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man Aug 07. 2017

<로건>-가장 리얼한 히어로물

상영 시간 내내 히어로물의 익숙한 공식들을 파괴하다

2017년 7월의 어느 날 운이 좋게도 내가 발권한 미국행 비행기 좌석이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바로 그 전달에 탔던 인도로 가는 항공기의 후질 대로 후진 옛날 기종의 비행기도 아닌, 최신 기종이었으므로, 먼저 든 생각은, "아, 이 비행기의 이 좌석에서는 적어도 최신이라 불릴만한 영화가 있겠구나"였다.


이 직전까지는 비행기에 관련해서 불운이라고 할만한 일이 연거푸 두 번 있었다. 그러다 보니, 숨을 돌릴 새라도 온 듯이 그 순간은 매우 소중했다. 그저 잠으로 때울 수 없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 든 생각이 좀 더 최신의 영화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니...... 아마도, 영화가 내 삶에서 차지하는 순위는 꽤 높은 모양이다.


나이를 먹었어도, 일단, 보고 싶은 영화를 볼 기회가 생기면 아직도 설렌다. 그건 그만큼 이전 시대에 비해서 요즘의 영화들이 점점 더 잘 만들어져서 일 수도 있고, 어쩌면, 영화라고 하면 진저리가 날 정도로, 억지로 본 영화들이 많지 않다 보니 생긴 습관일 수도 있다.


각각의 영화는 설사 영상 기술이 발달하고 마케팅, 상영 기재, 올로케이션 등이 보다 쉬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무조건 더 발전하는 산업은 아니다. 이 또한 예술이고, 앞 서의 시대에도 지금의 감독들이 쉽게 따라가지 못하는 영역의 작품을 남긴 감독들이 있다. 세상의 모든 작품을 다 보고, 다 이해할 수 있는 감독들이 최근에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때로 앞 선 시대의 영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추레한 작품들도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줄기 장창 말 그대로의 발전이 일어나는 지점은 SF 블록버스터, 만화를 영상으로 구현하면서 놀라움을 아직도 전달해주고 있는 히어로물들이다. 최신 물을 보아야 하는 지점은 그래서 통상 이런 영화들이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 일면 최신의 트렌드와 기술, 사람들이 생각하는 호오의 기준의 변화 등등을 짧은 시간 동안에 많이 흡수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시대를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정말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보다 즐겁게 주어지는 트렌드의 요약본 같은 것이다. 나이 먹었다고 뒤로 쳐져서 아재 개그만 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그나마의 출구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로건"은 이러한 트렌드의 최첨단에 앞서 나가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뭔가 뻔한 여러 가지 올드한 영화들을 모아서 만든 짜깁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무엇 하나 뻔하지 않은 스토리로 나아가는 영화였다.

좌석 앞의 화면을 터치해서 영화를 찾아들어간 순간, 모두가 칭찬하는, 그렇지만 엄청난 히트까지는 기록하지 못한, 그럼에도 꼭 보고 싶었던 영화가 바로 보였다. 그 외의 모든 영화들이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일 정도였다.


로건은 울버린의 본명이다. 엑스맨 시리즈가 흥행하는 데 있어서 휴 잭맨이 연기한 이 역할은 마블 시리즈의 아이언맨에 비할만하다. 매우 본능적으로 싸우지만, 깊은 우수와 고독을 지니며, 이루 다 기억해낼 수 없는 엄청난 과거의 고통과 더불어 있는, 엄청난 근육질의 남성성을 지니고도 사려 깊으며 매력적인, 또한 카리스마가 작렬하는 매우 복합적인 캐릭터를 연기해냈기 때문에, 실상 울버린 하나만으로도 존재감이 충분해 보일 정도였다.


이것은 울버린이라는 캐릭터가 코믹스에서부터 갖고 있었던 특질이라기보다는 "휴 잭맨"이라는 내공이 깊은 배우가 창출한 울버린의 고뇌에 찬 모습에다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의 노력을 다하여 만들어낸 근육이 매력적으로 잘 믹스되었기 때문에 생긴 현상 같다.


엑스맨에서 유일하게 독립적인 시리즈를 이번까지 3번째로 만들어 낸 캐릭터가 울버린인 이유는 엑스맨이라는 시리즈 그 자체보다도 더 강력한 존재감을 이 배역이 배우와 더불어 갖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전의 울버린 독립 영화 2가지는 별다른 존재감과 높은 흥행 성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맨 처음 버전은 개봉도 전에 유출본이 돌아다녀 버린 탓에, 수많은 관객들이 이미 돈 한 푼 내지 않고 볼 수 있었던 탓이지만, 저조한 흥행으로 마무리했고, 실제 이 영화를 보았던 기억은 그저 희미하게만 살아 있다. 휴 잭맨의 울버린은 심지어 그를 제외한 영화 속의 그보다 내공이 떨어지는 다른 "남자" 캐릭터들을 영화 속에서 명확하게 떠올리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다니엘 헤니가 야심만만한 악역을 맡았지만, 큰 인상은 유감스럽게도 남기지 못했다. 이것이 영화를 본 기억의 거의 전부라 할 정도다.


그리고 두 번째, 울버린이 일본에 간 이야기를 다룬 버전인데, 누구도 일본에 간 "레옹"을 그린 "레옹 2"를 본 이야기를 보란 듯이 올리지 않듯이, 잠시 잠깐, 정말로 볼 영화가 없어서 보다가 30분을 버티지 못하고 다른 작품으로 바꿔버린 이 영화는 그다지 열심히 볼만한 가치를 갖지 못한 영화다라는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일단, 영화가 그저 야쿠자 세계의 배신과 탐욕, 권력욕의 틈바구니에 엮인 하나의 덩어리 같은 느낌 말고는 전달하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첫 편은 울버린이라는 캐릭터의 시작을 설명하고자 하는 신선한 프리퀄 성격이라도 갖고 있었지만, 일본에 온 울버린은 제대로 맥락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할 수가 없었고, 뭐 하나 새로운 부분도 없었다.

히어로물이라는 장르 안의 뮤턴트물 속에서 배역의 일대기를 제대로 그려낸 배우는 그 밖에는 없었다.

세 번째의 울버린 독립 영화가 "로건"이라는 이름을 단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허를 찔린 듯이 약간 당황했다. '그렇지, 원래 울버린의 이름이 "로건"이었지, 그리고 하나 더, 배우의 매력이 코믹스의 울버린의 매력을 훨씬 뛰어넘었으므로, 좀 더 배우에게 캐릭터를 더 가깝게 붙여서 만든 영화는 아닐까?' 이런 생각이 불현듯 들었었다.


역시나 이 영화는 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존재로 울버린을 보여주기 위해서, 늙고 병들어, 점점 약해지고,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살아가는 듯한 "로건"을 맨 첫 장면으로부터 연출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한 현실감을 주기 위해 이전의 영화 시리즈들과 코믹스에서 언급되고 있는 돌연변이들과 실제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엑스맨들이 전혀 다른 존재인 것처럼 "엑스맨"만화를 보는 "엑스맨"인 프로페서 X와 울버린을 보여준다.

로건이 밥벌이를 위해 몰고 다니는 리무진에서 부품을 떼어가져가려는 거리의 불량배들과 힘겹게 싸우는 장면이 처음에 나온다

이전 시리즈에서의 인간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엄청나게 다른 힘을 가진 히어로들로 그리지 않으면서, 그들의 능력이 그보다는 좀 더 현실에서 나타날 만한 현실적인 힘인 것처럼 또 다른 영화적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더군다나 돌연변이들이 오랜 시간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고, 제거되거나 노쇠하여 죽은 탓에, 몇 안 되는 돌연변이 몇 명이 도망 다니면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원래부터 마이너에 속해서, 인정받기보다는 경원시당하고, 화려한 면 하나 없이 축축하고 눅눅한 배척을 당하는 뮤턴트물로부터도 추락하여, 더더욱 변두리 깊은 곳에 숨어서 연명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까지 한 것이다. 로건은 늙지 않고, 계속 피부와 골격이 순식간에 재생되었던 엄청난 파워를 보이는 이전 시리즈들의 울버린이 아니다. 프로페서 X도 이전 시리즈물들처럼 냉철한 이성과 더불어 상대방의 마음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능력을 보이지 못한다.

서로 돕고 사는 쇠약한 뮤턴트 두명에 불과해 보인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딸이라 할 수 없지만, 뮤턴트들을 잔혹한 실험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시설들로부터 뮤턴트들의 유전자를 받아서 태어난 아이들 중에 하나인 울버린과 같은 능력, 아니 그 이상의 능력을 가진 여자 아이를 만난 로건은 처음에는 그다지 열심히 그녀를 지키고자 하지 않는다. 예상하다시피, 점점 뒤편으로 가면서 로건은 장렬한 희생을 하면서 뮤턴트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곳에 다다르기까지의 내용이 이전까지의 클리셰 성격의 스토리라인을 벗어난 것이 이 영화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다.


이 과정에서 커다란 반전이나 엄청난 수준의 그래픽 같은 것이 하나 나타나지 않고도,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준 것은, 재기 넘치는 감독의 히어로물 비틀기의 기술들이다. 맨 처음 그들이 정부 기관의 악당들로부터 쫓겨다니기 시작할 때 묵었던 호텔에서, 로건은 같이 도망치던 뮤턴트 소녀로부터 엑스맨 만화 잡지를 뺐고 난 다음에 외친다. "이건 다 거짓말이야. 실제로 엑스맨들은 이렇지 않아!"라고 말한다.

이러한 장치는 엑스맨을 영화 속 세계에서, 좀 더 현실 쪽으로 밀어 넣는 장치다. 자칫 유치해 보일 수 있는 장치임에도 만신창이로 쫓겨 도망 다니는 로건과 뮤턴트 두 명의 초라한 모습은 기존의 엑스맨 시리즈에서 보던 그들이 히어로로 불릴 만큼 충분히 강한 존재들이 아닌 이유가, 결국, 영화적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설정이란 사실을 그제서야 제대로 깨닫게끔 해주었다.


힘을 감추고 산 것이 아니라, 감출만한 힘이 없어 도망 다니고 있는 존재들임을. 물론, 그 와중에 잡히기 전에 호텔에서 프로페서 X는 오랜 시간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소음과 더불어 활동 능력을 감퇴시키는 감응파를 쏘아서 그와 뮤턴트 소녀를 잡을 수 없도록, 막는다. 이 장면이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그는 능력이 없는 정신이 혼미한 존재로만 그려졌었기 때문이다.


이 정신파를 유일하게 그나마 제대로 뚫고 호텔 방안까지 들어가며, 방 안 밖에서 적들을 하나하나 처치하고 일행을 구해서 도망치는 로건의 모습은, 그가 액션다운 액션을 한번 제대로 선보이지 못하던 중이라, 일종의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물론, 그 씬 자체는 오랬동안 텔레비전 신호가 잘 잡히지 않는 것 같은 소음과 화면 떨림과 더불어 있는 씬이라 매우 답답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이 씬만큼 창의력 있고도 비용 효율적으로 긴장감을 높일 수 있도록 잘 만들어진 액션씬은 드물다고 생각했다. 나름 독창적이었다.

하나 더 이 호텔이 이후의 씬과 연결되기 전에 관객을 잠시 혼동에 빠지게 만든 것은 영화 속 시대로부터도 100년 전에 만들어진 서부영화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뮤턴트 일행의 모습이다. 그 영화는 전통적인 서부영화의 플롯을 따라, 도망 다니던 정의의 건맨들이 평화로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악당들과 싸워 이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관객들은 알게 모르게 로건이란 영화도 이렇게 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된다.


다음의 씬은 길가에서 말들이 몰고가던 트럭에서 뛰쳐나와 난관에 봉착한사람들을 프로페서 X의 정신감응 능력을 통해서 도와주고, 그 집에 들어가 숙식을 제공받으며, 그 가족의 평화를 위협하는 적들과 로건이 대신 싸워주는 내용까지 연결된다. 여기까지, 관객들은 살짝 이 뮤턴트들이 인간들을 도와주며, 화목하게 어울려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은연중에 들게 되지 않을 수 없다.


그전에 뮤턴트 소녀가 찾아가고자 하는 뮤턴트들의 낙원이 있다는 곳의 좌표가 그저 엑스맨 만화의 한편에 나오는 좌표와 같다는 것에 실망하게 되면서, 소녀와 함께 더 도망다니길 멈추고, 모두가 정착할 곳을 찾을만한 이유를 갖게 된 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도우며, 그들에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을뻔 했다.

그러나 그다음 밤에 그들 앞에 다가온 놀라운 씬은 프로페서 X가 울버린에 의해서 찔려 죽고, 뮤턴트들을 받아들여 식사까지 대접한 사람들을 이 울버린이 갑자기 살해하기 시작하는 장면이다.

갑작스럽게 이 장면이 나오면서 아드레날린이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앞 서 써놓은 내용들까지가 일단, 로건이라는 영화가 끝까지 흥미진진함을 잃지 않도록 이끌고, 이후에 뻔히 예상되는 스토리에 접어들기 전까지, 예외성을 지속적으로 보이면서, 재미있게 보도록 이끈 부분들이었다. 아마도 이 이상 설명한다면, 그 글은 스포일러일뿐, 보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공익적인 면도 없는 글이 될 것 같아 이만 줄이려 한다. 물론 자비에 교수는 죽지만, 그 이후의 내용은 나름의 약간 새드한 해피엔드로 흘러간다. 만화 속의 좌표도 작동하게 되고.


그러나 여기까지만 보아도, 이제는 더 이상 휴 잭맨의 울버린, 로건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울버린이라는 캐릭터 하나만으로, 야수와 살인마, 광기 어린 뮤턴트, 다혈질과 냉혈한, 기억 상실과 더불어 오래되었지만 무의식 속에 봉인된 비극적인 기억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 늙고 병들어 부정적으로 퇴행해버린 노인까지, 삶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휴 잭맨이 넘칠 정도로 잘 구현해냈다 싶었고, 마지막 그림을 잘 끼워 넣었다는 만족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게 잘 마무리된 시리즈물의 유종의 미라는 것을 잘 거두었다.

영화 속에서 그가 연기한 울버린이 과거와 현실을 오가면서 나왔던 모습들을 누군가 이렇게 모아 두었다. 대단한 팬심이다.

아마도 그 이상의 존재감을 가진 울버린 또는 로건이라고 불려도 어색하지 않은 그 누구보다도 더 인간적인 뮤턴트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당분간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더 이상의 엑스맨 영화가 개봉되지 않아도 크게 이상해 하지 않을 듯하다.


이 영화에는 어쩌면 커다란 교훈이나, 메시지 같은 것은 실려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로건"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우리가 우리와 다른 존재에 대해서 함부로 규정짓고, 마구 다루지 말라는 경구를 하나 던지고 있다. 늙고, 병들고, 죽어 가고 있고, 더 약한 누군가를 돕기도 하고, 때로 맞거나 욕을 먹어 상처 입는 존재라면, 그 누구도 함부로 다루지 않아야 한다라는 메시지다.


그는 뮤턴트로만 불려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울버린"이 아니라, "로건"인 것이다. 왕따를 만들거나 당하는 문화에 젖어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전달되지 않는 소리지만 말이다.


우리는 로건이라는 영화 이전부터 이후까지 계속해서 인종과 성별, 연령, 지연, 학연, 경력 등을 내세우며 계속 내가 속해 있는 집단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주류인 사람들을 차별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로건이라는 작품을 본 사람들의 감각은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이것이 영화가 가진 출구라는 것이다. 십자가를 엑스자로 넘어뜨린 메시지이기도 하고.


매거진의 이전글 <미이라>-좀비물의 히어로물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