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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an 14. 2018

<블레이드 러너 2049>-걸작이 낳은 걸작

사그라져 가는 전편의 기억에 모닥불을 붙이다.

이 영화는 SF의 형식을 빌어서 제대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저의 영화 감상문에는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다른 곳으로 가시면 되겠습니다.

그렇다 "공각기동대"(1995) 전에"블레이드 러너"(1982)와 그 외의 "블랙 레인"(1989)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이 나오는 종류의 SF의 기원과도 같은 작풍이 그의 것이었다.


최근 몇 편의 시리즈물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보다, 이건 정말

전편을 넘어선다 싶은 느낌에

칭찬을 했던 것은

"미션 임파서블-로그 네이션"과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

"맨 인 스틸",


그리고 대다수의 마블 히어로물

시리즈였는데, 그 외에도 하나 더

시리즈물의 최초 작품 이상의

속편이 나왔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이 하나 생겼다. 그게 이 영화다.


리들리 스콧은 그 대중성에 가려

실제 인류의 영화사 상 계속

사라지지 않는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있음에도 작가주의 감독은

아니지 않을까 싶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위대하다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다.


"블레이드 러너"를 그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낯선 느낌이

들 정도다. "에이리언"의 감독으로서의

선구자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그 외의 대중성을 충분히 확보했던

여러작품과 비교해서 이 작품은

그의 작품이 아닌 듯한 거리감이 있다.


디스토피아를 다루고 기계 문명 및

인공지능의 기계가 인간처럼 활동하는

작품의 기원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에

앞서서 "블레이드 러너"를 만든

"리들리 스콧"이 있었다는 사실은

조금만 웹을 뒤져봐도 의외의 내용으로

발견된다.

다소 평범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영화사를 관통하는 시리즈물을 여럿 흥행시켜온 감독이다.

그렇다 "공각기동대"(1995) 전에

"블레이드러너"(1982)와 그 외의

"블랙레인"(1989)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이 나오는 종류의

기원과도 같은 작풍이 그의 것이었다.



개봉 당시에 더 많은 인기를 끌었던 작품 E.T. 를 지금의 시대에도 위대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속편이 제작된 이후에도 여전히 "블레이드 러너"는 위대한 작품으로 남아 있다.


"시카리오-암살자들의 도시"로 유명한

"드니 빌뇌브"는 제작자 "리들리 스콧"

의 명성에 전혀 손상 없이, 전작을 넘는

"블레이드러너 2049"를 잘 만들었다.

이 사진만 봐서는 리들리 스콧, 드니 빌뇌브, 해리슨 포드, 라이언 고슬링이 꽤 소통이 잘되고 있었던 느낌이다.

물론, 전편을 보았거나 전편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아야 즐거움이 배가되는

단점이 있다. 전작 없이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재미있게 보기는 힘들다.


"리플리컨트"는 여러 환경에서 인간

대신 노동을 하게끔 만들어낸 복제

인간이다. 고강도의 노동을 할 수

있게끔 더 강화된 신체를 갖고 있거나,

쾌락을 줄 수 있게끔 유희 용도로도

제작된 제품으로 타이렐 사가 만든

“리플리컨트” 중 일부가 "자각"을 하고


한정된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전작에서는 "반란"을 일으켰다.

속편에서는 이같은 반란의 진압이

아니라 반란의 소지가 될 요소를

발견해 가는 과정에 중점을 두었다.


전작에서 이들을 잡는 사람이

"블레이드 러너"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전직 "블레이드 러너"인 "릭 데커드"가

함께 사랑의 도피를 한 "리플리컨트"인

"레이철"과 엔딩을 장식한 이 영화는

개봉 당시보다 그 이후에 더 열광적인

관객을 만들어 냈고, 이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작품을 파생시켜 왔다.

이 장면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나올 장면이다. 인조인간과의 사랑의 도피, 그리고 아이까지 낳았다는 내용이 연결되었다.

개봉 당시에 더 많은 인기를 끌었던

작품인 E.T. 를 지금의 시대에도

위대하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이 속편이 제작된

이후에도 여전히 "블레이드 러너"는

위대한 작품으로 남아 있다.



"리플리컨트"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혁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왜 위대한지? 그 이유를 써보고자 한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 기정 사실화된 것

처럼 잘 형상화되었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그 위대한 이유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좀 더 심오함을 더하자면, 이 영화에서

다뤄진 것은 인간이란 존재가 갖고

있는 "취약성"으로 "외로움"과

"소통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것은 그냥 블록버스터가 추구하는

재미와 다른 차원의 영상화를 추구하고,

그럼에도 영화적 재미를 잃지 않게끔

잘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다.


1. 미래의 "인조인간", "인공지능"이란

존재들이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문제를 만들어 낼 것인가를

앞서서도 사실 임직 하게 예상했고,

지금의 시대에 와서도 떨어지지 않는

설득력을 가지고 설명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진

"리플리컨트"에게 실상 그들이

의지를 갖고 있고, 우리와 같은

자존감이나 상상력, 사랑의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인간은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하는

"인조인간"은 인간과 반목하게 되고,

같이 살아가고자 하는 "인조인간"은

용도에 맞게 인간에게 인정받고자

필요한 경우 이미 만들어진 "인조인간"

중에 자각을 가진 존재를 즉각적으로

무자비하게 파괴할 것이다.


2. 후속 편에서 "블레이드 러너" 역할을

맡아 일하고 있는 것은 전편의

"인간"이  아닌 용도에 맞게 배치된 또

다른 순종적인 "리플리컨트"이다.

인간은 그 같은 존재를 "껍데기"라고

비웃고 조롱한다. 사실 그 조롱의

배후에는 두려움이 있지만.


전작에서 "리플리컨트" 반란자가

타이렐 사의 대표와 개발자를 살해한 뒤에,

새롭게 보다 순종적인 "리플리컨트"를

만들게 된 것은 그 또한 "리플리컨트”인

“월레스”이다.


그는 "리플리컨트"가 인류의 미래라고

생각하며, "리플리컨트"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혁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노동을 "리플리컨트"는 대체해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보다 인간에게

인정 받는 "리플리컨트"와 그렇지 않은

계급으로 나뉘는데, 인정받지 못하는

"리플리컨트"나 인정받는 "리플리컨트"

양쪽 모두가 인간에게 "리플리컨트"의

위상을 변화시켜 인정받고자 하는

상황이 나온다. 이 아이의 존재는

인간에게만 재앙으로 인식될 뿐이다.


3. 심지어 인간이 만든 "리플리컨트"를

위안하는 것조차 시스템이 만들어낸

심리적인 안정을 제공하는 홀로그램

영상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자기 안위를 위해서도 인간은 기계

문명을 발달시키지만, 결국 그를 통해

얻는 안위는 허무에 가깝다는 말이다.


"라이언 고슬링"은 왠지 억울한 역할에

끝에는 결국 자신이 희생하는 배역에

잘 어울리는 연기를 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가 사랑하고 교감했던

존재와 "라라 랜드"와는 다른 양상으로

헤어지게 되었다.

그저 K의 맘에 맞는 답변과 행동을 하도록 프로그래밍된 홀로그래픽 프로그램과 사랑에 빠져 있다.

한 발 더 나아간 비극은, Joy라는

이 홀로그램 영상 인공지능은 구매한

"리플리컨트"이건 "사람"이건 구매자가

원하는 대로 응답하게끔 설계된

프로그램일 뿐임을 "K"가 나중에

깨닫는 장면이다.

Joy를 잃고 고가 위를 걸어가는 K에게 전광판의 대형 홀로 그래픽 Joy가 말을 걸고, 자신의 Joy 가 불러주었던 이름 Joe를 똑같이 K에게 붙여준다. 누가 샀던 기능 동일

4. 소재의 파격성이다. "리플리컨트"가

낳은 아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K"가

수거해온 "리플리컨트"의 뼈를

부검하는 과정 에서 밝혀지면서,

이 사실은 영화 속의 세 진영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다.

레이철의 아이의 생일로 파악되는 일자에 태어난 남녀 아이 2명이 똑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음이 밝혀진다. 하나는 리플리컨트. K는 자신이 인간이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게 되고.

"리플리컨트" 반란군 진영에서는  

성장한 아기를 찾아 반란군의

우두머리로 앉혀서 혁명을

성공시키고자 한다.


"타이렐사"의 "월레스"와 "엔젤"에게는

"리플리컨트"의 혁신을 통해서 새로운

차원의 "리플리컨트"를 만들 기회이자,

"인류"를 넘은 존재가 될 수 있는

"종의 교체" 타이밍이 된다.


"인간"에게는 이 내용이 타 진영에

알려지면 인류에게  위협이 되므로

빨리 찾아서 없애야 할 화근이 된다.


5. 이 과정에서 "월레스"는

"릭 데커드"를 납치해와서 회유하는

과정에서, 전작의 "릭 데커드"와

"레이철"이 나누는 대화 내용을

다시 들려주며, 사실, 임신이 가능한

리플리컨트를 만들어서, "릭 데커드"와

사랑에 빠지게끔 프로그래밍해서 접근

시켰을 수 있지 않은가라고 한다.


"릭"이 사랑의 진실은 자신만 알고

있다고 대응하자,이에 대해 "레이철"이

낳은 아이를 찾아오도록 도와준다면,

그 선물로 "레이철"과 똑같이 생긴

"리플리컨트"를 주겠다고 하며,

데리고 와서 보여준다. "릭"은 거부한다.

G.C. 기술로 1982년도의 숀 영이 연기한 레이철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재현해 냈다.

이 영화는 SF의 형식을 빌어서 제대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중요한 주제는 전작에서 "릭 데커드"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했던 "레이철"이

아이를 낳고 죽은 뒤에, 살아남은

아기가 인류의 미래를 바꿀 계기를

가져온다는 이야기인데.


이 과정까지만 설명할 뿐 속 시원한

결론이 나는 것도 아니고,

실제 어떤 피해가 크게 벌어지지도

않으며, 문제가 해결되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인 것도 아닌채로,

파국도 아니고, 해피엔딩도 아닌

선에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아마도 10여년 후에 "블레이드 러너

2059"를 다시 찍고 싶은 모양이다.


상대적인 의미에서 해피엔딩인 것은

오랫동안 자신의 딸을 보지 못했던

"릭 데커드"가 자신의 "딸"과 같은

유전자 배열로 복제되어 만들어진

"리플리컨트"인 "K"의 희생을 통해서

결국에는 자신의 딸을 만나게 되는

부분 정도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려지고 있는

미래 디스토피아의 모습은

Sony Pictures가 영화사여서

툭하면 나오는 "SONY"로고 광고나

"코카콜라"등의 광고판, 그리고

기타 영화 시장이 좀 큰 나라의

언어를 사용한 여기저기에 나오는

PPL이 무색할 정도로 어둡고,

눅눅하고, 안개가 잔뜩 끼여 있어

답답하기 그지 없다.

식별이 어려울 정도로 안개와 조명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공해에 찌들고, 기후도 눅눅한 환경이 느껴진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류에게

닥친 식량 위기는 큰 고통을 초래하고

"리플리컨트"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인간은 대부분 초췌하며, 윤락 행위

공간마저도 외부에서 특정 행위 중인

내부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오픈된,

미래사회는 그저 부정적인 예측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기술과 기업이

인류를 힘들게 하리라는 내용이다.


 제대로 된 인간으로 나오는 것은

"릭 데커드"와 그의 딸과 "K"의 상사다.

나머지는 모두 "리플리컨트"로 나온다.

블레이드 러너의 수장은 월레스의 리플리컨트 부하인 엔젤에게 살해당한다. 기업과 기술이 공권력을 이기는 시대를 보여준다.


또한 인류에게 "대정전"시기가 한번

다가와 모든 정보가 일순 사라진 적이

있고, 이 때문에서인지 어디에 가든지,

환한 불빛이 계속 켜져 있는 곳은

발견하기 어렵다. 빛은 전체 공간이

아니라, 일부에만 비치도록

세팅되어 있다. CG를 자연스럽게

하기 위한 설정이 유지되는 것 같다.


첨단 기술이랄 수 있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차라든가, 홀로그램 등은

신기술이라는 경이감을 낳기보다는

미래에 그렇게 될법한 답답한 일상을

담아내어 영화 속의 세계에서 관객이

살아 왔던 것 같은 "익숙함"과

"답답함"을 선사할 정도다.


그럼에도 왜 이 작품이 전작 이상의

위대한 작품으로 보일까?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두려움을

안기는 동시에 인간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벌이는 기술의 발전이 꼭  

좋은 쪽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경계와, 본질적인 인간의 불안감,

계급 의식은 미래에도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예측을 깔아서,

우리에게 모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식을 던져주기 위함은 아닐까 싶었다.


미래에 맡겨두지 않고, 현실을 통해서

먼저 변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변화하지 않은

문제가 시간이 지난다고 미래에

변화해서 갑자기 해결되지는 않는다.

낙관에 빠지기에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더 심화된 문제가 많이 있다.

그러나 비관을 드러내기 때문에,

최소한 이정도로 어두운 세상은

만들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희망이 오히려 엿보인다.


"리플리컨트"가 있던 없던, 착취당하고,

가차 없이 버려지는 일은 사람에게도

일어나고 있으며, 살아남기 위해 가면을

쓰고 자신의 일부나마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다.


일상으로 다가온 고민거리와,

일면 거리가 먼 미래나 우리 일상

바깥에 있을 거라고 믿고 싶은 것들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도록

해 준 영화다.


이 영화는 SF의 형식을 빌어서

제대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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