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영화와 게임의 역사를 돌아본 뒤에, 현실로 돌아오라고 외치다
스포일러가 나와 있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다시 뒤 돌아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영화를 보자마자 맹렬하게
두뇌가 회전하는 느낌을 받은 것은
마블 영화 중에 "닥터 스트레인지"
이후에 오랜만이었다.
숨 돌릴 새 없이 나오는 반갑고도
신선한 장면의 향연은 지구 상의
가장 노른자위라고 할 수 있는
영상적 기술은 모두 총동원하고,
관객의 기억 속의 그립다 싶은
것은 모두 찾아서 올려놓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
연령대가 적은 관객과 많은 관객이
하나가 되는 융합은 벌어지지
않는 듯했지만, 세대별로 각자의
연령대에 맞는 자극을 받고 있었다.
영리하게도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을
중점적으로 담아내면서도 동시에
1900년 중반부터 착실하게 미국
영화와 영상물, 코믹스, 일본
애니메이션, 그리고 양 국가에서
만들어낸 게임을 착실하게 소비하며
자란 중장년층이 이런 걸 보고 싶었다고
고개를 끄덕일 만큼 길이로나 폭으로나
수많은 캐릭터를 화면에 진열했다.
제작사인 "워너 브로스"는 최근
승승장구하고 있는 "마블 시리즈"를
넘어서고자 "디씨 시리즈"로 몇 번
어설픈 도전을 했다가 관객으로부터
기대했던 호평까지는 받지 못했다.
마치 설움 받았던 시간을 다시
뒤집어엎는 공격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 어떤 영화 제작사도 하지 않았던
인류의 영상, 게임 역사 상 유명 캐릭터를
경쟁사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 정도만
제외하고 말 그대로 대거 방출했다.
"스필버그"는 물론 하나의 "브랜드"
가 된 영화감독이다. 그의 이름 하에
다른 감독이 그럴듯한 영화를 만들기만
하면 그래도 평작 이상의 평가는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브랜딩"의 차원에서
그의 이름이 나온 것 같지 않았다.
그가 전력을 기울여 만든 것 같았다.
왜냐면, 그가 줄기 장창 끊임없이
만들어온 전통적인 테마,
이야기 방식, 어떤 의미에서는
영화 속에서 "오아시스"라는
광대한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어낸 천재로서 영웅시되어
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고백하고, 키스 한번 제대로
용기 내서 해보지 못한 현실에 대해서
미숙한 "홀리데이"의 자기 고백이
왠지 스필버그의 고백이라도
된 것처럼 들려왔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를 더하자면, 나 같은 중년이
미국과 일본의 영화/게임물에서 경험한
영상물에 대한 40~50여 년 간의 기억을
순간순간 하나로 엮어서 보여주면서,
혼동을 최대한 줄이는 방식으로 말끔한
스토리를 펼쳐낼 수 있는 인물은
"스필버그"밖에는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최소한 스태프의 아이디어를 취합하고,
중심 스토리를 조합하고, 최종적인
편집에도 그가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면 이런 장관은 나오지 않았다.
지구의 미래에 대해서 불안 섞인
시선이 나왔다. 영화 속에서 가장
성장률이 높은 도시로 나오는
오하이오 주의 콜럼버스에서
주인공인 "웨이드 와츠"가
살아가는 빈민촌의 모습은
이제 10~15년여 정도면
인공지능 등의 발달된 기술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게 되어
생계만 간신히 유지하고
지금보다도 훨씬 뒤떨어진
주거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란
미래에 대한 예측을 담아내서
보여주고 있다.
층층으로 이루어진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VR고글을
끼고 저마다의 가상현실에서
움직이고 있는 장면이 확실하게
설명하는 내용이다.
매드 맥스나 블레이드 러너,
공각 기동대, 로보캅이나
매트릭스, 아발론처럼 기술이
인간의 삶의 수준을 과거로
회귀시킨 것 같은 참상을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상을 채용한 것이다.
최근에 페이스북이 미 공화당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서 트럼프의
승리를 견인하는데 역할을 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거대 SNS 회사는 결국
수익성과 점유율 등을 위해서는
그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무자비한 기업임을 드러냈기
때문일까?
"오아시스"라는 가상현실
게임 세계는 거대한 경제 체계가
되고, 이 세계 속에서 더 거대한
부와 권력을 창출하고자 하는
"101"이 빈민가에 폭탄을
설치해서 수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고, 오로지
"홀리데이"가 내건 3개의
키를 손에 넣기 위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은
익숙한 우리의 현실로 보일 정도다
거대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에게는 수익 단위에 불과한
수많은 일반 사용자의 모습을 그린다.
현실의 실물 경제의 영향력과
활력이 사라진 영화 속 세계에서
삶의 기쁨은 오로지 가상현실
게임에 접속해서 누리고자 하는
환상을 경험하는 것 외에는
남아 있지 않는다는 스토리다.
그저 상상 속의 세계라기보다는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온 대로 자율 주행차가 도로를
달리는 시대가 실제로 다가오고
있는 양, 그 역시 현실화될 것 같은
모습을 갖고 있었다.
이 영화가 주려고 한 메시지는
기업이든 개인이든 모두가
다시 이 현실로 돌아오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멀리 날아가고 있는 화살 같은 현실을
돌이키지 못한다.
이미, 이 가상현실에 대한
철두철미한 종사자가 모여서
만들어 낸 영상물이 그런
현실과는 다른 메시지를
이야기하는 공허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게임 세계를 만들어 낸
"홀리데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영화 속에서 그가 "오아시스"에 숨긴
이스터 에그를 찾는 방법인데,
기업은 수익성밖에 검토하지 않으므로
그러한 방법을 진심으로 문제를 낸
사람의 관점에 맞춰서 찾아낼 수 없다는
내용은 언제나 그랬듯이 순진해 보인다.
이 현실 속에서 수익성에 목숨을 건
기업에 있는 종사자의 적지 않은 일부는
영화에서 보통 사랑받는 주인공으로
나오는 어중간한 착한 사람보다는
훨씬 더 인간을 잘 이해하고 있고,
개인의 정보를 다각도에서 해석해서
숨겨진 의도와 관점을 발견하는데
더 빠르다. 다만, 방향이 이해한
사람의 정보를 그 사람을 온전히
인식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12세 이상 또는 전가족 관람가의
영화를 수없이 만들어온 이 분야의
장인 "스필버그"옹께서는 이런
현실을 슬쩍 모른 척하시고,
보편적인 인류의 양심 수준에서
감동을 낳을 수 있는 메시지에서
영화를 끝마칠 수 있는 분이다.
E.T. 나 Back To The Future 까지는
진심으로 만든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외의 작품에서 진정성을
느낀다는 것은 어렵다. 그에게
바랄만한 제작사의 흥행 수준을
떠올리자면.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는
아직도 꿈을 꾸는 사람의 시선이
남아 있다. 그는 계속 꿈을 꾸고
꾸게 해주고 이에 맞는 수익을 거둔다.
공교롭게도 최근 호평을 받은
그의 영화는 블록버스터가 아니었다.
독립영화 수준의 저예산 영화가
오히려 그를 빛내고 있다.
왜일까?
이런 그의 수많은 영화의
메시지는 기업 자본의 해악을
드러내고, 평범한 사람이 모여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해서 이를 막아내는
것이지만, 스필버그 감독과 같은
창작자 또한 거대 기업이자 수익성에
목말라하는 "워너 브로스"같은
제작사와 계약 관계를 맺고 있다.
그 때문에 기업 내에 있는 악역을
하나 도드라지게 그려내고
그 악역을 제외하면 순진하기
이를데 없는 직원을 그려내는 것이다.
회사가 망할 판인데, “홀리데이”의
정보를 분석하던 101의 직원들은
“웨이드”의 아바타인 “Z”가 마지막
키를 찾아 마지막 문을 여는데
열광한다. 그것이 곧 해고로 이어질텐데도.
감동의 포인트는 수많은 관객이
자신의 영상물 소비에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가슴이 어느
순간 뜨거워져 거대 자본의 해악에
맞서서 일제히 일어난 평범한 게이머
중에 자신이 하나가 된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내는 것인데,
이것이 성공적으로 일어났다.
영화 내외적으로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평처럼
기립 박수 같은 반응은 없었다.
어디선가 8~90년대의 영화관의
풍경을 떠올리고 단합했던 곳이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있던 곳엔
그런 기립 박수를 경험한 적이 없는
90~2000년대 생들이 많았고.
아니면 누군가가 아무리 어리더라도
영화가 주는 영상을 통한 즐거움을
떠나서, 이러한 상업 영화가
정말로 진실을 말할리는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약간 삐딱한 시선을 거두고 보자면,
"닥터 스트레인지" 이후에 이 같이
놀라운 영상적인 신선함을 전달할
영화가 당분간 나오기 힘들 거라는
예상을 쉽게 벗어나서 나온 또 하나의
"영상 혁명"이었다. 아마 또 근 시일
안에 넘어서는 작품이 한편 더 나올
것 같다. 하지만 그 전의 최고작이다.
가상현실과 현실을 제대로 중첩하여
게임 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도
압도당하고, 나와 같은 중년의 관객도
오랜만에 보는 드로리안, 아키라의
모터바이크, 건담, 스트리트 파이트의
여러 주인공 등, 눈 크게 뜨고 찾기만
하면 보이는 반가운 캐릭터를 찾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로 만들었으니, 성공이다.
이미 30년 전쯤에 나왔던 스필버그가
만든 "환상특급" TV시리즈의 가상현실
노동자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 것을
나 같은 연령대의 관객은 떠올릴 수 있다.
"스필버그"가 어떤 종류의 선각자인지를
쉽게 되새길 수 있게 만든 장면이었다.
101의 로열티 센터에서 가상현실에
접속해서 일하는 노동자는 쉼 없이
전기 자극을 받으며, 족쇄처럼 자신을
묶고 있는 빚을 갚기 위해 비인간적인
노동을 강제당하는 존재로 그려지는데,
이 장면은 지금 이 영화에서 처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놀라운 부분이다.
실제 이 같은 장면이 나왔던 그 TV
시리즈에서 가상현실 노동자는
자신의 실제 기억과 가상현실 속
내용을 혼동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타는 냄새가 갑자기 나기 시작하고
실제 자신의 현실 속에서는 기계
오작동으로 죽게 된다. 죽은 후에도
그의 시신을 수습하는 이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차가운 백색의 큐비클이
30년 전에 나왔던 내용이지만
영화 속 영상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아마 이렇게 오래 전에
예상했던 가상현실 속 노동의
차가운 현실이 스필버그의
내면에서는 오래동안
사라지지 않는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 말미에서 로열티 센터는
폐쇄되고, 오아시스는 주간에
2일은 현실 속에서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있게끔 문을 닫는
곳으로 바뀐다. 그렇게 마무리
되는 것이 결국에는 이 영화가
현실로 돌아오라고 하는 외침이며,
근로자에게 쉴 시간을 주라는 권유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후 일어난
관객이 이후에 자신의 어플 속
게임의 세계에서 어느정도
벗어나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쌓아놓은 포인트와
들인 시간이 계속 그를 잡아당길 것이고,
끝나지 않는 야근의 시간이 생존만을
위해서도 계속 흘러갈 것이다.
우리가 보는 이 영화부터가
가상현실이라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래야 현실로 제대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