버가 산업의 중심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실물이 가진 가치는 암울한 어둠 속에 놓이게 된다. 한없이 초라하고, 퇴색하여 단조롭기 그지없는 현실 세계의 풍경과
게이머로서 자신의 의식을 넷 공간 안으로 끌어들여 배틀넷을 나누고 있는 전사인 "주인공 여자"가 게임 화면 속에서 활동할 때의 그 박력은 사이버의 환상과 더불어 붕괴할지도 모르는 우리의 일상에 대한 경고처럼도 보이고, 영화 문법의 기묘한 이지 그러 짐에 매료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하다.

(1) 영화 속 일상: 단조로운 회색톤과 항상 똑같이 펼쳐지는 주인공의 눈 앞의 풍경, 프로게이머로서, 목숨과도 같은 자신의 의식을 이용하여, 돈을 벌었지만,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가족도 없이, 오로지 개 한 마리만 달랑 키우며, 살아가는 외로운 화면...

(2) 영화 속 사이버 세계: "아바론이라는 게임" 안에서, 의식을 투여하면서 각 단계를 클리어해 나가며, 만약 게임 속에서 죽거나 "로스트"(의식과 몸을 다시 결합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병원에서는 자신의 몸뚱이가 링거를 통해서 식물처럼 살아가는 상태가 되고 만다. 이 중에서 계속 살아남으며, 게이머로서의 명 승부를 펼치는 사람들은 "영웅"으로 불리게 된다.



최후의 단계(플러스 A지역)

그리고 복잡한 상황들을 거쳐서, ( 이 스토리는 직접 봐야 이해가 된다...) 공각 기동대의 여자 주인공의 90퍼센트 육화 된 모습과도 같은 이 주인공이 게임의 숨겨진 단계인 플러스 에이에 들어서는 장면은, 여러 가지의 가능성을 사람들에게 떠올리게 만들어 준다.

실제로 오시이 마모루가 캐스팅한 그의 애니메이션 여주인공의 실사화된 모습은 이 모습이었다. 화이트 워싱이 아니다.


왜냐면 지금까지 무기 등의 아이템을 걸치고 싸우던 주인공이 쥘 수 있었던 것은 권총 하나 달랑이며, 현란한 CG(이건 완전히 미국식의 영상 기술이었다... 미, 폴, 일의 합작이 마치 2차 대전을 약간 비틀어 뒤집어엎는 현상처럼 보였다면, 여러분들 중에 누군가는 약간 움찔함을 느끼게 될지...)로 보였던, 주인공의 사이버 세계에서의 전투 모습과 단조로운 일상의 모습이 순식간에 리얼한 현실의 모습으로 바뀌어져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매트릭스처럼 "우리의 현실 감각이 실제로는 컴퓨터에게 통제되고 있다..."가 아니라, "컴퓨터가 창조한 일상이 보다 현실처럼 보이는" 상황에 돌입하는 문법을 발견하는 것이다. 스트로 속으로 찬 음료가 들어오는 듯 우리의 눈 앞에 들어오는 영상은

1. 매트릭스처럼, 그녀는 지금까지 컴퓨터에게 통제되어 있었던 것이냐...

2. 최종 단계를 클리어하고 나면, 그녀는 현실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냐...

3. 그 외 기타의 상상들...

을 관객들에게 뿌린다. 그러나 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아름다운 일상에 머물기를 원했던 미귀환자(의식의 귀환을 말함)는 만약 사이버가 현실보다 더한 즐거움을 내민다면, 일상과 차단되더라도 우리가 남기를 원할 것이냐?라는 질문을 매트릭스가 표현했던 것과는 다른 의미로 내민다. 당연히 현실을 지켜내는 방향으로 사이버와 현실을 동시에 오가야 되는 것이 아니던가? 에서....

이제 질문은 사라지지 않은 상태로 관객들에게 제시된다...."사이버 세계"가 현실보다 기쁘다면, 당신은 사이버 세계에만 남아 있을 것인가?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럼에도 현실을 선택하고 단지 사이버와 현실 세계를 오가는 단순한 일상을 택한다면 그러한 판단은 과연 옳은 것인가?라고 얘기하고 있다...

여러분의 일상보다 이 사이버 속에서 경험하고 만들어 놓은 것들이 보다 훌륭하고 기쁜 것이라면, 여러분은 과연 현실의 자신을 이 세계에서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으로 취급하고 이곳에 집중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여러분의 자유로운 판단이 선택한 것처럼, 나는 한쪽은 땅에 다리를 붙이고, 이 사이버 공간 안에서 글을 쓰는 정도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다. 둘이 다른 존재일 수는 있지만, 나는 이 안쪽의 나 자신과 바깥의 나 자신을 약간 차별하는 경향은 있지만, 둘 다 사랑한다. 그러나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그 망설임은 상당히 오랜 시간의 생각을 요구할 것 같다... 물론 매트릭스라는 영화에서도 이런 질문은 몇 장면에서 비슷하게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이 영화처럼 진지하고도 무겁게 물어보는 영화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던 것만 같다.



사족: SF 애니메이션은 항상 일본이 앞서 있고, 이것의 실사화 영화는 항상 미국이 앞서 있는데. 이 순위는 거의 변화하지 않을 것만 같다고 결론이 내려진 듯한 느낌이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의 하청 회사로 열심히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던 나라는 한국이라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그런 기술이 축적되어 최근에 만들어지는 헬로카봇이나 로보카폴리 같은 변신 로봇이 나오는 아동용 국내 애니메이션의 수준은 같이 따라 나오는 장난감의 수준까지도 이전과 지금의 일본 애니메이션 수준에 필적하는 것 같다.


실사가 되었든 애니메이션이 되었든, 우리나라에서도 공각기동대를 뛰어넘는 고전의 반열에 드는 SF 작품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품고 산다. 애국심이라기보다는 그래도 나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람 중에 누군가가 뭔가를 잘한다는 소식은 내게도 희망을 주기 때문에 바라는 것에 가깝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